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L의 전화를 받았다. 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한숨을 몰아쉬는 그의 목이 콱 메어있다. 나는 차마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L에게는 대학 1학년 때부터 만난 오래된 연인이 있었다. 지방의 대학교를 다니던 그들은 함께 공부를 해서 우리 학교로 편입을 해 왔다. ‘이비인후과’(otorhinolaryngology) 같은 단어를 외워야 통과할 수 있는 편입영어의 지난함과, 중퇴자가 생겨야 뚫리는 바늘구멍 TO를 감안한다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였다. L은 대학을 졸업한 뒤 군대를 갔는데 여자 친구는 군소리 한번 없이 그를 기다려줬다. 전역을 한 L은 노량진으로 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그놈의 공무원 시험이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던 것. 나이는 자꾸 먹고, 모아놓은 돈은 없는데, 오래 만난 여자 친구는 혼기가 차오고 있으니.. 그는 그럴수록 마음을 다잡고 수도승처럼 책상머리에만 붙어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점점 연락이 잦아드는 L 때문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어쩌다 데이트를 하는 날에도 L은 늘 무릎이 튀어나온 같은 츄리닝 바람이었고, 데이트 장소도 늘 거기가 거기였다.
이제 모텔엔 그만 가고 싶어. 라고 그녀가 말 했을 때. L은 그 말의 진위를 간파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그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벌써 만난 게 몇 년인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던 L이 슬몃 걱정이 들었던 것은 1주일도 더 지난 시점.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전화도 메일도 불통이었다. 아차 싶어 집 앞에까지 찾아가 기다리는 L을 여자 친구는 다시 만나주지 않았고, 몇 달이 지난 후, 그는 그녀가 중국어 과외를 해 주던 어린 하사와 만나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무렵부터 L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공부를 하다 말고 찬 공기를 마셔야 했다. 내게 수시로 전화를 해서 징징거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나는 그 때마다 상담을 권했지만 그는 매번 늘 그 문턱에서 다시 돌아왔었다. 상담과 처방은 그에게 그의 정신이 망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었으니까. 가끔 만나서 족발로 신경을 돌려놓으면 잠시 멀쩡해지나 싶다가 접시가 비면 또 다시 슬픔에 가득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는 그제 그녀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게 문자를 보냈다. “미잘아, 나는 이제 신을 믿지 않기로 했다.”
#. 2
그래, 신이 있다면 연아가 금메달을 땄겠지.
BC2012년. 아니, 신은 죽은지 오래니까. BCE(Before Common Era)2012년이라고 하자. 여하튼, 호주에 살던 시절, 연인과 이별했다.
나는 늘 사막에 가고 싶었다. 비행기가 호주 대륙에 접어들었을 때 창밖으로 보인 그 어마무시한 황무지로. 저 멀리 보이는 인간의 마천루들은 그 황무지에 쌓아올린 레고 몇 조각처럼 하찮아 보였고, 그 압도적인 자연은 치명적으로 매력적이었다.
이별한 그 순간, 나는 ‘빗방울처럼 혼자’였고, 아무런 미래도, 삶도 없는 것 같아서, 사막에 가기에 딱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주섬주섬 배낭을 싸 52도의 폭염이 쏟아지는 사막으로 나섰다. 길을 몰랐으나 별 상관은 없었다. 그 곳은 어디든 사막이었고, 끊임없이 걷고 싶은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다.
그러나 지금, 그 모든 일들은 일어났다가 기록에만 남은 일로 변했으며 지금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제 3차 늘보의 난’으로 규정할 뿐이다.
“그러니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나는 말을 해 주었지만, 나도, 내게 전화를 한 그도 알고 있다. 말로는 슬픔이 덜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 3
'이별할 때면, 사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면의 모든 감정이 일시에 솟구쳐 오른다. 평소와는 다른, 어둡고 혼돈스러운 내면으로 들어가 저 위에 열거된 것과 같은 부정적인 자기 모습과 만나게 된다. 바로 그것을 마주 볼 자신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예 이별을 외면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P.33 좋은 이별-
소설가가 ‘심리’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을까. 사실, 철이 지나도 한 참 지난 프로이트와 리비도 얘기로 가득한 심리 에세이가 얼마나 ‘심리’적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이다.
내가 간과한 사실은 행간에 사람을 창조하고, 글로 인격을 부여하는 소설가들이야말로 인간 심리의 달인이라는 점이었다. 책을 다 읽고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던 이유는 김형경 작가가 프로이트 아니라 히틀러를 인용했더라도 이별한 자의 마음을 따듯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혜안을 먼저 가졌기 때문이었다. 혹은, 자신의 책을 설명하는 그 너무도 낭랑한 목소리에 내가 설득 당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좋은 이별’을 사서 L에게 보내주었다. 그 책이 나보다 더 나은 상담자인 건 확실하니까.
#. 4
오늘 아침 S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또 다른 L이. 그리고 또 얼마 전에는 루리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게다가 그 남자친구는 내가 선별해 바친 조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슬퍼하고 있다. 바야흐로, 상실의 시대인가 보다.
지금 그들이 헤어짐이라는 감정에 휘청대는 건 그것은 앞으로 가능한 모든 사랑을 일시에 포기해 버리는 결단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누릴 수 있는 사랑의 총량이 일거에 박탈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별은 독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건대, 우리는 차는 편이든 차이는 편이든 대체로 이별의 전조를 읽어오지 않았던가. 무릎이 튀어나온 츄리닝을 입고 매주 같은 모텔로 연인의 손목을 잡아끄는 남자에게 최소한, 그 순간 사랑은 그렇게까지 소중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아닌 다른 남자를 생각하는 순간 사실 그녀는 새로운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런 전조를 애써 외면하거나, 혹은 기대감이 사랑의 총량보다 크다고 판단할 때, 버리거나 버림받는 것이다. 그 순간 슬픔이란, 일상을 잃은 허전함에 불과하다.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감정인 것이다. 차마 말은 못했지만,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