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전 창비교양문고 6
염상섭 지음 / 창비 / 199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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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끝나지 않은 질문, “지식인이란 어떻게 사는 자인가?”   

- 염상섭의『만세전(萬歲前)』읽기


   나는 대중과 지식인의 관계 설정 방식 즉 사회 변혁을 위한 대중의 흐름 내지는 운동과 관련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하여『만세전』의 이인화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염상섭의 입장이 내가 이미 지난 번『무정』서평에서 쓴 바 있는 이광수의 자화상인 이형식, 즉 ‘민족에 봉사하는 교육자’로서 이상화된 애국지사적 지식인 모델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소설 본문을 읽는 동안에는 염상섭의 이 소설 제목이 왜 하필 ‘만세전(萬歲前)’일까에 대하여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 소설을 다 읽고나서 작품의 저작 시기와 염상섭 개인의 일대기에 관한 자료들을 참고삼아 찾아보다가 이 소설의 판본이 여럿이며 처음에는「묘지」라는 제목으로『신생활』에 연재되다가 미완인 채 중단되었고, 1924년 『시대일보』연재를 거쳐 같은 해 고려공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해방 후 부분적 개작을 거쳐 1948년 수선사에서 재간행 된 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 무엇보다도 최초의 제목이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겨우 무덤 속에서 빠져 나가는데요?.......”에 등장하는 ‘무덤(묘지)’이었다는 것과 나중에 바뀐 제목이 “조선에 ‘만세’가 일어나던 전해 겨울이다”라는 첫 문장의 한자식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만세전(萬歲前)’이라는 사실은 내게 흥미로웠다. 최초의 제목과 최종적으로 확정된 제목을 합치면 대충 이런 문장이 나온다. “만세가 일어나기 전, 조선은 구더기가 끓는 묘지와도 같았다.” 그런 맥락에서 보건대 이 소설은 아마도 3ㆍ1 만세운동을 정점으로 하여 그 전후 시기동안 일관되게 조선 사회에 팽배해 있던 어떠한 특징적 정서를 작가 나름의 관점에서 포착하고 냉철히 진단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저술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또 그렇기 때문에 가정 환경이나 성장 과정, 사상적ㆍ실천적 궤적에 있어서는 염상섭 자신과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열다섯 살 무렵에 단신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 경력과 대학에서의 전공 분야(문학)에 있어서는 상당한 일치점을 갖고 있는 주인공 이인화의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 작가 본인의 현실 인식의 태도까지도 읽어낼 수 있으리라 본다.


   기본적으로『만세전』의 이인화는 끊임없이 사유하는 주체이다. 진정한 자아에 대한 자기 나름의 분명한 사색이 있는 지식인으로 출발하여 조선으로의 귀국 여정에서 풍경처럼 접하게 되는 자기 외부의 타자 곧 ‘요보(조선인)’의 삶을 통해 새로운 현실을 발견하는 자로 그려진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항상 그는 자명한 의식을 갖고 진지하게 사유하는 주체이다. 그에 반해『무정』의 이형식은 이성적이고 관념적인 사유보다는 앞으로 펼쳐질 사건 자체를 머리 속으로 항상 미리 상상하는 주체로 그려진다. 9년 만에 다시 만난 영채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들려줄 때도 형식은 영채의 말보다 앞서서 영채의 과거와 현재를 자기 멋대로 상상한다. 그런데 그 상상은 소설의 이야기 전개와 충돌 없이 호응 관계를 이룬다. 그리고 배학감이 추행하고 있다는 기생 계월향이 영채임으로 밝혀지는 과정도 순전히 이형식의 상상에 의해 처리된다. 이형식의 상상은 사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망상에 불과한데도 소설 속에서는 전혀 문제없이 진실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광수가『무정』의 서사 전개의 핵심적인 활로를 사건의 일부로서 기능하는 이형식의 ‘상상’에 의존하고 있다면 염상섭은 바로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나 사건마저도 냉소와 환멸의 대상으로 삼고 마는 이인화의 내밀한 ‘사유’에 의존하여 작품의 서사를 전개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인화는 자기 자신의 행동과 생각마저도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주체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데카르트가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진술 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처럼 이인화는 자기 외부의 현실 대하여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발언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그와 동시에 보이고 있는 분열적인 태도까지도 재귀적으로 성찰하는 반성적 주체라는 것이다. 가령 이인화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던 중 기차가 대전에서 잠시 정차했을 때 아기를 업은 채로 대합실에서 포박당해 있던 ‘젊은 여편네’를 보게 된다. 그녀를 보면서 “젖이나 먹이라고 좀 풀어 줄 일이지”하던 이인화가 “이게 산다는 꼴인가? 모두 뒈져 버려라!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라는 외침에 이어 계속 현실을 공동묘지에 빗대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마음껏 저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 와 드러누워 있는데 난로 옆에서 풍겨오는 어느 기생 여성의 냄새를 맡아가며 잠들던 중 “이것도 구더기 썩는 냄새이기는 일반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코를 막으려 하지 않는 자신을 스스로 비웃는 듯한 대목이 나온다. 나는 이 부분이야말로 개인적 행위주체로서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평가하며 인식하는 관념, 태도, 의식을 의미하는 자기정체성이나 자아 혹은 주체성의 개념이 소설 속에서 가장 잘 관철되고 있는 예라고 본다. 염상섭이 이 부분에서 정말 자기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소설 속에서 의도적으로 표현했다고 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는 소설의 전반적인 서사를 이끌어가는 서술 주체인 나 곧 이인화와 별도로 인식과 판단의 대상이 되는 나 곧 이인화도 등장을 한다는 점이 그 자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반면에『무정』의 이형식은 삼랑진에서의 수재 상황을 목격하고 다시 민족 계몽의 이상주의자로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지만 그때도 언제나 자신은 대중들과 분리될 특별한 존재일 뿐이다. 이는 이인화가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일본 경찰의 집요한 미행과 검문-을 시발점으로 귀국 여행 중 만난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과정과는 분명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형식이 선형과 영채 사이에서의 갈등을 민족주의적 열정 하나로 손쉽게 해결하는 것과는 달리 이인화는 그렇게 진지하게 인식하게 된 민족의 현실을 의식적 차원에서의 반성의 영역으로 끝내 남겨 둔 채 다시 일본 행 배에 오르고 마는 점도 두 인물 간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이인화가 정자에게 보내는 답장 편지는 “이 나라 백성의, 그리고 당신의 동포의, 진실된 생활을 찾아 나가는 자각과 발분을 위하여 싸우는 신념 없이는 우리의 우정도 헛소리입니다” 라고 마무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큰집 형님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겨우 무덤 속에서 빠져 나가는데요? 따뜻한 봄이나 만나서 별장이나 하나 장만하고 거드럭거릴 때가 되거든요.......!”. 이인화는 여전히 조선을 무덤으로 표현할 만큼 섬세한 감수성과 냉철한 현실 인식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꾸고자 집단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실천의 차원으로는 결코 끌어 올리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도 ‘구더기’같은 조선인들과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기 반성의 제스처를 취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제스처로 끝날 뿐이다. 이인화는 김천 형님이 자신을 향해 일갈했던 바, “너야말로 이기주의자로구나!”의 그 모습을 못 버리는 것이다. 김천 형님을 향해서 “구제라는 말처럼 오만한 말도 없고 자선이라는 행위처럼 위선은 없겠지요”라고 말하며, 종형인 병화를 향해서는 “동정이란 말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함부로 할 말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그가 실상은 바로 다른 이들 즉 가족들의 자선과 동정으로 지금까지 자신의 유학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음은 아이러니인 것이며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이인화 자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위선자의 모습을 이면으로 한 채 현실에 대하여 냉소적 비판의 자세를 유지하는 관찰자적 지식인의 모습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무정』의 이형식이 식민지 근대 국가의 지식인으로서 경험 중인 자기 욕망의 모순과 혼란을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엘리트로서의 기만적인 소명의식으로 치환하여 스스로를 구원하는 데 반해『만세전』의 이인화는 이형식과 같은 태도를 공상적인 이상주의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며 철저한 냉소주의자로서의 입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구원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비극적으로 인식하는 차원에서는 두 인물이 대동소이함에도 그 현실에 대처하는 최종적인 입장은 선도적 참여와 냉소적 환멸의 거리두기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형식과 이인화는 이광수와 염상섭이라는 두 식민지 근대에 실존했던 지식인의 각기 다른 삶을 문학적으로 대변해주는 인물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광수와 염상섭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나타났던 두 종류의 지식인 유형의 전형적인 모범일 것이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광수/이형식과 같은 운동의 선두에서 대중을 이끄는 지식인의 모델에 대해서는 절대 비판적이다. 문헌 상의 정확한 출처는 기억이 안 나지만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런 말을 남긴 것으로 기억한다. “혁명은 누구에게도 스승의 지위를 허락하지 않는다.” 혁명가 혹은 비판적 지식인은 대중 바깥에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대중의 일부로 존재하는 자이다. 불의한 현실의 변혁을 꿈꾸는 비판적 지식인이 대중의 일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가 착취받는 자, 소수자 또는 민중과의 기밀한 유대를 가져야 한다. 물론 그 방법은 소수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 안의 감추어진 소수자성을 부단히 성찰하고 발견하는 것 밖에는 없다고 본다. 이를 위해 스스로를 다수자로서 지식인의 한 사람이기 이전에 소수자 혹은 민중의 한 사람으로 먼저 정체화해야만 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 바깥에서 대중을 이끄는 지식인의 모델을 부정하는 것이 대중과 현실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리두기로 귀결되는 염상섭/이인화 식의 태도에도 나는 당연히 비판적이다. 현실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당파성의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현실과 일정부분 거리를 두며 고도로 추상적인 이론이나 관념의 영역에서 지식 노동을 최선을 다해서 해야겠지만  그것 역시 그 자체로서 최종적인 답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이인화와 이형식이 비극적인 현실에 대하여 나름대로 각기 다르게 내놓았던 두 종류의 지식인의 길을 우리는 모두 새로운 ‘질문’꺼리로 끌어안고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시 현재로서는 참여와 거리두기, 양자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는 사고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잠정적인 답변밖에는 못할 수밖에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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