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단처럼 검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3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강렬하고 짜릿하게 재탄생한 백설공주 [흑단처럼 검다]

 

 

 

북유럽에서 구전되어 세계로 퍼져나간 <백설공주> 이야기가 핀란드 작가에 의해 멋지게 재탄생했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시리즈 1,2,3 권이 그것인데,

[피처럼 붉다], [눈처럼 희다]에 이어 마지막 3권 [흑단처럼 검다]까지 총 세권으로 완결되었다.

눈처럼 새하얀 살결, 흑단처럼 검은 머리, 그리고 피처럼 붉은 입술의 백설공주가 현대에서는 독립적이고 강단 있으며 호기심 많은 '영웅'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년 12월 1권이 나온 이래 계속해서 기다린 보람이 있다.

1권의 내용이 가물가물해졌으면 어떡하나, 다시 1권을 읽고 시작해야 하나하는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2,3권에서는 앞의 내용이 짧게 요약되어 나와 생생한 기억을 되살린다.

시리즈물이 대세인 일본의 만화같은 데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인물이나 상황, 주요 문장 등을 짧고 간략하게 브리핑하듯이 초반에 다시 띄워주는 것 말이다. ^^

어쨌든 그 덕분에 1권의 내용을 무리 없이 되살릴 수 있었고,

기대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던 주인공 '루미키'가 게임을 리셋하자마자 튀어나오는 주인공처럼

종이를 찢고 툭, 튀어 나왔다.

 

2권에서 프라하로 여행을 떠났던 루미키는 듣도 보도 못한 여자가 "언니"라며 다가온 일을 계기로 집단 자살을 시도하는 컬트 종교 집단 일에 엮이고 말았다. 그 일은 최대의 불상사를 막으며 처리되었고, '언니'라던 젤렌카도 혈연관계가 아님이 밝혀졌다. 하지만 루미키의 기억 속 '언니'에 관한 봉인이 해제되면서 3권은 시작된다.

 

루미키는 학교에서 공연하는 연극 <검은 사과>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된다. 동명의 주인공 "백설공주"는 그러나 완전히 재해석된 이야기로 페미니즘적 메시지가 함축된 작품이지만 강렬하고 충격적이다. 작품 속 백설공주는 왕자와 결혼한 뒤 왕비가 되어 황금의 성에 가서 자유를 뺏긴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사냥꾼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날카로운 은빗으로 왕자를 찔러 죽인 후 어둠과 그림자와 짐승들이 기다리는 숲으로 돌아간다는 줄거리다. 고결하고 도덕적인 인물들이 나오지 않는, 완전 새로운 백설공주의 탄생. 독자로서 새로운 백설공주에 너무나 몰입한 루미키가 위험스러워 보인다는 판단이 설 때쯤, 루미키에게 스토커의 편지가 날아든다.

편지는 루미키가 애써 기억해내려 하는 언니에 관한 기억 속  죄책감과 붉은 피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루미키를 조종한다.

성정체성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루미키에게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버렸던 연인 블레이즈와 새 연인 삼프사 사이의 삼각대결도 루미키의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데...

스토커의 편지 속 단서들로 찾아낸 열쇠는 루미키를 나무 상자에게로 이끌었고, 그 속에는 회색 눈을 가진 금발 소녀, 로사의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루미키의 손에 묻어 있는 진득한 피의 기억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로사는 어째서 루미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것일까?

그것보다, 루미키를 언제 어디서든 감시하는 스토커는 누구이며 왜 루미키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일까?

 

모든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루미키는 누구의 손도 기꺼이 잡지 않았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끝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루미키가 출연한 연극 <검은 사과>의 백설공주가 모든 것을 뿌리치고 숲으로 기꺼이 돌아갔듯,

현실의 루미키 또한 의지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연인에게 기대지 않은 것이다.

마침내 도달해야 하는 것은 "나"라는 자아 찾기.

크고 작은 충돌은 루미키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루미키가 간직한 원석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백설공주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판에 박힌 듯한 나레이션으로 끝나지 않았기에, 루미키가 찾은 자유는 "진짜"라는 느낌이 강력하게 전해진다.

 

흥미진진한 사건은 그냐말로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강하게 독자를 밀어붙인다.

술술술 책장을 넘기자, 그대로 사건 종결!

머릿속에 남는 것은, 왕관을 쓰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왕자의 품에 안겨 있는 백설공주가 아니라

위험한 분위기가 감도는 허름하면서도 검은 옷을 입고 강렬한 눈빛을 내뿜으며 앞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검은 숲으로 터벅터벅 걸어들어가는 루미키의 모습이다.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고, 아무도 옆에 끼지 않은 자유롭고 당당한 걸음의 루미키 !

다만, 흑단처럼 검은 머리와 새하얀 피부, 핏빛같은 붉은 입술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백설공주에 대한 단 하나의 로망은 남겨두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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