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봄이 시작되자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좋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철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 분야의 주목할만한 책 세 권과 사회과학 분야의 책 두 권을 뽑아봤다. 물론 이 책들 말고도 좋은 책들이 더 있는데, 다음 주쯤에 한번 더 소개해볼 생각이다. 



1. 철학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들


먼저 이탈리아의 떠오르는 젊은 철학자 로렌초 키에자(Lorenzo Chiesa)의 저작이 단행본으로선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이미 계간 <자음과모음> 2008년 겨울호에 실린 "조르조 아감벤의 프란체스코파적 존재론"(http://story.aladin.co.kr/m/chiesa)이라는 글을 통해서 그의 사유의 단면이 소개되었고, 그보다 조금 전인 2008년 10월에 중앙대 대학원 신문을 통해 도서출판 난장을 이끌고 있는 이재원씨(<주체성과 타자성>의 발행인이기도 한)의 번역으로 "에스포지토, 아감벤과 네그리를 넘어서"라는 짧은 글이 소개된 바 있다(http://www.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15248). 


사실 두 글 모두에서 키에자는 자신의 사유와 논리를 본격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그의 선배격으로서 현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저명한 철학자들인 조르조 아감벤과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의 작업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고유한 자신만의 문제의식으로 라캉을 해석한 책인 <주체성과 타자성>이 우리에게 도착했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라캉은 정신분석학을 종종 "주체성의 과학" 혹은 "주체에 관한 과학"으로 이해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먼저 소개된 라캉 정신분석학의 철학적 측면에 관해 다루고 있는 여러 책들(예컨대, 브루스 핑크의 <라캉의 주체> 같은)과 함께 읽으면서 라캉이 말하는 주체가 무엇인지를  탐구해보면 유익할 듯. 

"라캉적 주체는, 순수하게 부정적인 계기의 떠맡음과 극복을 전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여하는 주체나 불가능성의 주체가 아니라 주체화된 결여이다." (24쪽)


 

현존하는 최고의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알랭 바디우가 말했다. "진정한 철학자는 그 자신의 고유한 근거에 의하여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새로운 문제를 제안하는 사람이다. 철학은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새로운 문제를 발명하는 것."(http://blog.naver.com/paxwonik/40121714947) 바디우만큼이나 유명하고 논쟁적인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도 비슷한 말을 했다.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573)


아마도 고대 이래로 철학의 역사에서 철학자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문제를 제안하고 발명하기 위해 즐겨 사용했던 것이 바로 아포리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이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언, “오컴의 면도날”과 같은 철학 명제들은 시대를 뛰어넘는 지성의 산물이자 철학사의 가장 대표적인 아포리즘이다. 물론 현대철학자들 가운데서도 화이트헤드의 "과정이 곧 실재다"나 데리다의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 레비나스의 "윤리학이 존재론에 선행한다" 같은 아포리즘들을 통해 우리는 그 철학자들이 평생에 걸쳐 쌓아올린 사유의 세계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책은 아포리즘을 통해 철학사를 조명하는 신선한 접근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프랑스 현상학자 중 가장 근본적인 삶의 현상학자라고 불리는 미셸 앙리 서거 10주년을 기념하여 국내에 처음 소개된 책이다.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 그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 현상 그 자체를 특권적으로 다루는 철학이다. 오직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의 생생한 의미가 현상학이 문제로 삼는 핵심적인 주제인 것이다. 그런데 앙리는 이 문제를 좀 더 근본적으로 파고든다. 

"현상학의 질문, 이것만이 철학에 고유한 대상을 부여할 수 있으며, 이것만이 철학을 다른 과학이 발견한 것들에 대한 사후작용으로서 반성의 활동이 아니라 자율적인 원리, 즉 지식의 근본적인 원리로 만들 수 있다. 이 질문은 이제 현상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이 주어지는 방식, 즉 그들의 현상성과 관계한다. 다시 말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타남 그 자체와 관계한다. ... 이것이 바로 현상학의 주제이다." (10쪽) 

한편, 앙리는 가장 내가 알기로 그는 프랑스 현상학의 신학적 전회를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말년에 남긴 책 세 권은 모두 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의 책이 드디어 소개되었는데, 이제 앙리의 책 출간을 계기로 프랑스 현상학계에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일군의 현상학자들의 신학적 전회(theological turn) 경향에 관한 연구서들도 번역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2. 사회과학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들

사실 이 책의 제목보다 부제가 더 인상적이었다.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들이 만드는 현실 속 유토피아"라니?! 원서의 제목과 부제가 "What The Least Religious Nations Can Tell Us About Contentment"(최소한의 종교적 국가들이 미국에게 평안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인 걸 보면, 부제는 출판사에서 바꾼 것 같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복지국가 담론이 최대의 정치적/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다보니 북유럽 복지국가들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기존의 북유럽 복지국가들(노르딕 또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로도 불리우는)을 다루는 책들과는 확실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바로 그들의 '종교적'(또는 세속화된) 삶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보장제도나 정치체제, 경제적 성공, 연대에 평등성의 사회문화를 다루는 책들은 많이 소개되었지만,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종교적 삶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한 연구가 소개되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유토피아라고 하는 것이 제도나 구조의 선진성만 가지고는 말하기 곤란이 측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 종교적 삶이 없이도, 즉 신이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도 비교적 정의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유토피아가 아니겠는가. 어쩌면 독일의 행동하는 신학자 본회퍼가 말한 "신 없이 신 앞에"라는 말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북유럽의 선진화된 복지국가들이 왜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새로운 각도에서 보여준다. 


작년에 국내에도 소개된 <분노하라>로 유명한 94세의 레지스탕스 노투사 스테판 에셀. 바로 뒤이어서 출간한 것이 바로 이 책 <지금 일어나 어디로 향할 것인가>라고 하는 정책 제안서라고 한다. 문제제기를 통해 저항과 비판의식을 촉발시킨 후에, 이제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다루는 정책 제안서라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현명한 운동가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정치의 본령은 이념과 구호가 아니라 정책임을 밝힌다. 그리고 전 지구적 관점에서 인류가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물론 이념과 구호가 없는 정책은 항로를 잃어버린 배와 같을 것이다. 대안적인 정책 및 프로그램의 구상과 그 실천은 그것이 애초에 지향했던 이념이나 가치와 괴리되어선 곤란하다. 


그러나 이념이나 가치가 그 자체만 가지고는 역사적인 현실관계들의 영역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의 현실에 분노할 수 있고 개혁이든 혁명이든 현실을 바꾸기를 꿈꿀 수 있는 것도 결국 이념과 가치의 힘이다. 어차피 이념과 정책, 구호와 프로그램, 이론과 실천, 추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좁혀질 수 없다. 그렇다고 둘을 결합시키기 위한 노력 자체를 포기하는 것도 최선은 아니다. 어차피 발생할 수밖에 없는 둘 간의 긴장을 유지하되, 우리는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둘의 결합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념이 담긴 정책, 정책을 통해 현실화된 이념으로 말이다. 

"이제 성장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편을 가르고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의 리스트를 작성할 때가 되었다."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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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집단 CAIROS 정치신학세미나 시즌2

현실 유토피아 연구_복지국가로 복지국가 넘기


* 세미나의 기본 취지


지난 겨울부터 봄까지 진행되었던 연구집단 CAIROS의 정치신학세미나 시즌1을 다시 이어가는 정치신학세미나 시즌2를 5월 23일(수)부터 시작합니다. 이번 시즌2에서는 "현실 유토피아 연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자본주의의 대안에 관한 새로운 전망, 새로운 사고방식의 일환으로 모색되고 있는 국가 및 사회체제들을 심도있게 공부해보고자 합니다. 


자본주의의 대안에 관한 모색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위시하여 그와 연관된 여러 급진적 이념과 운동, 이론들에서 제기되어 왔지만, 우리가 이 세미나에서 현실의 잠정적 유토피아를 향한 탐구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일단 마르크스주의는 아닙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를 빼놓고선 현대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사회를 말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세미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이론과 실천들을 자주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그것, 모두가 다 아는 것 같지만, 막상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그것, 바로 '복지국가'를 출발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와 2010년 6월 지방선거, 그리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로부터 이어진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2년 4월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거쳐, 이제 연말의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지난 2~3년 동안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전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최대의 이슈가 다름아닌 ‘복지국가’입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복지국가 논쟁은 “인간이 가슴에 품은 가치와 이상이 충만하게 실현되는 사회에 대한 꿈과 상상력”(틸리히)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결국 '현실'로부터 생겨나고 '현실'에 발딛고 있지만, 어떻게든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열망의 징후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멀리 가지 않고 복지국가에서부터 시작하여, 궁극적으론 복지국가를 넘어선 '더 나은 세계'의 전망을 함께 탐구해보려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진지한 고민과 대화를 함께 나눌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 상세한 세미나 일정


제1막: 복지국가의 역사_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형성사를 중심으로 

제1막에서는 19-20세기 유럽의 다양한 복지국가 모델의 형성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물론 복지국가 형성의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다루어야 할 이념이 있으니, 바로 사회민주주의입니다. 갈등이론적 사회학을 대표하는 독일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는 "20세기는 사회민주주의의 세기"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과연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규명해보는 것이 제1막의 목표입니다.  


세미나 텍스트















* 이 주제와 관련하여 위의 책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입니다.





























제2막: 복지국가의 현재와 미래_복지국가 위기론과 대안론을 중심으로

1980년대부터 대두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및 세계경제의 통합, 탈산업화의 구조적 변화 등으로 인해 현대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들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제2막에서는 먼저 현재 유럽의 선진화된 복지국가들이 처한 위기와 변화의 조건들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복지국가 위기의 해결책으로, 혹은 복지국가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어떤 것들이 제시되고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세미나 텍스트















* 이 주제와 관련하여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입니다.
















제3막: 한국 복지국가체제 논쟁과 전망_복지정치, 경제민주화, 좌판적 비판을 중심으로

세계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복지국가의 전환은 한국의 복지제도 형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제3막에서는 대중들 사이에서 복지국가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시작된 학계의 복지국가체제 논쟁부터, 정치적 이슈로 부상한 이후 전개되고 있는 좌파진영의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들, 그리고 학계와 저널리즘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국적 복지국가 수립의 과제들을 탐구합니다.


세미나 텍스트 (세미나에선 중요한 글들만 선별하여 읽습니다)














관련 참고도서(부분적으로 세미나에서 중간중간 같이 살펴볼 예정입니다)
















제4막: 다시 정치로, 다시 민주주의로

복지국가를 향한 연구와 운동은 정치 혹은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복지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할 때 학자들마다 계급정치, 노동정치, 정당정치, 시민사회, 경제민주화 등으로 답변이 갈리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은 민주주의의 내용과 범위, 주체와 조건, 이상과 절차 등에 대한 질문으로 수렴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긴 여정을 거쳐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적 정치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세미나 텍스트
















관련 참고도서(역시 부분적으로 세미나에서 중간중간 같이 살펴볼 예정입니다)















세미나 일정(읽을 텍스트나 시간, 진행 방식 등)은 상황에 따라 조정될 수 있습니다.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참조할 만한 뉴스기사, 칼럼, 보고서, 학술논문, 강연자료 등을 멤버들 간에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가능하면 복지국가 관련 학술행사도 함께 참석할 계획입니다.  


5월 23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6시에 연구집단 카이로스의 새 연구실(숙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용산중고등학교 근처)에서 진행합니다. 


세미나 참가비는 월 1만원입니다(발제문 및 참고자료 복사와 간식비, 뒷풀이비 등으로 사용 예정).


세미나 관련한 자세한 문의는 dawid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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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구미정 외 지음 / 자리(내일을 여는 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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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신학과 성서해석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한국교회를 위해 꼭 필요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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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
구미정 외 지음 / 자리(내일을 여는 책) / 2012년 4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2년 08월 18일에 저장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위기의 지구화 시대 청(소)년이 사는 법
백소영.엄기호 외 지음 / 이파르 / 2011년 6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2년 08월 18일에 저장
절판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지음 / 산책자 / 2009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12년 08월 18일에 저장
절판

촛불과 광장, 정치와 종교
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엮음 / 동연출판사 / 2009년 1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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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철학 - 이야기는 무엇을 기록하는가
노에 게이치 지음, 김영주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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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보는 안병무의 ‘이야기구원론’

 

일찍이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예수사건의 전승모체」(1984. 10)에서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전승주체와는 달리 (현존하는 마르코복음의 원자료가 되는) 예수사건전승의 모체(母體)가 오클로스(οχλος) 곧 민중이며, 이들이 사용한 전달의 방식은 변증이나 논증의 언어가 아닌, 이야기 곧 유언비어의 형태였다는 놀라운 가설을 제기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안병무의 논의의 출발점에는 마르코복음이라고 하는 텍스트가 글이 된 것은 어느 작가(혹은 공동체)의 창작물이거나 독자적인 기록물이 아니라, 이미 민중들 가운데서 오랜 기간 구전(口傳)되던 민중의 이야기가 채록된, 이른바 ‘구술문학(oral literature)적 텍스트’라고 보는 견해가 확고하게 존재한다. 그런데 1960년대 초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에게 영향을 받은 미디어 생태주의자 월터 옹(Walter J. Ong)이 성서텍스트의 구술성에 대해 주목할 만한 논지를 편 이후, 서구 신약학계에서는 베르너 켈버(Werner Kelber), 조안나 듀이(Joanna Dewey), 데이빗 로즈(David Rhoads), 피터 보싸(Pieter Botha), 크리스토퍼 브라이언(Christopher Bryan) 등이 1980-90년대에 마르코복음의 구술성과 기술성에 관한 중요한 연구들을 제출하였다.[각주:1]

마르코복음이 독자(reading audience)가 아니라 청중(listening audience)을 위해 쓰인 텍스트, 즉 글을 읽을 줄 아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예를 들어 시장 바닥이나 저녁 모임, 혹은 회당 모임 자리)에서 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낭독하기 위하여 만든 구술문학의 일종으로서, 현장에서 연행을 통해 드러나는 시학적 요소들을 강하게 담지하고 있는 텍스트라는 주장은 현재 신약학계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클로스를 통해 마르코에게 전승된 예수전승의 형식적 특징이 이야기체 더 정확히 말해 유언비어였다는 안병무의 통찰이 갖는 중요한 함의는 예수 사후에 민중들에게 나타난 하느님의 구원 사건의 실질적인 중심에는 하느님/예수의 초월적인 역사하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의 오클로스들이 그들 당대의 고난 속에서 과거 예수와 함께 경험했던 사건과 그의 말씀들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데서 찾아진다. 이를 ‘이야기구원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를 통한 구원사건의 추체험(追體驗)은 민중이 예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그때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안병무가 제시한 마르코복음의 이야기구원론은 ‘예수사건은 후대에 어떻게 역사화되었는가’ 나아가 ‘성서는 어떻게 쓰여졌는가’라는 신학적·역사학적 질문에 대한 훌륭한 답변이 된다. 안병무는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사건에 관한 역사적 보고들을 절대불변의 객관적인 것이 아니며, 오클로스를 위시한 원시그리스도교운동의 지지자들이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라는 무수한 시선의 복합체, 즉 ‘이야기의 집성’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구원사건의 이야기론에는 이미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기초로 성립된 종래의 서구 근대 역사비평학의 인식론적 한계를 뛰어넘는 이른바 ‘이야기로서의 역사’, 혹은 ‘역사로서의 이야기론’이 내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병무는 현존하는 마르코복음의 텍스트 안에서 예수 말의 주된 청중이자, 기적의 목격자 또는 수혜자이며, 나아가 하느님나라 선포의 수혜자로 그려지는 그 무명의 사람들 곧 오클로스들이 최초 예수사건의 담지자이자 마르코복음의 저자에게 예수사건을 전승한 전달자이며, 마르코적인 해석자였다는 주장을 통해 복음서에 관한 새로운 역사학을 썼다. 마르코복음서의 예수 전승이 유언비어의 형식을 띠고 있었으리라는 그의 통찰이 갖는 문제의식의 핵심은 전승의 내용과 성격이 전승집단의 정치적 조건 및 실존적 상황을 강하게 반영하여 재구성된 기억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1980년 광주’의 기억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는지를 보면서 안병무는 유언비어라는 예수 이야기의 전승을 착안했던 것인데, 이와 유사하게 예수 수난사 전승 속에는 예수 사후에 예수의 민중들이 경험했던 당대의 실존적인 상황이 반영되어 예수의 수난에 대한 공감적 기억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평화적인 갈릴래아 시대에도 예수는 활동의 초창기부터 적대자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서술된 것(마르코 3, 6)은 저들의 실존적 상황을 노출한 것이며, 바로 그런 상황의 유사성이 저들에게 큰 공감을 일으켰고 위로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의 수난이야기는 유언비어로 활성화될 수 있었다.

이렇게 예수의 민중들이 예수를 공감적으로 기억했다는 것은, 그 기억의 내용 안에 ‘기억되는 예수’만 있는 게 아니라, ‘기억하는 이들의 현재 삶’이 들어 있다는 것으로서, 기억은 기억하는 이와 기억되는 이의 소통의 결과가 되는 셈이다. 기억하는 이들이 오클로스이고 이들의 공감 아래서 유언비어 형식으로 마르코복음의 저자에게로 예수 이야기가 전달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 사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계층적·민족적 좌절의 구조와 그것을 탈출하려는 계층적·민족주의적 욕망과 꿈이 예수를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각주:2]
 


2. 안병무와 더불어 노에 게이치를! 


이상에서 검토한 대로 「예수사건의 전승모체」를 통해 드러난 안병무의 ‘이야기구원론’ 및 ‘이야기역사론’을 관통하는 핵심에 ‘이야기’의 개념이 존재한다. 주지하다시피 ‘이야기’라고 하는 개념은 안병무 뿐만이 아니라 서남동이나 김용복 같은 다른 민중신학자들에게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이다.[각주:3]

민중신학의 이야기 개념을 다듬어 나가는 데 참조할만한 유용한 책이 최근에 번역 출간되었다. 일본의 저명한 과학철학자 노에 게이치가 쓴 『이야기의 철학』이 그것인데, 이 책은 과학철학을 중심으로 언어철학, 현상학, 해석학, 역사철학 등의 광범위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이른바 ‘이야기로서의 역사’ 혹은 ‘역사로서의 이야기론’를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인간을 ‘이야기하는 동물’ 또는 ‘이야기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인간의 ‘이야기하기’ 행위가 멈추지 않는 한, 역사에는 ‘완결’도 ‘종언’도 있을 수 없다라고 하는 수정된 역사철학의 명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발표한 「역사는 끝났는가」(『내셔널 인터레스트』, 1989)라는 논문을 출발점으로 하여, ‘역사의 종언’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졌었다. 이 논문에서 후쿠야마는 ‘대문자의 역사History’는 종언됐다고 선언한다. 지금까지는 기원과 텔로스를 갖는 역사관이 지배해왔다. 그리스도교적 사상에 근거해 천지창조에서 구원의 완성까지를 그린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나라’와 헤겔에 이르기까지, 시작과 끝을 갖는 유럽적 역사철학이 주도해왔던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렇게 ‘대문자의 역사’의 허구성이 밝혀진 지금, 역사는 무엇인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답변을 역사기술에서 ‘이야기의 복권’을 촉구하는 데서 찾고 있다. 대문자의 ‘역사’가 종언을 고한 이후 ‘기원과 텔로스의 부재’라는 황량 장소에 서 있는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이야기하기’라고 하는 언어행위를 통해 역사를 내재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와 이야기는 결코 대립하는 관계에 있지 않다. 역사적인 기억 없이는, 즉 이야기되거나 쓰여진 기억 없이는 실재적 역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13). ‘이야기하다’ 또는 ‘쓰다’라는 인간적 행위에 의해 비로소 실재적 역사가 성립한다. 그 ‘이야기하다’라는 행위를 ‘이야기행위’라고 부른다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이야기행위를 통해 인간적 시간 속으로 포함되어 역사적 사건으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알렉상드르 코제브(Alexandre Kojeve)의 “‘역사’는 인간의 기억에 근거해서 이야기되는 내용 속에서만 존재한다”라고 하는 『헤겔 독해 입문』(Introduction to the Reading of Hegel)의 한 문장을 실마리로 삼아 논의를 펼쳐나간다.

저자가 제기하는 이야기의 역사론 혹은 역사로서의 이야기론이 안병무의 예수역사학에 던져주는 해석의 빛을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과거의 사건이나 사실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기’를 통해 해석학적으로 재구성된 것이다(역사의 반(反)실재론). 역사과정의 한복판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의 시점으로부터는, 기억을 통해 ‘세계를 지금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이외의 방법이 없다. 해석학적 재구성 이전의 조작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과거 즉 초월적인 ‘과거자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망상이다. 기독교신학에서 이러한 초월적인 과거자체의 자리에 놓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양식사비평이 발견해낸 케리그마일 것이다. 케리그마는 공관복음의 모든 예수 기억을 케리그마의 시각에서 처리해버림으로써 예수사건의 역사성을 탈각시켜버렸다. 태초에 케리그마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태초에 예수사건이 있었다고 하는 안병무의 유명한 테제를 떠올려보라.

둘째, 역사적 사건(Geschichte)과 역사서술(Historie)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전자는 후자의 문맥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역사의 현상주의). 역사는 사건임과 동시에 역사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인데, 결국 역사적인 이야기는 실제의 역사적 행위나 사건과 동시에 나타나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경험적 공감에 의해 예수에 대한 기억이 재구성될 수 있었다고 하는 안병무의 마르코복음 형성론에 이미 이러한 역사의 현상주의가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셋째, 역사서술은 기억의 ‘공동화’와 ‘구조화’를 실현하는 언어적 제작(Poiesis)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결국 ‘인간은 과거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로 바꿀 수 있을 텐데, 마르코복음 연구를 통해 안병무 역시 역사란 결국 ‘기억하는 것’(상기)에 다름 아님을 갈파했다고 볼 수 있다. 노에 게이치의 주장대로, 과거는 ‘상기(想起)’라는 경험양식을 떠나서 독립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상기는 단순히 과거를 한 번 더 지각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경험 네트워크 속에서 다른 경험들과 결합되고 구조화, 공동화되어 기억된다. 기억되고 상기되는 것은, 정확하게 재현된 과거가 아니라 해석학적 변형과 해석학적 재구성이 이루어진 과거인 것이다.

넷째,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것은 축적된다.” 다시 말해 과거는 기억되어 현재 경험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습관이 되어 현재의 행동을 제약하고 가능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역사는 언제나 미완결이며, 어떠한 역사서술도 개정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역사의 전체론).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역사의 수행론(Pragmatics)). 역사적 사건과 역사서술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 통일성이 우리의 언어행위로 뒷받침되고 있다면, 역사인식에 있어 우리가 ‘이야기’의 외부에 위치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외부로 나아간다는 것은 곧 시간의 영역 밖에 위치하는 것으로, 그것은 신과 같은 ‘초월적인 시선’에 위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결국 이것은 민(民)의 이야기에 의해 쓰여진 역사는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대로 노에 게이치의 『이야기의 철학』은 민중신학의 이야기론이 이룩한 인식론적 성과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비교적 평이하게 쓰여진 책이니 만큼 민중신학 저작들과 함께 놓고 읽어 나가면 독자들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적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 웹진 <제3시대>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 

 
  

 


1. Werner Kelber, Oral and Written Gospel: The Hermeneutics of Speaking and Writing in the Synoptic Tradition, Mark, Paul, and Q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3); Joanna Dewey, “Oral methods of structuring narrative in Mark”, Interpretation 43(1989) 32-44와 “The Gospel of Mark as Oral-Aural Event: Implications for Interpretation", in E. McKnight and E. S. Malbon (ed), New Literary Criticism and the New Testament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4), 145-163; David Rhoads, “Performing the gospel of Mark”, in Björn Krondorfer (ed), Body and Bible: interpreting and experiencing biblical narratives (Philadelphia : Trinity Press, 1992); P. J. J. Botha, “Mark's Story as Oral Traditional Literature: Rethinking the Transmission of Some Traditions about Jesus”, Hervormde Teologiese Studies 47(1991) 304-331; Christopher Bryan, Preface to Mark: Notes on the Gospel in Its Literary and Cultural Setting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참조.

2. 김진호, 「이름을 불러주기까지 그들은 ‘꽃’이 아니었다―안병무의 ‘오클로스론’ 다시 읽기」, 김진호 외.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 (서울: 삼인, 2006) 96-97 참조.

3. 서남동의 경우는 『민중신학의 탐구』에 수록된 「두 이야기의 합류」, 「민담에 관한 脫神學的 고찰」, 「민담의 신학-反神學」에서 ‘이야기’를 독자적인 민중신학의 주제로 다루고 있고, 김용복은 『한국민중의 사회전기: 민족의 현실과 기독교운동』에 수록된 ‘민중의 사회전기’를 주제로 한 몇 편의 글들에서 사회사적 의미로 확대된 이야기 개념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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