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히 칼 융을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아류로 보는가? 만약 그들이 진검 승부를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떠할지 단정짓기 힘들 것이다. 결코 최초가 최고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케하는 분석심리학 모듬 도서를 소개한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페르조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실현의 세계로 들어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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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 하이드 외 지음, 방석찬 옮김 / 김영사 / 2002년 9월
5,800원 → 5,220원(10%할인) / 마일리지 2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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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 교양만화로 결코 가볍지 않게 융을 소개하고 있다.
내 생에 처음 만나는 칼. G. 융- Sophia Books 2 : 우리 마음의 심층구조
사카모토 미메이 지음, 노지연 옮김, 와타나베 마나부 감수 / 현실과미래 / 1999년 11월
6,500원 → 5,850원(10%할인) / 마일리지 3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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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미메이의 정교한 심리묘사로 융의 다이나믹한 인생을 만화로 선보인다.
융 심리학 입문
캘빈S.홀 / 범우사 / 1998년 3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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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개인적으로 가장 처음으로 융의 분석심리학을 알게된 중립적 관점의 소개서
한 권으로 읽는 융
에드워드 암스트롱 베넷 지음, 김형섭 옮김 / 푸른숲 / 2001년 4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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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구성으로 비교적 여유있는 호흡으로 융의 분석심리학 탄생 배경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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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기능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지음, 김용옥 옮김 / 통나무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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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이성관은 한마디로 ‘이성의 기능이란 삶의 기술(the art of life)을 증진시킨다’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이 말은 소위 '적자생존'같이 생존을 위한 투쟁에 있어서 최적자가 덜 적합한 부적자를 제거한다는 식의 진화론자들의 오류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환경요인의 제한에 따른 생존력(개체 지속성)을 본다면 오히려 비생물인 바위가 오히려 분자구조의 견고함을 더 오랫동안 유지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엔트로피 제 2 법칙에서 볼 수 있는 무질서도를 역행하는 생명의 신비는 그 본질적인 경향이 과연 어디에서 부터 비롯되었는가라는 질문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우주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해결점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빅뱅이 무한한 에너지의 물질적 도출이라는 전제로 가정한다면 우주는 분명 현재로서는 분명 확산적 경향 즉 공간적 확장과 물질의 다변성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끊임없는 무질서도를 증가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우주의 확산적 경향이 과연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일단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러한 우주의 본질적 속성을 그대로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해서 생명체는 외부의 에너지를 내부로 끌어들어 다양한 생명현상의 원동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분명 엔트로피 법칙을 역행하는 다양한 분자생물학적 메카니즘을 유발하는 그 어떤 본질적 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어 준다.


화이트헤드는 이성을 이러한 엔트로피 법칙의 역반응으로 일어나는 상향성으로 정의하고 있다.이성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환경에 대한 능동적인 공격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화이트헤드는 다음의 3중의 충동이 자로잡고 있다고 하는 테제를 제의한다.


(1) 산다. 이는 생존하는 것
(2) 잘 산다. 이는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생존하는 것
(3) 더 잘산다. 이는 만족의 증가를 획득하는 것


이러한 테제가 의미하는 바에 따르면 이성의 원초적 기능은 바로 그 공격을 환경에로 방향지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은 이성이 사실에서라기보다는 상상속에 구현되는 목적의 달성을 향한 충동을 비판하고 지시하는 경험의 한 요소라는 테제와 결국 같아진다.


어떠한 방법론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피곤의 법칙은 용서없이 엄습한다. 좋은 삶이라 하는 것은 불안정한 것이다. 따라서 생존의 방법은 그 자신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그냥 생존하는 수준으로 퇴행해 버리거나, 과거의 관습들을 자유롭게 떨쳐버리고 더 잘 사는 모험을 시작하는 두 가지 기로에서 갈등하게 만든다. 삶의 권태란 새로운 대비를 향한 충동의 좌절로부터 연유되는 피로를 말한다. 자연에서는 안정이 확보되는 세가지 방법이 있다고 화이트헤드는 주장한다.


(1) 맹목의 방법 : 원점으로의 퇴보를 통해 상승의 경향성을 포기하면서 안정화를 획득하는 것
(2) 잠시의 방법 : 맹목적으로 새로운 개체들을 통해 대체시켜 피로로 부터 그 종을 보호하는 것
(3) 리듬의 방법 : 반복 파생된 피로를 제거하기 위해 경험에 대한 주기의 다양성을 획득하는 것

어떠한 방법이든 결국 이성의 반(反)인 피로의 작용은 상향에 되달하려는 원초적 성격에 있어서 이성의 패배를 안겨줄 가장 큰 위협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우주의 기본적 이중성인 하향과 상향을 육체와 정신이라는 복합적 단위로 파악될 때, 신체적 경험이라는 순전한 물체적 경험이 구체성의 형식의 경험인 정신적 경험으로 실현을 위한 형식 충동에 어떻게 공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중성의 통합은 개별적 자체 존재성이 경험속에서 도출된 목적성으로 인해 다수적 목적의 결합이 이우어질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한다.


지성적 경험의 고도의 형식들은 정신적 경험과 물체적 경험이 복잡하게 융합되고 또 재융합하는 과정에서 출현하는 것들뿐이다. 이는 공허한 구체성을 향한 충동으로서의 정신이 실체화 시킬려는 충동인 욕망을 이성이라는 비판자를 통해 새로운 내재적 초월의 충동으로 승화하면서 나타난다.


사변이성에서 출발했지만 17세기 부터 시작된 자연철학과 형이상학의 오랜 반목의 세월은 상호간의 극단적 대립만큼이나 서로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받았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더 큰 골을 파놓았다. 사실 과학적 탐구에 있어서 참이냐, 거짓이냐? 라는 질문은 어떠한 상황에서 참과 거짓이 성립되는지 적용범위의 한계를 정해놓고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어리석다고 할 수 있다고 화이트헤드는 주장한다.


과학이 귀납적 일반화와 관찰 가능성이라는 엄밀성을 전제로 한다 하더라도 관찰된 사실의 범주라는 제한성과 과일반화의 오류라는 한계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를 과학적 체험의 단순한 기술로써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더더욱 자명한 사실이다.


화이트헤드의 주장에 따르면 사변이성이라는 용어속에서 '이성'은 합리적인 것의 질서정연함에 호소하는 것이고, '사변'은 어떤 특정한 방법을 끊임없이 초월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희랍인의 비밀이란, 이러한 초월에 있어서 조차도 방법의 구속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희랍인들은 논리라는 말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넓은 함의에 있어서 논리를 발명했고, 인류의 수세기의 경험의 축적에 의해 마침내 완성된 희랍의 논리학은 인간의 한 믿음의 내용이 귀속되어야만 하는 일련의 기준을 제시한다.


(1) 직관적 경험의 일치
(2) 명제의 내용의 명료성
(3) 내적 논리적 일관성
(4) 외적 논리적 일관성
(5) 다음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하나의 논리적 도식의 상태
     1) 경험과 광범위하게 일치하며
     2) 경험과 어떤 부조화를 일으키지 않으며
     3) 그 범주적 관념들 사이에 정합성이 있으며
     4) 방법론적인 결론을 갖는다.


희랍인들이 인류의 문명을 재건한 다양한 과학의 분야들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적 도식의 창진적 생산으로 말미암았다. 한 도식의 생산이야말로 사변이성의 가장 중요한 업무에 속하며 그 도식을 구성하는 범주적 관념들의 상관된 일군의 조직은 연역적 논리의 구성적 힘에 힘입어 파생적인 확대를 허용한다.


도식은 이해자체로 만족하려는 사변이성의 특별한 요구를 만족시킴으로써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관념의 자본을 형성한다. 무용화라는 낭비의 관찰로부터 유용한 발전적 결말이 도출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도식이 매우 중요하지만, 사변이성의 예술은 단지 도식의 활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식의 초극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화이트헤드는 못을 박고 있다.


단순한 물리적 경향성을 뛰어넘는 이상적 목표를 향한 목적적 인과를 실현하는 욕구의 발견할 수 있다. 이성의 기능은 생명체가 내부계를 끊임없는 역하향화를 막는 수준에서 벗어나 목적지향적인 창진적 요소를 사변이성으로 더듬어 찾고 실천이성으로 구체화시킬려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상향적 경향이야 말로 인간이 우주적인 대전제인 엔트로피 법칙을 역행하면서까지 다문화적 요소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인류는 다른 타종과 다른 진화적 경로를 따라왔다. 그것은 이성의 진화였다. 유구한 역사를 관통하는 문화적 창발성을 지속하게 했던 이성의 힘이 과연 미래에는 어떠한 항로를 선택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우리는 과학문명의 혁신적 발전이라는 빛나는 바벨탑 위에서 신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교만함에서 한발 물어서서 이성의 메타 인지적 기능을 스스로 다져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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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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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뇌가 하나도 차이가 없다. 단지 그는 우리가 습관처럼 사용하는 사고의 진행 방식을 거부할 뿐이다. 창의적 발상은 누구에게나 섬광처럼 나타나지만 그것을 구체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그 차원의 문을 그는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나무는 장편을 쓰기 위한 긴 호흡에서 오는 압박감을 짧은 호흡으로 일정 부분 풀어 버릴려는 작가의 자위적 창작물이다. 하지만 결코 그의 역량이 입에 발린 사탕처럼 얕은 수준으로 표출되는 작품을 결코 아니다. 창작의 시작은 아주 가벼운 생활 체험에서 비롯된다. 그는 그러한 하나 하나의 경험을 단순하게 흘려 버리지 않는다. 


아기와 성인이 다 똑같은 생명의 가치를 인정 받듯이 단편과 장편은 큰 차이가 없다. 단편은 언제든 장편으로 진화 할 수 있으며, 그 반대로 장편 중에는 오히려 단편으로 구성해야 더 탄력적인 이야기로 풀 수 있는 작품이 있다. 작가는 다분히 후자에 해당하는 소재들을 모아서 단편 모음집 나무를 완성했다. 물론 이중에는 장편으로 발전시킬 만한 것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이 단편으로 짧고 굵은 감동을 안겨주는 편이 더 좋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일찌기 개미라는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낯설게 보기'라는 발상의 전환을 일깨워 준바 있다. 작품 나무에서도 우리는 그의 관조적 외계 시작을 느낄 수가 있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문득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이지만 그는 끝에서 드러나지는 반전을 통해서 각각의 소재가 가지고 있는 생뚱맞음을 결코 게으른 자의 공상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생각의 관성은 우리들을 습관의 동물로 쉽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정작 중요시 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스쳐 지나가게 만들게 한다. 작가는 그러한 부분을 매우 아쉬워 했을 것이다. 그가 가지는 궁극의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귀결된다. 딱히 정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그가 던지는 화두는 우리가 삶 속에서 망각해 가는 창의적 상상력이라는 샘을 마르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샘의 물은 자꾸 퍼낼수록 더 맑고 많이 쏟아나지 않는가? 그 노력의 결실은 결국 독자가 짊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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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과 우리의 역사교육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8
김한종 지음 / 책세상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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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실제 교과서 채택에서 0.05%에도 미치지 못하자 규탄의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오히려 그 비판의 칼을 소신 있는 목소리로 우리 역사교육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쪽으로 유도하려는 세력이 날로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단발성 논의에만 그치고 마는 역사교육에 대한 염려를 출발점으로 삼은 이 책은, 이제는 역사교육도 고유한 사고방식이나 구조를 가진 하나의 독자적 영역으로서 학문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 때난 들먹이는 역사교육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분명히 경계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논란과 관심은 일시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학교 역사교육의 현장에서 학생들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반면 태조 왕건 같은 역사 드라마나 역사스페셜 같은 TV 다큐멘터리, 날립하는 대중 역사서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흥미 위주의 역사적 사실을 실제처럼 각인시킨다는 사실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저자는 역사교육에 대한 논의가 좀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하나의 학문으로서 역사 전반에 대한 감시관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또한 균형 잡힌 역사의식과 역사 연구 방법을 습득한 역사 교사들을 양성하여 실제 교육 현장에서 생산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는 자칫 추상적인 문제제기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책에서는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우리 역사교육의 현실이 대중물이 갖는 극적 요소가 학생들의 흥미를 쉽게 끌어당기는 측면 때문에 대중 역사교육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는 데에는 무엇보다 구태의연한 학교교육의 책임이 크다고 보는데 개인적인 견해로는 경제 논리에 휩쓸려 토대 자체를 위협받는 인문학 전반의 침체, 특히 디지털 시대의 도래가 유달리 역사학에서만 민감하게 작용하는 요소라는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마모되고 분실된 역사적 사건의 사료가 다지털화되어 기존의 역사학이 담당했던 '해석'을 거부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사실로 보존 가능해진 것이 오늘날  패러다임 전체가 바뀌는 상황에 처한 역사교육의 현실은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은 역사교육의 현실문제의식을 토대로 저자는 7차교육과정 개편안을 통해 축소되어진 국사교육의 비중과 근·현대사 교육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과목으로 확정된 사실을 지적하며 그것이 가져올 역사인식의 편중화를 염려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의무적인 역사인식의 주입이 과연 그가 원하는 역사교육을 통한 고유한 사고방식이나 구조형성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백미는 역사를 바로 보려는 옳바른 역사관 확립을 주장하는 마지막 장에 있다. 민중사학론의 입장에서는 국사 교과서가 지배집단 위주의 기존 사회질서를 옹호함으로써 변혁운동을 막으려는 지배 이데올로기임을, 민족주의 입장에서는 국사 교과서가 국가·민족 관념을 주입시킬 더할 나위없이 좋은 매체로 받아들여짐을 각각 정리하면서 우리 사회가 이중의 이데올로기적 잣대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음을 비판한다.


그러나 저자가 정작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적한 사항은 학생들의 코드에 맞는 교재 개발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실제 수업에서 멀티미디어 역사교재의 개발과 활용을 통한 추체험이나 감정이입에 의한 역사수업, 대중의 일상 생활사를 강조함으로써 역사를 친근한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왜 역사를 배우고 무엇때문에 국사를 배워야 하는가라는 자문을 저자는 절실한 실존적 물음으로 통감하면서 사학이 역사가의 가치관의 개입이 다분한 해석학의 한 학문인 인문학의 한 분야로서 이 같은 본질적 물음에서 시작하지 않는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언제고 역사 왜곡과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서 악용될 소지가 많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역사교육은 이같은 본질적 물음을 바탕으로 하여 이념과 내용, 방법이 한데 어울려 이루어질 때라야 하나의 통합된 인식이자 삶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저자의 주장은 우리가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격언이라 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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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5
조한욱 지음 / 책세상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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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역사서술의 중심이 였던 혁명이나 전쟁, 군주나 영웅 중심의 역사가 아닌 일반 민중의 생활사에 관심을 둔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다룬 서적이 풍년을 이루고 있다. <커피의 역사>,<먹거리의 역사>,< 해적의 역사>,<아로마: 냄새의 문화사>,<고양이 대학살> 등 다양한 주제로 출간되고 있는 신문화사 서적들은 역사의 변방에 흩어져 있는 일반 민중의 삶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우선 신문화사라는 새로운 조류의 역사 서술이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요약하자면 '두껍게 읽기', '다르게 읽기', '작은 것을 통해 읽기', '깨뜨리기'등인데, 이러한 관점은 이제까지 보편적으로 인정되어 왔던 역사적 사건을 전혀 다르게 설명하는 방법들이다.


특히 1730년대 파리의 한 인쇄소에서 일어난 '고양이 대학살'은 단지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할 수 있는 사건이였지만 로버트 단턴은 이 사건을 두고 프랑스혁명 이전 노동자들의 정신세계로 광범위하게 파고들어간다. 이로부터 단턴은 인쇄공들의 생활부터 대중들의 의례와 상징, 민속에서의 고양이의 의미와 상징 등을 읽어내는  '두껍게 읽기'의 모범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궁극적으로 기존의 역사학이 유지해와던 역사의 이해와 서술방식을 단지 파괴하기 위한 깨뜨림이 아니라 해체를 통해 정형화된 틀을 새로운 방식으로 성찰하여 더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틀로 만들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각 시대별, 각 계층별로 다양한 소재의 프리즘을 통하여 역사를 본다면 여러가지 역사적 상황의 문제의식이 새롭게 설정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새로운 종류의 역사인 신문화사가 종래의 역사학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우선 역사를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며 더 나아가서 한국인도 '서양사'를 생산하는 입장에 설 수 있게 한다. 신문화사는 광고지, 연애편지, 낙서 등 글로 된 자료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역사서술의 사료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문화로 보면 역사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작은것을 통해 크게 보는 '역사'를 강조하는 저자는 이러한 신문화사 관련 서적을 소개하면서 역사를 다양하게 그리고 밑으로부터 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다는 점,타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다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 등 다양한 시각에 의해 풍성하게 드러난 역사가 한데 어울릴 때 역사는 좀 더 원형에 가깝게 복원될 수 있다 장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신문화사나 미시사가 기존의 아날학파식의 거대한 설명의 틀이라는 역사 서술 방법을 완전히 대체한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는 저자의 멘트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우리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의 전환은 마치 금속활자가 성경을 수도사의 손에서 민중의 손으로 옮겨 준 것과 같이 보다 능동적으로 이 사회를 직시하고 더 나가서 새로운 역사를 펼쳐 나가는 주체 세력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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