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스 행복한 육아 15
버지니아 M. 액슬린 지음, 주정일.이원영 옮김 / 샘터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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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스라는 조용한 아이가 있었다. 정신적인 질병은 분명 아닌데도 불구하고 외부인이 보기에는 매우 이상한 아이로 비춰 진다. 일단 다른 사람의 말은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독단적으로 전개시킬려는 고집을 가지며, 눈에 듸지 않는 곳에서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이상한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속담이 있듯이 원인이 없는 문제가 있을 이유가 없다. 딥스의 비정상적인 행동은 그의 부모로 부터 유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딥스의 부모는 아이를 원치 않았다. 그들의 삶이 아이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들은 애기를 심하게 학대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각한 정서적 불안을 보였던 것이다.


어린 아이가 견디가 힘들었던 상황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딥스는 참으로 대견할 정도로 인내를 보이며 자신만의 세계, 그러나 타자와의 공준을 거부하는 세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딥스의 선생님은 놀이 치료를 통하여서 그 아이의 외부 세계에 대한 저항심을 극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였고, 더불어 사는 삶의 유익성에 대한 동경심을 유도하였다. 불가능해 보이던 치료는 완벽에 가까운 효과를 나타냈다.


딥스는 용서 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고난에 동참할 줄 아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변모해 갔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야말로 문제 해결의 첩경인 것을 알 수 있으며, 심리적인 긴장이 정서적인 장애도 초례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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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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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준은 바다라는 광장으로 갔다. 그가 맺은 결론의 희비극의 구분을 떠나서 분명한 것은 고통받던 인간의 영혼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그는 분명 선택할 수 없는 불가항력보다는 그 어느 쪽에서도 버림받을 수 밖에 없는 낙오자의 모습으로 제 3국을 향하지만 그 곳도 결국 텅빈 광장일 뿐이였다.


광장은 인간들에게 여유를 가질 만한 심적 공간이 되어 주었다. 같은 색깔을 지닌 이슈의 물결로 가득 찰 때도 텅빈 그곳을 가로 지르는 바람소리가 결코 의미없다고 못박지 못하는 안식의 장소였음을 이명준은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격변하는 한국 현대사의 모습은 마치 배 후미의 물결과도 같아 흰 구름과 같은 깊은 물고랑을 파내지만 곧 사라지며,  결국 다시는 볼 수 없는 물보라와 같다는 사실은 진실한 이데롤로기도, 사랑도 모두 잃은 자의 최후를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심각한 암시를 주고 있다.


이명준은 최후로 두 갈매기를 따라 갔다. 끝을 위함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뜻하기 위해 그는 바다라는 우주의 자궁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역사 전체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리없이 내리는 눈처럼 무의식 중에 이루어질 희디 흰 세상으로의 변환을 목도할 수 있으리라


광장에 함께 갔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광장으로 각자 사라져 갔다. 나도 분명 그중에 한명이 될 때, 광장은 광장이전의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무한한 공간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그곳은 초월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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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동행하십니까 - 개정판
후안 카를로스 오리티즈 지음, 김병국 옮김 / 바울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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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내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해 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생활 가운데 모든 일들을 주님과 하나가 되어 해결해 가는 것이라고...적어도 이렇게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소 안도가 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념뿐이라는 느낌을 지을 수 없어 안타깝다.


삶은 개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더더욱 아니다. 삶은 실재이며 그 실재 속에 신앙이 있고, 믿음으로 매 순간마다 임하시는 하느님의 은혜와 말씀을 체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르띠즈 목사는 따스한 체온을 주고 받을 수 있을 만큼 우리와 함게 하시는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옛날 샌달을 신고 넘마옷을 입으신 정적인 예수님이 아닌 나의 친구이며, 동반자인 주님을 영접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하나됨을 위한 여러가지 시도에 대해서 많은 공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종교 개혁이후에 개신교는 꾸준한 분열을 이루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가지를 칠 전망이다. 그러나 구원은 교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하나의 교회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분이였듯이 그 분의 값진 보혈의 댓가로 세워진 교회도 하나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분열은 분명 사탄의 획책이며,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인정하고 자행하게 사실은 이미 역사를 통해서 확인된 바이다.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을 지닌다. 혼자 감당할 수 없는 풍성한 사랑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다. 자꾸 그러고 싶은 것이다. 진실은 결국 통하게 되어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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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지음 / 문예마당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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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전통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무엇이 가능한 것일까? 왜 여성은 피해자로만, 남성은 가해자로만 분류되어야만 하는 비극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일까? 작가 공지영의 이 작품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이끌어 낸 책은 결코 아니다. 단지 그 모순을 공감케하여 해답을 유도해 낼 뿐이다. 결국은 영원히 다가설 수 없는 금단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인지도 모르며, 진실한 해답은 없는 질문으로 잊혀져 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성이 아닌 인간이라는 공통의 이름만으로도 우리의 문제이며, 바로 나의 문제인 것을 인식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혜완, 경혜처럼 각기 다른 개성의 여인들은 바로 나의 어머니의 모습이며, 내 여동생의 모습이기도 하다. 성적 차별에 따른 불평등의 차원을 극복하려는  사회에서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편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여성만의 출산의 고통만큼이나 필요악처럼 작용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여성의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남성은 결코 적의 위치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큰 적은 바로 여성 자신이며, 그 내면의 세계에서 움추려사는 기생충같은 자기암시인지도 모른다. 여성 스스로는 그 적에 대해서 잊고 지내지만 언제나 어디에서나 살아 움직이며 결정적인 치명타를 안겨 주고는 슬그러미 그 모습을 어두운 곳으로 감춘다는 것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


특히 어머니라는 지위에 오른 여성이 그들의 딸에게 하는 거의 무의식적인 성 역할 교육을 대물림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그 자리에 남성은 아주 위험한 공범의 역할을 꾸준히 행하는 불청객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여성 스스로의 해방은 그들 스스로 주체자라는 자각과 더불어서 그들의 협력자인 남성을 얼마만큼 끌어들이냐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를 발생할 수 있다.


신은 남성과 여성을 만드셨다. 그들은 원래 하나였으며, 언제나처럼 서로가 하나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사회의 구조가운데 움튼 거미줄을 제거하듯이 우리는 공동으로 사회의 성 평등을 획득하기 위해 더욱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그길만이 최소한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희생될 수 밖에 없는 여성을 만들지 않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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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이론을 만들자
이면우 지음 / 지식산업사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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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이라고는 인력 자원 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설정에 맞는 산업 형태는 무엇일까? 'W이론'은 이러한 제한적 사회구조의 한국 경제의 활로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한국형 아이디어 제품 특히 하이테크 제품에 대한 생산성 증대에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신바람이라는 국민성이 있다. 또한 개개인의 머리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며,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능력이 탈월하다. 'W이론'은 우리 국민의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고 계발하여 잉여가치를 창출해 내자는 의도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은 양적 인력 자원에서 질적 인력 자원이라는 전환의 의미를 직시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질적 인적 자원에는 전문적 지식은 물론 창조성 및 독창성 등과 같은 지식의 재생산적 특성을 요구하게 되며, 이와 병행하여서 인력의 유기적 결합과 활용의 여러 조건들을 알맞게 조합함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형 산업이론은 이제 단지 논지적 주장으로만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불황의 시대에 대한 위기 극복을 국가와 사회, 연구기관 상호간의 능동적인 배려와 협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경제의 앞날은 아득한 벼랑으로 추락하는 길만이 보일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W이론'은 오직 과감한 실천만이 있을 뿐이여, 그로 말미암은 생명력의 유지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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