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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 떠난 소년
마티외 리카르 지음, 권명희 옮김 / 샘터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무교이고 무신론자인 나는 특정 종교가 더 좋거나 싫을 것도 없지만 나만의 상대평가에 의하면 불교적인 분위기가 훨씬 편안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교가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자연과 가까워보인다는 막연한 짐작에서 비롯된 안락함. 이 안락함은 [행복을 찾아 떠난 소년]을 읽는 내내 나를 편안히 숨쉬게 했으니,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것같은 세상사에 지치고 쉼터로 공인된 독서까지도 머릿속을 마구 휘저음에 탈진한 몸을 추스릴 만하다.
어린 소년 데첸은 선(善)을 타고났다. 밭갈이를 하는 소를 보아도, 무거운 짐을 지어 나르는 노새를 보아도 슬펐고, 동네 아이들의 장난과 어른들의 주먹다짐을 보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데첸은 은자이자 명상가인 잠양 삼촌을 따라 기꺼이 눈의 왕국으로 떠났고, 여행 중에 잠양으로부터 여러 깨달음을 얻고, 눈의 왕국에선 대스승인 독덴 린포체를 만나 깨달음을 얻는다. 독거와 수행을 마친 데첸은 사람들 곁으로 돌아와 은자로서의 깨달음을 전하니, 저자는 이들을 통해 독자에게 불교의 깨달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37페이지) "우리들의 머릿속을 오가는 산만한 생각들이 이런 거머리와도 같단다. 사람들은 거머리들이 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놈들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뒤에는 이미 때는 늦은 거지."
(85페이지) "우유 속에는 이미 크림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버터를 만들 수가 있단다. 하지만 물을 아무리 휘저어 본댔자 버터를 얻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사금을 캐려는 자는 암석들을 뒤질 뿐 나무들을 파헤치진 않는다."
(132페이지) "매 순간 이런 의문을 마음에 지니도록 하세요. '죽는 순간 아무런 후회도 없으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라고요."
가파르지 않아서 밋밋하다 싶은 스토리. 자극적인 사건이나 독특한 인물, 화려한 수식어나 파격적인 묘사 대신 꾸밈없고 맑은 글이다. 종교인의 여정과 수행이 일반인에게 기막힌 재미를 선사하리라고 기대한다면 기대를 버리시길. 마음을 비우고, 맑은 소리를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재미 대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작가가 생물학 박사로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티베트의 스승 밑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처럼 깨달음을 위해 세상을 버릴 수는 없다고 할지언정 책으로나마 잠시 세상을 버릴 수 있는 경험. 그것이 [행복을 찾아 떠난 소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