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제야 고백컨데 '캐리커처'와 '여성', 이 두 단어의 매력에 덥썩 손을 뻗어 잡은 것은 내 욕심이었다. 연예인이나 스타 운동선수들을 과장되지만 코믹하게 그려낸 캐리커처를 떠올렸던 나의 단순함과, 같은 여성으로서 당시의 유행이나 관습을 궁금해했던 나의 호기심만으로는 이 묵직한 책을 제대로 소화해내기 어려웠음을 먼저 밝힌다. 

   일단, 이 책에서 다루는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유럽 여성풍속사는 내가 가진 약간의 지식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어느 정도의 짐작을 더한다고 해도 예측의 바운더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것이 여성풍속사에 대한 완전하고 실제적인 분석이라면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또 여성이 중심에 있으나 남성은 물론 사회, 문화, 경제 문제까지 넘나드는-그래서 풍속사라는 것이 이 모든 분야를 망라, 종합적인 결과로서 나타내는 양상이라고 이해된다.-저자의 분석은 놀랍고도 놀랍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범죄자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많이 놀림을 받은 것이 언제나 모드(패션과 같은 말인데, 이 책에서는 계속 이 단어를 쓴다)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실 이 말은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과도 상통할 이 문장은, 쉽게 말하면 최근의 생얼미인을 진짜 미인으로 간주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대에 통용된 美, 또는 모드의 개념과 비교한다면 저자가 자연미를 중요시하는 것은 선구자적인 입장표명일 수 있겠다.

   아무튼 위의 문장은 평범해 보이지만 그 뒤를 잇는 방대한 양의 본론은 이렇다. 여성의 도발적인 의상은 물론 헤어스타일이나 작은 발을 강조하는 등의 모든 패션의 요소는 성적매력을 돋보이기 위한 것이고,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바지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즉 남성과 결혼해야 하기 때문인데, 여성의 삶이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은 결혼 뿐이다. 그래서 이 결혼이라는 것은 부인을 남편에게 종속시키는(부인 스스로도 기꺼이 종속관계에 동조하는) 행위인데, 일부일처제라는 제도가 확립되면서 그 양상은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 또 일부일처제의 이면에는 남성의 공공연한 혼외정사가 인정되었고, 여성의 혼외정사는 암묵적으로 인정되었다. 바로 이것이 저자가 책 전체를 관통하여 일관되게 짚어내는 여성풍속사의 핵심이다.  

   16세기부터의 여성풍속사이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여성-성적 매력-모드(패션), 이 셋의 고리는 무척이나 단단하다. 가슴선을 강조하는 데콜테와 허리를 졸라맨 코르셋, 엉덩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허리받이 치마와 굴렁쇠 치마가 옛날의 여성 패션이었다면 오늘 날의 여성 역시 가슴선을 살리는 속옷과 허리선을 내보이고 엉덩이를 업시켜보이는 골반하의를 입는 것이 대세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자가 1906년에 이 책을 내면서 앞으로도 이러한 여성 풍속은 겉모양새가 변할지언정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는 사실.  

   한편, 어떤 현상이나 대상을 의식적으로 과장하고 비꼬고 희화한 그림, 캐리커처는 그 시대의 여성풍속을 나타내기에 특히 적절한 수단이었다.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쉽고 당연한 일이었을 테고, 또 여성만큼 다양한 소재를 제공하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많은 양의 캐리커처는 거의 다 성적매력이 넘치다 못해 백치미가 흐르거나, 완전히 반대로 성적매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때때로 의미를 해석하기 어려운 캐리커처도 있지만 상당수는 저자가 본문 중에 자세히 해석하고 있고, 종종 캐리커처 자체에 주석이 달려있기도 해서 글과 그림을 함께 읽는 잔재미를 느낄 수 있다. 다만 글과 그림이 항상 나란히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앞뒤를 뒤져서 맞는 짝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캐리커처로 본 여성풍속사]는 캐리커처가 페이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책의 무게만큼이나 글은 방대하고 문장 또한 길고 길어서 이 분야에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거나 심취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쉽지 않은 책이다. 저자 에두아르트 푹스는 풍속과 캐리커처 분야의 대가로 역사학계에 널리 알려져있는 인물이라고 하니, 단순한 흥미본위의 독서 요량만으로 선택했다가는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750여 페이지라는 것을 상기하고 그 두께를 가늠하시라! 하지만 천천히, 꼭꼭 씹듯이, 한 챕터를 몇 번씩이라도 반복해서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갖고있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저자의 유명세만큼이나 어렵지만 그에 상응하는 정복의 기쁨을 만끽할 독서가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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