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식당 (청소년판) 특서 청소년문학 4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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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재밌는 책이 없나 하고 집안을 어슬렁거리던 나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추천한 책이 <구미호 식당>이다. 노란색 표지에 기다란 판형 못지않게 제목이 독특했다. 전설이나 애니에서나 들어봤던 '구미호'라는 동물과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식당'이라는 단어가 만나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느낌이 아닐까 하고 첫 페이지를 펼친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 나(왕도영)는 저승길에서 우연히 만난 아저씨(이민석)와 함께 49일 동안 이승에서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나와 아저씨는 구미호 식당 안에서만 머물러야 했기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아저씨는 전직 요리사였던 특기를 살려 '크림말랑'을 요리한다. 그리고는 이 매혹적인 맛을 통해 누군가를 찾기 시작한다.
  49일이라는 한정된 시간과 구미호 식당이라는 제한된 공간은 요리라는 향을 만나 빠르게 읽힌다. 책 장을 넘길 때마다 크림색의 얼큰하고 깊은 맛이 계속 스며 나오는듯했다. 하지만 아저씨가 그토록 찾는 사람이 누구인지, 왜 찾아야 하는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알 듯 말 듯 한 재료와 비밀에 쌓인 조리 방법처럼 독자를 끊임없이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던 이면과는 다른, 거부할 수 없는 진실에 놀라게 된다.
 
  천년을 기다리며 인간의 간을 먹어야 불사의 존재가 된다는 구미호. 하지만 화려한 타이틀 뒤에 숨겨진 것은 자신의 영생을 위해 타인을 죽여야만 하는 이기심뿐이다. '나'라는 아집에 갇혀 자기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구미호 식당>은 폭력에 대한 슬픈 진실을 담고 있다. 가족과 연인, 친구, 이웃은 사회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지만, 우리에게 숨어 있는 이기적 마음은 서로를 다치게 하고 상처를 준다. 사소한 실수가 큰 상처가 되기도 하고, 사랑이라 믿었던 행동이 구속과 폭력으로 변질하기도 한다.
  화려한 맛으로 사람들을 구미호 식당으로 유혹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처럼 도영과 민석은 열등감과 집착으로 자신을 궁지로 몰아붙이게 되었고, 이는 외부로 통하는 벽을 더 공고하게 만들어 자신을 가두어 버렸다. 한 발만 나가면 더 넓은 세상이 있는데도 우물 안에 갇혀 세상을 낭비했다.


  이 두 사람은 어쩌면 나와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이해하는 척, 대범한 척, 당당한 척하지만, 마음속에 가둬놓은 옹졸한 마음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들었다. 남을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습관처럼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기준과 편의에 따라 세상을 재단해 버린다. 공평하고 민주적인 세상을 부르짖지만, 본인에게 돌아오는 사소한 손해는 용납하지 못한다.
  노란색의 <구미호 식당> 표지(내가 읽은 판형)를 보면서 내 안에 숨어 있는 구미호를 감추는 보호색이 아닐까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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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해녀 - 잘나가던 서울의 공예 디자이너 제주의 해녀가 되어 행복을 캐다!
김은주 지음, 김형준 사진 / 마음의숲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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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약을 타고 창원 진해만에 있는 지리도로 투어를 갔던 적이 있다.  섬의 가로 폭이 300m가 되지 않는 작은 무인도로 내륙에서 가까운 데다 카약을 랜딩할 수 있는 해변이 있어 동호회원들과 종종 왔던 곳이다. 우리는 준비해간 음식을 나눠 먹으며 담소를 즐기고, 낮잠을 자며 따뜻한 오후를 즐겼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몇몇은 수영하며 섬 주변을 둘러봤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잠수도 했는데, 거대한 돌무더기 사이로 손바닥만 한 물고기와 함께 해초도 보이고, 성게도 보였다. 조금 더 내려가자 저만치서 색색의 조각들이 반짝이는 걸 발견했다. 진녹색의 잡초가 가득한 도로가에 분홍빛으로 피어있는 코스모스 같았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니 옹기종기 군락을 이룬 멍게가 아니던가. 아기 주먹 크기에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기가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반짝거렸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을 보는 것 같았다.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수영과 다이빙을 하고, 카약을 탈 때면 남해 무인도에서 본 별이 계속 떠오른다. 물과 함께했던 좋은 기억들이 잠깐의 이벤트처럼 스쳐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이렇게 바다에 빠지다 보니, “바다에 좀 더 머무를 수는 없을까?”, “수영이 일상이 되면 어떨까?”, “그럼, 해남(해녀)는 어떻게 될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더해져 <명랑 해녀>까지 읽게 되었다.
 
  서울깍쟁이로 바쁘게 생활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프리다이빙을 배우게 되었고, 휴가차 내려왔던 제주에서 갑자기 다치는 바람에 엉겁결에 한달살이를 했던 저자는, 제주의 매력에 빠져 살림살이까지 모두 옮겨왔다. 그리고는 해녀학교에 등록하면서 정식 해녀가 되었다. 그녀의 남편 또한 덩달아 해남이 되었다.
  물질에 대한 매력에 푹 빠진 그녀는 어설프지만 차근차근 해녀의 생활에 적응해나갔다. 반짝하다가 말겠거니 하며 색안경을 끼고 보던 마을 해녀들도 바다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조금씩 받아들였고, 그녀도 조금씩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찐해녀가 되어갔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귀촌하는 것도 어려운데, 직접 해녀가 되어 물속으로 뛰어들다니... 나무에 매달린 번데기가 화려한 나비로 변신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검은 잠수복을 입고 태왁(수면 위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채취한 해산물을 담아두는 도구)을 둘러맨 체 바다로 향햐는 그녀의 뒷모습이 당당해 보인다.
  물론 책에서 표현하지 못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려움도 많으리라. 기존의 생활과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새로운 터전을 잡는다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인가. 바다가 일이라는 게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데다 자칫 건강이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기후는 변하면서 수온이 올라가고, 환경오염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해산물은 줄어들고, 해녀에 대한 인식도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녀는 ‘명랑해녀’라는 닉네임처럼 이를 극복하고 해녀가 되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해녀는 물론이고 게스트하우스(명랑해녀홈스테이)를 운영하며 바다와 관련한 여러 활동도 많이 하는 듯 보였다. 이 책을 출판할 때보다는 좀 더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진 모습이다. 아무튼 제주 해녀가 되었을 때의 긴장과 설렘을 간직하며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언제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쉽지만, 한겨울인데다 확산되는 코로나19로 인해 쉽지가 않다. 그나마 공영수영장 자유수영에 당첨되어 물맛은 볼 수 있지만, 바다의 개방감과 포근함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바다에 들어가면 해변에 두고 온 도심의 소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바다는 꽉 막힌 가슴을 뚫어준다. 바다에서는 오롯이 혼자이고, 세상의 주인이 된다. 바다는 포근하게 나를 감싸 안는다.
  바다는 별이다.


 

  * 명랑해녀(블로그) : https://blog.naver.com/happy_haenyeo

  * 명랑해녀두각시(유튜브) : https://www.youtube.com/channel/UCr6j5WcXDxQnf1PNpDo7WQQ/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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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의 이유
보니 추이 지음, 문희경 옮김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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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로운 새벽 바닷가에서, 어떤 책임감이나 거창한 장비 없이, 단출한 내 몸뚱이 하나로 바다에 뛰어든다. 나를 받쳐주는 바다 위에서 편안히 몸을 맡기고, 거대한 지구 위를 유영한다.
 잔잔한 바다에 떠서 해변과 도심을 바라보면 더없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꼭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느냐는 반성과 함께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커다란 바다는 나를 더욱 작게 만들지만, 내 안의 세상은 더욱 넓어진다.


  새해를 맞아 1월 첫날에 바다수영을 했다. 작년 같았으면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시간에 차가운 해운대를 찾았다. 바람과 수온은 차지만 일단 물에 들어가면 그런대로 적응이 된다. 힘차게 오리발을 젖는 동호회원을 따라 첫 해가 떠오른 바다로 나갔다. 올 한해도 바다수영으로 건강을 지켜달라는 기원과 함께...
  아쉬운 마음에 저녁에는 인터넷서점에서 수영, 바다수영에 관한 책을 열심히 찾아봤다. 수영에 얽힌 일상을 기록한 산문집은 몇 권 보였지만 좀더 진지하게 읽을만한 책은 잘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 책을 가까이하지 못했지만, 10년 가까이 수영을 하다보니 수영일기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보다는 수영에 대한, 바다에 대한 조금은 진지한 책을 읽고 싶었다. 그렇게 찾은 책이 바로 <수영의 이유>다.


  책은 크게 5부로 나눠 바다에 얽힌 인간의 생명과 건강,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경쟁, 그리고 (종교적)이 담겨있다.
  1부에서는 얼음장 같은 아이슬란드 남쪽 바다에서 조난당한 뒤, 6시간 동안 5.6km를 수영해 살아 돌아온 구드라우구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옛날부터 어떻게 물에 적응하고 살아왔는지 보여주면서, 그 극한의 한계를 넘어온 사건을 따라가며 바다에 적응하고 극복해 온 인간의 역사와 강인함에 대해 전해준다. 
  나는 아직 바다에서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지는 않았지만, 바다는 언제나 무섭고 겁난다. 해운대 앞바다와 같이 유명한 관광지를 수영할 때, 수면 아래 거뭇하게 보이는 해초나 테트라포트를 볼 때면 식인 백상이리나 동화 속 괴물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이 겁난다. 바다는 무한한 자원과 재미가 있지만 저 깊은 곳은 여전히 어둡고 두렵다.


  2부에서는 바다가 우리를 얼마나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설명하면서, 겨울바다로 뛰어들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한때 유명한 마라톤 선수였지만 사고를 통해 잃을 뻔했던 다리를 수영을 통해 재활에 성공한 킴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바다는 거대한 존재에 몸을 의지한 채 부유하는 편안함과 함께, 약간의 기술만 있으면 무중력에 가까운 자유로움을 선사해준다. 체중과 관절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고, 깊고 고요한 숨은 몸과 마음은 가볍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적당히 간이 된 바닷물은 일상의 면역력까지 높여준 것 같다. 바다수영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감기에 걸린 적이 없으니 말이다.


  3부에서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수영이라는 운동을 통해 휴식과 안정을 찾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피부색과 문화가 달라도 물에서는 모두 하나가 된다. 물은 모든 이질적인 것을 감싸고 포용할 수 있다.
  바다수영을 할 때면 다른 동호회와 마주치거나 초면의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게 되지만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든다. 수모 색깔이나 영법이 다르더라도 바다라는 평범한 공간에서, 수영이라는 특별한 기술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만 가지고도 오래된 친구가 된다.  


  4부에서는 경기라는 측면에서 수영을 이야기한다. 펠프스와 같이 올림픽 수영 영웅부터 마스터즈 수영대회 참가자까지 다양한 동기와 목적으로 경기에 임하는 이들을 통해 생존과 놀이 이상의 역동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생활이 느슨해지거나, 뭔가 강력한 동기를 유발하기에 대회만 한 것이 있을까. 달리기를 하더라도 마라톤대회를 신청(2002년)하고 난 뒤에는 신발 끈을 묶는 강도가 달라졌고, 오픈워터 수영대회(2014년)가 코 앞일 때는 50m 수영장을 쉼없이 왕복했다. 수영과 싸이클, 달리기를 함께하는 트라이애슬론 대회(2015년)에서는 비록 최하위권으로 완주했지만, 국가대표라도 된 듯이 뿌듯했다.
  "수영에서 싸워 이기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상대는 물이다."(229페이지) 경기는 상대와 승패를 떠나 운동을 좀 더 재미있고 진지하게 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5부에서는 수영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몰입의 방법을 이야기한다. 물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수양한다고나 할까….
  한참 수영장을 돌다 보면 시간은 정지되고 생각이 사라져버리는 순간이 다가온다. 수영한 거리를 센다거나 수영 이후의 일정을 고민하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 나는 사라져버리고, 일상을 온갖 스트레스가 수면 아래로 잠겨버린다. 이런 느낌이 몰입이랄까…


  주말이면 바다수영을 한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생존이나 건강, 공동체나 경쟁, 몰입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저 세상에 오롯이 떠 있는 느낌이 좋을 뿐이다. 바다에서 보는 도심에는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직원으로서의 책임, 친구로서의 도리가 무겁게 따라오지만, 여기서는 몸에 힘을 빼고 물에 모든 것을 맡기면 그만이다. 물에서는 세상의 스트레스를 ‘바다’들이며, 나를 쉬게 한다.
  단, 몸에 힘이 들어가면 가라앉으니 주의하시라! 물에서는 모든 것을 놓고, 그저 릴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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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지음, 이영란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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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 독서동아리에서 추천받은 책으로 한 손에 잡히는 판형과 간결한 표지, 외국인 저자와 의미심장한 제목 때문에 시집인 줄 알았다. 원래 시를 잘 읽는 편이 아니기에 한 곳에 밀쳐뒀던 책인데, 이번 주로 다가온 토론회를 계기로 부랴부랴 집어 들었다. 시가 난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페이지를 스르륵 넘기니... "이건 산문집이잖아!". 제목에 적힌 '두 번째 지구'는 작가의 '갬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구가 아니라, 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현재 진행형의 지구였던 것.

   이렇게 헛다리를 긁으며 책을 펼치자 프롤로그에 적힌 첫 두 문장이 내 눈에 꽂혔다. "나는 버몬트의 숲, 자연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계절의 냄새도 알고, 계절에 따라 비 내릴 때 여향이 다른 것도 알고, 좋은 흙과 안 좋은 흑의 차이를 냄새로 안다."(p6)

   불일암의 법정스님과 월든 호수가의 소로우의 냄새가 가득 느껴져 '타일러 라쉬'라는 생소한 저자 이름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타일러 라쉬, 타일러 라쉬? 오쇼 라즈니쉬 같은 명상가인가?" 그러고는 표지 안쪽 면에 적힌 저자 소개를 보니 시카고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이라는 긴~ 가방끈과 함께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텔레비전에서 훤칠한 외모와 유창한 한국말로 프로그램을 주도하던 그 사람이 책 저자라고? 어제 합석했던 사람이 연예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린 느낌이랄까.

   놀라움과 반가움, 감탄으로 그가 들려주는 지구 이야기를 듣는다. 아니 지구와 환경에 대한 시를 읽는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 ‘모두가 파산을 앞두고 있습니다’에서는 지구의 자정능력을 넘어선 과도한 소비로 점점 ‘채무불이행’으로 치닫고 있는 지구를 걱정한다. “지구가 줄 수 있는 양이 1이라면 매년 1.75를 사용”(p27)하는 우리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근시안적인 생활 습관을 이야기하고, 이 과정에서 우리 환경이 어떻게 변화되고 달라졌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실천적 방법도 제시한다.

   일회용품 사용과 육식을 줄이고, 물건을 아껴 쓰고 분리수거를 잘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보다는 기업의 문화와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환경을 고려한 제품을 이용함으로써 친환경적이지 못한 기업을 도태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런 이야기들이 과학자의 논리가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높이로 설명함으로써, 텔레비전의 교양프로그램을 보듯이 쉽게 다가온다.

   하지만 내가 더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2부 ‘모든 시작과 끝인 이곳에서'로, 타일러의 성장 환경과 유년 시절의 경험을 조화롭게 써 내려간 점이 인상적이었다. 심한 알레르기와 어머니의 수용적인 태도를 통해 자연환경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깨달아가고, 버몬트의 자연환경과 환경 중심의 교육환경 속에서 자연의 힘과 소중함을 배워나가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생전 처음으로 오로라를 경험했던 순간은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오늘 새벽에는 송정 바닷가에서 수영한 후 출근했다. 그런데 여느 때와는 달리 물이 상당히 맑고 투명했다. 제법 깊은 수심에서도 모랫바닥의 웨이브 무늬가 훤히 들여다보여, 물살을 가르면 마치 사막 위를 비행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순간 나는 바다와 함께 자연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유일하다. 여유가 있는 것도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첫 번째 지구에서 나와 우리 가족, 우리의 아이들이 커나가야 한다. 지구가 우리에게 베풀어 준 대출한도 안에서 생활해야지,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다가는 파산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아늑한 바다를, 자연을, 지구를 좀 더 오랫동안 즐기고 싶다. 쓰레기가 뒤덮인 오염된 장소가 아닌, 우리 모두가 편하게 즐기고 쉴 수 있는 상생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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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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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노보(학명 : Pan paniscus) : 영장목 성성이과에 속하는 유인원으로, 인간과 가장 유사한 DNA(98.7% 일치)를 가졌으며, 학계 일부에선 현존하는 세 영장류(침팬지, 인간, 보노보)의 '원형'과 가장 닮은 꼴로 본다. 침팬지보다 체구가 작지만 공감 능력은 훨씬 뛰어나며, 온순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p6)

 

  콩고에서 밀렵당한 보노보를 못 본체하고 지나쳤던 경험 때문에 진이는 영장류센터 사육사를 그만둘 참이었다. 하지만 한 별장에서 발견된 보노보를 영장류센터로 호송하는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지니'라고 이름 붙인 보노보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남녀의 영혼이 바뀌는 영화나 유체이탈을 그린 드라마처럼 다소 엉뚱한 소재라 처음에는 잘 적응되지 않았다. 책 초반에 느꼈던 정유정 특유의 흥미진진한 빠른 전개에 몰입한 감정이 한순간에 몸 밖으로 튕겨버린 것 같아 난감했다. "뭐야, 잘나가던 서스펜스 소설이 왜 갑자기 판타지 소설로 바뀐거지?"

  하지만 보노보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시각이 교차하고,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면서 허구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버린다. 마치 콩고에서 밀렵되 먼 이국땅으로 밀반출되는 철창 속 유인원이 되기도 하고, 다정한 눈빛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조련사가 되기도 한다. 어린 동생의 탄생을 지켜보는 지니가 되었다가 자신의 죽음을 목도하는 진이가 되기도 한다. 
  특히 진이의 귀환(?)을 돕는 민주라는 인물이 소설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었다.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집에서까지 쫓겨나 노숙생활을 하던 그는 진이를 도우며 삶의 목적을 찾아 나간다.

 

  <진이, 지니>는 인간과 동물, 판타지와 코미디, 치열함과 느슨함이 교차하면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 완급을 조절한다. 힘껏 전력 질주한 다음에 느린 걸음으로 숨을 고르듯, 리드미컬한 강약조절로 독자를 이끈다. 그래서 기어이 다음 회차까지 보게 만드는 주간드라마나 시리즈 영화처럼 맛깔스럽다. 아마 책을 영화로 만들어져도 충분한 재미를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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