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로 좋은 날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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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1/3쯤, 그러니까 정확히 86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얼마나 바보같던지.. 에구구, 이 책이 단편소설집이라는 걸 그제서야 알았으니! 3편의 단편소설을 읽을 때까지도 그것이 장편소설의 도입부, 즉 등장인물이나 배경을 설명하는 챕터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변명을 둘러대자면 그만큼 소설에 온전히 빠져들었기 때문. 역시 작가 성석제는 달필이다. 독자가 정신 못차릴 만큼 매우.

모두 7편의 단편이 실린 [참말로 좋은 날]은 역설적이게도 참말로 안 풀리는, 참말로 운수나쁜 날들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내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머리에 새겨둔 작가의 글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 드니, 냉소적이고 실랄하고 비꼬는 그의 어투는 여전하지만, 굉장히 건조하고 메마르며 빠르고 짧은 톤은 새롭다. 마치 작심한 듯 7편 모두가 그러하다. 그 중 <악어는 말했다>가 그나마 제일 예전의 이미지와 가까운데, 또 그래서 제일 신선도가 떨어진다. 

가장 독특했던 <집필자는 나오라>. 말 그대로 집필자가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을 써냈다. 작가 성석제가 이런 소설을 쓰기도 하는구나, 싶다. 왕에게 상소를 올린 자들을 잡아들여 문초하는 과정을 얼마나 잘 묘사했던지, 그 급박한 상황과 왕의 진노함, 고문의 괴로운 비명이 영상처럼 생생하게 포착된다. 

대부분 작가마다 독특한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고, 그것이 좋아 그 작가의 작품이라면 늘 환영하는 독자가 있다. 하지만 작가의 새로운 면을 보고 읽는 것 역시 즐거운 일. 아마도 작가에겐 모험일 수 있겠지만 독자에겐 짜릿한 쾌감이다. 나는 오래도록 [참말로 좋은 날]의 쾌감을 즐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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