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안 시켰지만 그냥 맞춤법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구분하다'와 '구별하다', 이 두 놈만 패볼 요량입니다. 제가 전부터 헷갈려하던 놈들인데요. 지금 읽고 있는 <책 쓰자면 맞춤법>에 분명 나올 것 같았는데 아직까지 안 나왔고, 목차를 살펴보니 뒤에도 안 나오리라 예상되어서 제가 따로 혼자 조져봤습니다. 이 책에서 이놈들이 등장할 거였으면 지난 시간에 살펴본 '구분해서 써야 할 동사와 형용사' 파트에 나왔어야 했는데 엥? 지금 보니까 저자가 단 저 제목도 '구별해서 써야 할 동사와 형용사'로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드네요? 흠.... 일단 한번 공부해 보겠습니다. 저도 아직 머릿속에서 정리가 덜 된 상태라 쓰면서 확실히 알게 될 것 같아요.
먼저 이놈들의 사전적 정의를 볼게요.
구분하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전체를 몇 개로 갈라 나누다.
구별하다: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갈라놓다.
솔직히... 이렇게 봐서는 둘이 뭐가 그렇게 다른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럴 땐 국립국어원으로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맞춤법이기에 질문과 답변이 이미 많이 올라와 있었어요. 가져와서 좀 볼게요.
옳고 그름은 구분하는 게 맞나요, 구별하는 게 맞나요?
[표현은 표현 의도에 따르게 되는데, 문의하신 경우에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성질에 따라 나눈다는 뜻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구별하다'로 표현할 수 있겠고, 대상이 되는 여러 것을 '옳은 것과 그른 것'이라는 두 가지로 나눈다는 뜻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구분하다'로 표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표현하는 이의 의도에 따라 다르므로 정해진 답은 없다는 말로 들리네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할 수도 있고 구분할 수도 있고. 아......
어떤 상황에 구분과 구별을 써야 하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어떤 상황에 구분과 구별을 써야 하는지 구별하기 어렵다.
둘 중 어떻게 쓰는 게 맞나요?
또 '공과 사를 구분하다.'라고 쓰면 안 되나요?
[온라인 가나다에서는 단어 간의 미세한 의미 차이에 대해 직접적이고 단정적으로 말씀해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단어의 사전적 의미 외에도 구성 요소의 용법이나 단어의 용법에 따른 언어 차이, 주로 쓰이는 언어 환경이나 화자의 습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아야 할 문제임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내용과 관련하여 유의어 사전 등을 참고해 보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일부 견해에서는 '구분'은 어떠한 대상을 나누는 기준에 주목하는 표현인 반면, '구별'은 어떠한 대상을 나누는 행위 자체에 주목하는 표현으로 풀이하기도 하는데, 이를 참고해 보실 수 있어 보입니다. 다만 실제 언어를 사용하는 상황에서는 이 둘의 차이가 아주 엄격히 인식되지 않는 양상을 보이므로, 말씀하신 상황에서는 '구분'을 쓸 수도 있고 '구별'을 쓸 수도 있어 보입니다.]
아악!!!!!!!!!!
답변을 보다 보니 국립국어원에서는 형태, 구문론적인 문법과 관련된 질문의 경우 정답을 딱 말해주는 데 비해 이런 의미론적인 질문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애매하게 말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검색을 이어가면서 다른 종류의 문서들도 살펴봤습니다.
구분하다
- 전체 집단을 어떤 기준에 따라서 '나누는' 것.
- '분류', '구성'과 유사.
구별하다
- 어떤 대상들을 차이점에 근거하여 정확히 '인식하는(아는)' 것.
- '분간'과 유사.
'구분' 또는 '구별'을 쓰려는 자리에 '구성'을 써보라고 합니다. 써 봤을 때 내가 의도한 원래 말과 큰 차이가 없거나 문장이 자연스러우면 '구분'을, 어색하면 '구별'을 사용하라고. 좋은 팁이네요. 그래도 이 방법을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공식처럼 사용하는 건 무리일 듯합니다.
예문을 볼게요.
'구분하다'
- 이 PC방은 흡연석과 금연석으로 구분한다.
- 혈액형은 일반적으로 A형, B형, O형, AB형으로 구분된다.
- 실수는 유리수와 무리수로 구분된다.
'구별하다'
- 장발이 유행하던 시절에는 남녀가 구별되지 않았다.
- 누가 형이고 동생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 '가다'와 '오다'를 각각 'go'와 'back'으로 구별한다.
한 문장에서 '구분하다'와 '구별하다'가 모두 사용된 예문도 볼까요?
- 'ㄱ・ㄹ・치다' 하나로 쓰이다가 '가르치다'와 '가리키다'로 구분되었고, 현재는 이 둘을 구별해서 쓰는 것이 옳다.
- 직접 구분하고 구별할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구분한 대로 구별할지는 본인 나름이다.
어떠신가요? 저는 이제 감이 좀 잡히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과연 실제로 글을 쓸 때 항상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자신은 없네요. 맥락을 잘 고려해 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구분해서 써야 할 동사와 형용사'일까요, '구별해서 써야 할 동사와 형용사'일까요? 여기까지 공부하면서 고민해 봤는데,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문장은 아닌 것 같아요. 의도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헷갈리기 쉬운 동사와 형용사 들을 뭉뚱그려 대강 쓰지 말고 잘 나눠서, 분류해서 써야 한다는 의도에 방점을 찍는다면 '구분', 헷갈리기 쉬운 동사와 형용사의 차이를 잘 판별해서, 분간해서 써야 한다는 의도에 방점을 찍는다면 '구별'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제가 만든 예문 안 나오면 섭섭해하시는 언니들을 위해 연습 문제를 만들어 봤습니다.
1. 잠자냥 님을 향한 은오의 마음은 사랑인지 집착인지 (구분/구별)하기 어렵다.
2. 은오는 아직 잠자냥 님의 육고들을 다 (구분/구별)하지 못한다.
3. 은오의 인생은 잠자냥 님을 만나기 전과 후로 (구분/구별)된다.
4. 은오는 멀리서도 잠자냥 님을 (구분/구별)할 수 있다.
5. 은오는 읽을 책을 읽은 책과 (구분/구별)해서 꽂아 놓았다.
답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지난 빼빼로데이에 대나무 빼빼로를 선물받은 우래기를 잠시 띄웁니다.
제 답안지는 아래와 같긴 한데...
1. 잠자냥 님을 향한 은오의 마음은 사랑인지 집착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2. 은오는 아직 잠자냥 님의 육고들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3. 은오의 인생은 잠자냥 님을 만나기 전과 후로 구분된다.
4. 은오는 멀리서도 잠자냥 님을 구별할 수 있다.
5. 은오는 읽을 책을 읽은 책과 구분해서 꽂아 놓았다.
제 답이 정답인지 아닌지 채점은 잠자냥 님이 해주실 겁니다. 맞혔겠죠?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