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2
로버트 뉴턴 펙 지음, 김옥수 옮김 / 사계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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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바로 아버지가 죽던 날이었다. 평생 돼지 잡는 일을 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날이었기에 그날은 아버지의동료들까지 돼지 잡는 일을 쉬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아버지(로버트 헤븐 펙)는 버몬트에서 돼지 도살장에서 일하며 농사를 짓고 소, 돼지를 키우며 살았다. 글자는 몰랐지만 세이커 교도로서 성실하고 검소하게 생활했다.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한평생을 버몬트의 농부로 살았다.
아버지가 죽기 몇 해 전, 이웃인 태너 아저씨에게서 송아지의 출산을 도와주고 선물 받은 돼지, 핑키를 아버지와 함께 도살했다. 내(로버트 뉴턴 펙)가 정성들여 키운 돼지인데다 가축박람회에서 '가장 예의바른 돼지에게 주는 일등상'까지 받은 녀석이었다. 덩치는 커지고 먹는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발정이 나질 않아 새끼를 갖지 못했기에 더 이상 그냥 놔 둘 수는 없다고 했다. 눈이 소복이 내린 다음날 아침, 슬픈 일이지만 아버지와 나는 침묵 속에서 그 일은 처리했다.
“어디든지 나를 그렇게도 따라다니던 귀엽고 깔끔한 하얀 핑키, 처음으로 나에게 주어졌던 유일한 소유물. 내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던 유일한 친구. 하지만 핑키는 더 이상 이곳에 없다. 한순간에 눈과 섞여 축축한 진흙탕이 돼 버린 피범벅뿐이었다.”

모든 것에 운명이 있듯 아버지도, 핑키도 결국 떠나버렸다. 이젠 이 농장을 가꾸고 어머님을 돌보는 일을 혼자 힘으로 해야 한다. 세월의 흔적이 짙게 베인 아버지의 연장으로 농장 일을 꾸려나가야 한다.
"괜찮아요. 오늘 아침에는 푹 주무세요. 일어나지 않으셔도 돼요. 내가 아빠 일까지 다 할게요. 더 이상 일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제 푹 쉬세요."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아버지는 나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최고의 방법을 선물하셨다. 언젠가는 아버지가 그러했듯 나에게도 성실한 땀 냄새가 짙게 베어날 것이다.


- epilogue
학생 생일날 선물하기 위해 구입해 놓은 책이다. 매번 선물을 하지만 제대로 읽는 경우는 몇 번 없는 것 같아 내가 먼저 일어보고 전해주고자 했다.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나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화려하고 극적이진 않지만, 그 이면에 흐르는 잔잔함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껍데기 속에 감춰진 진실함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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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 一期一會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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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나 있을 옛 고서를 다루듯 조심스레 책장을 넘긴다. 책장 사이에 숨겨진 꽃향기가 날아가 버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말이다.
법정스님의 책은 나에게는 늘 경전 같은 존재였다. 세상살이가 팍팍하게 느껴지거나 도시를 가득매운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면 찾아가곤 하던 지리산 같았으니 말이다.
그 시리고 푸른 자연의 품에 나를 맡겨본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나를 둘러본다.

이번 책, <일기일회>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의 법문을 정리한 것으로 길상사에서 행한 정기법회, 안거 결제, 해제 법문 등 43편이 실려 있다. 강원도 산골로부터의 어려운 걸음을 마다하지 않고 내려온 스님은 대중들과 소통을 위해 작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놓치고 있는, 머릿속에는 있지만 가슴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려준다. 그리고 점점 혼탁해져가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뼈있는 일침을 잊지 않는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선한 일 자체에 묶여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버림, 진정한 선함이 아닙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이 그렇게 스쳐 지나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공덕이 어디로 가지 않습니다. 내가 늘 기억한다고 해서 공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일에도 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버리고, 버리고, 그 버렸다는 생각마저 버리고 살라한다. 돈과 명예, 일에 대한 욕심, 남과 비교하는 과시욕이나 허영심은 벗어버리고 조금은 비워놓고 살라한다. 가득 채워 넘치기 보다는 허공까지도 모두 담을 수 있는, 텅 빈 충만을 갖으라 한다.
나의 어깨와 가슴에 짊어진 한보따리의 욕심이 부끄러워진다. 한 줌으로 시작된 욕심은 더 큰 집착으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아쉬움과 후회, 한 뭉텅이의 생활 쓰레기만 만들지 않았던가. 비어 있음으로 풍만한 그런 여유를 누리고 싶다. 자유인이고 싶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물질적인 결핍이나 신체적인 결함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늪에 갇혀 헤어날 줄 모르는 데 있습니다. 과거에 갇혀 있기 때문에 현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순간순간 바로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사는 것인데, 과거의 좁은 방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주저앉지 말고 거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에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지나가 버린 전행사 가지고 다시 되뇌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행해지고, 현재와 미래가 소멸됩니다. 현재가 없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현실, 그대로를 살라한다. 과거와 미래의 사슬에 얽혀 현실은 등한시한 체 있지도 않을 허상에만 집착한다. ‘지금’이 바로 최선의 미래인데 말이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다음에 해야지.’ 라는 핑계로 정작 중요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지금을 통해 미래를 봐야지 미래와 과거만으로 현재를 재단할 수는 없는 일인데 말이다.


"기억하십시오.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기 자신이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자기실현의 길이고, 형성의 길입니다. 부처는 단지 먼저 이루어진 인격일 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스스로 온전한 인간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래서 법정스님은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되라고 말한다. 외부의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 본성의 일깨움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선한 존재로 태어난다 하지 않던가, 하지만 삶의 무게에 짓눌려 그 본성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오염된 정신의 허물을 벗고 우리들 내면에 숨겨진 순수성을 찾아야 하겠다.

또한 좀처럼 보기 힘든 스님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한미FTA에 관련된 이야기에선 “정신 나간 목소리”라며 스님 최고의 쌍욕(^^)까지 써가며 국가의 근시안적인 정책을 비판한다. 농심뿐 아니라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연과 인간의 상호적인 관계를 무시한 체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이런 행위들은 결국 자연재해라는 엄청난 대가로 돌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리 녹녹한가.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게 되고 사소한 것에 흥분한다. 가족과 친구보다는 돈이 눈에 먼저 들어오고 툭하면 욕설에다 신경질이다. 몸은 현실에 있지만 마음은 먼 미래만 의미 없이 쳐다본다. 머릿속에 가득한 도덕적 지식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결국, 세상은 나만을 위해서 돌아가야 한다는 이기적인 생각만 남게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자신을 합리화하는 핑계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스님의 법문이 더 가치 있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버려라, 현실을 직시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이젠 정신의 굶주림을 외부에서 찾지 말고 나 자신에게서 찾아야겠다. 스스로를 둘러보고 자족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일기일회(一期一會), 한 번의 기회, 한 번의 만남을 소중하게 살아가야겠다.
오늘, 스님의 잔잔한 설법이 나를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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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거칠다. 하지만,
우두둑 떨어지는 소리는 우리들을 토닥거린다.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말끔히 풀어버린다.

시험기간이다.
학생들은 괴로울 테지만 선생인 나는 조금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

우리 전문계고 아이들은
단 몇 개만이라도 정확히 맞춘다면 눈에 띄게 성적이 오를 테지만,
그래서, 자신감과 학습의욕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대화와 공갈,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아이들의 강건함에 착찹하기 그지없다.

아이들과 함께 장맛비라도 맞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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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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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 괜찮아......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는 자유는 인내라는 것을 지불하지 않고는 얻어지지 않는다. 휼륭한 피아니스트가 자유롭게 피아노를 칠 때까지 인내하면서 건반을 연습해야 하는 나날이 있듯이, 훌륭한 무용가가 자연스러운 춤을 추기 위해 자신의 팔다리를 정확한 동작으로 억제해야 하는 나날이 있듯이 자유를 위해서는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 과정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1쪽

누가 그러더라구, 집은 산악인으로 말하자면 베이스캠프라고 말이야. 튼튼하게 잘 있어야 하지만, 그게 목적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게 흔들거리면 산 정상에 올라갈 수도 없고, 날씨가 나쁘면 도로 내려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시 떠나는 곳, 그게 집이라고. 하지만 목적 그 자체는 아니라고,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서 결코 튼튼하지 않면 안 되는 곳이라고. 삶은 충분히 비바람 치니까, 그럴 때 돌아와 쉴 만큼은 튼튼해야 한다고......-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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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 一期一會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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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일기일회(一期一會), 한 번의 기회, 한 번의 만남입니다. 이 고마움을 세상과 함께 나누기위해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49쪽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선한 일 자체에 묶여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버림, 진정한 선함이 아닙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이 그렇게 스쳐 지나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공덕이 어디로 가지 않습니다. 내가 늘 기억한다고 해서 공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일에도 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64쪽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물질적인 결핍이나 신체적인 결함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늪에 갇혀 헤어날 줄 모르는 데 있습니다. 과거에 갇혀 있기 때문에 현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순간순간 바로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사는 것인데, 과거의 좁은 방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주저앉지 말고 거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에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지나가 버린 전행사 가지고 다시 되뇌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행해지고, 현재와 미래가 소멸됩니다. 현재가 없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오늘 푸는 날을 맞이해서 모두 풀어 버리십시오, 그래야 꽃 피고 새 우는 화창한 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247쪽

기억하십시오.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기 자신이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자기실현의 길이고, 형성의 길입니다. 부처는 단지 먼저 이루어진 인격일 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스스로 온전한 인간에 이르는 길입니다.-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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