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 어느 괴짜 천재의 기발하고도 상상력 넘치는 인생 이야기, human RED 001
살바도르 달리 지음, 이은진 옮김 / 이마고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을 여행할 때 흐르는 시계그림으로 장식된 달리(Dali) 전시회의 문양이 기억난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달리의 한국전시회를 앞두고 이 책을 샀다. 단순히 초현실주의화가 정도로만 알았기에 이번 전시회도 찾을 겸 그에 대해 약간의 예습을 한다. www.freeism.net)

“또라이 아냐?”
그와의 첫만남은 마치 정신분열증을 다룬 의학서적에 첨부된 예화를 보는 듯 혼란스럽기만 하다. 주변의 이목을 끌려는 듯 떼쓰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다. 엉뚱한 행동에서 오는 특별함(남들의 이목만)을 위해 높은 곳에서 넘어진다거나, 친구를 계단 아래로 밀쳐버린다. 이렇게 비정상적인(달리도 인정했듯) 모습들은 세월을 타고 달리 전체를 이끈다.

그래서 얻어진 결론은... 싸. 이. 코.
이런 선입견 때문인지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책장을 넘긴다. 그가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황당하고 엽기적인 ‘만행’에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
“달리, 당신은 싸이코요? 아니면 당신이 말 한대로 정말 천재란 말이요?”
희미하다. 가까이 잡으려 한 그의 모습은 더욱 멀어져버린 느낌이다.

단지 왕립학교의 초기의 무던한 모습(달리에게는)은 멋지게 보인다.
물론 이런 정상적인(?) 생활은 감옥행과 퇴학으로 마감하게 되지만 그림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함께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오만하리만치 당당한 모습들이 인상 깊다.

혹시 달리가 세상을 조롱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 그림을 봐. 난 천재라구! 늬들이 이걸 이해할 수 있어?’ 하면서 열광하는 대중을 향해 조소 띤 미소를 보내는 것 같다. 자신에 대한 찬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평생 ‘천재’와 ‘광기’라는 무대에서 쇼를 보인 건 아닐까 라고 말하면 지나친 음모론인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W’자로 말아 올린 엽기적인 콧수염만큼이나 현란한 자서전이다.
그의 그림이나 인생의 의미보다는 삶 중반에 자서전을 내놓으며 "엽기적이지만 나름대로 천재적 재능을 깨우기 위해 열심히 살았소!"라 외칠 수 있는 용기가 부럽다.
어쩌면 달리의 작품이 비싼 이유가 그 ‘용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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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 전2권 세트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바람이 불고 있다. 다빈치의 후폭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출판사의 광고전과 더불어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선전효과가 더해져 올 여름을 휘어잡고 있다.
대부분 신간코너에서 오래전에 사라졌거나 한 철 지나버린 책들만 보다 모처럼 최신 유행의 책을 집어 들었다. 가끔은 ‘베스트셀러’ 목록 속의 세태 흐름에 무작정 동참해 보는 것도 남다른 재미를 준다. (물론 미디어와 군중심리에 의해 조작된 ‘반짝스타’도 상당하지만 말이다.)

작년 여름, 프랑스에서 폭염을 피해 마신 하이네켄의 알싸한 취기로 루브르박물관을 헤맸던 기억이 난다. 미로같이 다가왔던 긴 회랑과 높은 벽의 궁전, 그곳을 가득 매우고 있던 명장의 작품과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
박물관의 기억과 함께 <다빈치 코드>를 읽는다.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를 찾던 발자국 소리를 따라 책장 속을 걸어간다. 순간 한국의 골방이 아니라 루브르박물관 중앙, <승리의 날개> 밑에 서 있는 듯 하다.

짧게 이어지는 단락과 빠른 전개는 이야기의 긴박함,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그래서 어쨌다는데?” 라며 친구의 응답을 다그치듯 책장을 넘긴다.
랭던(기호학자)과 소피(소니에르의 손녀)는 살해된 소니에르(루브르박물관장)가 남긴 이상한 메시지를 아나그램(철자의 위치를 바꿔서 새 단어를 만드는 것)을 통해 하나씩 풀어나간다. 곧, 이 메시지가 다빈치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그림 속에 숨겨진 은유와 상징, 기독교의 역사와 성배의 진실을 향해 위험한 길을 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장면들은 두 뼘 남짓한 책을 와이드스크린에서 보는 서스펜스 영화처럼 느끼게 한다. 나는 결정적인 순간의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천천히 마지막 장을 펼친다.
미로와 같은 수수께끼의 터널을 지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도착한 랭던과 소피.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와 성배의 정체!

소설이긴 하지만 <다빈치 코드>는 작가의 상상력과 함께 논리적이고 탄탄한 구성으로 허무맹랑한 공상이 아닌 실재했던 역사를 보는 착각을 일으킨다.
그저 댄 브라운(저자)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과 가설, 그리고 상상력을 조합하여 이렇게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까.
그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우리 인류를 창조한 ‘그’처럼 느껴진다.

“다빈치와 함께 지난 2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비밀의 공모자가 된 기분”이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가슴속의 보물하나를 넣어둔 기분이다.
어서 이 보물, <다빈치 코드>를 친구들에게 떠벌리며(?), 선물하고픈 생각이 간절하다.


PS:
이 글을 적고 다른 사람의 <다빈치 코드>에 대한 느낌을 찾아본다.
좋았다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다는 사람이 극과 극을 달린다.
전자는 빠른 전개와 논리적인 구성에 점수를 줬을 테고,
후자는 베스트셀러 통속성과 할리우드 영화식의 가벼움에 비중을 뒀을 것이다.
하지만 ‘재밌다’라는 부분만은 대부분 인정한다.
그렇다면 나는 책 표면의 재미로 그 통속성과 가벼움을 놓쳐버렸단 말인가?
^^;
이런 오락가락하는 모호한 생각들 때문에 느낌을 쓰고, 느낌을 읽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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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호국보훈의 달’이 다가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문구와 빨간색으로 꾸며진 모양새가 맘에 들어 구입했지만 나의 부름이 없었기에 여태껏 책장 속에서 한숨만 쒔던 놈이다. 아니 ‘분’이다. 그래서 유월이 다가기 전에 먼지를 쓸어내고 책장을 펼쳐든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이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확연히 인지된다.
2차대전 중 포로수용소로 끌려간 한 유대인 꼬마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혹은 강인함)이나 현실에 순응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숨겨진 ‘무엇’을 잔잔하게 그려놓았다.
수용소 생활이라기보다 친구들과 떠난 소풍 같은 여정으로 마치 영화 <아름다운 인생>의 호기심 많고 순수한 동심처럼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더 전쟁이나 유대인 학살에 대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게 표현된 ‘슬픔’이랄까...

어느 날 소년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어딘가로 끌려간다. 그리고는 열악한 수용소 환경에서 노동을 하며 생활한다. 급기야 병에 걸리고 이곳저곳을 전전한다.
질퍽한 흙탕물에 아무렇게나 내버려진듯한 음산한 축축함, 그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점점 그 ‘무엇’을 알아간다. 적응과 체념, 불안한 상상을 통해 인생과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소년(작가)은 인생이란 자신 앞에 도열한 방을 하나하나 거쳐 나가듯 진행되는 것이기에 기쁨이나 고통 역시 인생이라는 긴 연장선을 이어주는 하나의 ‘간이역’ 일뿐 그 자체(운명)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운명이란 누구나가 만나게 되는 인생의 일시적인 과정이므로 ‘팔자소관’으로 자포자기하기 보다는 각 인생장면들을 통해(받아들여) 스스로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약간은 불교적이고, 도가적 인생관이 엿보이는 것도 같다.
‘인생은 순간의 연속이다. 집착을 버리고 순간을 살라. 그러기 위해선 자신과 세상을 한 발짝 물러나 관조하듯 쳐다보라. 자 알겠는가? 기쁘고 슬프다는 허상에 집착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뭐 이런 식으로.

'전쟁'으로 시작해서 '인생'으로 마무리 된 책이다. 오랜만에 인생이나 운명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하게 되지만 역시나 어렵다. 아직은 어린 나이기에 섣불리 인생은 ‘이거다’라고 정의하기 힘들다. 아니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 보다는 과정 속에 의미를 찾고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것만은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불확실하기에 더 아름다운 게 ‘인생’ 아닐까...

ps:
번역상의 문제인지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 조금씩 보인다.
나와 저자, 유럽과 한국의 시공의 벽을 절감한다.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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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20.5℃
태풍이 지나간 비오는 오후, 이어폰을 귀에 꼽고 버스에 오른다.
제법 쌀쌀한 날씨지만 바람이 많아서 그런지 오히려 상쾌하다.

21.7℃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공연장 내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리라.
나 역시 그 소란한 행렬에 몸을 싣는다.

26.5℃
몇 개만 켜진 조명이 공연 전의 기대감을 더한다.
환호와 박수소리가 객석을 채워나간다.
하얀 조명은 객석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뿌연 먼지처럼 도드라지게 한다.
순간, 공연장이 암흑으로 변하면서 모든 것이 숨을 멈춘다!

29.4℃
무대가 천천히 푸른색으로 밝아지면서 음악은 시작된다.
베이스의 든든한 받침위에 기타선율이 리듬을 잡아가자
드럼의 묵직한 저음이 심장박동을 끌어 올린다.
그때, 가느다란 빛줄기 속에 그가 나타났다.
그가 무대 중앙으로 뛰쳐나오자 사람들의 함성과 고갯짓은 하나되어 요동친다.

34.9℃
노래와 함께 거듭된 열기는 스스로를 증식하며 공연장을 메운다.
너무 뜨거워진 열기는 음악 속으로 숨어버렸는지 아무 느낌이 없다.
ZERO-0℃
'Take Five', 노란 종이비행기가 부드러운 선율을 타고 공연장을 날아다닌다.
그리고는 경쾌한 비트의 'Live Wire'에 맞춰 신들린 듯 머리와 팔을 흔들어댄다.
“상쾌한 내 샤워 같은 소리로 이 메마른 널 위해 비를 내려 적시네“
공연의 악센트에 맞춘 무대에선 불과 물을 뿜어댄다.
우리들은 그 뜨거움 아래서 시원스레 몸을 뒤흔든다.

35.3℃
음악이 끝나면 절정에선 느낄 수 없었던 열기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을 비추는 라이트의 강한 빛만 남았다.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그들의 옷에는 미쳐버린 땀으로 흥건하다.





- 2004/07/04
  'ZERO-Seotaiji Live Tour 2004' 부산공연에서 본...
  태지의 미쳐버린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음악은 물론 무대나 연출에서도 최고이려는 프로정신이 인상 깊다.
  또한 그의 음악적 즐거움 못지않게 관객들의 맛 간(?) 모습 역시 즐거운 경험이었다.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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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아래서


토요일 아침.
비가 뒤섞인 공기는 느낌만으로도 시원하다.
우산 속, Hanson의 ‘Mmmbop’을 들으며 출근하는 길...
비 아래서, 음악 속에서, 길 위에서 나만의 상상을 한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그 경쾌함.
낮게 깔린 구름은 무대를 메운 드라이아이스처럼 부드럽고
길에 고인 빗물 역시 나의 발장단을 장식할 소품이 된다.

양손을 머리위로 치켜들고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빙글빙글 돌아본다.
무대 위에선 발장단에 튀긴 물방울들이 부채꼴로 화사하게 펼쳐진다.
길거리 관객들의 의아한 시선도 무시한 체 나만의 리듬에 빠져든다.

경쾌한 음악이 있는, 이 얼마나 상큼한 아침인가...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나만 아는 아침 율동이 된다.



- 2004/06/19
  아침에 Hanson의 ‘Mmmbop’을 들으며 등교(출근)하는 길...
  감자기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픈 욕망에 사로잡힌다.
  나는 등교하는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포시 웃는다.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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