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에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시집이 있었다..
다름아닌 기형도의 <잎 속의 검은 잎>이다..
기형도..
기형도는 그렇게 나의 청춘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어떤 기약도 없이 내 의식을 잠복하면서 말이다..
난 부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90년대 초에 난 늘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빈 집> 전문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지금 생각해보면 아련하던 시절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요동친다..
죽음, 고독, 공포, 우울, 폭압, 부조리, 절망 등등 암울함에 대한 시가 유독 많았던 시인 기형도..
그 무렵 내게도 어쩌면 우울함을 무척이나 즐기던 청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때의 침울했던 시기를 잘 견뎌냈기에 지금의 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벌써 그가 사망한지 20년이 지났다..
1989년 3월, 그가 종로의 어느 영화관에서 뇌졸증으로 사망한지 20년..
1960년 4.19가 있던 해에 태어나 1985년 '안개'라는 시로 등단한 시인 기형도..
내가 듣기로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고 감동한 그가 찾은 곳은 소설 속의 '무진'(순천)이었다는데..
소설 <무진기행>이 모티브가 되어 습작한 시가 '안개'였다는데..
나 역시 '무진'(순천만 대대마을)을 무척이나 상습적으로 들낙날락했었다..
아무튼 기형도는 내 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아마도 문학과지성사 시집 중에서는 가장 많이 팔리지 않았을까 싶다..
기형도는 내 입장에서 큰 형님 같은 존재였다..
시대의 우울에 대해서..
군사정권의 폭압에 대한 저항의식에 대해서..
미소년이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절대적 고독에 대해서..
절망적인 요소들에 의한 죽음이나 자살적 충동이나 탐닉에 대해서..
사회적 어둠 혹은 개인적 어둠에 대한 공포에 대해서..
부조리와 대치하는 관념들에 대해서..
아주 사소한 작위적인 의식이 치명적으로 다가올 때의 섬교한 작용에 대해서..
젊은 시절에 이러한 것들의 유착하면서 나는 마치 그를 추종이라도 하듯이 수 년을 보냈다..
그리고 대학도 문예창작을 선택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김승옥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대학 초반에 자꾸만 관념적 분위기의 시를 써서 교수로부터 적지 않게 꾸중을 들었던 적이 있다..
어쩌면 내가 그에 대해 지나친 모사가 아니었을까..
기형도의 그로테스크한 시들이 어쩌면 그 시대의 절대적인 저항이었을 것이다..
故 기형도를 추억하듯 최근 그에 관한 책이 출간됐다..
1부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를 읽는 시간
2부 기억할 만한 지나침 - 기형도와의 만남
3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 기형도 다시 읽기
많은 문인들이 기형도를 추억했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제목은 모두 기형도 시의 제목이다..
<질투는 나의 힘> 전문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억할 만한 지나침> 중에서 - 기형도
(…)
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서기)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전문 - 기형도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여섯 개의 줄이 모두 끊어져 나는 오래 전부터 그 기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나의 슬픔과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 부드러운 음자리로 배열해주던'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 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기타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나는 경악한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힘센 기억들을 품고 있다. 기타 소리가 멎으면 더듬더듬 나는 양초를 찾는다. 그렇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이상한 연주를 들으면서 어떨 때는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도 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기형도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가수 김광석을 떠올리곤 한다..
딱히 유사점을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어쨌든 난 그랬다..
기형도의 시를 읽다보면 시의 구절 속에서도 김광석을 연상케 한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에서의 '낡은 악기'(기타)가 그렇고..
<정거장에서의 충고>에서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가 그렇다..
사실 문학의 현장에서 기형도가 그랬다면..
공연의 무대에서 김광석이 바다 한가운데의 부표처럼 각각 표류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기형도를 생각하면 김광석 뿐만 아니라 평론가 김현도 지나칠 수 없다..
시집 <잎 속의 검은 잎>의 해설을 쓴 김현도 마른 여덟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기형도의 시를 총칭해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했던 김현의 비평은 대단했다..
김현의 예리한 통찰력과 직관력, 관조력은 80년대 진보한 평론의 큰 핵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