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오래 전 유행했던 PC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마린’ 유닛을 업그레이드 하다보면 ‘스팀팩'(stimpack)이라는 주사기 모양의 버튼이 뜬다. 버튼을 누르면 유닛의 HP가 일부 줄어드는 대신 총기 연사속도가 두 배로 빨라진다. 철 모르는 꼬맹이들도 대충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스팀팩’의 정체가 ‘마약’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스팀팩의 모티프가 된 약물은 ‘페르피틴(pervitin)’일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전장에서 군인들의 능률 향상을 위해 '메스암페타민'을 원료로 하는 각성제를 개발했다. 이 약물의 힘을 빌어 롬멜의 7기갑사단은 72시간동안 수면 없는 강행군으로 프랑스 침공의 선봉에 설 수 있었다.
이후, 약물의 제조 기술은 연합국으로 전파되었고, 일본의 ‘스미모토제약’은 이 약을 제조해 널리 보급했다. 이 약을 복용한 일본의 군수공장 직원들은 24시간 이상 야근하며 군수 물자를 찍어냈으며, 군인들은 밤 낮 없이 경계근무를 설 수 있었다.
이 약물의 상품명은 그리스어 필로포누스(Philoponus)에서 유래했다. 일본 사람들은 ‘노동을 사랑한다’라는 의미의 이 낱말을, 세련된 자신들의 발음체계를 활용하여 포장지에 적어 넣었다. ‘히로뽕’. 이 약물의 이름이다.
#. 2

메스암페타민-히로뽕은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하고 재흡수를 방해한다. 도파민은 기억력, 사고력, 정보, 행동을 조정하며 전두엽을 활성시키는 호르몬으로, 도파민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어 뇌 속을 헤집고 다니게 되면 사람은 흥분 상태에 빠지게 된다. 승리한 듯한 행복감과 무엇이든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 터질 것 같은 활력, 도취된 공격성과 성적 충동이 평정심을 압도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사고력과 집중력이 평소의 약 190%까지 향상되는데 가령, 복잡한 퍼즐문제를 풀때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할 수 있으며, 정확도는 오히려 향상된다. 경험담에 따르면 이 약물이 유발하는 ‘사고 가속력’은 한번도 보지 못한 복잡한 기계의 설계도면을 그대로 머릿속에 집어넣어 능숙하게 기계를 해체하고 조립할 수 있게 만든단다.
이 약의 외부적, 내부적 부작용은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에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환각, 강박적인 행위, 망상, 또 체중감소에 따른 건강 훼손, 심장마비 위험, 끊었을 시 강도 높은 우울감... 드라마 뿐 아니라 어떤 자료를 찾아봐도 이 약물에 손을 댄 사람의 말로는 행복하지 않았다.

(매스암페타민 유저- 부작용의 결과)
#. 3
갑자기 메스암페타민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웹 서핑을 하다 다음의 기사를 읽고 부터다. ‘강남엄마의 '공부 알약''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40304052721211)
학생들의 공부 능률 향상을 위해 부모가 ADHD 치료제인 페니드 따위를 불법적으로 또는, 합법적으로(?) 구해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ADHD는 말이 '장애'지 무슨 병명이 아니라 '기질'에 가깝다. 심지어는 확정적으로 진단하는 방법'조차 정착되어 있지 않다. 좀 정신 산만한 아이는 어딜 가나 한 둘은 있는 것을, 약으로 다룬다는 생각은 지독하게 어른들 을 위한 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어쨌거나 그 '치료제'의 구성 성분이 바로 ‘메칠페니데이트’(C14H19NO2). 메스암페타민(C10H15N)과 친척관계에 있는 성분이다.

(메스암페타민, 메칠페니데이트의 분자식)
두 물질은 생긴 것만 비슷할 뿐 아니라 효과도 비슷하다. 다만, 메칠페니데이트는 메스암페타민처럼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시키지 않아 농도를 조절하기 용이할 뿐. 분비된 도파민의 재흡수를 억제해서 뇌내 도파민의 양을 늘리는 매커니즘은 마찬가지다. 의존성, 중독성 및 기타 부작용도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내용에는 별 차이가 없다. 이 약을 여러 알 모아서 한 번에 복용하거나, 혹 어둠의 방법으로 복용한다면 사실 이것은 마약성 처방약이 아니라 마약 그 자체다.
#. 4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명제에 동의한다.
또한 '마약'으로 규정된 여러 약물들이 반드시 인간에게 해로움만 끼치는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오랫동안 널리 진통제로 사용되는 모르핀도 아편의 일종이며,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담배와 알콜의 중독성과 의존성은 마리화나보다 강력하다. 체코의 정신의학자 스타니슬라프 그로프는 저서,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에서 가장 강력한 환각제로 알려져 있는 LSD도 인간의 정신적 계발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실천적 연구를 통해 밝힌다.
한 마디로, 나는 마약의 활용조차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리버럴한 도덕률에서도 타인에게 마약을 강요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행동이다. 미성년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 5
70년 전 일본군의 지휘관은 대 일본 제국의 승리와 덴노 헤이까의 영광을 위해 히로뽕을 보급했다. 약물에 도취된 병사들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걷고, 싸우고, 짜릿한 기분으로 총알을 적군의 머리에 박아 넣었을 것이다. 그 인간이 만든 공포와 절망의 마지막 장에서 일본 병사들은 지옥에서 온 야차의 역할을 담당했다. 두려움도 잊고, 국가를 위한 살인에 최선을 다 했던 병사 일부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학도병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70년이 지난 지금, 소리 없는 전장 속에서 또 다시 이 약을 삼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국가의 승리 대신 미래의 두둑한 통장 잔고와 부모의 영광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다. 그들은 적고, 외우고, 짜릿한 기분을 느끼며 친구의 어깨를 밟아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한다.
마르크스가 그랬던가.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번째는 희극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