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란 무엇인가 - 최민식, 사진을 말한다
최민식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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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참을 수 없는 사진의 가벼움?
감각적인 색감으로 치장된 예쁜 사진이나 겉멋만 잔뜩 부린 가벼운 사진은 가라.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으로 작가의 고뇌가 담긴 생각하는 사진을 창조하자!
작가 최민식 님이 <사진은 무엇인가>에서 줄곧 강조한 내용이다.

책은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보다는 왜 찍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더 가깝다. 또한 리얼리스트가 되어 세상을 해석하고 그 결정적 순간에 셔터를 누르라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진과 더불어 세계적인 작가도 소개한다.
그래서 사진에 대해 어느 정도 참맛을 알아가는 ‘중수’ 이상에게 유용한 책인 듯 보인다.

특히, 자신의 일에 대해 떳떳이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 인상 깊다.
“내게 사진은 대상들의 모습을 시각화하는 과정을 뜻한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사진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사진에 진실을 담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인간, 특히 서민들의 모습을 탐구적인 자세로 대해 왔다.” (본문 110쪽)

사진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에 자칫 교만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열정과 자부심만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떤 일이든 간에 끝없는 노력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이런 모습에서 진정한 프로다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무엇에 프로인가? 내가 하는 일에 얼마만큼의 열정과 자부심이 있는가? 사진이라는 인화지에 들어있는 작가정신이 나를 매질한다.
우리 모두 프로가 됩시다!

사진,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세상은 평등하다.
연설하는 대통령이나 시골길의 코스모스, 나뒹구는 운동화나 구걸하는 소년,
그리고 나의 모습마저도 ‘피사체’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동등하다.
그런 평행상태에서 잡아내는 순간의 질서가 사진의 참 매력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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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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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지하철에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순진한 듯 웃고 있지만 정작 그 속마음도 그러했던가,
가슴보다는 눈과 입이 이끄는 쪽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었을까,
긴 안목보다는 한순간의 편안함을 쫓아 나를 합리화하는 건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거기다 나 스스로에게 솔직했었는지도 자신이 없다. 어쩌면 ‘No’라는 답을 이미 숨겨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솔직할 수 없으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고, 그러다보니 이쪽인지 저쪽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밤거리만 헤매는 꼴이 되는 것은 아닌지...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이 미궁으로 향하는 터널같이 다가온다.
“너는 어느 쪽이냐?”

‘김훈 세설(世說)’이라는 소제목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김훈님의 토막글들 묶어놓았다. 때로는 심오하게, 때로는 재치 있게 우리의 세상사를 이야기한다.
마치 실제 단상에서 김훈님의 말을 듣는 듯 부드럽다. 머릿속의 생각이 있는 그대로 표현되는 토론회처럼 꾸밈이 없다. 거기다 한순간에 읽혀지는 유려한 문장은 아니라지만 사회와 문화에 대해 고민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인간미가 느껴진다.

하지만 몇몇 간결하고 함축적인 문장은 미간에 힘을 주어 듣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사회 공통의 주제로 글을 써내려가지만 작가의 사유와 관념을 풀어놓는 과정에서 오는 표현방식의 난해함이랄까. 좀더 편안하게 글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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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인간 - 전2권 세트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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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와 양배추를 적당히 섞어 지글지글 뽁아 먹는 그 맛, 그리고 소주한잔...
은은한 달빛 아래서 맘 편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
하지만 오늘은 아쉬운 대로 <장외인간>이나 읽으며 허기진 가슴을 채우련다.

달과 함께 사라진 소녀와 우연히 만난 범상치 않은 노인, 그리고 ‘금불알’이라는 닭갈비집을 운영하는 시인지망생을 중심으로 ‘달 실종 사건’을 맛깔스럽게 그려놓는다. ‘달’과 ‘닭’의 한판 명승부전이랄까.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처럼 ‘달’은 도시의 삭막함에 의해 사라져버린 정신적 가치, 예를 들면 이상이나 꿈, 낭만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달 따위에 신경 쓰기보다는 먹고 싸는, ‘닭’과 같은 물질적인 가치에만 집착하고 있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들인지라 현실적인 문제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지만 어느 정도는 정신적인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말이다.
결국 시인지망생 이헌수는 정신병원으로 들어가 스스로 ‘장외인간’이길 자처한다.
“내게는 바깥세상이 개방정신병원이다. 정체성과 가치관을 상실해 버린 정신병자들이 자신을 정상인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아수라장이다. 온갖 부조리와 흉악범이 난무하는 저 동물의 왕국에서 정상인이라면 어떻게 태연자약하게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내게는 퇴원수속이 곧 입원수속이나 다름이 없다.” (2권, p171)

하지만 후반부에는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분위기가 바뀐다. 현실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가상의 세계로, 논픽션에서 픽션으로 순식간에 넘어가는 느낌이랄까. 포장마차에서 닭갈비를 먹고 있다가 일순간에 달빛아래, 선계로 이동해 버린 듯 얼떨떨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 특성에서 볼 때 그리 엉뚱한 것만은 아니다. 도(道)와 술(酒), 백발의 노인, 일상의 소소함과 대비해서 엮어놓는 형이상학적인 내용이나 무릉도원과도 같은 이상향으로의 귀환 등 외수님만의 독특한 색깔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래서 약간은 식상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옛 외수님을 되찾은 듯한 생각에 반가움이 앞선다. 최근 작품들에서 봤던 밍밍한 이야기가 아니라 초기의 작품들처럼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다시 전해지는 것 같다. 세상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투정꾼에서 좀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보인다고 할까.
아무튼 근작들에 비해선 상당히, 외수다운 외수책!

술도 좋지만 우선은 커다란 보름달부터 보고 싶다.
설사, 구름에 가려 그 존재마저 희미하더라도
달은 여전히 은은한 빛으로 세상을 보듬고 있다.
기다리련다. 둥근 달이 차오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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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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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시, 은빛 장판 위의 여행 가방, 가이드북, 카메라, 그리고 구석에 널브러진 속옷들. 여행의 여운을 뒤로하고 책을 읽는다.
엎드린 작은 방, 몇 해 전에 준비한 스탠드는 하얀 스포트라이트처럼 빛을 발하며 책읽기를 돕는다.

#1.
사실 잠이 오지 않아 펼쳐들었다. 스토리 중심의 책이라기보다 장면과 대화, 그 속의 은밀한 흔적을 찾아가는 조금은 새로운 형식 - 다시 말해 잠.오.는. 책인 것 같아 수면제 대용으로 펼쳤다. 하지만 짤막하게 이어진 상황과 무의미해 보이는 장면 속으로 금방 빠져들었다.
새벽이슬이 내리는 습한 골목길을 뚜벅거리며 걷는 느낌? 스쳐지나가는 옆 사람에게서 엿듣게 되는 - 나와 상관없어 뵈지만 괜스레 흥미가 가는 그런 대화 같다고 할까. 은근히 몰입하게 만드는 장면이 어쩌면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 속의 인물들이 날 훔쳐보는 건 아닐까하는 착각마저 든다.
싱숭생숭한 새벽의 기분과 맞아떨어진 ‘어둠의 저편’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2.
문득 글이 쓰고 싶어진다.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쓴다.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느낄 수 있다고...
다시 ‘어둠의 저편’으로 걸어간다.
공간을 뛰어넘는 시점과 일상적이지만 상반되고 미묘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그녀에게 띄우는 편지처럼
알 수 없었다. 아니,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는 그 무엇을...

#3.
사랑, 열정, 욕망 and 인식과 의식.

#4.
“영화의 장면들처럼 마리와 에리의 밤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작가는, 더 이상 판단하고 조정하는 전통적인 저자가 아니다. 그는 권위적 입장에서 등장인물을 조정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소설이 영화처럼 쓰였으니, 독자도 판단을 보류하고, 카메라를 따라 천천히 가는 수밖에 없다.”
- 권택영 (‘어둠의 저편’을 위한 감상 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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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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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님이 전하는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현기영님의 <바다와 술잔>이 검푸른 바다색의 소년기였고, 박완서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농촌에서 도시로 이어진 샛노란 색 소녀기였다면 이번에 읽는 김주영님의 유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직 김주영님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기에 쉬 점칠 수는 없지만 책표지를 장식하는 ‘느낌표’라는 붉은 스티커로 봐선 ‘과거’가 지니는 공공의 정서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소설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거울 위의 여행>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신기하리마치 잘 쫓아하던 ‘거울’과의 첫 만남처럼 김주영님의 글에 반사된 어린 날의 일화들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특히 고집스런 울보면서도 든든한 놀이상대가 되곤 했던 동생의 모습이라든가 날품팔이 현장에서 맞닥뜨린 어머니와의 씁쓸한 대면이 인상 깊다. 남의 집 아들을 더 많이 업어야했던 어머니의 눈물 훔치던 모습이 그 시절(50년대)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땟국>에 등장하는 자물쇠 채워진 다락방은 아이들에겐 그저 금기시되어온 미지의 세계였지만 어머니 몰래 올라간 다락방에는 조금씩 모아둔 곡식 항아리가 전부였다. 어쨌든 그 항아리의 존재 덕분에 가난했지만 왠지 모를 자부심으로 포만해했던 유년기를 회상한다.
마치 나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 우리 집 다락방을 오르는 것 같았다. 아마 그 때 발견한 것은 조그맣게 만들어진 수많은 산타클로스 모형이었는데 그것이 왜 우리 다락방에 있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아무튼 그 새로운 장난감과 주변의 여러 가전집기를 들척이면서 느꼈던 신기함으로 순간이나마 소설속의 주인공이 된 듯 했다.

<괘종시계>에서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시계포 주인 최씨와 이에 상극처럼 우격다짐으로 맞서는 삼손(장석도)을 통해 표현된다. 화가 난 삼손이 시계포로 들어가 괘종시계를 박살내 버렸던 것처럼 유년의 시간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새로운 시간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듯한 허전함도 든다.
문득 마루 중앙을 위치했던 괘종시계에 무슨 큰 규칙이라도 있는 양 매일같이 밥(태엽)을 주던 기억이 난다. 그 부옇게 빛바랜 괘종소리는 지금 어디로 사라졌을까...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에선 5,60년대를 휘감은 ‘빨갱이’라는 색깔론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삼손과 어머니가 경찰서로 끌려가게 되고 결국 삼손은 삶을 터전이 되어왔던, 반편이라 놀리던 이웃을 뒤로하고 마을을 떠난다.
“그러나 정작 그가 떠나가 버리고 나자, 그 떠나간 자리의 공허는 너무나 크게 남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두 번 다시는 마을로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란 심증을 굳히고부터 그가 비우고 가버린 공간의 허탈은 더욱 컸다.”
마치 이문열님의 <아가>에서 언제나 성가신 애물단지지만 막상 없으면 허전한 당편이처럼 우리 유년시절의 한 귀퉁이를 채우고 있는 사람, 마치 쉬 꺾여버릴 것 같은 갈대 같은 사람들을 연상하게 된다. 과연 우리가 그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순히 가십거리로만 무시했었던 건 아닌지...

교과서에 등장하는 소설처럼 조금은 정형화된 결말이었지만 김주영님의 글을 통해 오늘 하루를 먼지 낀 옛 사진을 정리하는 듯한 아련함에 젖을 수 있었다.
마당 한 편에서 아이스크림을 움켜진 체 어색하게 웃던 옛 사진속의 장면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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