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거리 Chinatown (Hardcover, 한영합본) Modern Korean Short Stories 6
오정희 지음, 남주현 그림, 페기 C. 조 옮김 / 한림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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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탄광촌에 대한 묘사로부터 시작된다. 석탄을 싣고 온 화차(貨車)가 밑구멍으로 석탄 가루를 흘려 보내면, 아이들은 시멘트 부대에 가득 석탄을 팔에 안고 낮은 철조망을 깨금발로 뛰어넘어가는 그곳이 바로 해안촌(海岸村) 혹은 중국인 거리라고도 불리어지는 화자의 동네이다. 화자인 '나'를 비롯한 식구들은 아버지의 일자리를 따라 피난지로부터 항구 도시(인천) 외곽에 있는 중국인 거리로 이주해왔다. 이곳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건물들과 낯선 모습의 중국식 적산 가옥, 그리고 기지촌과 미군 부대로 둘러 싸여 전형적인 전후(戰後)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어린 소녀는 전후의 궁핍하고 어수선한 생활을 노란색으로 불명확하고 몽롱한 색깔로 받아들인다. “공복감 때문일까, 산토닌을 먹었기 때문일까, 해인초 끓이는 냄새 때문일까, 햇빛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도, 치마 밑으로 펄럭이며 기어드는 사나운 봄바람도 모두 노오랬다.” 봄바람이 천지간을 노랗게 채색할 정도의 어지러움과 역겨움을 가증시키는 사나운 풍력이 되고 있는 것은 공복에 복용한 회충약의 충격과 해인초 끓이는 고약한 냄새 때문이다.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중국인 거리에는 끊임없이 집을 짓고 있어 날마다 해인초 끓이는 냄새가 진동한다. 그것은 ‘노란빛의 회오리’를 일으켜 거리를 들쑤시고 ‘머리털 뿌리까지 뽑히는 것처럼 골치가 아프게 하는“ 고통을 화자에게 준다.

이 거리를 배경으로 공복감과 해인초 냄새가 어우러져 피어 오르는 노란 빛의 환각적 이미지로 표상되는 유년의 기억 속에서 한 편의 성장 드라마가 펼쳐진다. 성장의 조짐은 주인공이 우연히 건너편 이층집 창문에서 중국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는 것에서 비롯된다. 어지럼증의 ‘노란빛의 혼미’ 속에 정체불명의 낯선 남자가 나타남으로써 야릇한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미지(未知)의 남성의 등장은 노란색을 배경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드리운다. 이 순간 주인공은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비애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그의 창백한 표정에 담긴 욕망의 시선이 주인공의 내부에서 움트고 있던 욕망과 내면을 일깨운 것이다. 이 정체불명의 젊은 남자는 ‘나’의 호기심의 인력이 되어 서사가 전개된다. 주인공의 내면에 자리 잡게 된 이러한 역동적인 욕망의 움직임은, 양공주 매기언니와 관계의 그늘 속에서 어두운 삶을 살다 간 할머니의 죽음을 거치면서 정적인 성장의 고뇌로 성숙되어 간다.

매기언니가 없는 틈을 타서 치옥이가 주는 박하향이 나는 초록색 술을 마신 ‘나’는 술기운이 돌아 어지러움을 느낀다. 욕망의 역동적인 이미지와 죽음의 정적인 이미지가 교차하는 고독과 사색의 공간 속에서 주인공은 핏속에 순(筍)처럼 돋아 오르는 무언가를 감지한다. 그것은 마치 상처가 아무는 듯이, 참을 수 없는 근지러움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성장의 고비를 확인이라도 하듯, 주인공은 할머니의 유품을 묻어두었던 것을 확인하고 장군 동장 위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나’는 깜깜하게 엎드린 바다를 보았다. 동지나 해로부터 밤새워 불어오는 바람, 바람에 실린 해조류의 냄새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중국인 거리, 언덕 위 이층집의 덧문이 열리며 쏟아져 나와 장방형으로 내려앉는 불빛과 드러나는 창백한 얼굴을 보았다. “인생이란……”, ‘나’는 중얼거렸다.

다시 봄이 되고 ‘나’는 6학년이 되었다. 어느 날 집 앞에 이르러 언덕 위의 이층집 열린 덧창을 바라보았을 때, 그 젊은 남자가 창으로 상체를 내밀어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화자가 끌리듯 언덕 위를 올라가자 그 젊은 남자는 창문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닫힌 대문을 무겁게 밀고 나왔다. 코허리가 낮고 누른빛의 얼굴에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내게 종이 꾸러미 하나를 주는데, 그 속에 든 것은 중국인들이 명절 때 먹는 세 가지 색의 물감을 들인 빵과, 용이 장식된 엄지손가락만한 등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금이 가서 쓰지 않는 빈 항아리 속에 넣었다. 안방에서는 어머니가 산고(産苦)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나 ‘나’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숨바꼭질을 할 때처럼 몰래 벽장 속으로 숨어 들어가, 절망감과 막막함 속에서 초조(初潮)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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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근대 망령으로부터의 탈주, 동아시아의 멋진 반란을 위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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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반란성’ 회복을 위한 미지(未知)의 역사 탐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 2007년 5월

 

 지난 세기말부터 한국 인문학 및 사회과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화두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동아시아 담론’이다. 다소 무리가 따르겠지만, 현재까지 한국 지성계에서 통용되는 동아시아 담론은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한편으로 세계화에 적응하고 이 물결을 활용할 목적으로 ‘동아시아’ 혹은 ‘동북아시아’를 말하는 입장과 다른 한편으로 민족국가 단위를 넘어선 문명의 차원에서 세계화의 획일화 논리에 저항하는 거점으로서 ‘동아시아’를 논하는 입장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이와 다른 시각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공통된 문화적 특징으로서 ‘유교’를 들고 서구의 근대성과 다른 동아시아의 ‘유교 자본주의/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세 번째 입장이 있다. 이렇게 내포와 외연이 각각 상이하여, 그 문제의식의 기원이나 실천의 방향성이 일관된 것은 아니었지만, 대개는 동아시아 고유의 역사, 문화, 제도적 특질에 주목하면서 이로부터 대안적 세계 인식 및 실천의 준거를 모색하고자 했던 것이 동아시아 담론의 출발점이자 정체성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왜 동아시아 공동체 혹은 동아시아적 삶의 방식이 다른 문화권의 삶의 방식, 특히 서구적 근현대의 삶의 방식에 대한 ‘바람직한 대안’ 후보일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 앞에서 설득력 있는 답변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동아시아 문화’나 ’동아시아 역사’가 세계의 다른 지역과 주민들을 향해 인류의 미래적 삶의 방식에 관해 말해줌에 있어 물질적 번영이나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한에서의 ‘문화적 코드’나 서구 근대성에 대한 비판의 부정적 근거로서 ‘역사적 트라우마’ 이외에 질적으로 다른 대안적 근거를 내재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하기에는 여전히 무엇인가 많이 부족한 듯하다. 그래서 어쩌면 이러한 빈약한 문화적 역사적 근거를 표면에 내걸고도 동아시아 담론이 하나의 실체로서 지금까지 학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실질적인 이유는 기존의 국가적인 중심을 강화하는 도구로서 동아시아 담론이 국가에 의해 정치경제학적인 의도로 함께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당장 한국의 노무현 정권만 하더라도 ‘동북아 균형자론’을 주장하며, 한-미 FTA를 그토록 막무가내로 서둘러 체결했던 것이며 앞으로 한-중 FTA, 한-일 FTA의 체결도 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기존의 유교 자본주의와 같은 동아시아 담론에서 말하는 아시아적 가치로서 가족주의, 공동체주의, 가부장적 관계 등은 이런 동아시아의 정치경제학적인 이권 획득을 목표로 설정한 가운데서 추천되는 가치, 즉 그 기저에 국가주의 및 경제성장의 논리가 자연스럽게 깔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담론 현상에 이의를 제기하며 21세기의 바람직한 동아시아의 모습과 동아시아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동아시아에서 국경을 비롯한 온갖 경계선을 극복하는 방법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책이 바로 박노자 교수의 신간,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이다. 이 책의 부제는 “근대 망령으로부터의 탈주, 동아시아의 멋진 반란을 위해서”이다. 박노자 교수는 이제 ‘동아시아 담론’이 학자들만의 추상적인 논의를 벗어나 동아시아 민중들의 가장 현실적인 당면과제를 실감나게 묶을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감추어져 있었던 대안적인(혹은 좌파적인) 동아시아의 반란적 정체성을 새롭게 발굴하여, 돈과 국적이 모든 ‘관계’의 불가피한 매개가 되는 현실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의 근거로 선사하고 있다. 그는 동아시아 시대는 어떤 면에서 이미 도래했고, 어떤 면에서는 현재진행형임을 인정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지역화의 추세 역시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필연적인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지역화의 사회․정치․문화의 정체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의 주체로서 시민인 우리 모두의 선택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모습의 ‘동아시아’를 원하고 있는가?

 

 저자는 반란의 뿌리를 동아시아의 다양한 저항적 역사의 전통에서 확인한다.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의 모습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진실이라 믿어온 동아시아의 감추어진 역사적 실재들, 현재와 같은 우리의 왜곡된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해온 이데올로기적 상식들을 비판하고 부정할 것을 주문한다. 중국 근세(명조)의 급진적 개인주의의 원조 격으로 ‘천고의 이단아’, “나는 쉰 이전엔 정말 한 마리 개였다”고 고백한 이지(이탁오), 승려의 몸으로 국왕에게 절할 일이 없다며 동아시아 역사에서 최초로 ‘종교 자유 선언’을 해버린 동진의 혜원, 만인의 욕구가 자유롭게 대변․충족되는 ‘공(公의 사회’를 꿈꾸며 군주 전제를 가혹하게 비판한 〈명이대방록〉의 저자 황종희, 병역거부와 반국가주의를 주창한 아나키스트의 원조 톨스토이를 등장시키고 그런 톨스토이 급진적인 사상을 ‘개인 수양의 이념’ 따위로 탈바꿈시킨 이광수와 최남선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각종 규율로 우리의 안팎을 구속하는 한편, ‘소비’라는 달콤한 당근과 ‘대중문화’라는 신종 ‘아편’으로 우리를 부단히 유혹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순치되어” 상실해 버린 “주체적 인간의 뿌리인 ‘반란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래로 우리 사회에 잔존해 있는 전근대적인 폐습, 군사주의와 국가주의, 인종주의를 비판하는 부단한 저술 작업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노동의 도살을 막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복지사회로 점차 나아갈 것을 주장해온 박노자이기에 이 책 역시 우리에게 혁명을 위한 ‘의식의 준비’를 요청하고 있다. 차별과 폭력을 넘어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참에 박노자와 함께 ‘동아시아의 반란성’ 회복을 위한 역사 탐험에 나서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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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 창비교양문고 6
염상섭 지음 / 창비 / 199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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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끝나지 않은 질문, “지식인이란 어떻게 사는 자인가?”   

- 염상섭의『만세전(萬歲前)』읽기


   나는 대중과 지식인의 관계 설정 방식 즉 사회 변혁을 위한 대중의 흐름 내지는 운동과 관련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하여『만세전』의 이인화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염상섭의 입장이 내가 이미 지난 번『무정』서평에서 쓴 바 있는 이광수의 자화상인 이형식, 즉 ‘민족에 봉사하는 교육자’로서 이상화된 애국지사적 지식인 모델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소설 본문을 읽는 동안에는 염상섭의 이 소설 제목이 왜 하필 ‘만세전(萬歲前)’일까에 대하여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 소설을 다 읽고나서 작품의 저작 시기와 염상섭 개인의 일대기에 관한 자료들을 참고삼아 찾아보다가 이 소설의 판본이 여럿이며 처음에는「묘지」라는 제목으로『신생활』에 연재되다가 미완인 채 중단되었고, 1924년 『시대일보』연재를 거쳐 같은 해 고려공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해방 후 부분적 개작을 거쳐 1948년 수선사에서 재간행 된 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 무엇보다도 최초의 제목이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겨우 무덤 속에서 빠져 나가는데요?.......”에 등장하는 ‘무덤(묘지)’이었다는 것과 나중에 바뀐 제목이 “조선에 ‘만세’가 일어나던 전해 겨울이다”라는 첫 문장의 한자식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만세전(萬歲前)’이라는 사실은 내게 흥미로웠다. 최초의 제목과 최종적으로 확정된 제목을 합치면 대충 이런 문장이 나온다. “만세가 일어나기 전, 조선은 구더기가 끓는 묘지와도 같았다.” 그런 맥락에서 보건대 이 소설은 아마도 3ㆍ1 만세운동을 정점으로 하여 그 전후 시기동안 일관되게 조선 사회에 팽배해 있던 어떠한 특징적 정서를 작가 나름의 관점에서 포착하고 냉철히 진단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저술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또 그렇기 때문에 가정 환경이나 성장 과정, 사상적ㆍ실천적 궤적에 있어서는 염상섭 자신과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열다섯 살 무렵에 단신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 경력과 대학에서의 전공 분야(문학)에 있어서는 상당한 일치점을 갖고 있는 주인공 이인화의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 작가 본인의 현실 인식의 태도까지도 읽어낼 수 있으리라 본다.


   기본적으로『만세전』의 이인화는 끊임없이 사유하는 주체이다. 진정한 자아에 대한 자기 나름의 분명한 사색이 있는 지식인으로 출발하여 조선으로의 귀국 여정에서 풍경처럼 접하게 되는 자기 외부의 타자 곧 ‘요보(조선인)’의 삶을 통해 새로운 현실을 발견하는 자로 그려진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항상 그는 자명한 의식을 갖고 진지하게 사유하는 주체이다. 그에 반해『무정』의 이형식은 이성적이고 관념적인 사유보다는 앞으로 펼쳐질 사건 자체를 머리 속으로 항상 미리 상상하는 주체로 그려진다. 9년 만에 다시 만난 영채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들려줄 때도 형식은 영채의 말보다 앞서서 영채의 과거와 현재를 자기 멋대로 상상한다. 그런데 그 상상은 소설의 이야기 전개와 충돌 없이 호응 관계를 이룬다. 그리고 배학감이 추행하고 있다는 기생 계월향이 영채임으로 밝혀지는 과정도 순전히 이형식의 상상에 의해 처리된다. 이형식의 상상은 사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망상에 불과한데도 소설 속에서는 전혀 문제없이 진실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광수가『무정』의 서사 전개의 핵심적인 활로를 사건의 일부로서 기능하는 이형식의 ‘상상’에 의존하고 있다면 염상섭은 바로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나 사건마저도 냉소와 환멸의 대상으로 삼고 마는 이인화의 내밀한 ‘사유’에 의존하여 작품의 서사를 전개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인화는 자기 자신의 행동과 생각마저도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주체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데카르트가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진술 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처럼 이인화는 자기 외부의 현실 대하여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발언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그와 동시에 보이고 있는 분열적인 태도까지도 재귀적으로 성찰하는 반성적 주체라는 것이다. 가령 이인화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던 중 기차가 대전에서 잠시 정차했을 때 아기를 업은 채로 대합실에서 포박당해 있던 ‘젊은 여편네’를 보게 된다. 그녀를 보면서 “젖이나 먹이라고 좀 풀어 줄 일이지”하던 이인화가 “이게 산다는 꼴인가? 모두 뒈져 버려라!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라는 외침에 이어 계속 현실을 공동묘지에 빗대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마음껏 저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 와 드러누워 있는데 난로 옆에서 풍겨오는 어느 기생 여성의 냄새를 맡아가며 잠들던 중 “이것도 구더기 썩는 냄새이기는 일반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코를 막으려 하지 않는 자신을 스스로 비웃는 듯한 대목이 나온다. 나는 이 부분이야말로 개인적 행위주체로서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평가하며 인식하는 관념, 태도, 의식을 의미하는 자기정체성이나 자아 혹은 주체성의 개념이 소설 속에서 가장 잘 관철되고 있는 예라고 본다. 염상섭이 이 부분에서 정말 자기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소설 속에서 의도적으로 표현했다고 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는 소설의 전반적인 서사를 이끌어가는 서술 주체인 나 곧 이인화와 별도로 인식과 판단의 대상이 되는 나 곧 이인화도 등장을 한다는 점이 그 자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반면에『무정』의 이형식은 삼랑진에서의 수재 상황을 목격하고 다시 민족 계몽의 이상주의자로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지만 그때도 언제나 자신은 대중들과 분리될 특별한 존재일 뿐이다. 이는 이인화가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일본 경찰의 집요한 미행과 검문-을 시발점으로 귀국 여행 중 만난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과정과는 분명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형식이 선형과 영채 사이에서의 갈등을 민족주의적 열정 하나로 손쉽게 해결하는 것과는 달리 이인화는 그렇게 진지하게 인식하게 된 민족의 현실을 의식적 차원에서의 반성의 영역으로 끝내 남겨 둔 채 다시 일본 행 배에 오르고 마는 점도 두 인물 간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이인화가 정자에게 보내는 답장 편지는 “이 나라 백성의, 그리고 당신의 동포의, 진실된 생활을 찾아 나가는 자각과 발분을 위하여 싸우는 신념 없이는 우리의 우정도 헛소리입니다” 라고 마무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큰집 형님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겨우 무덤 속에서 빠져 나가는데요? 따뜻한 봄이나 만나서 별장이나 하나 장만하고 거드럭거릴 때가 되거든요.......!”. 이인화는 여전히 조선을 무덤으로 표현할 만큼 섬세한 감수성과 냉철한 현실 인식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꾸고자 집단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실천의 차원으로는 결코 끌어 올리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도 ‘구더기’같은 조선인들과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기 반성의 제스처를 취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제스처로 끝날 뿐이다. 이인화는 김천 형님이 자신을 향해 일갈했던 바, “너야말로 이기주의자로구나!”의 그 모습을 못 버리는 것이다. 김천 형님을 향해서 “구제라는 말처럼 오만한 말도 없고 자선이라는 행위처럼 위선은 없겠지요”라고 말하며, 종형인 병화를 향해서는 “동정이란 말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함부로 할 말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그가 실상은 바로 다른 이들 즉 가족들의 자선과 동정으로 지금까지 자신의 유학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음은 아이러니인 것이며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이인화 자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위선자의 모습을 이면으로 한 채 현실에 대하여 냉소적 비판의 자세를 유지하는 관찰자적 지식인의 모습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무정』의 이형식이 식민지 근대 국가의 지식인으로서 경험 중인 자기 욕망의 모순과 혼란을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엘리트로서의 기만적인 소명의식으로 치환하여 스스로를 구원하는 데 반해『만세전』의 이인화는 이형식과 같은 태도를 공상적인 이상주의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며 철저한 냉소주의자로서의 입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구원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비극적으로 인식하는 차원에서는 두 인물이 대동소이함에도 그 현실에 대처하는 최종적인 입장은 선도적 참여와 냉소적 환멸의 거리두기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형식과 이인화는 이광수와 염상섭이라는 두 식민지 근대에 실존했던 지식인의 각기 다른 삶을 문학적으로 대변해주는 인물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광수와 염상섭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나타났던 두 종류의 지식인 유형의 전형적인 모범일 것이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광수/이형식과 같은 운동의 선두에서 대중을 이끄는 지식인의 모델에 대해서는 절대 비판적이다. 문헌 상의 정확한 출처는 기억이 안 나지만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런 말을 남긴 것으로 기억한다. “혁명은 누구에게도 스승의 지위를 허락하지 않는다.” 혁명가 혹은 비판적 지식인은 대중 바깥에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대중의 일부로 존재하는 자이다. 불의한 현실의 변혁을 꿈꾸는 비판적 지식인이 대중의 일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가 착취받는 자, 소수자 또는 민중과의 기밀한 유대를 가져야 한다. 물론 그 방법은 소수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 안의 감추어진 소수자성을 부단히 성찰하고 발견하는 것 밖에는 없다고 본다. 이를 위해 스스로를 다수자로서 지식인의 한 사람이기 이전에 소수자 혹은 민중의 한 사람으로 먼저 정체화해야만 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 바깥에서 대중을 이끄는 지식인의 모델을 부정하는 것이 대중과 현실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리두기로 귀결되는 염상섭/이인화 식의 태도에도 나는 당연히 비판적이다. 현실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당파성의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현실과 일정부분 거리를 두며 고도로 추상적인 이론이나 관념의 영역에서 지식 노동을 최선을 다해서 해야겠지만  그것 역시 그 자체로서 최종적인 답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이인화와 이형식이 비극적인 현실에 대하여 나름대로 각기 다르게 내놓았던 두 종류의 지식인의 길을 우리는 모두 새로운 ‘질문’꺼리로 끌어안고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시 현재로서는 참여와 거리두기, 양자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는 사고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잠정적인 답변밖에는 못할 수밖에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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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종생기 외 5편 홍신 한국대표단편선 6
이상 외 지음 / 홍신문화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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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상(李箱)의「종생기(終生記)」읽기

:‘종생(終生)’을 둘러싼 세 명의 ‘이상(李箱)’의 대화


 



  개인적으로 웬만큼 어렵다는 책들을 나도 좀 읽었노라고 자부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적수를 만났다. 살다 살다 이렇게 난해한 글은 처음이었다. 생경스러운 한자어가 꽤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그래도 분명 한국어로 씌어 진 작품인데 읽고 또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직 근대적 시공간의 구획이 심화되지도 않은 근대의 여명기를 통과하고 있던 동아시아 변방의 이름 없는 문인이 그것도 겨우 현재 내 나이 또래의 한 젊은이가 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도 분간이 잘 안가는 이 희한한 글에 내가 말 그대로 ‘Knock-down’ 되버렸다는 사실을 지금도 인정하기가 당혹스럽다. 역시 나는 이번에도 이상(李箱)에게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싶었다. 사실「종생기(終生記)」를 읽기 전에도 나는 소설「날개」와「건축무한육각면체」그리고「오감도」시리즈의 몇 편 정도는 읽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나마 읽고 나름대로 이해를 한 글은「날개」가 유일했지만. 오감도는 ‘감상’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구경’만 좀 해봤다. 이해를 할 수가 있어야 감상이라고 할 텐데, 아쉽게도 나는 이상(李箱)의 그 시 같지도 않은 시들을 경이로움과 불쾌함의 감정을 갖고 그저 구경만 했었다. 경이로움은 이상(李箱)에 대한 감정이며, 불쾌함은 이상(李箱)의 그 시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감정이었다.


  그러니 결국 이번에도 필사적으로 작가 이상(李箱)과 작품「종생기(終生記)」에 관한 다종다양한 연구의 성과물들을 뒤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해석은 천차만별이었다. 시대별로 유행했던 비평이론이나 철학사조가 달랐음을 반영하기라도 하듯이「종생기(終生記)」에 관한 연구사는 흡사 최신 비평이론을 시범적으로 운용해보는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양소진에 따르자면1)「종생기(終生記)」연구의 접근 방식은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분류가 가능하다고 한다. 첫째로 실존주의 철학에 근거를 둔 논의인데, 김현2)이나 정명환3)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김현은「종생기(終生記)」를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 ‘완전히 막힌 길’에 대한 기록으로 해석한다. 둘째, 이상(李箱) 개인의 일생과 관련하여「종생기(終生記)」를 분석하는 전기적 해석의 흐름이 있는데, 김윤식4)과 김성수5)가 이에 해당하는 연구자들이다. 김윤식은「종생기(終生記)」를 해석함에 있어 실제 작가 이상(李箱)의 결핵, 백부와의 관계, 까페여급과의 동거생활 등을 작품과 대응시켜 해석을 시도하였다. 김성수는「종생기(終生記)」를 이상(李箱) 문학의 정점에서 시와 소설, 그리고 산문까지를 포함하여 그의 전 문학을 수렴하고 통어하는 위치에 있는 작품으로 본다. 그는 서술층위와 유성의 양식 그리고 시간의식을 통해 ‘육체적 종언의 상징’이 아니라 ‘이상(李箱) 자신의 문학예술론’으로「종생기(終生記)」의 의미를 추출하였다. 셋째로는 정신분석학적인 증상을 작품에서 추출해내려는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방법인데, 조두영6)이나 권택영7)이 이러한 해석을 시도하였다. 권택영의 경우는 라캉의 ‘증상’ 개념을 이상(李箱)이라는 기표와 작품「종생기(終生記)」에 적용하여 이 작품이 자의식적 과잉의 주체가 죽고 정상적 자의식의 주체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글쓰기로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증상으로서의 글쓰기는 텅 빈 기표를 찬란히 승화시켰기에 제아무리 해석해도 여전히 여분이 남는다. 여분을 인정하는 주체가 타자의식이고「종생기(終生記)」를 쓴 이상(李箱)의 주체라는 것이다. 넷째로 서술자에 주목하고 담론 체계를 분석한 비교적 최근의 논의 흐름이 있는데, 문홍술8)과 설영숙9), 김주현10), 박정수11)가 이에 해당된다. 문홍술은 작품에 나타나는 주체분열과 반(反)담론으로서의 언술체계의 분열에 주목하면서 그 분열을 일으키는 원인인 무의식의 욕망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는 이상(李箱)이 근대적 지식의 모순을 인식한 탈근대적 인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일본어 텍스트를 통해서는 근대 과학적 지식을 비판하고, 한국어 텍스트를 통해서는 근대적 도시를 비판했다고 주장한다. 특히「종생기(終生記)」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전반부는 경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후반부는 동경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김주현은「종생기(終生記)」에 여러 겹의 서술자가 나타남을 지적하고 다른 문학 작품과의 상호텍스트성을 분석한다. 박정수는「종생기(終生記)」를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의 작품으로 보고 욕망의 문제를 해석하고자 한다. 주체인 이상(李箱)이 자신의 삶과 욕망을 지배하고 아버지의 법을 넘어서고자 하는 (소위 오이디푸스적 욕망의) 자기 파괴의 여정으로「종생기(終生記)」를 해석한다. 양소진 역시 내가 보기에는 이러한 접근 방식을 대체로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들뢰즈/가타리의 ‘욕망’ 개념을 중심으로「종생기(終生記)」에 나타난 서술 주체 및 인식 대상의 분열 양상을 분석하고 이를 추동하는 욕망을 밝혀내고자 시도한다. 또한 분열의 양상을 분석하여 변화를 통해 새롭게 생성되는 미적 가치를 ‘희극성’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더니즘이나 다다이즘 등의 문예사조적인 의미를 작품에서 해석해내려는 연구 경향이12) 있다. 특히 이상(李箱)의 모더니즘이 이광수의 계몽주의, 염상섭의 리얼리즘과 함께 한국 소설사에 있어 문학적 사고의 한 축을 연 것으로 파악한 서영채13)가 그 대표적인 연구자라 할 수 있다. 서영채의 설명을 따르자면, 문학적 모더니즘은 문학 자체가 지닌 잠재력을 고도화시켜 철저하게 자율적이고 자기 목적적인 형태로 스스로를 조형해 내고자 하는 의식의 소산이어서, 여기에서 글쓰기의 주체는 일체의 외적 대상으로부터 관심을 철회하여 예술 자체를 향한 의지로 스스로를 몰입시킨다. 이때의 서술 주체는 예술가적 주체 혹은 미적 주체라 할 수 있으며, 이상(李箱)은 바로 이러한 문학적 근대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가라는 것이다. 서영채는 이상(李箱)의 문학에 관한 한 편의 논문과 이를 확대한 한 편의 연구서에서 이상(李箱) 소설의 수사학적 장치와 한국 문학의 근대성의 관계를 일관되게 추적하고 있다. 특히 그는「종생기(終生記)」에 세 층위의 서술자가 혼재함을 지적하고 이상(李箱) 소설의 수사학적 특징을 ‘권태’ 혹은 ‘위티즘’으로 규정한다. 근대적인 질서를 거부함으로써 발생하는 ‘권태’는「종생기(終生記)」에서 ‘진정성 없는 폭로’의 수사로 나타난다. 이상(李箱)은 자기은폐를 양식화함으로써 진정성의 양식에 맞섰고, 또 자신을 고립시킴으로써 자기보존의 양식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종생기(終生記)」라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도 기본적으로는 양소진과 서영채의 글이었다.「종생기(終生記)」라는 텍스트에 총 몇 명의 이상(李箱)이 등장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는 결국 이상(李箱)의 문학에서 조형되는 서술의 주체와 인식의 대상의 독특성에 대한 구체적인 탐구와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그의 문학세계 전반에서 이상(李箱)이라는 인물 자체가 별도의 텍스트로 만들어지는 가운데, 이상(李箱)이라는 기호는 최소한 세 차원의 인격으로 형상화되고 있다.「종생기(終生記)」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만 26세의 나이로 일본에서 죽은 실존 인물 김해경 곧 작가 이상(李箱)과 그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내적 화자로 창조한 허구적 인격으로서의 작가 이상(李箱)이 존재하며, 작품 속에서 서술과 인식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이상(李箱)이 있다. 각각의 이상(李箱)의 등장을 확인할 수 있는 구절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묘비명이라. 일세의 귀재 李箱은 그 통생(通生)의 대작「종생기」한 편을 남기고 서역기원후(西曆紀元後) 1937년 정축(丁丑) 3월 3일 미시(未時) 여기 백일(白日)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졸(卒)하다. 정년 만 25세와 11개월. 오호(嗚呼)라! 상심커라. 허탈이야 잔존하는 또 하나의 李箱, 구천을 우러러 호곡하고 이 한산(寒山) 일편석(一片石)을 세우노라. 애인 정희는 그대의 몰후(歿後) 수 삼인의 비첩된 바 있고 오히려 장수하니 지하의 李箱아! 바라건댄 명목(暝目)하라.14)    


   그러면 아까 장만해 둔 세간 기구를 내세워 어디 차근차근 살림살이를 한 번 치러 볼 천우의 호기가 앞으로 다다랐나보다. 자- 태생은 어길 수 없이 비천한 「티」를 감추지 못하는 딸-- (전기(前記) 사치한 소녀 운운은 어디까지든지 이 바보 李箱의 호의에서 나온 곡해다. 모파상의 「지방 덩어리」를 생각하자. 가족은 미만(未滿) 14세의 딸에게 매음시켰다. 두 번째는 미만 19세의 딸이 자진했다. 아- 세 번째는 그 나이 스물 두 살이 되던 해 봄에 얹은 낭자를 내리우고 게다가 홍댕기를 드려 늘어뜨려 편발 처자(妻子)를 위조하여서는 대거(大擧)하여 강행으로 매끽(賣喫)하여 버렸다.)15)


   홍천사 으슥한 구석방에 내 종생의 갈력(竭力)이 정희를 이끌어 들이기도 전에 나는 밤 쓸쓸히 거짓말 깨나 해 놓았나 보다. 나는 내가 그윽히 음모한 바 천고불양의 탕아, 李箱이 자지레한 문학의 빈민굴을 교란시키고자 하던 가지가지 진기한 연장이 어느 겨를에 뼈무르기 시작한 것을 여기서 깨달아야 되나보다. 사회는 어떠쿵, 도덕이 어떠쿵, 내면적 성찰 추구 적발 징벌은 어떠쿵, 자의식 과잉이 어떠쿵, 제 깜냥에 번지레한 칠을 해 내어 걸은 치사스러운 간판들이 미상불 우스꽝스럽기가 그지없다.16)

  

   그러나 지금 나는 이 철천(徹天)의 원한에서 슬그머니 좀 비켜서고 싶다. 마음의 따뜻한 평화 따위가 다 그리워졌다. 즉, 나는 시체다. 시체는 생존하여 계신 만물의 영장을 향하여 질투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것이리라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정희, 간혹 정희의 후틋한 호흡이 묘비에 와 슬쩍 부딪는 수가 있다. 그런 때 시체는 홍당무처럼 화끈 달면서 구천을 꿰뚫어 슬피 호곡(號哭)한다. 그 동안에 정희는 여러 번 제(내 때꼽째기도 묻은) 이부자리를 찬란한 일광 아래 널어 말렸을 것이다. 누루(累累)한 이 혼수(昏睡) 덕으로 부디 이 시체에서도 생전의 슬픈 기억이 창공(蒼空) 높이 훨훨 날아가나 버렸으면 ------ 나는 지금 이런 불쌍한 생각도 한다. 그럼 ------ ------만 26세 3개월을 맞이하는 李箱 선생님이여! 허수아비여! 자네는 노옹(老翁) 일세. 무릎이 귀를 넘는 해골 일세. 아니, 아니. 자네는 자네의 먼 조상 일세.17)


  첫 번째와 두 번째 인용문에서 정희를 만난 이상(李箱)이자「종생기(終生記)」라는 작품을 남긴 이상(李箱)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상(李箱)이 배후에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작중인물로서 주인공 이상(李箱)과 일치하기도 했다가 어떤 때는 구분되기도 하는 작품 내의 서술자인 작가 이상(李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와 네 번째 인용문에서는 그러한 작가 이상(李箱)과 주인공 이상(李箱)을 일치시키기도 하고 구분하기도 하면서 그 이상(李箱) 혹은 ‘이상(李箱)들’에 대하여 텍스트 밖의 실제 작가 이상(李箱)(김해경)이 배후에서 발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18)


  1936년 11월 20일 만 26세 2개월의 나이로 이 소설「종생기(終生記)」를 쓰고 1937년 4월 17일에 만 26세 7개월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실제 종생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의 작가 곧 김해경이 자신의 작품「종생기(終生記)」안에서 주인공 이상(李箱)이 만 25세 11개월의 나이로 묘비명을 쓰게 하고 1937년 3월 3일에 종생하도록 했는데, 이 작품 안에서 주인공 이상(李箱)에 대해 말하고 있는 허구의 작가인 또 다른 이상(李箱)은 주인공 이상(李箱)이 묘비명을 새긴 후 “무릎이 귀를 넘는 해골” 혹은 “허수아비”로 26세 3개월의 나이를 맞이하기까지 4개월을 더 살았다고 말해주고 있다. 즉 1937년 7월 3일까지 무덤 속에서 시체로 누워서 종생은 이미 했으되 종생기는 끝내지 못한 이상(李箱)으로서 말이다. 실제 작가 김해경은 이미 종생한 이상(李箱)이 종생기를 이제 막 끝낸 이상(李箱)의 “먼 조상”임을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종생기(終生記)」라는 산호편을 남기고 싶어 했던 아니 그전에 이미「오감도」와「날개」를 쓴 바 있는 “천고불양의 탕아”이며 “자지레한 문학의 빈민굴을 교란시키고자 하던” 작가 이상(李箱), 즉 김해경이 “그윽히 음모한” 그 작가 이상(李箱)의 “종생”을 우리에게 들려주며 그리고 ‘이상(以上)’이라는 말과 함께 실제 작품을 탈고한 날짜와 장소를 밝히며 소설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김해경 자신도 5개월 후인 1937년 4월에 사망(종생)하며 사망 후 1개월이 지나서 잡지『조광』을 통해「종생기(終生記)」을 발표한다. 다시 정리하면,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실제 작가 김해경은 자신이 죽기 5개월 전에「종생기(終生記)」라는 소설을 통해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썼으며 그 작품 안에서 자신이 창조하여 지금까지 자신의 문학관을 분신처럼 대언하게 했던 ‘작가 이상(李箱)’을 실제 자신이 죽고 약 세 달 후에 소설 속 주인공 이상(李箱)의「종생기(終生記)」를 마무리하고 종생하도록 그려놓고 있다. 그리고 김해경 본인은 그렇게 자신의 ‘종생기’이자 ‘유서’와도 같은 이 작품「종생기(終生記)」를 마치 미리 묘비명이라도 써두듯이 남기고 5개월이 지나서 요절한다. 그리고 무덤에서 해골로 한 달 정도를 보낸 후 이 작품은 세상에 1937년 5월에 김해경의 유작으로 세상에 발표된다. 마치 모든 일이 계획된 것처럼 소설과 작가 실제의 삶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에 나는 놀랐다. 정말 김해경이라는 인물의 삶과 작품 안에 세 명의 서로 다른 그러나 또 하나이기도 한 ‘이상(李箱)’이 공존하면서 함께「종생기(終生記)」라는 텍스트를 만들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종생기(終生記)」읽기”가「종생기(終生記)」라는 30페이지도 채 안되는 단편 소설 하나를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결국 ‘이상(李箱)’이라는 한 작가의 삶과 문학 전반을 읽는 것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에 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여전히 이상은 내게 어려운 작가이긴 하지만 그를 알아가는 것이 결코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만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도 그의 문학과 삶에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 양소진,李箱「終生記」硏究 : 분열 양상의 희극성을 중심으로, 고려대국문과 석사학위논문, 2003, p1~p3


2) 김현,「이상에 나타난 만남의 문제」,『자유문학』, 1962


3) 정명환,「부정과 생성」,『한국인과 문학사상』, 일조각, 1968


4) 김윤식,「종생기」의 세계,『이상연구』, 문학사상사, 1987


5) 김성수,「은폐와 성찰의 문학적 유서」,『이상 소설의 해석』, 태학사, 1999


6) 조두영,「이상초기작품의 정신분석」,『신경정신의학』, 1977


7) 권택영,「종생기」: 증상으로 읽는 이상 문학,『한국문학이론과 비평』제29집,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05, p11~p30


8) 문홍술,「이상문학에 나타난 주체분열과 반담론에 관한 연구」, 서울대국문과 석사학위논문, 1991


9) 설영숙,「이상소설의 탈중심적 담론연구」, 국민대국문과 석사학위논문, 1994


10) 김주현,「이상 소설의 글쓰기 양상 연구」서울대국문과 박사학위논문, 1998

      _,「終生記」와 복화술(複話術) - 이상 문학의 새로운 해석을 위한 시론,『외국문학』, 1994


11) 박정수,李箱「終生記」연구 : 언어, 욕망 그리고 죽음에 관하여, 서강대국문과 석사학위논문, 1998


12) 서영채,「이상 소설의 수사학과 한국문학의 근대성」,『소설의 운명』, 1996

     김성수,「근대 경험의 현상적 오감도」,『이상 소설의 해석』, 태학사, 1999

     권택영,「출구없는 반복 - 이상의 모더니즘」,『이상문학 연구 60년』, 권영민 편, 문학사상사, 1998

     권성우,「모더니티와 타자의 현상학」, 솔, 1999

     나병철,「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서」, 소명출판, 2000

 

13) 서영채,「이상 소설의 수사학과 한국문학의 근대성」,『소설의 운명』, 1996

      _,「매저키즘과 연애, 탕아로서의 예술가 : 이상」,『사랑의 문법 : 이광수, 염상섭, 이상』, 민음사, 2004


14) 이상,「종생기」,『날개ㆍ권태ㆍ종생기 (외)』, 범우사, 2001, p121


15) 이상,「종생기」,『날개ㆍ권태ㆍ종생기 (외)』, 범우사, 2001, p125


16) 이상,「종생기」,『날개ㆍ권태ㆍ종생기 (외)』, 범우사, 2001, p127


17) 이상,「종생기」,『날개ㆍ권태ㆍ종생기 (외)』, 범우사, 2001, p137


18) 참고로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인용문까지는 양소진, 서영채, 권택영의 해석을 각각 부분적으로 참조하여 종합한 것이며 네 번째 인용문은 서영채 교수의 논리를 내 나름대로 전용하여 찾아낸 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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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청목 스테디북스 42
이광수 지음 / 청목(청목사)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일그러진 근대적 욕망의 자화상, 이광수의『무정』

 

“이형식과 같은 인물은 1910년대 식민지 조선에만 존재했을까?”


400페이지를 넘는 책을 겨우 겨우 다 읽고 든 물음이 고작 그것이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무슨 공식처럼 외웠던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이광수의『무정』.” 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이 작품을 기준으로 한국의 소설사가 고전 소설 및 개화기 소설기에서 바야흐로 본격적인 근대 소설기로의 이행을 말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고 책을 천천히 읽어 나갔다. 사실 나는 신학을 전공한 이래로 소설은 물론이고 문학이라고 하는 고상한 예술에 일절 관심을 끊고 살아오다가 작년에 들어서 나름대로의 문제의식을 갖고 그나마 한국의 90년대 이후 소설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시간 날 때마다 띄엄띄엄 읽고 있다. 그런 나이기에『무정』에서처럼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작품의 전면으로 튀어 나와 독자들을 친히 계몽하는 작가 이광수의 파격적인(?) 서술방식은 적잖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으로 문학 텍스트를 많이 읽지는 못한 나이지만 신학이라는 인문학의 변두리에서 현대 인문학의 동향을 간접적으로 파악해 온 바에 따르자면, 적어도 탈근대 철학에서 근대적 주체(데카르트적 주체)의 죽음은 문학에서는 작품의 창조자 내지는 지배자로 상정되어 온 ‘저자’(author)의 죽음과 인식론적으로 상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적어도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1968년「저자의 죽음」이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선언적으로 공포했듯이, “글쓰기는 우리의 주체가 사라져 버린 중성적ㆍ복합적ㆍ간접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글을 쓰고 있는 육체에서 출발하여 결국 모든 정체성이 상실되고 마는 ‘부정’이 되어 버리는 것이”여야만 한다고 나 역시 생각해왔다. 그것은 내가 최근에 탐독하고 있는 김영하나 김연수, 배수아, 천명관, 박민규 등의 90년대 이후 한국 작가들에게서 탈근대적 글쓰기의 전형적인 모습인 작가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는 인물들의 자기 발언을 목격해 온 탓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광수의『무정』에서는 식민지 근대를 살아가던 지식인으로서 대중을 근대화의 흐름 속에 편입시키고자 발버둥치고 있던 이광수가 마치 작품의 인물들을 통해 독심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이광수는 지능적인 문학적 독심술로도 성이 차지 않았던지 전지적이고 무소부재한 작가의 시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작품 전체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노골적으로 웅변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이형식이라는 이 작품의 중심인물이 작가 이광수 자신의 분신이자 문학적 자화상이라는 전제 하에 이형식을 중심으로 식민지 근대를 살아가던 한 지식인의 분열적인 욕망의 주체성을 중심으로 이 작품에 대한 서평을 써보고자 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어렴풋이나마 이 작품 안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겹쳐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는 분명 이형식이라는 동경 유학파 출신의 경성학교 영어 교사와 그의 과거와 현재를 대변하는 두 명의 여인 간에 일어나는 애정과 결혼의 삼각관계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적절히 구성된-물론 전근대적인 고전 소설이나 개화기 신소설에서 감히 다루지 못했던 파격적인 주제, 이를테면 자유연애 사상이나 서구적인 결혼관을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을 서술하는 문체상의 표현 양식 또한 상당한 수준의 근대성을 성취했지만-표면적인 소재일 뿐 이 작품이 “잠재성의 차원”(내면에 감추고 있는)에서 실제로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는 아니라고 본다. 나는 오히려 이러한 겉으로 드러나 이야기의 구조 이면에 깔려 있는, 아니 좀 더 정확히 그러한 연애의 삼각관계를 수단화하면서 작중 인물의 대사나 작가 본인의 서술을 통해서 이광수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담론이 사실은 이 소설의 본질적인 이야기라고 본다.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것은 점점 작가 자신의 직접적인 서술이 아닌 주인공 이형식의 입으로 발화되기에 이른다. 작가는 독자들과는 별도로 작품의 주인공인 이형식이 작품의 내용 전개 과정-이형식으로서는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작가 자신이 이상화하고 있는 식민지 근대의 지식인의 모델을 발견하여 내면화하고 현실에서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훈육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이형식이라고 하는 식민지 근대의 한 지식인이 연애와 결혼이라는 개인적 문제의 갈등을 계기삼아 마침내 민족일반을 위해 봉사하는 애국지사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이형식 성장기』라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형식과 박영채, 김선형 그리고 기타 주변 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극적인 많은 사건과 내면 심리의 갈등 양상이 그 자체로서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이형식은 소설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이미 김선형과 정혼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기정사실을 위기로 몰아가는 박영채의 등장과 그에서 비롯된 며칠 동안의 사건들은 기실 이 작품이 대중소설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드라마틱한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끌어들여진” 이야기적 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이형식이 그러한 박영채와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연애의 문제를 삼랑진에서 목도한 민중들의 고난의 참상 앞에서 일거에 정리하고 그녀에게 새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교사”로 남게 된다는 이야기로 결말을 맺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작가 이광수가 이형식이라는 자신의 분신을 다소 신파적인 애증의 연애사 가운데 위치시켜 대중들 앞에 내놓으면서 결국 전달하고자 했던 그 이데올로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즉 소설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통해 당시 조선 민중들이 살아가고 있던 현실의 세계에 대하여 실로 “무정”(無情)한 사회로서의 상상의 관계를 부여하며 만들어진 이 작품의 의미체계는 대중들의 의식을 어떻게 구성하기를 의도했던 것일까? 이광수는 삼랑진에서 모든 주인공들이 해후하기 전까지 박영채와 김선형을 사이에 두고 심리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이형식의 모습을 매개로 하여 구한말 개항과 더불어 도래한 근대화의 물결이 일제의 가혹한 식민 통치와 만나면서 “식민지 근대성”의 이름으로 형성되고 굴절되는 과정을 온몸으로 겪고 있던 당시 조선 민중들에게 더욱 더 전면적인 근대화의 길과 전통 보수의 길 양자 간에 택일을 집요하게 종용한 것이다. 이러한 양자택일의 질문 조건 자체가 이미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광수는 이형식도 이형식이지만 전자와 후자의 대립이 빚어낸 비극을 가장 첨예하게 체현하고 있는 작중 인물인 박영채가 결국 최종적으로 선택한 길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주면서 이 작품의 독자들에게 근대 문명 지향이라는 민족적 지상과제와 그것의 유일한 방법적 수단이 교육밖에 없음을 강변한다. 물론 근대화를 전면화하자는 것이 일제의 식민통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민족적 고유성까지 상실하자는 이야기로까지는 결코 나아가지 않는다. 아마도 이광수 본인으로서는 근대화를 이룩하는 것이 식민화에 순응하는 것과 개별적으로 철저히 양립이 가능한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정치적인 투쟁을 통한 주권의 탈환이 없이도 교육이나 경제, 문학 언론 등 각종 모든 문명 사상의 보급만으로 충분히 이 나라를 강성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이광수의 발상, 또 식민통치에 대해서는 저항이든 순응이든 그 어떤 선택도 말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교육의 강화만을 외치며 조국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환상적으로 염원하는 이광수의 정신세계 내에서는 식민지 근대 시기에 민족적 주체성 수호와 자력으로의 근대화 성취라는 현실적으로 상호 모순적인 목표가 아무런 충돌도 없이 분열적으로 병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형식이 김장로 및 김선형에게 갖고 있는 선망의식을 떠받치고 있는 정서의 기제는 박진사의 문하생 시절부터 줄곧 기만적으로 내면화해온 “민족에 봉사하는 교육자”로서의 소명 완수라는 지극히 대승적이고 공적인 욕망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필경 박영채와 재회하고 삼각관계의 애정사를 극적으로 거쳐야만 했다. 물론 박영채도 결국은 이형식과의 사사로운 연애의 시련을 극복하고 김병욱의 설득을 따라 “우리 자손에게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을 걷는다. 삼랑진에서 재난 구호 음악회를 함께 치루는 과정에서 더 이상 “연인”이 아닌 “교사”가 된 이형식의 지도 덕분에 “민족에 봉사하는 지식인”의 길을 새롭게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형식이 김선형과 김병욱과 박영채 모두에게 스승이 되어 주었지만 결혼은 분명히 김선형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영채는 결국 이형식의 자기완성을 위한 지양(止揚)의 객체 혹은 대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는 작가 이광수에게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민족주의가 했던 역할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광수가 식민지 백성들에게 설파했던 민족의 자존과 근대화의 성공적인 완수, 이 두 개의 상이한 목표 간에 놓인 좁힐 수 없는 간극은 이광수 일생에 걸쳐 중첩과 단절, 확대와 축소를 거듭하다 결국 일제 말기에는 식민지 지배 논리를 자발적으로 수용하여 친일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계기로 전자가 후자의 논리에 완전히 종속되어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형식 그리고 이광수는 식민지 근대를 살아가던 한 지식인의 근대화에 대한 열망이 민족주의적 감성과 내면에서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는 가운데 결국 둘 다 함께 파국을 맞는 모습을 나에게 생생히 보여주었다. 나는 여기서 근대적 지식인 모델의 우울한 종말을 확인하였다. 문제는 이것이 이형식과 이광수, 이 식민지 근대적 지식인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들 역시 저들처럼 서구적 근대성에 부합하는 개인과 사회의 이상을 의식적ㆍ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 가운데 자신들을 민족이나 민중을 위한 교사의 모델로 자기규정하고 끊임없이 자신으로부터 대중을 타자화하고 자신을 대중과 분리시키며 전지전능한 교사 혹은 입법자의 위치에서 대중을 계몽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이러한 지양의 과정이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로 귀결되는지는 큰 문제꺼리가 아니”라는 입장을 펼 수도 있다. 즉 “소설 형식의 근대성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보다 문제적인 것은, 소설이라는 인식적 장치의 위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은 한 시대를 구획할 만큼 획기적인 것인지의 여부이다”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정』의 형식적인 소설미학의 근대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별도로 그것이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주조하고 있는 식민지 근대의 식민지적 정신성에 대한 메타적 비평 역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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