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찰리 채플린 지음, 류현 옮김 / 김영사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방대한 분량이라 첫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다. 채플린이라는 인물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들고 다니기가 불편하니 쉽게 손이 가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조금씩 뒤로 밀려버린 책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잠시 들여다보자 이내 빠져버리고 말았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책장에 모셔두었던 시간들을 보상이나 하듯이 그의 시간 속으로, 1900년 대 초반의 영화사로 나를 끌어들였다.

 어려웠던 유년기의 시절은 흩어졌던 기억들을 모아 단편적으로 엮어져있다. 그래서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지만 앞으로의 화려한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기에 소홀히 넘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년 시절을 거치고 두 번째 미국행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좀 더 세밀하게 그를 지켜볼 수 있었다.
 특히 채플린만의 색깔을 지닐 수 있도록 했던 ‘뜨내기 신사’의 탄생 과정이 인상 깊다.
 “의상실로 향하면서 나는 헐렁한 바지, 커다란 구두, 지팡이 그리고 중산모자를 써볼 참이었다. 나는 전체적으로 부조화스러운 것을 생각했다. 헐렁한 바지에 꽉 끼는 상의, 작은 모자에 큼지막한 구두가 좋을 것 같았다.” (p298)
 옛날 어떤 글에서는 그의 뜨내기 콘셉트를 우연의 산물로 매도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는 그의 희극에 대한 열정을 몰라서 하는 소린 것 같다. 배역은 물론 상황과 소품, 카메라 작업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관심과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랜 노력이라는 트레이닝이 그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냈지 싶다. 
 
“이 인물에 대해 설명드릴 것 같으면, 정말 다재다능한 사람입니다. 뜨내기이면서 신사, 시인, 몽상가인가 하면 외톨이이기도 하죠. 항상 로맨스와 모험을 꿈꿉니다. 그리고 남이 자신을 과학자, 음악가, 공자, 폴로 선수로 알아주었으면 하지요. 그렇지만 겨우 한다는 짓이 담배꽁초나 주워 피우거나 아이들 코 묻은 사탕이나 뺏어 먹는 거예요. 그리고 가끔이기는 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면 부인의 궁둥이도 서슴지 않고 걷어찹니다.” (p300)
 채플린의 인생 역시 그가 창조해낸 뜨내기와 닮아 있었다. 극심했던 가난과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어머니의 정신질환, 정착하기 힘든 가난한 극단생활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작은 상의와 헐렁한 바지처럼 궁핍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현실을 거부하지 않았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희극배우라는 꿈을 앉고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시켰다.

 미국에서의 영화는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찍는 영화마다 관객들은 웃다가 쓰러졌다. 영화사는 그와 계약하기 위해 엄청난 계약금을 들고 줄을 섰다. 청년 채플린은 순식간에 미국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채플린은 순식간에 획득한 부와 명예가 어색하기만 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알아보는 것 같은데 나만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이 쓸쓸해했다. 카메라 앞에서는 즐거웠지만 대중 앞에서는 언제나 부담스러웠다.
 오히려 이런 모습에 더 애착이 간다. 그의 영화에서 느꼈던 연민이 그의 삶 속에 녹아 있는 것 같아 ‘스타’라는 수식어 뒤에 숨어 있는 인간 채플린을 떠올리게 했다. 대중 속에 외로워했던 그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는 직장이나 집에서 어떻게든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참담했다. 세상과 아등바등 싸워나갈수록 나를 둘러싼 관계가 하나 둘 단절되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홀로 남겨져 버렸다... 현대를 살아가는 고독이 채플린의 가냘픈 지팡이처럼 위태로웠기에 사람들은 아직 채플린을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성공 속에서도 좌절의 눈물을 볼 수 있었기에 그의 위대함이 있지 않았나 싶다.

 <키드>, <황금광 시대>, <서커스>, <시티 라이트> 등을 히트시키며 세기의 아이콘으로 뛰어오른 채플린. 하지만 그를 세계의 스타로 만들었던 무성영화는 점차 유성영화(토키영화)에 밀려 구시대의 유물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물론 그가 만든 작품이 여전히 유성영화를 넘어선 인기를 끌고는 있었지만 시대의 흐름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유성영화는 이미 대세가 되어버렸고 그가 이룩한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있었다. 물론 채플린도 유성영화를 만들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뜨내기가 말을 하는 순간 그는 전혀 딴 사람으로" 바뀔게 뻔했기에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유성영화의 위력 앞에 방황하는 채플린. 우여곡절 끝에 제작한 <모던 타임스>가 성공하긴 했지만 무성영화는 여전히 큰 모험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위대한 독재자>의 흥행이 그의 앞길을 열어주는가 했지만 이네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소신과 양심으로 행했던 일들이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왔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조차 모호한 공산주의자라는 모함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파벌주의에 휩쓸려 '미국 추방'이라는 모욕적인 결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우나 오닐과의 결혼(통산 네 번째 결혼)을 통해 삶의 안식을 구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를 스쳐갔던 수많은 인연들은 순간의 즐거움에 불과했다면 우나와의 만남은 나이나 명예, 돈과는 거리가 먼 깊은 안식이었다. 결국 찰리 채플린이 인생 후반기에 겪게 되는 어려움을 함께 짊어진 우나는 찰리의 죽음까지 지킨 마지막 여인이 되었다.
 화려한 명성과 엄청난 부를 쌓았음에도 늘 허전했던 그가 결국 찾아 헤맨 것은 무성영화의 부활도, 세상에 길이 남을 명작을 만드는 것도 아닌, 어머니 같은 한 여인의 포근한 품속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그가 이룬 업적을 한낮 '모성 회기'라는 정신적인 결과물이라 폄하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자서전이나 평전들을 살펴보더라도 온전한 가정의 따뜻함이 없었던 위인의 삶이 늘 불행하게 마무리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 무리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다.

 찰리 채플린, 그의 명성만큼이나 엄청난 분량을 차지했던 자서전. 다양한 식견으로 꾸밈없이 자신을 드러내 보였던 그였지만 상대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데는 조금 인색한 것 같다. 네 번의 결혼에 대한 개인적인(사생활이 아닌 연애관이나 결혼관 등의 인간관계) 부분이나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끝자락에 있었던 그의 견해도 부족한 느낌이다. 자신을 내팽개쳤던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좀 더 솔직한 이야기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또한, 시간 순으로 정리된 사실들이 조금은 식상했다. 언제 무엇을 했고 누구를 만났는가 하는 식의 이야기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그의 내밀한 면을 접해보고자 했던 독자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이 자서전이 1964년에 처음 출판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금 앞선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미 있는 몇몇의 사건이나 기억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긴, 수십 년 전의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여기에 살을 붙인다는 것이 만만치는 않았으리라. 시간이 지나면서 윤색되고 희석되어진 사건들도 많았을 테고 여기에 등장하는 영화사 관계자, 영화배우, 친구, 가족들이 대부분 생존해 있을 당시였으니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떠나보낸 '스타'를 생각하자니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의 겉모습(행적이나 업적)보다는 내면적인 이야기를 더 알고 싶은 게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사후에 다른 작가에 의해 해당 인물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조사해서 쓴 평전이 더 나은지도 모르겠다. 비록 본인의 육성을 직접 들을 수는 없다지만 오랜 자료수집과 연구 끝에 기술된 내용이기에 개인이 갖는 기억의 한계로부터 많이 벗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채플린의 '솔직한 육성'은 조금 아쉬웠다.

 흑백 무성영화에서 봤던 뜨내기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커다란 구두를 뒤뚱거리며 옮겨놓는 그의 뒷모습과 오른 손에서 경쾌하고 돌리고 있는 지팡이의 모습, 콧수염을 씰룩거리며 여린 눈망울을 글썽이던 채플린의 모습은 여전히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그의 인생은 많은 곡절로 마감되었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영화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울고 웃게 했다. 그가 사랑했던, 꿈꿔오던 모든 이상은 수십억의 조작으로 나뉘어 세상을 남아있는 것 같다.


( www.freeism.net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4
채만식 지음, 한형구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레디메이드 인생>
 1934년을 살아가는 인텔리의 구질구질한 일상이 비루하게 그려진다. 빈곤한 시대에 취직자리를 구하지 못한 M은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생활한다. 하지만 그나마 갖고 있던 얼마만의 돈마저도 구걸하듯 애원하는 매춘부에게 줘버린다. 설상가상으로 형에게 맡겨둔 아이까지 자신이 떠맡아야 할 처지가 된 M은 자신의 인생을 "모두 어깨가 축 처진 무직 인텔리요, 무기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다."라고 자조한다.
 레디메이드는 ‘기성품’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회적 필요에 의해 대량생산된, 현대사회의 화려한 부산물을 의미한다. 하지만 식민지배 아래에서의 인텔리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변변한 직장을 구할 수도, 사회적 부조리를 개선할 수도 없었다. 그저 그날그날 억지스럽게 살아가는 길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차라리 그날의 생활만 걱정하며 살아가는 일용 노동자였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와 흐름에 한발 비껴서버린 그들의 행보가 허허로워 보인다. 갈 곳을 잃어버린 젊은 지식층의 모습이 길잃은 조선 황실의 모습과 묘하게 대비된다. 단돈 20전에 정조를 팔아버리는 매춘부의 애절함처럼 그 시대(1930년대)에 팽배했던 우리의 실상이 아니었을까.

 <미스터 방>
 해방과 함께 친일행적으로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백주사와 미군정을 등에 없고 한순간에 인생 역전에 성공한 '미스터 방'. 백주사의 하소연을 들은 미스터 방은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아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건만, 아뿔사!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결국 미스터 방 또한 미군에 기생하는 한낮 하루살이일 뿐이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란한 상황에서 일어난 넌센스는 우리 근현대사에 숨어있는 비극과 닮아있다. 누가 누구를 흉보고 비웃을 수 있단 말인가...

 <민족의 죄인>
 문인으로 활동하던 나는 일제 강점기 때 몇 번의 대일협력사업의 일환으로 강연을 떠난 적이 있다. ‘일신의 안전’을 위해 참여한 소극적인 친일활동이라지만 하루하루 빠져드는 대일 협력자라는 수렁에 더럭 겁이 난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일본의 청탁이 미치지 못하는 농촌으로 귀향을 결심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 친일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독립 운동가를 밀고하거나 잡아들이는 등의 적극적 친일파와는 달리 가족의 부양과 사회적 분위기, 회유와 협박을 통해 친일활동에 가담하게 된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그날의 배를 굶지 않기 위해 했던 소소한 일거리가 친일이라는 딱지로 돌아왔던 경우에 과연 그 행위의 일면만 놓고 친일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이적행위를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못했던 본인들의 잘못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촉각을 다투는 가족과 개인의 운명 앞에 단호하게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지 생각해보게 된다.
 문득 채만식의 행적이 궁급해진다. 최근(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이 등재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아직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 싶다. 다만 그의 작품 속에는 시대와 타협할 수도, 그렇다고 과감히 맞설 수도 없었던 당시의 고뇌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민족의 죄인>은 해방 후 문학계에 던지는 작가의 고백이자 반성이 아닌가 싶다.

 <치숙>
 1930년대 사회주의를 바라보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사회주의를 단지 “부자에게 뺏은 돈을 나누어 갖는다”고 이해했던 당시 모습이 인상 깊다. 사회주의에 대한 적절한 비유인지 우익진영의 일방적인 매도인지는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그 대립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삶은 어전히 고달팠다. 어쨌든 폐병에 걸린 한 사회주의자의 무기력함과 억척스럽게 돈을 벌어 시장경제의 꼭지점에 올라서려는 화자의 대비가 인상 깊다.

 <낙조>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를 거치면서 흥망을 거듭했던 황주댁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진다. 한 개인의 아픔이라기 보다는 시대가 가져다 준 상처라는 생각이 든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우리는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는 그렇게 버텨왔고 살아왔다. 그 미증유의 삶이 서쪽 하늘의 낙조처럼 아스라이 펼쳐진다.
 해방과 신탁통지, 그리고 38선의 생성과 전쟁에 대한 공포, 이런 것들이 좌우의 대립으로 격하게 휘몰아치던 그 때, 채만식 선생은 우리의 앞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낙주>에서는 작가의 그런 고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마 채만식 선생도 급진주의자는 못된 것 같다. 옳다고 하는 것, 정의라고 하는 당시의 사회 통념도 동전의 양면처럼 어두운 면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이 그림자를 채만식 선생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보고 있지 않았나싶다. 친일파, 좌익과 우익, 그리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전쟁과 통일의 이념이 뒤섞인 혼란기의 모습을 체계적으로 통찰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한국 전쟁을 겪었더라만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 www.freeism.net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위치 - 손쉽게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행동설계의 힘
칩 히스 & 댄 히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에필로그

 방향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환경을 바꿔라.
 서론부에 해당하는 에필로그만 읽어보더라도 <스위치>의 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설명하고 뒷받침하는 부분은 다른 처세서와는 많이 달라보였다. 회사나 병원, 학교 등 각 계층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소통의 문제를 실제 사례를 통해 분석, 해결했다. 그래서 상당히 현실성 있게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뭔가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이었고 그러면 금세 눈에 띄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이 이렇게 나를 끌어 당겼을까.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중심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구체적’이라는 덕목으로 요약되는 것 같다. 즉, 누구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상황들을 구체화해서 변화(Switch) 시키라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 지나치게 모호한 상태로 일관해 왔던 것 같다. 건강을 위해 살을 빼라고 강요만 했지 체중감량을 위한 구체적인 기술은 늘 빠져있었다. 오늘 먹는 밥그릇의 크기를 줄인다거나 냉장고에 있는 간식거리를 치운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은 생략한 체 그저 살을 빼야 된다는 커다란 명제에만 매달려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지침서와는 달리 우리의 행동과 삶을 변화시킬 '구체적'인 방법들을 지적해 줄 것만 같았다. 큰 기대 속에 본론을 펼친다.


 # 기수에게 방향을 제시하라

 긍정적 결과를 이끈 요인(밝은 점)들을 찾아 동기를 유발하라, 지극히 당연한 듯이 보이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 왔었다. 안 될거야, 어려울 거야 하는 부정적인 마음이 앞섰고 문제제기 단계의 토론에 대부분의 전력을 쏟아버려 실행단계의 세부적인 일에는 그만 추진력을 읽고(결정마비) 말았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잊어버린 체 아흔아홉 개의 미흡한 점을 문제 삼아 한가지의 장점을 놓쳐버렸다.


 # 코끼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라

 시각적, 체험적 동기유발, 이보다 더 강력한 것이 있을까. 잘 해보자, 열심히 노력하자와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는 집어치워라! 여기서는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동기를 구체화해서 보여주라고 한다.
 이에 대한 실천적 방안으로 '작은 목표'를 제안했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이를 세분화 한 당면과제를 제시해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 시켜 나가자는 것. 이것이 목적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업무에 대한 자신감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 지도를 구체화 하라

 '지도'라는 말 때문에 조금은 헛갈렸다. 여기서 말하는 지도는 가르친다는 의미도 아니고 전체 밑그림에 대항하는 로드맵(청사진, 계획)과도 아니다. 길을 찾아가는 주변의 진형지물, 즉 외부적인 환경을 의미했다. 다시 정리하면 외부적인 환경을 목적에 맞도록 변화시키라는 것으로 자신이나 해당 인물에게서 문제점을 찾기보다는 외부적인 상황이나 환경에서 찾아 변화를 줘야한다고 했다. 


 저자는 수많은 예화를 통해 구체적인 스위칭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어떻게 목표로 향해 가는지, 어떻게 난관을 극복해 가는지 보여줬다. 모든 상황이 약간의 차이는 있을 뿐 내가 겪었던, 앞으로 격을 일들을 생각나게 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 간에 있었던,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으로 남아있거나 용두사미로 끝나버렸던 여러 일들이 <스위치>의 예화 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이미 적용해왔던 것들도 많았다. 고등학교 때 진도표를 형광펜으로 채워가며 시험을 준비했던 일, 군대에서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독서목록을 작성했던 일, 건강을 위해 달린 거리나 몸무게의 변화를 기록해 왔던 일들은 오래전부터 해왔던 나만의 ‘스위치’였는데 그 중요성과 의미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천의 문제가 아닐까. 게을러지고 타성에 빠지지 않도록 꾸준히 스위치 해야겠다. 지금 느끼는 공감이 책을 덮는 순간 많이 희석되어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래서 마음속에 준비하고 있던 일들을 하나하나 실행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체크리스트로 활용해봐야겠다.
 2011년이 시작된 지 보름 정도가 지났다. 올해의 목표를, 아니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이번 달의 목표, 오늘의 할일부터 곰곰이 따져봐야겠다. 내가 잘하는 것부터 하나씩 발전시켜야겠다.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명확하게 실천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전에 읽었던 책인데 외출할 일이 있어 "어디 간단하게 읽을거리 없을까" 하고 무심코 집어들었다. 옛 서책의 모양을 본 딴 단출해 보이는 얇은 책인데 그 내용과 깊이만큼은 어느 산문 못지않다.

불가에서는 '안거'라고 해서 여름과 겨울, 일 년에 두 번 스님들의 공부(수련)기간이 있다. 그중 동안거는 음력 시월 보름부터 시작되는 삼개월간을 말한다. 이 책은 동안거 동안 절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과 느낌들을 적은 것으로 불교에 대한 내용부터 스님의 생활 모습이나 마음가짐, 그리고 절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산사를 흐르는 잔잔한 시냇물처럼 적어놓았다.
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세상의 굴레에서 한발 물러난 스님들의 치열하지만 인간다운 모습이 솔직담백하게 담겨있다. 하지만 그들도 온갖 갈등과 유혹에 번뇌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인지라 이를 벗어던지려는 노력이 인상 깊다.

이 책은 1973년 봄 <신동아>의 논픽션 공모에 당선된 작품을 출판한 것으로 지허 스님의 글 멋에 놀라게 된다. 일기 형식으로 선방생활을 단순한 듯 적어 내려가지만 그 섬세한 깊이에 놀라게 된다.
이런 책을 접할 때마다 나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단순하게 하루를 나열한 글이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진솔한 글, 말이다.
많이 생각하고 깊게 느껴야겠다.

스님, 성불하십시오~


(<선방일기>(구판, 2000.7.20.)를 읽고 2008년 적은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과 함께한 나날

 <독서>는 책읽기에 대한 깊은 사색이라기보다는 독서를 즐기게 된, 독서에 대한 작가 자신의 회고록에 가깝다.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동화와 어머니의 제문 읽는 소리에서 시작해 소학교에서 글자를 깨치고 글 읽기에 재미를 들이는 과정, 책을 읽고 이를 암기하는 것으로 묘한 자부심을 가졌던 이야기 등 한국학의 대가를 이룬 김열규 교수의 유년 시설을 소박하고 다소곳이 그려놓았다.
 하지만 책은 소년기를 지나면서 급격히 어려워진다. 쉽게 써내려간 유년기의 단상만 보고 너무 쉽게 예단해 버린 것일까, 몽우리 진 꽃다발이 한여름의 소나기에 갑자기 방울을 터트리듯 갑작스레 문학의 정수 속으로 빠져버린 느낌이다. 소년기와 청년기를 휘감았던 헤르만헤세와 릴케를 이야기하지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산책하듯 쉬엄쉬엄 걷는 걸음은 갑자기 만난 급경사의 산행길에 적잖이 당황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다 노년기에 와서는 갑자기 글속도가 줄어든다. 느리게 느리게, 하지만 정체되지 않는 거대한 강물의 흐름을 보는 듯 책과 함께 인생을 음유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 책 읽는 방법

 조금 고루하다. 교수는 자신의 경험과 예시를 곁들여 책을 읽고 음미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전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독서술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꼼꼼히, 느리게 혹은 빠르게, 깊이 있고 집요하게 읽으라는 내용이 별 감흥 없이 흘러간다. 처세서 같은 종류의 글이 갖고 있는 거부감 때문인지, 글을 대하는 인식이 부족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이 그 말 같고 그 말이 저 말 같다. 어떻게 읽느냐는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그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특히 교수님은 소설이든 시든 “수학 문제 풀듯이” 꼼꼼하게 읽으라 했다. 예시로 풀어놓은 설명은 분석적이다 못해 형이상학적이기까지 해서 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해설서를 읽는 것도 버거워 보인다. 책읽기가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 시작되는 사적인 놀이인데 작가가 작성한 모범답안을 지나치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했다. 대부분의 독자는 평론가들이 아닌데 말이다.


 <독서>는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작가 자신의 회고적인 글이고 다른 하나는 책읽기에 대한 방법을 설명한 글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혹은 지나치게 분석적인 양 극단으로 치우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책읽기의 공통 원리를 보고자 했었다. 전문가의 입에서 듣는 비전문적인 이야기랄까, 아니면 고수에게 듣는 개인적 경험과 에피소드, 혹은 이를 통해 얻은 책에 대한 느낌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책과 친숙한 사람이든 아니든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이었으면 싶었다.
 반만 채워진 항아리처럼 조금 아쉬운 감도 없지를 않지만 책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www.freeism.net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