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이벤트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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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 Angels & Demon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를 보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서 또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
나는 비록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희미하긴 해도 <천사와 악마>의 원작을 읽었기에 줄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주인공으로 나오는 탐 행크스나 이완 맥그리거의 팬도 아니고, 원작을 영화로 어떻게 각색했는가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내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을 너무나 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프랑스에 걸쳐 지하에 방대하게 건설된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가 얼마나 굉장한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고, 가보고는 싶으나 언제 가 볼지 모르는 로마와 바티칸의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따라서 이 리뷰는 영화의 줄거리와 '콘클라베', '일루미나티' 등에 대해 궁금한 분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나의 목적은 달성이 되었을까. 오히려 영화상영 내내 실망만 거듭해야했다. CERN은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잠깐 나오는 데다가 실험 장면은 만화같이 약간 유치했다. 실제로도 입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하여 충돌시키는 실험이 그렇게 모니터로 영화를 보듯 펼쳐지는 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양의 반물질을 만들어 내는 실험이 아직 성공하지 못하는 걸로 봐서 굉장히 아름답게 묘사된 실험 장면들은 상상으로 창조된 장면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로마에서 촬영된 장면은? 로버트 랭던교수가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뛰어다니는 모습 뿐. 정작 내가 보고싶던 아름다운 로마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도 않았다. 더구나 실망스럽게도 영화의 많은 부분은 미국에 세운 세트에서 촬영한 실내장면이었고... 심지어 <천사와 악마> 등장 인물 중 두번째로 중요한 인물인 궁무처장 역의 이완 맥그리거조차 로마를 한번도 가 보지 못했다며 투덜거렸을 정도라 한다.
영화에 나오는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시스티나 성당, 피에트로 광장, 나보나 광장, 판테온, 그리고 추기경을 차례로 죽이는 곳인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모두 미국에 세트로 만들어 졌다.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서 세트는 필요했겠고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같은 경우는 공사 중이라는 설정에 맞추어야 하기도 했겠지만, 그 세트나마 랭던이 하도 바쁘게 뛰어 다니는 바람에 찬찬히 감상 할 여유가 없었다. 자세히 보여주면 세트라는 게 너무 드러날까 봐 그랬을까? 그러나 천정벽화가 가득한 시스티나 성당까지 재현해 만들어 내다니 영화 제작진은 정말 대단하긴 하다.
랭던이 바쁘게 뛰어 다니는 게 불만인 건 어디까지나 로마 구경을 하러 영화를 보러 간 사람의 입장에서 그랬다는 말이고. 시간에 쫓기며 긴박하게 이어지는 사건들이 흡입력이 있어서 영화가 훨씬 재미 있었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긴 하다.
생각해 보니 영화에서 진짜 로마의 모습은 차로 이동하다가 건물로 들어가거나 사건이 벌어지는 장면으로 전환되기 직전까지... 정도 라고 볼수 있다.
결국 로마를 보려면 로마로.... 그런 결론을 내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덧붙이자면 영화를 보면서 정말 걱정되었던 것은 영화의 배경인 로마 시내 중요 장소마다 하나씩 자리잡은 오벨리스크들이다. 로마에 오벨리스크가 이렇게 많은 줄, 그리고 이렇게 중요 성당 앞에 하나씩, 광장 마다 하나씩 있는 줄 나도 미처 몰랐다.
이 영화는 15세이상 관람 가능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동반한 초등학생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이 사전 지식 없이 이 영화를 보면 오벨리스크는 로마사람들이 만든 기독교의 유물이라고 오해할 듯 하다. 오벨리스크는 종교적 성격에 있어서 기독교에서 보면 우상숭배에 가까운 유물이며, 더구나 로마의 유물도 아닌 이집트에서 강탈한 유물인데도 말이다.
전세계의 오벨리스크 중 6개가 본국인 이집트에, 놀랍게도 더 많은 13개가 이탈리아에 있다. 김경임 씨의 책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에 보면 저자는 이 오벨리스크를 '제국주의에 바쳐진 고대 문명의 상징'이라는 말로 칭한다. 강탈당한 지 2000년이나 흘러 이제는 돌려 달라는 말 조차 꺼내지 못하는 오벨리스크, 정말 슬픈 일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곳 몇곳을 보자면
나보나광장에 있는 베르니니가 설계한 작품 모로분수 (무어분수라고도 한다.)
반물질이 숨겨져 있었던 바티칸 성당 지하 묘지
성 베드로 광장 (산 피에트로 바실리카 혹은 세인트 피터 바실리카)
콘클라베를 위해 자리가 준비된 시스티나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