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정 ㅣ 청목 스테디북스 42
이광수 지음 / 청목(청목사)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일그러진 근대적 욕망의 자화상, 이광수의『무정』
“이형식과 같은 인물은 1910년대 식민지 조선에만 존재했을까?”
400페이지를 넘는 책을 겨우 겨우 다 읽고 든 물음이 고작 그것이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무슨 공식처럼 외웠던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이광수의『무정』.” 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이 작품을 기준으로 한국의 소설사가 고전 소설 및 개화기 소설기에서 바야흐로 본격적인 근대 소설기로의 이행을 말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고 책을 천천히 읽어 나갔다. 사실 나는 신학을 전공한 이래로 소설은 물론이고 문학이라고 하는 고상한 예술에 일절 관심을 끊고 살아오다가 작년에 들어서 나름대로의 문제의식을 갖고 그나마 한국의 90년대 이후 소설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시간 날 때마다 띄엄띄엄 읽고 있다. 그런 나이기에『무정』에서처럼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작품의 전면으로 튀어 나와 독자들을 친히 계몽하는 작가 이광수의 파격적인(?) 서술방식은 적잖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으로 문학 텍스트를 많이 읽지는 못한 나이지만 신학이라는 인문학의 변두리에서 현대 인문학의 동향을 간접적으로 파악해 온 바에 따르자면, 적어도 탈근대 철학에서 근대적 주체(데카르트적 주체)의 죽음은 문학에서는 작품의 창조자 내지는 지배자로 상정되어 온 ‘저자’(author)의 죽음과 인식론적으로 상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적어도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1968년「저자의 죽음」이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선언적으로 공포했듯이, “글쓰기는 우리의 주체가 사라져 버린 중성적ㆍ복합적ㆍ간접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글을 쓰고 있는 육체에서 출발하여 결국 모든 정체성이 상실되고 마는 ‘부정’이 되어 버리는 것이”여야만 한다고 나 역시 생각해왔다. 그것은 내가 최근에 탐독하고 있는 김영하나 김연수, 배수아, 천명관, 박민규 등의 90년대 이후 한국 작가들에게서 탈근대적 글쓰기의 전형적인 모습인 작가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는 인물들의 자기 발언을 목격해 온 탓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광수의『무정』에서는 식민지 근대를 살아가던 지식인으로서 대중을 근대화의 흐름 속에 편입시키고자 발버둥치고 있던 이광수가 마치 작품의 인물들을 통해 독심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이광수는 지능적인 문학적 독심술로도 성이 차지 않았던지 전지적이고 무소부재한 작가의 시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작품 전체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노골적으로 웅변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이형식이라는 이 작품의 중심인물이 작가 이광수 자신의 분신이자 문학적 자화상이라는 전제 하에 이형식을 중심으로 식민지 근대를 살아가던 한 지식인의 분열적인 욕망의 주체성을 중심으로 이 작품에 대한 서평을 써보고자 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어렴풋이나마 이 작품 안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겹쳐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는 분명 이형식이라는 동경 유학파 출신의 경성학교 영어 교사와 그의 과거와 현재를 대변하는 두 명의 여인 간에 일어나는 애정과 결혼의 삼각관계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적절히 구성된-물론 전근대적인 고전 소설이나 개화기 신소설에서 감히 다루지 못했던 파격적인 주제, 이를테면 자유연애 사상이나 서구적인 결혼관을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을 서술하는 문체상의 표현 양식 또한 상당한 수준의 근대성을 성취했지만-표면적인 소재일 뿐 이 작품이 “잠재성의 차원”(내면에 감추고 있는)에서 실제로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는 아니라고 본다. 나는 오히려 이러한 겉으로 드러나 이야기의 구조 이면에 깔려 있는, 아니 좀 더 정확히 그러한 연애의 삼각관계를 수단화하면서 작중 인물의 대사나 작가 본인의 서술을 통해서 이광수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담론이 사실은 이 소설의 본질적인 이야기라고 본다.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것은 점점 작가 자신의 직접적인 서술이 아닌 주인공 이형식의 입으로 발화되기에 이른다. 작가는 독자들과는 별도로 작품의 주인공인 이형식이 작품의 내용 전개 과정-이형식으로서는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작가 자신이 이상화하고 있는 식민지 근대의 지식인의 모델을 발견하여 내면화하고 현실에서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훈육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이형식이라고 하는 식민지 근대의 한 지식인이 연애와 결혼이라는 개인적 문제의 갈등을 계기삼아 마침내 민족일반을 위해 봉사하는 애국지사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이형식 성장기』라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형식과 박영채, 김선형 그리고 기타 주변 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극적인 많은 사건과 내면 심리의 갈등 양상이 그 자체로서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이형식은 소설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이미 김선형과 정혼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기정사실을 위기로 몰아가는 박영채의 등장과 그에서 비롯된 며칠 동안의 사건들은 기실 이 작품이 대중소설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드라마틱한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끌어들여진” 이야기적 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이형식이 그러한 박영채와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연애의 문제를 삼랑진에서 목도한 민중들의 고난의 참상 앞에서 일거에 정리하고 그녀에게 새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교사”로 남게 된다는 이야기로 결말을 맺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작가 이광수가 이형식이라는 자신의 분신을 다소 신파적인 애증의 연애사 가운데 위치시켜 대중들 앞에 내놓으면서 결국 전달하고자 했던 그 이데올로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즉 소설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통해 당시 조선 민중들이 살아가고 있던 현실의 세계에 대하여 실로 “무정”(無情)한 사회로서의 상상의 관계를 부여하며 만들어진 이 작품의 의미체계는 대중들의 의식을 어떻게 구성하기를 의도했던 것일까? 이광수는 삼랑진에서 모든 주인공들이 해후하기 전까지 박영채와 김선형을 사이에 두고 심리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이형식의 모습을 매개로 하여 구한말 개항과 더불어 도래한 근대화의 물결이 일제의 가혹한 식민 통치와 만나면서 “식민지 근대성”의 이름으로 형성되고 굴절되는 과정을 온몸으로 겪고 있던 당시 조선 민중들에게 더욱 더 전면적인 근대화의 길과 전통 보수의 길 양자 간에 택일을 집요하게 종용한 것이다. 이러한 양자택일의 질문 조건 자체가 이미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광수는 이형식도 이형식이지만 전자와 후자의 대립이 빚어낸 비극을 가장 첨예하게 체현하고 있는 작중 인물인 박영채가 결국 최종적으로 선택한 길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주면서 이 작품의 독자들에게 근대 문명 지향이라는 민족적 지상과제와 그것의 유일한 방법적 수단이 교육밖에 없음을 강변한다. 물론 근대화를 전면화하자는 것이 일제의 식민통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민족적 고유성까지 상실하자는 이야기로까지는 결코 나아가지 않는다. 아마도 이광수 본인으로서는 근대화를 이룩하는 것이 식민화에 순응하는 것과 개별적으로 철저히 양립이 가능한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정치적인 투쟁을 통한 주권의 탈환이 없이도 교육이나 경제, 문학 언론 등 각종 모든 문명 사상의 보급만으로 충분히 이 나라를 강성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이광수의 발상, 또 식민통치에 대해서는 저항이든 순응이든 그 어떤 선택도 말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교육의 강화만을 외치며 조국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환상적으로 염원하는 이광수의 정신세계 내에서는 식민지 근대 시기에 민족적 주체성 수호와 자력으로의 근대화 성취라는 현실적으로 상호 모순적인 목표가 아무런 충돌도 없이 분열적으로 병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형식이 김장로 및 김선형에게 갖고 있는 선망의식을 떠받치고 있는 정서의 기제는 박진사의 문하생 시절부터 줄곧 기만적으로 내면화해온 “민족에 봉사하는 교육자”로서의 소명 완수라는 지극히 대승적이고 공적인 욕망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필경 박영채와 재회하고 삼각관계의 애정사를 극적으로 거쳐야만 했다. 물론 박영채도 결국은 이형식과의 사사로운 연애의 시련을 극복하고 김병욱의 설득을 따라 “우리 자손에게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을 걷는다. 삼랑진에서 재난 구호 음악회를 함께 치루는 과정에서 더 이상 “연인”이 아닌 “교사”가 된 이형식의 지도 덕분에 “민족에 봉사하는 지식인”의 길을 새롭게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형식이 김선형과 김병욱과 박영채 모두에게 스승이 되어 주었지만 결혼은 분명히 김선형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영채는 결국 이형식의 자기완성을 위한 지양(止揚)의 객체 혹은 대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는 작가 이광수에게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민족주의가 했던 역할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광수가 식민지 백성들에게 설파했던 민족의 자존과 근대화의 성공적인 완수, 이 두 개의 상이한 목표 간에 놓인 좁힐 수 없는 간극은 이광수 일생에 걸쳐 중첩과 단절, 확대와 축소를 거듭하다 결국 일제 말기에는 식민지 지배 논리를 자발적으로 수용하여 친일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는 것을 계기로 전자가 후자의 논리에 완전히 종속되어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형식 그리고 이광수는 식민지 근대를 살아가던 한 지식인의 근대화에 대한 열망이 민족주의적 감성과 내면에서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는 가운데 결국 둘 다 함께 파국을 맞는 모습을 나에게 생생히 보여주었다. 나는 여기서 근대적 지식인 모델의 우울한 종말을 확인하였다. 문제는 이것이 이형식과 이광수, 이 식민지 근대적 지식인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들 역시 저들처럼 서구적 근대성에 부합하는 개인과 사회의 이상을 의식적ㆍ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 가운데 자신들을 민족이나 민중을 위한 교사의 모델로 자기규정하고 끊임없이 자신으로부터 대중을 타자화하고 자신을 대중과 분리시키며 전지전능한 교사 혹은 입법자의 위치에서 대중을 계몽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이러한 지양의 과정이 어떤 특정한 이데올로기로 귀결되는지는 큰 문제꺼리가 아니”라는 입장을 펼 수도 있다. 즉 “소설 형식의 근대성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보다 문제적인 것은, 소설이라는 인식적 장치의 위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은 한 시대를 구획할 만큼 획기적인 것인지의 여부이다”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정』의 형식적인 소설미학의 근대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별도로 그것이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주조하고 있는 식민지 근대의 식민지적 정신성에 대한 메타적 비평 역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