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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파친코 1~2 세트 - 전2권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사회적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있는 요즘, 덜컥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언젠가는 걸릴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몸과 마음이 모두 고생이다. 직장에서 해야 할 일도 많은 데다 나머지 가족에게 옮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컸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좀 쉬라는 말을 많이 들은 것도 사실. 하긴, 최근에 너무 정신없이 생활했던 것 같기도 했다. 가족들은 멀쩡한 상태에서 나 혼자 코로나 확진을 받다 보니, 방구석에 격리된 채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간간이 업무를 처리할 뿐 남는 것이 시간인지라 이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 떠오른 것이 최근에 뜨고 있는 애플티비의 <파친코>였다.
집사람은 이 드라마의 유행 소식에 원작을 구해 벌써 다 읽고, 나 보고도 읽어보라고 권했지만, 두 권으로 나눠진 600페이지짜리 책을 끊기지 않고 읽을 자신이 없었다. 또한, 한일간의 역사가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말에 왠지 무거울 것 같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코로나로 인한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어 도전해본다. 이번 기회에 소설을 다 읽고, 애플티비의 드라마까지 정주행하리라!
<파친코>는 1910년 일제강점기부터 1989년 근현대까지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살아야 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다. 양진의 딸 선자는 한수의 아이를 임신한 채 이삭과 결혼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녀는 이삭의 형님인 요셉 댁에 머물며 두 아들을 낳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신사참배 문제로 이삭이 잡혀가자 생활은 더욱 어려워진다. 하지만 오래전 연인인 한수의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겨우 안정을 찾아간다. 야쿠자가 된 한수는 일본의 패망을 예상하고 선자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킨 후, 생활 터전과 노아의 학자금까지 마련해 주지만 그의 아들 노아는 한수의 존재를 부정하며 대학을 중퇴한 뒤 숨어버린다.
소설은 박경리 님의 <토지>나 이문열의 <변경>, 조정래 님의 <태백산맥>과 같은 대하소설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침략전쟁과 패망, 한반도의 이념대립과 한국전쟁 등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굵직한 근대사를 따라가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늘 우리의 역사가 있었다. 먼나라나 공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격동의 한반도 역사와 함께 살아왔던 우리 할아버지, 내 어머니의 이야기였기에 그 여운이 남달랐다.
특히 일본의 침략과 만행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 고통받고 흔들리는 서민들의 힘겨운 모습이 생생했다. 남자는 물론 여자들까지도 전쟁터로 끌려가야 했고, 식량은 물론 생필품은 늘 모자랐다. 가족은 굶고 있지만 일거리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는 고향을 등지고 일본으로, 외국으로 떠나야만 했다.
이들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멸시와 천대를 받아야 했고, 실컷 일해주고도 쫓겨나기 일쑤였다. 이민자들은 모든 안 좋은 일의 원인이 되었고 사회악처럼 치부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어렵거나 힘들거나, 아니면 어둡거나... 파친코는 조선인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자리 중에 하나였다(실제 일본의 빠친코 업계 대부분은 재일 동포가 운영한다고 한다).
설령 기회가 좋아 경제적으로는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이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일본에서 이민 1세대는 전쟁을 피해 도망 온 외국인일 뿐이었고, 일본에서 나고 자란 2, 3세대 역시 이민자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외면당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숨겨야 했고, 한국에서는 일본인처럼 행세해야 했다.
승자와 패자가 없는 전쟁처럼 인간사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중국과 미국까지 넘보며 승승장구했지만 결국 패망했던 일본이나, 독립을 위해 오랜 시간을 싸워왔지만, 정작 해방이 된 후로는 이념 차이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우리. 하지만 역사의 바람 아래 고통받았던 일반 서민들의 고충은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
<파친코>는 역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현재의 고통에 더 집중한다. 한국과 일본의 시시비비를 가려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하기보다는, 지금 고통받고 있는 이웃을 찾아 보듬고 어루만지는데 관심을 집중한다. 전쟁이나 분쟁, 재해나 사고로 인한 피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비극이었기에 한국,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호응을 받는지 모르겠다.
<파친코>는 한편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남자와 여자, 내국인과 외국인, 비장애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관습적, 지역적으로 생겨난 여러 잣대는 우리 사회를 갈라놓았다. “여자가 뭐 저래?, 외국인은 어쩔 수 없지, 장애인이라 어쩔 수 없잖아?, 전라도는 안돼.”와 같이 우리 주변에 깔린 편견과 차별은 의외로 많다. 이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공평한 기회를 박탈하게 했고, 도박판의 요행과 행운만을 바라보게 했다. 세상을 파친코 오락실로 만들어 버렸다.
남녀가 평등해지고 여성의 발언권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부족함이 많은 것 같다. 양진과 선자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 도전장을 던진 전사처럼 비친다. 어쩌면 우리들의 어머니 모두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끝으로 책을 읽다 보니 눈에 띄는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사건 전개가 빨라 쉽게 읽힌다는 점이다. 80년간의 방대한 이야기를 단 두 권으로 압축해 놓은 탓인지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그렇다 보니 인물의 심리나 상황묘사가 부족해 이야기 사이의 간극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이야기의 규모를 조금 줄이든지, 분량을 좀 더 늘리고, 좀 더 세밀한 묘사나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또 한가지는 번역이다. 한국에서 유명한 작가도 아닌 데다 드라마로 제작되기 이전에 소개된 소설이라 번역과 교정에 시간과 관심이 부족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나 오타는 원작의 품질까지 의심하게 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뜨고 원작이 다시 인기를 얻자, 출판사를 옮겨 새로 번역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파친코>는 우리의 역사를 세계에 알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특히 이민 1.5세대의 생각으로 적혀진 글(영어)을 세계인들과 함께 공감하며 읽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겠다. 근대사를 버텨낸 우리 부모님 세대는 사연 없는 가족이 어디 있으랴. 가족이 역사가 되고, 역사가 가족이 된 한국의 드라마를 전세계인들과 함께 애플티비로 본다고 생각하니 이채롭기만 하다. 세계는 우리와 함께 하나가 되었다.
# 애플티비 <파친코>
애플티비의 <파친코>를 정주행 중이다. 8부작으로 이뤄진 드라마는 원작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심심한듯 아기자기하게 잘 만든 것 같다. 투박한 부산 사투리가 어색한듯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