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 도둑
수잔 올린 지음, 김영신 외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나무에 붙어서 살아가는 착생식물과에 속하는, 메마르고 삐죽삐죽 가시가 돋친 브롬엘리아드와 난초...(p26)”

작년 한 학생에게 선물 받은 책인데 조금은 전문적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에서야 읽는다. 착생식물을 의미하는 브롬엘리아드, 그중에서도 유령난초를 찾아 늪지를 여행한다.

아름다우면서 희귀한, 하지만 재배하기 어려운 폴라리자 린데니, 일명 ‘유령난초’를 대량 복제하려는 난초광 라로슈의 이야기로 마치 영원의 향수를 만들고자 했던 그르누이(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연상하게 한다.
라로슈는 나비가 꽃의 색과 향의 이미지에 이끌리듯, 돈벌이보다는 난초라는 존재자체에 가치를 부여하고 몰입한다. "미치광이 같은 영감에 휘둘리며...(p70)” 난초에 집착한다. 급기야 난초를 밀반출하다 적발되어 추진 중인 프로젝트가 뒤틀리고 동료들로부터 외면받자 난에 대한 열정도 언제 그랬냐는 듯 일순간에 사그라진다.

아직은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난초에 대해 많은 것이 담겨있다. 난초를 소재로 적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난초에 대해 설명한 논픽션에 가깝다. 초반의 인물과 사건중심(라로슈와 난초채취)의 흐름과는 달리 중반으로 갈수록 난초의 역사적인, 과학적인, 학술적인 이야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선지 책 뒷면에 소개된 “난초수집가들을 통해 들여다본 우리 내면의 어두운 열정과 집착!”이라는 소설적 느낌은 별로 와 닿지 않는다. 물론 난초에 대해 관심이 부족해서겠지만 조금은 지루하다. 책 초반의 난초라는 청초한 식물에 대한 관심이 중, 후반부의 ‘난초학습’을 거치면서 식어버린 느낌이다. 난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야 상당한 재미와 지식이 전달될 수 있겠지만, 나 같은 식맹(植盲)들에겐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힘들 것 같다.
난초와 관련된 그들만의 리그인가? 아니면 ‘난’쟁이들의 베스트셀러인가? ^^;

그리고 책 내용 중, 라로슈가 교접을 통해 새로운 난초를 만들 때의 말이 기억난다.
“모든 것이 어떤 목적이 있으니까요. 나는 상상의 식물학을 믿습니다. 나는 가능한 한 식물의 관점에서 보고 식물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목적이 전혀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놈들은 오직 잡종들밖에 없습니다. (p150)”

그럼 나의 특징은 무엇인가. 조용하고 차분하다? 신중하지만 결단성이 부족하다? 협동성이 부족하고 혼자하는 일에 익숙하다? 그렇다면 이런 특징에는 과연 어떤 목적이 있을까...
사람이 식물처럼 단순히 수정이라는 목적 하나로 살아가는 건 아니라지만 혹시 아무런 쓸모도 없이 조작된 껍데기뿐인 존재는 아닐까? 여기저기 주워들은 가식으로 위장한 체 ‘잡종’으로 살아가는 건 아닐까?
나는 잡종인가? 난초를 통해, 라로슈를 통해 나를 돌아본다.

(www.freeism.ne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문지 푸른 문학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학교와 학생을 중심에 놓고 써내려간 연작 소설로 문학에 관심이 많은 선재(학생)의 일기를 빌어 다섯 편으로 묶여있다.

1. 구름 그림자
구름에 가려지고 벗어나는 ‘구름 그림자’를 화두로 일상을 소담하게 그려나간다. 일기 형식의 글이 구름을 중심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폼이 여간 흥미롭지 않다. 개인적 감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구름 그림자처럼 세상을 집어삼킬 듯 맹렬히 돌진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저 멀리로 허허롭게 흩어진다.

2.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허생전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교사와 그 조직(전교조)에 대해 얘기한다. 허생전의 사회성이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엔 쉬 와 닿지 않았지만 허생과 홍길동의 이상향을 비교 토론하는 장면에선 무언가 분명한 것이 전해진다. 둘 다 이상을 위해 싸웠지만 홍길동은 그 싸움 속에 있었고 허생은 그 주변에서 맴돌기만 했다는 것...
누가, 어떻게 교육을 바꿔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한다. 어쩌면 교육의 문제를 교육 내부에서 혁신하지 못하고 저 멀리서 뒷짐만지고 해결하려는 ‘공상’을 경계하라는 건 아닐까.

3. 반성문 쓰는 시간
중심에서 비껴서 있는 생활지도의 모습이 씁쓸하게 그려진다.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도 없이 ‘처벌을 위한 처벌’의 규정뿐이다. 교사는 오로지 학생을 처벌하기 위한 존재인가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4.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모두 아름답다. 일등이나 꼴등이나 ‘범생이’나, ‘날라리’나 누구하나 소중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아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학교와 가정은 순위와 규칙들로 가득하다. 자연은 원래 그대로, 그저 자기 위치에 존재할 뿐이지만 우리들만이 이런저런 잡스런 의미를 갖다 붙이며 자르고 갈라버린다.
여기선 ‘비둘기’와 ‘기운의 밤’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말하지만 공허한 메아리처럼 흩어질 뿐이다. 그만큼 모두 아름다울 수 없는, 모두 1등이 될 수 없는 현실의 벽이 높기 때문인가...

5. 섬에서 지낸 여름.
제일 난해하게 느껴진다. 마치 꿈속에 들어앉은 느낌처럼 뿌옇게 다가온다. 어디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우리 학생들의 공허함처럼...

이렇게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교육에 얽힌 문제 속에 갇혀버린 것인지, 여러 모순점들만 열거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버린 탓인지 편을 거듭할수록 난해해지는 느낌이다. 어쩌면 공교육에 대해 무의식중에 갖게 된 나의 불안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학생의 시각치고는 지나치게 논리정연하고 수려한 문체가 오히려 사실성을 떨어뜨린다. 자신과 사회 속에서 갈등하는, 조금은 엉성한 글(일기)이 오히려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좀더 엉망(?)인 학생의 문장을 통해 다양하고 깊이 있는 생각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읽으면서 날개지에 소개된 ‘최시한’이라는 작가를 계속 훔쳐보게 되었다. 소위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학생의 시각에서 교육을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이 아름답게 보인다. 다시 한번 그의 글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www.freeism.ne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칼의 노래>의 문학적, 대중적 성공 이후 대박 영화의 성급한 속편들처럼 얄팍한 상술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있었기에 읽기를 망설였었다. 하지만 주중에 김훈님의 독서토론회가 부산의 모 서점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고 ‘칼’을 읽을 때의 정갈한 느낌이나 멋진 글에 대한 기대보다는 독서토론회에 대한 궁금증과 참여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로 급히 책을 들었다.

<칼의 노래>가 이순신과 칼의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내면적인 본성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현의 노래>는 우륵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현’이 갖는 외적인 모습에서부터 글이 시작된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눈에 뛴다.
열두 줄로 구성된 가야의 현, 가야금. 금! 금? 가야금(金)? 쇠 금? 그럼 ‘현’의 노래이자 ‘쇠’의 노래도 된다는 말 아닌가! 책의 제목과 내용을 구성하는 현이 단순히 가야금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현의 내용 못지않게 쇠와 전쟁의 이야기가 상당한 비중으로 다뤄진다.
하지만 현의 금(琴)과 쇠의 금(金)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로 뭉쳐지지 못하고 별개의 얘기로 놀아나는 느낌이다. 가야금에 치우쳐져야할 힘이 여러 갈레로 분산되었다고 할까. 두개의 화두가 좀더 밀고 당기면서 하나의 ‘금’으로 합쳐졌다면 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 것을... 독서토론회에서 알게 된 내용이지만 예술과 폭력(국가나 권력)의 대비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되지 못한 듯 하다.

그리고 의외의 장면들이 몇 개 눈에 띈다.
소리와 관련된 선문답 같은 이야기도 지나치게 난해하지만 ‘오줌 싸는 여자’로 이상하게 묘사된 아라(우륵 제자, 니문의 부인이 된다)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갑자기 튀어나온 비화(우륵의 부인)와 아라의 동성애적인 부분이라든가. 비화의 엽기적인 죽음 역시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뭔가 더 깊은 뜻이 있는 진 모르겠지만, 이야기와 별 상관없이 보이는 내용들이 소설의 힘을 떨어뜨린다. 한 서평에서의 ‘김기덕 식의 여성비하’라는 문구가 심상찮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독서토론회에서 김훈님은 인간 자체의 아름다움을 오줌 같은 하찮음이나 허무한 죽음을 통해 더욱 강조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역시 난해하다.)

또한 <현의 노래>를 읽는 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칼'에 대한 잔재가 이번 책읽기를 방해한 느낌이다. <칼의 노래>를 얼마 전에 읽어서인지 아니면 내 글 읽기의 이해가 짧아서인지 계속해서 전작과 비교하게 된다.
‘칼’의 현란함에 가려 ‘현’의 깊이와 우아함을 찾기가 힘들고 오히려 그 아류작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순신과 칼에 대한 단순하면서 역동적인 글, <칼의 노래>와 화장기 없는 인간본연의 모습을 리얼하게 묘사한 최근 작, <화장>의 어정쩡한 비빔밥처럼 느껴진다. 좀더 시간을 갖고 칼의 그늘에서 완전히 해방된 이후에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어디서 나의 심사가 꼬여버렸는지 수려한 용모의 <현의 노래>에 대해 너무 비판적으로 몰아가는 것 같다. 그만큼 기대가 커서 그렇지 않을까.
훈 형님! 관심이 그만큼 많고 더 사랑하기에 ‘딴지’를 건다고 어여삐 봐주십쇼~

끝으로 독서토론회에 대해 간단히 얘기하자면,
“연민, 다른 작가들은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글을 쓰지만, 난 아니죠. 앞으로도 연민 없이 개인적인 내면을 파고들 생각이죠.” 라 말하며 강단 있게 자신의 ‘이즘(ism)’을 밝히는 김훈님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이라는 관심대상을 놓고 두세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는 그 열기, 그 분위기가 좋았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나 막연하게 넘어간 내용들이 구체적인 용어와 예문으로 이야기될 때의 그 진지함이 나를 Upgrade 시켰다.


PS:
전작과 같이 “이 책은 다만 소설이다. 사서에 실명이 등장하는 인물이나 장소조차도 이 소설에서는 허구로 읽혀져야 옳다.”는 말이 책 첫머리에 잠시 나온다. 옳은 말이다. 너무 당연한 말인지라 오히려 이렇게 언급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얄팍한 ‘줄거리 보기’와 '유행의 책! 책! 책!'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읽자.
그리고 소설은 소설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내공’을 제-발 좀 키우자!

(www.freeism.ne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실 이데아 - 대안 학교에서 만난 바람의 아이들
최병화 지음 / 예담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찡해지는 코끝의 감동으로 책을 덮었다.
거침없이 치닫는 아이들과 이들 곁에서 가슴으로 보살피는 선생님. 그리고 교육현실과 그 대안...

합천의 한 대안학교, 원경고등학교에서 수계월간 학생,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리얼드라마로 촬영(iTV)한 내용을 다시 글로 옮겨 논 책으로 작가의 주관적인 설명이라든가 논조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 학교 모습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사춘기 남녀의 미묘한 감정에서부터 폭력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폭동, 자해에 이르기까지 한 대안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일관된 시각으로 적고 있다.

기존의 사회에서 버림받고, 상처받은 원경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이미 한 두번씩 '짤려' 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로 사회에서 튕겨져 나온 '문제아'.
하지만 외적인 모습과는 달리 마음속 한 구석에 보여지는 그들의 순수함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조금만 더 사회와 가정에서 관심을 가져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선생님 역시 학생 못지 않은 마음고생으로 자꾸만 밖으로 빠지려는 아이를 바로잡으려 눈물 흘리는 모습이 인상깊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포기해서도 안되고, 포기할 수도 없는 아이들, 그들에게 적대감이나 무관심이 아닌 따뜻한 가슴으로 대하는 '어머니' 같은 모습에서 진실된 교사상이 느껴진다.

선생님의 아낌없는 관심과 더불어 학생들을 끝까지 지키고, 인도해 주려는 학교의 모습도 아름답다. '문제아'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추방된 아이들이지만 마음 붙이고 다닐 수 있도록 묵묵히 보듬어주는 학교의 모습이 보기 좋다.
물론 '대안교육'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특정한 학교와 시설에 국한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들의 또다른 시각에서 학교와 교육을 바라보는 모습이 희망적으로 보인다.

교실 이데아...
"됐어. 됐어. 이젠 그런 가르침은 됐어-"
이 노랫말처럼 이제는 변해야 한다. 더 이상 선생 혼자 떠드는 교육은 무의미 할 것이다. 우리들 모두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학생들에게 살아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교육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한마디로 사회와 학교, 교사와 학생이 함께 느끼고 생각해봐야 할 진지하면서 감동적인 책...

"철이 없는지라 졸업을 해도 걱정인 아이들. 나는 아주 많이도 포기했었다. 아주 자주. 그러나 그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내가 아니라 나를 그토록 실망시켰던 내 새끼들, 바로 그 바람의 아이들이었다."

(www.freeism.ne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다 타조
이외수 지음 / 리즈앤북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하지만 이외수는 이렇게 말한다 !
“다 땔 치아라! 껍데기를 버리고 알맹이를 보라”

백수, 돈, 사랑, 자살, 부모와 같은 여러 주제를 정해놓고 그에 대해 조언한다.
당신은 백수다. ‘먹이를 포식한 봄날의 코알라’처럼 빈둥거리는 백수로 살아간다. 정말 죽을 맛이다. 하지만 너무 고민하지 말라. 이러저러하고 요러요러하니 때를 위해 준비하라며 유머러스하면서 제치 넘치는 말빨로 책은 구성된다.

다 좋고 아름다운 말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외수식’ 표현에서 오는 식상함도 없진 않다.
엉망진창, 시궁창 같은 세상이지만 우리들은 아름답고 순수한, 정신적인 가치를 존중하면서 인생을 살아가야지 않겠냐는 ‘외수주의’가 현란한 문자 속에 은근히 강조된다. 이외수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고, 책이 몇 권씩 출판되면서 여러 방식으로 말을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이 한가지다. 물론 이런 부분이 외수님을 구성하는, 오늘날의 외수님을 있게 만든 ‘이니셜’이지만 자칫 고루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다른 작가(내가 생각하기에)들처럼 자신의 입장을 낮추면서 두루뭉수리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물 흐르듯 생각을 펼쳐나갔으면 더 좋았을 것을...

또한 우리가 살면서 새겨들어야 할 가시 같은 내용도 눈에 들어오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너무 미화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미려한 말로 포장된 글이 과연 지금의 현실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와 닿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날다 타조,
덩치만 컸지 못생긴데다 ‘새’라는 본래의 기능마저 망각해버린 기형적인 동물, 타조.
겉만 번지르르했지 ‘나’라는 존재도 모른 체, 가식적인 치장만 덕지덕지 붙인 나...
날자, 가볍게, 쓸데없는 것을 다 버리고, 바람처럼 가벼운 몸으로 사뿐히 날아보자... 제발~

(www.freeism.ne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