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권력
황기우 지음 / 원미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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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권력 - 황기우> 을 읽고.


진정한 교사란 무엇이고,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그리고 요즘의 일련의 교사에 대한 사회의 냉소적 시각에 대한 물음과 ‘교사의 권력’이라는 말이 가지는 약간의 권위적인 느낌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된 책(‘교사의 권력’)읽기로 새로운 교사의 직무와 사회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교사라는 직업의 고충을 느낄 수 있었고, 사회에서의 견제와 통제도 느낄 수 있었다.
책은 전체적으로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인식하고 사회에 전문가들의 집합체로서 봉사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대안들을 제시하여 ‘단체교섭’등의 방안으로라도 교사와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자는 것에 그 목적이 있겠다.
이러한 책의 내용은 교사를 지망하는 나에게 있어 하나의 교사로서의 막중한 책무감과 더불어 몇 가지 느낀 점이 있었기에 여기를 통해 몇 자 적어볼까 한다.

‘교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제일 처음 머리에 떠오른다. 막연히만 생각해 왔던 교사들의 어려움들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교육의 첫째 목적은 아이들에 대한 바른 교육에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교사와는 별 관계가 없을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많은 어려움과 복잡한 사회적 환경이 숨어있음을 본다.
먼저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면 교사들은 그들만의 독립적인 힘과 능력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상부기관이나 사회단체들의 지나친 간섭은 교사들의 의욕상실과 무력감만을 가져올 것이며 이러한 규제로부터의 자유와 교사 자신들의 내적 성숙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교사의 권력’은 이루어 질 수 있으리라 본다.
이러한 교사들의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 책을 통해 잘 알 수 있었다.

첫째로 교사들의 전문직화를 통해 교사들의 목소리와 권위, 사회적 지위, 경제적 여건을 향상시켜야 한다. 교사를 말로만 전문직이라 일컬어지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보다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교사나 예비교사들 스스로는 자신들의 과학적 지식을 기르는데 역점을 둬야할 것이다. 자신의 전공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는 다변화되어가는 사회에서 교사로서 아이들의 존경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의 훈련과 많은 교양의 습득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교사들은 직업으로서의 교사가 아닌 사회 봉사적인 측면의 교사로서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교사들은 단순노동도 아니며 한 순간의 판단으로 바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과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의 마음이 없다면 지속적인 교육과 관심은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또한 교육 자체에 대한 이념과 신념이 확실히 서 있어야 할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다양하다. 하지만 자신만의 확실한 신념이 없다면 성의없는 교육과 과거의 무의미한 이론만 답습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교사의 임용 또한 중요한 일이다. 엉터리 교사는 엉터리 학생만을 만들어낼 뿐이다. 이 학생 역시 엉터리 선생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것의 결과는 바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계속적인 악순환으로 사회는 점점 혼란스러워 질 것이다. 아이들이 미래의 희망이라면 교사는 희망을 태울 수 있는 기름과 같은 존재라 생각한다.
이러한 교사들의 자격이 단편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수한 학교만 졸업한다 해서 그 사람이 교사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었다고는 보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보다 확실하면서 엄격한 교사 임용의 방식이 제안되어야 할 것이며 예비교사들의 훈련기간을 가져 현직에서의 오류가능성을 최대한 줄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임용의 제도 역시 점차 교사 자신들이 교사를 뽑을 수 있는 전문성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상황의 동기유발의 측면에서도 교사들의 지위나 명예, 경제적 여건은 만족되어야 할 것이다. 교사들의 노력과 그 노력한 만큼의 충분한 대가는 교사들을 더욱 분발시킬 것이며 교사를 지원하는 학생들의 수준 역시 높아질 것이다.

둘째로 사회와 상부기관으로부터 독립된 단체를 결성하여 교사 스스로의 복지와 이익에 힘을 길러야 한다.
교사 개인은 학교라는 하나의 조직에서도 제일 아래단계에 존재한다. 물론 사회라는 조직체를 통해서 보더라도 그리 높은 단계는 아니다. 그렇다 보니 교육의 주체가 아동,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상부층이 교육의 주체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힘없는 교사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상부의 지시를 받아야 하고, 보고해야만 하는 비효율적 일들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뺏긴다.
따라서 교사들의 보다 자율적이고 활발한 교육적 활동을 위해서는 교사단체를 이용한 실질적인 교섭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일선 교사들과 아동들이 교육의 주체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하고, 교사들의 자율권과 복지 그리고 정신적, 물질적 보상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사회의 의식수준을 높여야 할 것이다.
교사들의 권위와 자율권은 교사들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인식이 바꿔야 할 것이다. 교사의 약간의 다그침에 학생이 반발하고 학부모가 경찰에 신고하는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사, 학생, 학부모 서로의 노력으로 신뢰가 쌓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장이나 학교 운영진으로부터의 간섭을 서로간의 조화를 통하여 방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단체나 교육위원회는 학교와 교사의 행동과 교육을 믿고 간섭하지 않음으로서 서로의 활동과 자율권을 인정해 줘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의식수준의 향상과 서로간의 존중, 믿음으로 가능할 것이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점진적으로 하나씩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요지는 역시 교사의 힘이다.
교사는 그들만의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 그들만의 목소리와 활동은 아이들에게 보다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교육이 보다 빠르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사들의 힘과 발언권은 말로만 행한다 해서 생겨지는 것도 아니고, 교사들만의 노력만으로도 불가능하다.
교사들 개인의 지적성숙과 봉사정신을 통한 다른 직업과의 차별성을 가져야 할 것이고 교사들의 목소리가 참여할 수 있는 임용제도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거기에 보다 확실한 교육과 선발을 통해 교사 집단의 우수성과 응집력을 강화시켜 물량적 인원수로 대변되는 단체의 힘을 질적 능력의 우위로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여기에 각 사회단체의 지원과 이해가 하나로 단결될 때 교사들은 진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여건이 될 것이다.

나 역시 많은 것을 배웠다. 교사에 대한 추상적 개념에서 실질적인 역할과 활동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진정한 교육은 교사들의 자율적 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교사들의 권력은 다른 집단의 물리적 권력과는 다른 의미의 것이다. 교사들에게 권력이 있을 때만이 진정한 전문가 집단으로서 참교육은 조금 더 가까워지리라. 그리고 우리와는 아직도 대조되는 미국의 교육환경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미국적 교육환경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 실정에 맞는 독자적 교육환경을 만들어 가야 될 것이라 생각했다.
교사들의 권력은 반드시 일으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들의 노력뿐 아니라 우리들 예비교사의 각성과 준비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열심히 보고, 열심히 느껴야 할 것이다. 후에 교단에 들어섰을 때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으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우리 개인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직업적 선택을 넘어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밝은 사회 건설을 위해서 교직을 부지런히, 하지만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 1999년 6월, 단국대에서 황기우 교수님 레포트로 작성된 글입니다.
-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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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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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가까이 하면서도 그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자신의 눈을 잃는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서 콕 막힌 사람들이 더러 있다.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을 때 열린 세상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책에 읽히지 않고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책에는 분명히 길이 있다." (p120)

법정 스님의 '길‘에는 늘 향기가 흐른다.
‘없음’의 향기, 궁핍한 없음이 아니라 있어도 비워버리는 무소유의 없음 말이다. 비울수록 채워지는 충만함의 향기는 그 근처에만 가도 온몸으로 전이되어 넘쳐난다. 독자는 가만히 책을 펼치고 흘러넘치는 향기와 어울리기만 하면 된다.

책은 스님의 일상을 잔잔히 기록한다.
자연과 벗 삼은 수행생활을 이야기 하면서 자연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최소한의 도구만으로 생활하면서 그 속에서 얻은 단출한 미덕을 이야기한다. 지루할 것 같은 산중생활에 활기를 넣어주는 차와 책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또한 치열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여유가 되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글 속에 담겨진 스님의 진솔함이 인상 깊다.
무소유를 위해 반평생을 정진했던 스님이지만 일상에서 묻어나오는 어쩔 수 없는 사심은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다. 길가에 핀 들꽃 한 송이, 아담한 옹기 하나, 우리들이 무심코 스쳐지나갔을 소소함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스님. 하지만 이내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세상의 모든 티끌을 털어버리고 아무런 심리적 동요도 없이 용맹 정진하는, 가식과 허상으로 포장된 ‘대선사'가 아니라 끝임 없이 자신과 싸워나가는 인간으로서의 모습에 정감이 간다.
버려야지, 버리면서 살아야지 하면서도 잘 실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얼마전에도 인터넷으로 물건을 샀다. 생활에 꼭 필요하진 않지만 나의 흥미와 관심에 의해 소유하게 된 물건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몇 번의 저울질과 망설임 끝에 결정한 일이라지만 여기선 이마저도 날 부끄럽게 한다. 버리기는커녕 채워 넣기에 바쁘다.
빈손으로 떠나고 싶다는 스님의 말이 가슴을 적신다.

"거듭 강조하는 바이지만, 나는 요즘에 이르러 받는 일보다도 주는 일이 더 즐겁다. 이 세상에서 받기만하고 주지 못했던 그 탐욕과 인색을 훌훌 털어 내고 싶다. 한동안 내가 맡아 가지고 있던 것들을 새 주인에게 죄다 돌려 드리고 싶다.
누구든지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내게 맡겨 놓은 것들을 내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두루두루 챙겨 가기 바란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올 때처럼 빈손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기 바란다. 본래무일물, 이것이 출세간의 청백가풍이다." (p216)

가슴 속에서 따뜻한 봄이 움트는 걸 느낄 수 있다.
하루 이틀에 읽고 책장에 놓아버릴 책은 아니지 싶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차 안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곁에 두고 음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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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열대어를 키운다.

지인이 갖다 준 구피 두 마리!

어항을 장만해 구피를 풀어놨더니 여간 신기한 게 아니다.

얼마 전 낳은 새끼까지 더해지니 어항에는 즐거움이 가득이다.

이놈들만 보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어항 속에는 가족이 산다!


- 2008/12/17, Canon 40D
  영화, 경우, 그리고 구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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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 Zeppelin - The Song Remains The Same [Remastered & Expanded)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노래 / 워너뮤직(WEA)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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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볍게 한잔을 땡기고 Led Zeppelin을 듣는다.

밤이라는 시간이 약간은 무색하게 만들 큰 소리로...

오래된 LP를 통해 들려오는 먼지 낀 하드록!

예전엔 알지 못했던 로버트 플랜트의 목소리에 매혹된다.

거친 듯 섬세한, 부드러우면서 투박한, 그 걸걸함이 매혹적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 독특함으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레퍼토리!

메탈, 록, 재즈, 발라드, 펑키, 프로그레시브를 넘나드는,

그들의 음악에 취해 허공을 흥얼거린다.

Stairway To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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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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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중국, 민생단 사건이 소설의 주배경이라는 말에 조금 어리둥절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내 ‘민생단’을 검색해본다.

“일제가 만주를 강점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32년 2월 간도에서 일군의 친일조선인들은 한때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했던 일부 민족주의자들까지 포함하여 하나의 정치조직을 결성했다. 민생단이라는 이름의 이 친일조직은 불과 5개월 만에 활동이 중단되었고, 다시 3개월 후에는 완전히 해산되었다. 민생단이라는 이름은 만일 중국공산당이 조선인 당원들이 이 조직과 비밀리에 연결되어 있다는 잘못된 의심을 품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 당시 명멸했던 수많은 단체들처럼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잘못된 의심은 당 내의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을 중국혁명을 파괴하기 위해 당에 침투한 민생단원으로 보는 오류로 이어져 대대적인 숙청을 낳았다. 1932년 말에 시작된 민생단 숙청은 1935년 초까지 약 2년 반에 걸쳐 집중적으로 진행되다가 1936년 초에 가서야 중단되었다. 현재 중국공산당이 인정하는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만도 근 500여명이고, 어쩌면 2천명에 달하는 우리 독립운동의 정화가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중에서)

중국공산당, 민생단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마지막까지 읽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조선과 중국, 일본, 그리고 공산단과 민생단 사건을 관통하는 로맨스가 사건을 부드럽게 연결해주기에 약간의 긴장과 설렘으로 빠르게 읽어갔다.


나(김해연)에게 민족이나 조국이니 하는 거창한 이념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사랑을 잊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아편에 취하거나 자살도 시도했지만 결국, 죽을 용기마저 사라져버린 껍데기만 남아버렸다.
아, 사랑이여!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치는지... 이렇듯 아픈 상처로 남을 사랑이었다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을. 세상의 모든 아픔들이 내게 올라탄 기분이었다.
그로부터 1년, 화마가 휩쓴 검은 들판에 새싹이 돋아나듯 사랑이 멈춰버린 공허한 마음에도 한줄기 빛이 찾아든다. 하지만 그 희망의 빛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거대한 시류에 휘말린 민초들의 힘없는 방황은 급류에 휩싸인 수초처럼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렸다. 결국 내 자신을, 내 사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이 서 있던 것이 바로 ‘민생단’ 이다. 수백 명의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간, 동지를 의심하게 만들어 서로를 분열케 했던 이 사건은 우리 시대가 남긴 뼈아픈 상처가 아닐까.
국민당과 공산당의 주 활동무대였던 만주에서 조선인은 어쩌면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일본과 독자적으로 맞서 싸우기에는 힘이 부족했고 중국공산당과 연합하기에는 서로간의 목적이 달랐다. 더욱이 일본의 입장에서 항일연합전선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중국공산당과 함께했던 김해연 역시 민생단을 가장한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음의 문턱까지 넘나들었다. 민생단이라는 이름은 오해를 넘어 피를 불렀고 피는 다시 오해를 불러 많은 조선인들이 동지의 손에 죽어나갔다. 1930년대를 살아가는 조선인이기에 격어야 했던 ‘시대의 오해’인 것이다.

“간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오? 우리는 일제의 첩자이자, 중국공산당의 앞잡이요. 우리는 나기를 그렇게 태어났소. 동무가 한인 소비에트를 한번 꿈꿀 때마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억울하게 죽어가오. 동무가 조선인만의 국가를 꿈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에게 배척당하오. 동무가 민족해방을 외칠 때마다 수많은 전사들이 처형당하오. 눈을 뜨고도 이게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 동무는 자기만의 이상에 미쳐 있는 거요.”

항일운동과 공산당운동의 의미는 이렇게 퇴색되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해버릴 싸움은 아니었다. 오해너머 어딘가에 있을 진실을 찾아... 인간은 노래했다. 하지만, 그 노랫소리는 어둠의 시대, 밤의 깊이에서 쉬 헤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빛과 어둠의 세계. 김해연은 어느덧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렇게 항일투쟁의 중심에서 민생단이 갖는 시대적 상황을 보게 된다.


‘공산당은 나쁘다’는 맹목적 반공교육에 길들여진 터라 항일운동을 벌이는 공산당에 대해 조금은 낯설었던 게 사실이다.
지금은 붕괴되어버린 낡은 이념이 되어버렸지만 그 원론, 사람이 사랑을 지배하지 않고 착취하는 일 없이 함께 일하고 같이 나눠먹는다는 사상의 토대는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인간은 경쟁과 쟁취에 익숙한, 욕심의 동물인 까닭에 현실 속에선 제대로 실현될 수 없었다. 오히려 개인의 욕망을 억제한 대가로 만성적인 의욕상실과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었으리라.
아무튼 1930년대 만주에서의 항일공산당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밤은 노래한다. 암울한 밤의 시대가 들려주는 인간의 노래를...
어둡고 음침한, 한치 앞도 구분하기 힘든 상황에서 가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 어디서, 누가 부르는지 알 수 없지만 밤의 적막을 이겨내야 했기에 약간의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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