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와식생활을 더 알차게 해줄 물건을 들였다.
하루종일 본가 소파에 널브러져서 책 읽고 있던 나를 한심하다는 듯 지켜보던 엄마의 물음.
"전자책 보는 기계 그런 것도 있던데 넌 없냐?"
"사주게?"
"아니?"
"사주고 싶어하는 거 같은데...."
"니 돈으로 사"
"난 아직 애기잖아"
"다 큰 년 키우기 힘들다...."
원래 엄마가 뭐 사줄 기미가 보이면 사달라고 졸라야 한다. 돈 벌기 시작하면 이 짓도 못하니까 할 수 있을 때 해야 함.
그렇게 해서 엄마 돈으로 얻어(뜯어)낸 이북리더기.
오닉스 포크5다. 이건 6인치고, 7인치인 오닉스 페이지를 같이 두고 깊이 고민했는데, 침대에 누워서나 갖고 다니면서 쓰기엔 6인치가 나을 것 같아서 이걸로 결정. 받아보니 역시 딱 적당한 사이즈라 만족스럽다. 근데 페이지가 화이트 색상으로 나왔으면 페이지 샀을 듯. 기계는 모름지기 화이트인 것인데 화이트 색상의 리프2는 단종이었다.
사실 이게 첫 이북리더기는 아니고, 전에 페이퍼에도 크레마 사운드를 썼다고 적은 바 있는데, 몇 년도에 썼었나 궁금해서 조회해 보니까 그랑데였네?
나와 잠시나마 함께했던 크레마 그랑데는 2018년에 중고나라로 팔려갔다. 아마 지금쯤 다른 사람의 손에서 생명을 부지하고 있거나 고장나고 버려져 형체도 없을 것이다. 5년도 더 지난 일이니 그때 왜 팔았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전자책 구입이 돈 아깝게 느껴져서였을 듯. 포크5로도 밀리의 서재만 이용할 생각이다. 전자책은 종이책이랑 가격도 별로 차이 안 나면서 물성 없이 앱 속에만 존재하는 게 너무 괘씸함. 거기다가 내 돈을 쓸 순 없음.
밀리의 서재 오랜만에 결제해서 둘러보니까 볼 만한 책이 꽤 많다. 각 잡고 읽어야 하는 책들은 밀리에 있어도 종이책을 구입할 생각이니 가볍게 읽을 책들만 밀리에서 읽으면 될 듯. 리더기 사진에서 화면에 보이는 책 역시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고 있는데, 은유의 <출판하는 마음>이다. 잠자냥 님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읽는 중(ㅋㅋ)인데 재밌음.
근데 리더기는 진짜 발전이 없는 것 같다. 포크5도 거의 6년 전에 썼던 크레마 그랑데랑 별다른 게 없고 겁나 느려서 당황함. 한줌 독서인구 상대로 리더기 팔아 봐야 돈 안 벌리니까 개발 의지도 없고.... 기업들이 뛰어들지도 않고....
2. 읽고 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절반 가까이 읽었고, 아직까지는 표제작이 제일 좋다. 별 감흥 없는 단편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좋음.
<트릭 미러> 이거는 또 좀 급박하게 산 책인데, 받자마자 너무 알차서 감동받았음.
에세이치고 분량도 많고(460페이지) 빽빽하다. 너무 좋아! 난 사이즈 작고 얇고 여백 많은 책이 싫다. 페이지 수는 가끔 확인해도 책 크기는 거의 확인 안 하고 사는 터라 작은 줄 모르고 시키고 작은 책이 올때가 있는데 그럼 괜히 실망스러움. 그리고 작고 얇은 책은 책장에 꽂아뒀을 때 멋도 없다. 이거 은근 중요함.
아무튼 이 책은 아직 50쪽가량 읽어서 다 읽고 나서 어떻게 평가하게 될지 확신은 못하지만 초반부터 이렇게까지 날카롭고 흥미로운 걸 보아하니 이놈이 초반에 찍 싸고 끝날 조루일 확률은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저자가 88년생이고 현시대 얘기라 재밌다.
그리고 여성 작가의 에세이니까 생각난 김에 말하자면 내 최애 여성 에세이스트는 캐럴라인 냅이다.
아래부터 위로 <명랑한 은둔자>, <욕구들>, <드링킹>, <먼 길로 돌아갈까?>.
<먼 길로 돌아갈까?>는 캐럴라인 냅이 쓴 건 아니고, 냅과 거의 영혼의 짝꿍이었던 게일 콜드웰이 냅과의 우정, 애도와 상실에 대해 쓴 에세이인데, 냅에 대한 애정과 궁금증으로 산 책이지만 그걸 제하고 보더라도 좋은 에세이였다. 추천합니다.
<개와 나>는 내가 반려동물을 키운 경험이 없어서 후순위로 계속 미루다가 아직 안 샀다. 캐럴라인 냅이라면 어차피 좋을 테니까 살 것. 그게 마지막 하나 남은 번역서이니 읽는 건 아끼더라도.
비비언 고닉은 얼마 전에 읽은 <짝 없는 여자와 도시>가 좋았고, 리베카 솔닛은 별로였다. <멀고도 가까운> 읽다가 덮음. 근데 이건 나 빼고 다 좋다고 해서 중고로 팔진 않았고 나중에 한번 더 펼쳐볼 생각이다. 올리비아 랭도 <작가와 술> 읽다가 덮었다. 이건 팔았음. 조앤 디디온은 아직 안 읽어봤는데 궁금하다. <푸른 밤>을 읽어보고 싶음.
3. 북다트 대신 인덱스를 쓰기 시작했다.
북다트는 계속 꽂아두면 책이 무거워지거니와 꽂아두고 안 빼다가는 한 달에 한두 통씩 구입해야 할 터다. 그래서 나는 읽으면서 북다트를 꽂고 완독 후에는 꽂아둔 부분을 타이핑해서 에버노트에 저장해 놓은 후 북다트를 제거하는 방식을 오랫동안 고수해왔다. 근데 요즘 진짜 타이핑 하는 게 겁나 귀찮은 거다. 다 읽고 나면 빨리 다른 책 읽고 싶어 헉헉.. 하면서 타이핑하는 걸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방식을 아예 바꾸기로 결정. 인덱스를 쓰기 시작했다.
지저분한 거 못 참는 성질은 나랑 한몸이기에 인덱스 붙일 때도 길이 맞추려고 별 지랄을 다 한다. 인덱스 붙여가며 읽은 지 다섯 권쯤 되니까 이제 감이 좀 생겨서 뗐다 붙였다 하는 빈도가 줄긴 했다. 아무튼 이게 타이핑하는 것보단 덜 귀찮음.
다른 분들은 인덱스도 붙였다가 떼서 냉장고에 붙이고 독서대에 붙이고 아무데나 붙이고 재사용하시는 것 같던데 난 그냥 계속 붙여둔다.
이 인덱스 예쁘죠?
이건 다들 사지 마세요 제발.... 일시품절이 아니라 평생품절 시켜야 됨. 붙였다 떼면 책에 끈끈이 남는 스레기임.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저도 알고 싶지 않았다는 답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