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내 인생 반올림 2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송영미 그림, 조현실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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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뚱보, 벵자멩이 털어놓는 고달픈(?) 인생사!
사춘기 소년, 벵자멩의 눈과 입을 통해 뚱보의 일상을 날카롭고 재치 있게 털어놓는다. 뚱보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미처 몰랐던 ‘그들만의 고뇌’가 진솔하게 펼쳐진다.
나 역시 날씬한 편은 아니기에 그의 고백을 예사로 넘기지 못하고 많은 부분에 공감하게 된다. 잊고 지내왔던 ‘뚱뚱이’의 기억에 미소 짓는가 하면 이로 인해 느꼈던 부끄러움에 씁쓸해진다.

하지만 먹는 즐거움이 최고의 낙인 벵자멩에게도 사랑의 화살은 피해갈 수 없는 법. 한 마을에 사는 클레르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사랑을 무기로 음식과의 사투를 벌인다. 벵자멩 파이팅, 다이어트 파이팅!!!
설레던 풋사랑의 두근거림이 책장 사이에 가득하다. 클레르와의 미묘한 감정놀이에 나의 가슴도 덩달아 두근거린다. 첫사랑에게 꽃을 전하던 순간이며 그녀의 손에 살며시 내 손을 올려놓던 날이며, 그날의 두근거림이 이 책을 통해 깨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일날, “딱 하나만”하는 생각으로 집어든 디저트를 시작으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머리엔 온통 먹을거리로 가득차고 음식과의 타협은 늘어가기 시작한다. 결국 줄어들기 시작한 체중도 멈춰서기에 이른다.
더욱이 짝사랑하던 클레르에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편지를 받고는 자포자기 상태까지 치닫게 되는데...

뚱보라는 소재를 통해 청소년기의 성장통을 그려낸 소설로 청소년 특유의 발란하면서도 직설적인 문체가 매력적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벵자멩의 일상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청소년기의 고민과 사랑에 공감하게 된다.
프랑스가 배경이 되었기에 성적인 부분에서 지나치게 개방적인 모습이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청소년의 인생사는 어느 나라든 다 비슷한 것 같다. 공부 못지않게 성에 눈뜨기 시작한 시기에 맞게 되는 이성과의 관계는 어쩌면 그들 최고의 화두일 것이다. 또한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페스트 푸드의 폭격 앞에 건강을 지켜내는 것 또한 세계적 관심사가 되었다. 이런 이슈를 적당히 버무려 맛깔스럽게 요리한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거기다 조현실 님의 매끄러운 번역이 외서라는 느낌을 잊게 만든다. 뚱뚱이 소년의 고민 상담을 듣는 것처럼 사실적이고 꾸밈이 없다. 물론 여러 상을 수상한 원작의 우수함도 있겠지만 번역가의 매끄러운 손길을 거치지 않았다면 느끼기 어려웠으리라.

솔직하게 쓰인 한편의 일기를 보는 듯 했다. 즐겁고 유쾌하지만 깊이가 있는 진짜 일기 말이다.
수줍은 미소와 함께 육중한 몸으로 뒤뚱거리며 다가오는 벵자멩을 보는 것 같다. 그의 다이어트에 힘찬 박수를 보내며 클레르와의 사랑 역시 아름답게 꾸려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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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고에 빠져있다.
어젠 <뚱보, 내 인생> 이라는 외국작가의 책을, 오늘은 <주머니 속의 고래>라는 이금이 님의 책을 읽고 있다.
중고생들이 읽기 편한 내용과 분량으로 어렵지 않게, 잔잔한 미소와 함께 재밌게 읽혀진다.
깊이 있는 사상이나 심오한 철학이 담겨있는 건 아니지만 청소년들의 시각에서 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학생들 선물해 주려고 구입한 책을 하나씩 읽고 나니 괜히 나눠주기가 싫어진다.
또다시 고개 드는 책 욕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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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5분 책읽어주기의 힘 - 아이의 두뇌를 깨우는
짐 트렐리즈 지음, 눈사람 옮김 / 북라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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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책, 책을 읽자.
그 속에 길이 있다지 않은가.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끈기를 갖고 찾다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시공을 체험해볼 수 있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 책!

<하루 15분, 책 읽어 주기의 힘>을 읽고 있다.
하루 15분씩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줌으로써 아이의 성적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버지가 읽어주는 책에선 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나는 과연 얼마나 읽어주었던가?
앞서도 언급했듯 책이 갖고 있는 ‘길’의 의미를 느꼈기에 우리 아이들만큼은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에는 책 읽어주기에 대한 중요성을 통감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그저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지 실제로 읽어준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나 자신의 책 읽는 시간 역시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많이 갖질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하루 몇 분만이라도 좋으니 꾸준하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라고 말한다. 거기다 책 읽어주기에 대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을 오랜 경험에서 얻은 사례와 함께 제시한다. 책의 유익함을 알고 있지만 그 활용에 대해선 소극적인 우리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길 바라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15분을 투자라고 이야기한다.
많이 읽어줄수록 아이들은 책 읽기를 즐기게 되고 그에 비례해 어휘력이 증가할 것이다. 이를 통해 쌓인 배경지식은 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바탕이 될뿐더러 그들의 자녀들에게까지 책읽기의 모범을 보여줄 것이다.
이런 책 읽어주기는 믿기 어려운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다. 주의력결핍장애를 갖고 있던 아이가 책을 통해 차분함과 집중력을 높였고, 장애아 판정을 받은 아이가 부모님의 끈질긴 노력으로 정상인과 다름없는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다. 또한 소원했던 가족들 역시 책 읽기를 통해 더욱 친밀해졌다. 단순하고 더딜 것 같은 책 읽어주기의 효과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책 말미에는 ‘책 읽어주기’에 활용할 수 있는 적당한 책을 연령대별로 소개하고 있어 지금 당장 마음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쉽게 구입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이 외국 번역책이라 조금은 아쉽다. 저자가 외국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겠지만 출판사가 저자와 국내 전문가를 연결, 조율해 우리나라 책도 몇 권 추천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리고 역자의 말처럼 조금 반복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책 읽어주기의 모범적인 사례를 설명하고,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그 만큼 중요한 것이겠지만 자칫 지루하게 들릴 수 있겠다. 260여 쪽에 이르는 페이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사례를 조금 줄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겉으로만 교육, 교육 하면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려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진작 책 읽어주기의 중요성을 알고 많이 읽어줬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오늘 저녁에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야겠다. 나의 작은 관심과 노력은 아이의 장래에 큰 밑바탕이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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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2
메리 셸리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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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자국 가득한 흉측한 얼굴을 하고 기다란 팔과 거대한 몸집으로 어둠속을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괴물! 프랑켄슈타인하면 으레 생각나는 장면으로 마치 ‘괴물’이라는 대명사처럼 기억되는 이름이다. 하지만 정작 원작소설은 읽어보지 않은 채 주워들은 이야기나 삼류영화를 통해서 얻은 얇은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과연 프랑켄슈타인이 누구며, 어떤 내용이기에 아직도 많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직, 간접적으로 차용하고 있을까. <드라큘라>,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함께 공포물 최고의 고전에 올라있는 ‘배역’들이기에 그 원작을 찾아 읽게 되었다.


소설은 북극해를 탐험하던 로버트 월튼이 동생(사빌)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시작된다. 윌튼이 탐험 중에 구조하게 된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가 어떻게 과학(특히 화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생명을 창조하게 되었는지 듣게 된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창조한 생명체의 추악하고 흉측한 그 몰골을 보자 극심한 공포와 회의에 휩싸인다. 

“아! 그 소름끼치는 몰골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시 살아난 미라도 그 추악한 놈만큼 소름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놈을 완성하기 전에도 놈을 찬찬히 바라보곤 했다. 그때는 그냥 보기 흉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근육과 관절이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놈은 단테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그런 괴물이 되고 말았다.”

괴물!
그렇게 탄생한 괴물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분노와 자책감에 슬퍼하던 프랑켄슈타인은 우연히 자신이 창조한 괴물과 마주하게 되고 피조물(괴물)의 입을 통해 그간의 일을 듣게 된다.
흉측한 외모로 사람들에게 쫓겨나왔지만 한 가난한 농가에 숨어살면서 인간의 말을 배우고 그들의 삶과 사랑에 대해 깊이 느끼고 동경하게 되었다는 것, 하지만 흉측한 외모에 놀란 사람들에 의해 다시 모든 걸 빼앗기고 급기야는 이 모든 원인을 제공한 창조자를 찾아 복수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괴물은 자신의 불행한 운명과 창조자에 대한 복수를 대신할,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여자를 하나 만들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사라진다.

“내 동반자를 만들어준다면, 나는 그녀와 함께 인간 세상을 영원히 떠나 가장 황량한 곳에서 살아가겠소. 그때는 내게도 동정을 보일 존재가 있으니, 나의 사악한 열정은 사라지게 될 것이오! 나는 조용히 삶을 살아갈 것이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나를 만든 사람을 저주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그와 같은 괴물을 다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새롭게 탄생할 그녀가 얼마나 사악할지 모를뿐더러, 숨어 살겠다는 맹세 역시 생각할 능력이 있는 그녀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거기다 아이까지 태어나게 된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은 작업 중이던 새 창조물을 파괴해버렸고 이에 격분한 괴물에 의해 그의 가족을 비참하게 살해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프랑켄슈타인은 복수를 결심하고 괴물을 찾아 길을 떠나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갖고 있던 선입견 때문인지 적잖이 방해가 된 것도 사실이다.
먼저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의 시체를 조합해 만들어 탄생한 괴물이 아니라, 그 괴물을 창조한 과학자의 이름(빅터 프랑켄슈타인)이었다. 그는 사회에 극도의 불만을 품은 소수자도 아니고 과학에 미쳐버린 정신병자도 아닌, 가족을 사랑하고 생화학에 관심이 많은 과학도일 뿐이었다.
또한 ‘괴물’이라는 선입견을 갇혀 소설을 읽다보니 기괴하고 무서운, 피가 낭자한 하드코어에만 편협해 생각한 것은 아닌가 싶다. 사실 공포물이기 보다는 인간의 관계를 다룬, 사회에서 동떨어질 수밖에 없는 소수자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괴물’이라는 극단적인 생명체를 통해 생각하게 되는 휴먼드라마인데 말이다.

거기다 여성작가가 썼다는 생각 때문인지 괴물이라는 미스터리한 사건에 치중하지 않고 그 사건의 경위와 배경, 주변의 상황묘사에 치중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핑크빛 문장과 서정적이고 묘사적인 글은 강한 인상으로 남아야 할 사건을 다루기에는 조금 역부족인 듯 보였다. 사건의 도입부에서 보여준 섬세하고 장황한 묘사가 괴물의 탄생과 살인과 같은 소설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형식적으로 넘어간 것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여성스러움은 소설의 거친 표면을 세련되게 다듬어 괴물이라는 극단적인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양면성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추어지고 절제된 부분에 대한 소설적 장치를 치밀하게 마련해 놓은 작가의 안목이 눈에 띈다.


<프랑켄슈타인>은 흉측한 모습의 괴물을 통해 인간사회의 이중성을 잔잔하게 고발한다.
인간은 물질문명의 끝없는 맹신과 오만함으로 얼마나 많은 자연을 파괴했는가. 겉으로 드러난 물리적 우위를 통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였던가. 인간만이 세상의 주인인 듯 모든 것을 소유하고 파괴해버렸다. 결국 그 피해는 흉포하게 변해버린 자연재해를 통해 고스란히 우리들의 몫으로 되돌아오리라.
또한 다른 모습의 이웃에 대해서는 겉으로는 사랑과 융화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차별과 멸시를 해왔었던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활 방식이 틀리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동남아 노동자, 다문화가정, 혼혈인들을 ‘사회적 떠돌이’를 만들어 버렸는가. 타인에게는 완고하고 자신에게는 부드러운, 타인의 존재에 인색한 인간의 이중성을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괴물’이 아닌 이상,
나 아닌 존재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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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 전2권 세트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랭크 밀러 지음 / 세미콜론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배트맨 다크나이트 리턴즈!
지천명(50)을 코앞에 둔 배트맨의 힘겨운 컴백기!
 

정의의 사도인가?
정의를 빙자한 폭도인가?

배트맨이 은퇴하고 자취를 감추길 10년,
범죄로 들끓던 고담 시에 검은 복면의 배트맨이 컴백한다.
늙어버린 육체는 생각만큼 말을 듣지 않고, 강력해진 적을 막기에는 힘이 부친다.
하지만 그의 존재에 대한 엇갈리는 평판 속에도 돌연변이파와의 혈투를 계속한다.
막대한 부와 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적과 맞선다.

폭력을 막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모순된 상황,
법적 절차를 무시한 직접적인 처벌과 이에 질세라 이어지는 적의 보복.
더 강한 응징을 바라는 시민이 있는 반면,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도 생겨났다...

배트맨은 악을 응징하는 천사의 모습인가. 아니면,
응징을 빙자해 폭력을 정당화하는 악마의 모습인가?

끊임없는 질문들이 사각형 컷 안에 살아 움직인다.
거칠게 움직이는 배트맨의 몸짓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화처럼 생동감 있다.
책이라는 텍스트를 뛰어넘는 뛰어난 작화법이 돋보인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진 않다.
미국의 이슈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생소함,
- 큰 흐름은 알겠으나 세세한 흐름은 해독 불가능! 약간의 부연설명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도왔으면 좋았으리라.
현란하고 다면적인 스토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텍스트.
- 원작자의 스타일인지 번역상의 오류인지, 툭툭 끊어지는 스토리가 배트맨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으리라.

배트맨의 노년을 그린 한편의 만화로 '배트맨'에 중독된 느낌이다.
선과 악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히어로, 배트맨.
다른 배트맨 시리즈를 만나봐야겠다.


배트맨 vs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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