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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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이라는 이름은 어느 블로거의 리뷰를 통해서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공부>라는 책인데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그 책을 보았을 때 특별한 인상을 받을 수 없었다. 그 책을 대충 훑어보니 현시대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줄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서 엮어놓은 것 같았다. 문학동네에서 이 책의 독서 모니터요원으로 선정되어 받아 읽기 시작했다. 첫장부터 문장이 주는 감동과 내공이 만만치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런 것을 인문학이고, 인문적이라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어쩜 산티아고 길을 걷는 과정을 통해서 이다지도 풍부한 문장을 풀어낼 수 있는지 감동과 감탄을 연발하며 읽어내려갔다. 표지 사진의 인물을 보고 인터넷을 찾아서 정진홍 작가의 외모를 보니 탄탄하고 단단한 덩치와 깊은 목소리가 뭔가 울림을 주는듯했다. 새로운 읽어야할 인물 한사람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저자가 47일동안 순례자의 길이라고 일컬어지는 산티아고의 길을 900킬로미터는 걸으면서 그가 보고 느꼈던 감상을 적어내려간 기록이다. 그 기록이 단지 자신의 경험을 단순하게 풀어낸 것이 아니라 그의 깊은 인문적 내공이 어울어져 멋진 향기가 되어 깊고도 긴 여운을 마음속 깊이 번지게 하는 인문적 기행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미 중년의 안정을 누리고 있었던 사람이였다. 교수로 유명한 신문의 정기 기고자로 또 알려진 강연자로 그의 인생은 충분히 안정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의 삶의 모토가 안주는 안락사이다인데 그의 모토를 따라서 그는 결단을 내렸다. 무엇이 그렇게 자신을 그 길을 걷도록 내어 몰았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그는 언제나 구도자로서 무엇가 진실을 찾고자 하는 갈증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글을 읽어보면 그는 감성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는 자세히 풀어내지 않지만 자신의 삶의 응어리가 자신을 지금까지 달리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응어리를 아직 다 풀어내지 못해 몸부림치는 삶의 순례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으면서 그는 그때그때의 감상을 자세히 적어내려간다. 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상과 생각의 흐름을 포착하여 그의 인문적 지식과 어울어져 훌륭한 감동적 문장을 만들어간다. 그는 산티아고를 걷는 길을 어느 누구를 위함도 아닌, 사회의 인정받기 위함도 아닌 오직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사회를 살아가면서 덕지덕지 붙게되는 여러 가지 명함들, 그것들을 다 내려놓고 날것으로써의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기 위해 그는 길을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면서 울기도하고, 웃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 싸우기도 하면서 그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진짜 날것으로써의 자신을 직면하였다. 그렇다 진짜 잘 살기위해서는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인간은 많이 채워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많이 비워지지 않아서 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 그것도 홀로 오랫동안 걷는다는 것은 분명히 순례요 구도의 행위이며 그 행위를 통해서 삶의 신실을 자신의 진실을 깊이 대면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개인적인 에세이가 아니라 어떤 구도자의 종교적 행위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를 맞고 홀로 자면서 길에서 홀로 하늘과 별을 벗삼아 걸으면서 자신을 가다듬는 구도자의 행위같은거 말이다. 나도 그냥 걷고 싶어졌다. 저자가 걸었던 산티아고의 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현실에 묶어두고 있는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홀로 저자와 같은 길을 떠날 때 내안에 꿈틀거리는 참나의 모습과 마주치고 싶은 갈증말이다. 오래전부터 항상 내가 누구인지 궁금했고 그것을 알기 위해 분투해왔다. 왜냐하면 참으로 나를 알 때 참으로 나의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나지 않고서는 오히려 참나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수히도 많이 나를 엮어놓고 있는 현실의 날줄과 씨줄앞에 나의 모습은 감추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더 산티아고의 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커져갔다. 물론 당장은 아니더라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도 꼭 그 길을 걸으리라 다짐했다. 사람이 극한에 내몰릴 때 비본질적인 모든 것들이 벗어지고 가장 기본적이면서 본질적인 부분이 보이듯이 자연으로 나를 몰아낼 때 그 자연은 나를 둘러싼 비본질적인 것들은 걷어내고 가장 본질적인 것들만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저자가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짐들을 내려놓았듯이 나 또한 작가와 함께 무언가의 짐이 내려지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어머니, 아니 엄마의 퍽퍽했던 삶을 떠올리며 엄마엄마하고 울면서 길을 걸었다는 그 대목에서 나 또한 돌아가신 어머니, 아니 엄마의 삶이 떠올랐고 엄마의 퍽퍽했던 삶, 자식을 위해 희생했던 삶,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버팀목이 되었던 나의 엄마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저자가 혼자서 히죽이죽 웃을 때 나도 히죽이죽 웃으며 혼자말을 하기도 했다. 저자의 문장에 진실의 힘이 있었고 함께 공명할 수 있도록하는 어떤 경건한 힘마저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나의 모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잠깐동안이라도 떠나는 것 가장 필요한 짐만을 싸고 떠나는 것, 그리고 홀로 구도의 걸음을 내딛으면서 가장 자연스러운 나와 공명하며 참된 진실에 근접하는 것, 이것이 이 책에 나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길을 걸으면서 그것을 구도적인 행위로 승화시킨 것 같이 저자도 걷는다는 매우 단순하고 평범한 행위를 통해서 인생과 삶과 자아를 밑바닥에서부터 진실을 건져내는 구도의 행위로 승화시킨 것 같았다.

 

분명 받은 감동이 크고 할말이 많은데 자꾸만 안으로 맴돈다. 정리가 되어서 글로 나오지 않는 느낌이다. 가슴으로 읽어서일까, 내면으로 받아서일까, 머리가 움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져 깊고 깊은 여운으로 나의 가장 깊은 곳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진정한 울림은 말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해지는 법. 비록 이 책에서 받은 깊은 감동을 다 전하지 못했지만 그가 준 감동이 작은 여운으로 퍼져갔으면 좋겠다. 올해 읽을 책중에 가장 감동있고 내면을 충만하게 하는 그리고 깊고 울림있는 문장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이였던 것 같다. 자신의 내면에 충실히 따라가는 저자의 깊은 인문적 성향, 그리고 깊은 인문적 지식, 그리고 내면의 울림을 깊고 풍부하게 전해주는 문학적 향기가 모두 갖추어진 멋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정진홍이라는 이름을 다시 찾아봐야 겠다.

 

그 길은 진정으로 나 되기 위해 걷는 길이다. 그러니 빨리 걷는 길이기보다 느리게 걷는 길이고 여럿이 더불어 걷는 길이기보다 홀로 고독하게 걷는 길이다. 물론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고독하지만 쓸쓸하지 않게 말이다. 그래서 걸을수록 비워지고 걸을수록 채워지는 묘한 길이다.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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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1-2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추천 ~ ^^

불꽃나무 2012-11-29 18:37   좋아요 0 | URL
무조건 땡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