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양장)
유진 피터슨 지음, 이종태 옮김 / IVP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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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대학시절에 이 분의 책을 읽었다.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이책을 읽고 얼마나 신선한 충격에 빠졌는지 모른다..한 인물을 이렇게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니..그리고 이렇게 다윗의 이야기를 가지고 깊은 묵상에서 길어올린 참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는지..그리고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로 진리를 잘 전달할 수 있는지..나는 이 책을 대학때 읽고 유진 피터슨의 팬이 되버렸다. 그때부터 이분의 책을 전부 사기 시작하고 이분의 글을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월간지나 잡지에 나온 작은 쪽글이라 할지라도 유진 피터슨의 글은 깊은 영성과 묵상에서 퍼올린 영혼을 맑히는 글이였다. 짧은 글이라 할지라고 그것이 주는 임팩티는 가희 매머드 급이였다. 개신교 신학자중에서 영성신학자로 그 명성이 높은 유진 피터슨은 기독교 영성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장 건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진 피터슨이 길어올린 다윗 이야기..다윗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람들이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성경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지혜롭고, 노래잘하고, 군인으로 용감하고, 의리를 지킬줄 알며, 한여자를 깊이 사랑할 줄 아는 깊은 매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리고 시편으로 알려진 다윗의 노래책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고 있는 시편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알고있는 다윗은 바로 위의 정도이다. 참 그리고 골리앗을 드라마틱하게 물리친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용감한 무용담으로 널리 알려지 이야기이다.

 

그러나 유진 피터슨은 다윗의 이야기를 다른 각도로 조망하고 깊은 영성에서 길어올린 다윗이 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다윗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에 나와있는 감추어진 모든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다윗과 예수님, 다윗과 이야기, 다윗과 사울, 다윗과 요나단, 다윗과 도엑, 다윗과 사무엘, 다윗과 아비가일, 다윗과 밧세바...등 다윗과 관련된 모든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그는 우리에게 참된 영성과 참으로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다윗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는 다른 유명한 성경의 인물과는 달리 한번도 특별한 기적을 일으킨 적이 없다. 모세나 엘리야, 그리고 이사야와 다니엘과 같은 경우는 특별한 기적이 그들의 삶안에 있다. 그러나 다윗의 이야기 안에는 초자연적인 어떤 일들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살아가면서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을 만나고, 자신을 목숨과 같이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며, 미친척하고, 아내 미갈이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내지는 것을 보면서 아파하고,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인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에 충격받고, 밧세바를 범하는등 온통 자연적이고 현실적인 삶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보통 성경의 인물들에서 볼수 있는 초자연적인 기적은 하나도 없고 자연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일들로 가득한 그의 삶속에서 그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용서하고 아파하고 극복하고 이해하면서 늘 하나님을 가장 현실적인 삶 가운데 모시고 가장 인간답게 지혜롭게 살아갔다는 점에서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수 있었다. 그에게는 모든 일상적이며 현실적인 삶속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기도의 재료로 삼았고 다른 사람들이 현실만을 볼때에 다윗은 현실을 넘어 하나님을 보았고 또 그분으로부터 오는 힘으로 인해 적군을 달리며 담을 넘는 진정한 인간이였다. 유진 피터슨을 바로 다윗의 이러한 점을 한마디로 ‘영성’이라고 말한다. ‘영성’은 위험하다.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며 거칠다. 그래서 보통 영성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극히 위험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윗은 현실의 정중앙과 가장자리 모두에서 살면서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그렇지만 하나님과 언제나 연결되어있는 삶을 살았다. 이것이 바로 제목과 같이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것은 곧 ‘영성’이다. 이 영성은 무엇가 특별하고 현실을 벗어나는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에 뿌리박혀 살면서도 하나님으로 부터오는 생동감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고대의 고부 이레니우스는 참으로 살아있고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다윗은 죽음과 아픔과 상처라는 현실이 주는 가장 깊은 고통속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현실 가운데 인간으로써의 자격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하여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는 최고의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아 바로 영성있는 이야기꾼 유진 피터슨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다윗 이야기의 최고의 교훈인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자하여 적군을 향해 달리며, 담을 뛰어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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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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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보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잘 잊어버리게 된다. 특히 젊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젊었을 때는 사랑, 우정, 가족, 헌신 이러한 단어보다 성공, 경쟁, 실력, 학벌, 직위, 속도 이런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나도 내가 20대였을 때는 오직 꿈과 미래를 위해서 달려왔고 남들처럼 적당히 직장을 잡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별 어려움 없이 평범하게 사는 것은 젊음에 대한 죄라고 여기면서 스스로 평범함을 거부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도 자아의 좁은 골방에 갇히는 행위이며 원대한 포부를 품으며 사는 것이 멋진 인생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내가 원하던 것을 얻게되고 삶을 뒤돌아보는 여유가 생기면서 진짜 인생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에게 진정한 행복과 내 영혼에 만족을 주는 것은 내가 젊었을때 추구해왔던 높은 이상이나 꿈, 비전, 성공, 성취 이런 것이 아니였다. 오히려 꿈을 위해 달려오면서 무시하거나 소홀히 했던 것들, 나의 성취를 위해 일정기간 내가 담보로 잡아놓았던 것들이 내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쪽으로 끊임없이 달려오면서 소홀히 했던 것들, 친구, 우정, 가족, 사랑, 여유 이런것들에서부터 진정한 만족이 온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20대였을 때는 그것을 몰랐을까? 나는 몰랐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20대에 지혜로운 멘토가 있어서 인생의 참된 가치와 영혼의 만족, 그리고 참된 인생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부모처럼 돌아봐주면서 지도해주는 선생이 있었으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지금보다 덜 바쁘고 진짜 중요한 일에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나와 같이 자신의 성공과 꿈을 좇다가 과거 대학교때 은사였던 모리 선생님과 다시 재회하면서 그분으로부터 인생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참된 만족을 위해서 무엇에 시간을 투자해야 하면 가꾸어야 하는지 배우게 되는 이야기이다. 젊었을때 그렇게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하고 인상적인 선생님이였던 모리 교수님을 졸업과 동시에 잊어버리고 스포츠 기자로 부와 명성을 모두 얻었던 미치는 어느날 우연히 방송에서 모리 선생님과 유명한 방송인 테드 코펠과의 인터뷰 장면을 보게 된다. 모리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자 마자 그는 자신이 젊었을때 모리 선생님이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사랑과 편안함을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모리 선생님이 죽어간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그리고 모리 선생님을 찾아 뵙던 순간 자신이 세속에 찌들려 모리 선생님이 보여주었던 영혼을 살찌우는 인간의 모습에서 멀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모리 선생님과 매주 화요일에 만나 한가지씩 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면서 차츰 참된 삶이 무엇이고 진짜로 중요하고 평생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미치는 모리 선생님과 만나면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이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였다는 것이다. 모리 선생님은 미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일들-자네가 하는 모든 작업-이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테니까. 영혼과 관계된 것이 파고들 공간이 더 많이 마련해야 될지도 모르지"

 

모리 선생님의 이 말씀 가운데 미치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었다. 미치는 성공에 대한 일에는 열심히 투자를 했지만 자신의 영혼과 관계된 일에는 전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지 않았다. 영혼에 관한 것이라면 감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참된 행복을 가져다 주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다. 미치는 모리와의 매주 화요일 열네번의 만남을 통해서 '영혼에 관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한다.

 

나는 모리 선생님의 이 말에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공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혼에 관한 것에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젊은 사람들이 듣기에는 지극히 감상적이고 실제적이지 않게 느끼기 때문에 그 만큼 소홀히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영혼이야 말로 가장 깊은 인간존재의 핵심이며, 세상이 주는 성공의 법칙과 부가 주는 만족과는 동떨어진 다른 법칙이 작용하는 실체이다. 따라서 사람은 외적인 성공 법칙을 따라서는 영혼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면 내적인 다른 법칙을 따라야지 참된 영혼의 만족과 행복감을 느낄수 있는 것이다.

 

모리 선생님을 미치와의 첫 번째 화요일 만남에서 영혼에 관한 것, 즉 영혼에 만족을 주는 첫 번째 법칙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야"

 

우리는 사랑을 주고 받는 것에 대해서 나약한 자들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내가 남들보다 강하고 권력과 지위가 있으면 항상 무엇을 주어야 하지 무엇을 받는 행위는 약자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을 주고 그것을 잘 받는 것이야 말로 인간영혼의 만족을 위한 가장 큰 대전제인 것이다. 그래서 모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이야 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야"라고.

 

사랑은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랑을 잘 받을때 그 영혼은 건강하게 유지되고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는 능력과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건강한 자아상과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거래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순수한 사랑의 주고 받음에 대해서는 낯설어 하고 어색해 한다. 참된 행복과 영혼의 만족을 위해서는 사랑을 주고 받는 것에 대해서 익숙해져야 한다. 이것이 모리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전제이다.

 

그리고 모리 선생님은 우리 영혼의 만족과 건강을 위해서 두 번째 법칙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감정을 풀어놓으라는 것이다. 이것을 '감정이 우리를 꿰뚫고 지나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모리 선생님은 사람들 안에 찾아오는 두려움, 외로움, 분노, 억울함 이러한 감정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면 그래서 스스로 그 안에 빠져들도록 내버려두면, 그래서 온 몸이 쑥 빠져들어가 버리면, 그때는 온전하게 그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네. 고통이 뭔지 알게 되지. 사랑이 뭔지 알게 되네. 슬픔이 뭔지 알게 되네. 그럼 그때서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좋아. 난 지금껏 그 감정을 충분히 경험했어. 이젠 그 감정을 너무도 잘 알아. 그럼 이젠 잠시 그 감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군'이라고 말이야"

 

참된 영혼의 만족을 위한 대전제를 위해서 모리 선생님은 자신안에 찾아오는 부정적인 감정을들 극복하려하거나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그 감정이 자기를 온전히 꿰뚫고 지나가도록 허락하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그것을 벗어날 여유가 생긴다고 말이다.

 

사람은 이성보다 감성에 더 자극을 받고 더 큰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에게 더욱 위축되고 소심해 지는 것이다. 상처나 우울, 분노나 억압 같은 감정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품는 것을 배운다면 반드시 지나가게 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온몸으로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감정의 폭풍들을 껴안을때 역설적으로 그것을 극복할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모리 선생님이 가르쳐준 영혼의 만족과 행복을 위한 세 번째 법칙은 죽음을 분명히 의식하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접근하면 삶에 대해서 더욱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살게된다는 것이다. 모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래, 하지만 죽음에 대해 좀더 긍정적으로 접근해보자구. 죽으리란 걸 안다면, 언제든 죽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둘 수 있네. 그게 더 나아. 그렇게 되면, 사는 동안 자기 삶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살 수 있거든."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주는 참의미의 생산자이다. 죽음을 분명히 의식하면 두려움이나 절망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에 더욱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다. 죽음은 삶을 더욱 의미 있게하고 헛된것이 아니라 참된 것에 시간을 투자하게 하는 촉매제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참된 인생의 행복이란 영혼에 관한 것에 투자하는 것임을 배웠다. 그것은 세가지 인데 첫째는 사랑을 주고 받는 것. 둘째는 감정이 온전히 꿰뚫고 지나가게 하는 것. 그리고 셋째는 순간 순간 죽음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 교훈을 통해서 참으로 짧은 인생 가운데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되고 그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지혜가 생긴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참으로 지혜로운 멘토의 조언을 얻은 것 같다.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나의 시간과 열정을 투자해야 할지 배울 수 있었다. 이후로는 좀더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리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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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헛걸음하는 바람에 오늘 다시 카페꼼마로 갔다. 문학동네의 자본력이 있어 그런지

상당히 매력있는 카페였다. 원래 의도된 명칭은 '샬롱'이다. 샬롱은 프랑스 지식인들이

함께 모여서 문화와 역사, 정치등 학문에 대해서 토론하는 장소로 사용된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보다는 거대한 책장앞에서 함께 토론하기에

좋은 분위기였다. 모던하고 세련된 감각이지만 다소 경직된 분위기라고 할까...

 

7시 30분에 로쟈 이현우의 강연이 시작되는데 카페도 둘러보고 책도 구경할겸

일찍 갔다. 미리 와있는 사람도 꽤 있었다. 바로 그때 로쟈 이현우님이 들어왔다.

큰 키에 지적인 얼굴이였고, 강의 거의 1시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온 사람인지 아니면 그의 제자들인지는 몰라도 카페에 앉아서 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연이 시작되고 그의 전공인 러시아 문학, 특히 안나 카레니니에 대해서 강의했다.

전공자라 그런지 확실히 다각도로 볼수 있는 지식이 있었고,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다소 재미나게 강의를 진행하였다..청중들은 주로 여자들이였고

문학에 대해서 특히 작가 지망생들로 있는것 같았다.

 

로쟈는 소설을 다각도로 분석하였고 소설분석을 통해서 톨스토이의 인격과

생각을 재구성하였다. 역시 학자다운 날카로움이였다.

 

소설은 왜 읽는가..내가 질문하고 싶은 것인데,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게 하지 못했다.

가공의 이야기를 왜 읽는가...그에 대해서 답하기에는 로쟈의 강연이 쉽지만 분석적이여서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다.

 

날카롭고 다소 차가워보이며 시크해 보이는 로쟈 이현우의 좋은 강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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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1-2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해가 가기 전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싶은데 ㅋㅋ
로쟈의 강연 .. 저도 듣고 싶어요 흑흑 ~
이분 전공이 러시아문학이었군요 ^^ㅎㅎㅎ

불꽃나무 2012-11-29 18:36   좋아요 0 | URL
안나 카레니나 읽어봐야 하는데 로쟈의 이야기를 들으니 솔직히 그다지 읽고싶은 마음은 안생겼어요..ㅋㅋㅋㅋ 러시아 문학의...다소 장대함과 장황함..그리고 모호함이랄까..그런거요..ㅋㅋㅋㅋ

프레이야 2012-11-30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안나 카레니나 2권으로 들어간 저로선 듣고 싶은 강연이네요.
가까이서 했더라면 갔을 것도 같은데.. 소식도 몰랐긴 하지만요.^^
괜찮은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불꽃나무 2012-11-30 12:21   좋아요 0 | URL
이현우 선생님이 저는 시크(?)해보이더라구요 ㅎㅎ
강의도 깔끔하게 하시구..좋은시간이였어요^^
여기 카페꼼마도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였구요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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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이라는 이름은 어느 블로거의 리뷰를 통해서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공부>라는 책인데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그 책을 보았을 때 특별한 인상을 받을 수 없었다. 그 책을 대충 훑어보니 현시대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줄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서 엮어놓은 것 같았다. 문학동네에서 이 책의 독서 모니터요원으로 선정되어 받아 읽기 시작했다. 첫장부터 문장이 주는 감동과 내공이 만만치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런 것을 인문학이고, 인문적이라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어쩜 산티아고 길을 걷는 과정을 통해서 이다지도 풍부한 문장을 풀어낼 수 있는지 감동과 감탄을 연발하며 읽어내려갔다. 표지 사진의 인물을 보고 인터넷을 찾아서 정진홍 작가의 외모를 보니 탄탄하고 단단한 덩치와 깊은 목소리가 뭔가 울림을 주는듯했다. 새로운 읽어야할 인물 한사람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저자가 47일동안 순례자의 길이라고 일컬어지는 산티아고의 길을 900킬로미터는 걸으면서 그가 보고 느꼈던 감상을 적어내려간 기록이다. 그 기록이 단지 자신의 경험을 단순하게 풀어낸 것이 아니라 그의 깊은 인문적 내공이 어울어져 멋진 향기가 되어 깊고도 긴 여운을 마음속 깊이 번지게 하는 인문적 기행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미 중년의 안정을 누리고 있었던 사람이였다. 교수로 유명한 신문의 정기 기고자로 또 알려진 강연자로 그의 인생은 충분히 안정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의 삶의 모토가 안주는 안락사이다인데 그의 모토를 따라서 그는 결단을 내렸다. 무엇이 그렇게 자신을 그 길을 걷도록 내어 몰았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그는 언제나 구도자로서 무엇가 진실을 찾고자 하는 갈증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글을 읽어보면 그는 감성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는 자세히 풀어내지 않지만 자신의 삶의 응어리가 자신을 지금까지 달리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응어리를 아직 다 풀어내지 못해 몸부림치는 삶의 순례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으면서 그는 그때그때의 감상을 자세히 적어내려간다. 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상과 생각의 흐름을 포착하여 그의 인문적 지식과 어울어져 훌륭한 감동적 문장을 만들어간다. 그는 산티아고를 걷는 길을 어느 누구를 위함도 아닌, 사회의 인정받기 위함도 아닌 오직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사회를 살아가면서 덕지덕지 붙게되는 여러 가지 명함들, 그것들을 다 내려놓고 날것으로써의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기 위해 그는 길을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면서 울기도하고, 웃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 싸우기도 하면서 그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진짜 날것으로써의 자신을 직면하였다. 그렇다 진짜 잘 살기위해서는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인간은 많이 채워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많이 비워지지 않아서 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 그것도 홀로 오랫동안 걷는다는 것은 분명히 순례요 구도의 행위이며 그 행위를 통해서 삶의 신실을 자신의 진실을 깊이 대면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개인적인 에세이가 아니라 어떤 구도자의 종교적 행위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를 맞고 홀로 자면서 길에서 홀로 하늘과 별을 벗삼아 걸으면서 자신을 가다듬는 구도자의 행위같은거 말이다. 나도 그냥 걷고 싶어졌다. 저자가 걸었던 산티아고의 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현실에 묶어두고 있는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홀로 저자와 같은 길을 떠날 때 내안에 꿈틀거리는 참나의 모습과 마주치고 싶은 갈증말이다. 오래전부터 항상 내가 누구인지 궁금했고 그것을 알기 위해 분투해왔다. 왜냐하면 참으로 나를 알 때 참으로 나의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나지 않고서는 오히려 참나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수히도 많이 나를 엮어놓고 있는 현실의 날줄과 씨줄앞에 나의 모습은 감추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더 산티아고의 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커져갔다. 물론 당장은 아니더라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도 꼭 그 길을 걸으리라 다짐했다. 사람이 극한에 내몰릴 때 비본질적인 모든 것들이 벗어지고 가장 기본적이면서 본질적인 부분이 보이듯이 자연으로 나를 몰아낼 때 그 자연은 나를 둘러싼 비본질적인 것들은 걷어내고 가장 본질적인 것들만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저자가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짐들을 내려놓았듯이 나 또한 작가와 함께 무언가의 짐이 내려지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어머니, 아니 엄마의 퍽퍽했던 삶을 떠올리며 엄마엄마하고 울면서 길을 걸었다는 그 대목에서 나 또한 돌아가신 어머니, 아니 엄마의 삶이 떠올랐고 엄마의 퍽퍽했던 삶, 자식을 위해 희생했던 삶,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버팀목이 되었던 나의 엄마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저자가 혼자서 히죽이죽 웃을 때 나도 히죽이죽 웃으며 혼자말을 하기도 했다. 저자의 문장에 진실의 힘이 있었고 함께 공명할 수 있도록하는 어떤 경건한 힘마저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나의 모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잠깐동안이라도 떠나는 것 가장 필요한 짐만을 싸고 떠나는 것, 그리고 홀로 구도의 걸음을 내딛으면서 가장 자연스러운 나와 공명하며 참된 진실에 근접하는 것, 이것이 이 책에 나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길을 걸으면서 그것을 구도적인 행위로 승화시킨 것 같이 저자도 걷는다는 매우 단순하고 평범한 행위를 통해서 인생과 삶과 자아를 밑바닥에서부터 진실을 건져내는 구도의 행위로 승화시킨 것 같았다.

 

분명 받은 감동이 크고 할말이 많은데 자꾸만 안으로 맴돈다. 정리가 되어서 글로 나오지 않는 느낌이다. 가슴으로 읽어서일까, 내면으로 받아서일까, 머리가 움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져 깊고 깊은 여운으로 나의 가장 깊은 곳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진정한 울림은 말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해지는 법. 비록 이 책에서 받은 깊은 감동을 다 전하지 못했지만 그가 준 감동이 작은 여운으로 퍼져갔으면 좋겠다. 올해 읽을 책중에 가장 감동있고 내면을 충만하게 하는 그리고 깊고 울림있는 문장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이였던 것 같다. 자신의 내면에 충실히 따라가는 저자의 깊은 인문적 성향, 그리고 깊은 인문적 지식, 그리고 내면의 울림을 깊고 풍부하게 전해주는 문학적 향기가 모두 갖추어진 멋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정진홍이라는 이름을 다시 찾아봐야 겠다.

 

그 길은 진정으로 나 되기 위해 걷는 길이다. 그러니 빨리 걷는 길이기보다 느리게 걷는 길이고 여럿이 더불어 걷는 길이기보다 홀로 고독하게 걷는 길이다. 물론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고독하지만 쓸쓸하지 않게 말이다. 그래서 걸을수록 비워지고 걸을수록 채워지는 묘한 길이다.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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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1-2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추천 ~ ^^

불꽃나무 2012-11-29 18:37   좋아요 0 | URL
무조건 땡큐 ㅋㅋ
 

정말 오랜만에 연극을 보았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한 연극이였는데

어쩜 그리도 연기를 잘하는지..보는 내내 웃다가 감동하다가..

그리고 배우들이 어쩜 그리도 선남선녀인지..정말 너무너무 멋쩠다.

 

여주인공으로 나온 조영주씨 너무 이쁘더라..얼굴이 정말 조막만하고

팔다리는 길어서 비현실적인 캐릭터 같더라..

정말 최고의 공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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