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어둠의 경로로 산 CD로 <못말리는 결혼>을 봤다. 김수미의 원맨쇼가 빛나는 예고편을 보고 볼까 싶었는데 시간이 안맞아서 못본 영화. 웬일로 어머니가 집에 계셔서 "엄마 좋아하는 김수미 나온다"고 꼬셔서 같이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극장서 안보기를 정말 잘했다. 결말이 뻔히 보일만큼 스토리는 허섭했고, 간간이 나오는 유머는 스토리와 따로 놀았다. 이걸 영화라고 만들었는지, 개그가 되는 김수미 하나로 어떻게 해보려는 건 너무 관객을 만만히 보는 행위였다. 혹시 한국영화는 한국인이 봐줘야 한다고 애국심에 호소하려 했을까.
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 고마워한 건, 어머니가 이걸 너무도 재미있게 보셨기 떄문이다. 어머니는 김수미만 나오면 그냥 웃으셨고, 다 보신 뒤에는 나 덕분에 "진짜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며 좋아하셨다. 친구들을 만나서 자랑까지 했다니, 정말 감동하셨나보다.
예전에 <아폴로 13호>를 본 적이 있다. 그 후 그 영화가 재미있다고 권한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지만, 사실 그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은 적지 않다. 톰 행크스가 나온 영화 중 흥행 몇위안에 들어갈만큼 인기를 끌었다나. 영화를 보고 난 뒤의 느낌은 이렇듯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고, <못말리는 결혼>을 재미있게 봤다고 해서 그 사람의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영화에서 어떤 면을 중시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디 워>도 사실 그렇게 논란이 될 게 없는 영화였다. 히치콕 등 유명 감독의 영화를 보며 공부를 한 평론가들의 눈에 <디 워>가 좋아 보이지 않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그네들에게 "왜 별점을 낮게 줬냐?"고 따져 물을 필요는 없었다. 언제부터 우리가 평론가가 매긴 별점을 따라 영화를 봤는가. 반면 충무로 분들은 네티즌들이 디워에 열광하는 걸 불편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네들이 애국심으로 영화를 보든, 아니면 돈이 남아서 영화를 보든 무슨 상관이 있는가? 스크린쿼터를 찬성하고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높아지는 걸 바란다면 <디워>가 거기에 보탬을 준다고 해서 해로울 게 뭐가 있을까?
공부를 많이 한 평론가들에게는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가 직업이 아닌, 취미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겐 재미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 그리고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마당에 누구든지 디워가 재미있다고, 혹은 쓰레기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거기에 대해 "왜 너는 그렇게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느냐?"고 다그치는 일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월권행위다.
영화가 보고싶거나 심형래가 잘되길 바라는 사람은 그냥 디워를 보면 된다. 안봐도 뻔하다는 사람은 안보면 된다. 그리고 본 사람의 소감에 대해서는 제발 왈가왈부하지 말자. 주관적 느낌은 제아무리 100분 토론을 한다고 해서 결론이 날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