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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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감각에 대한 자연과학적, 문학적, 신비주의적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애커먼은 칼럼형식 글쓰기를 통해 우리 세대의 글읽기에 부합하는 묶음형식의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자칫 너무 전문적이기 쉬운 과학지식의 소개로부터도 벗어나 있고, 혹 너무 감상적이기 쉬운 감각의 서술에서도 거리를 유지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과학컬럼이 어떤 부분에서는 에세이가 또 다시 여행기가 그리고 서평들이 등장한다. 어쩌면 한 주제로 묶어낸 남의 블로그를 들여다 보는 느낌의 이런 글쓰기는 무척 신선하고 앞으로의 글쓰기의 한 모형을 보여준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 기존의 글 읽기에 편안한 독자에겐 약간 어색하고 껄끄러운 형식이 될 수도 있다. 언뜻 전문적인 것 같은 지식들도 독창적인 것은 아니고 기존의 정보를 별 순서나 논리관계 없이 나열한 듯 보이기도 하고, 에세이와 여행기 또한 앞 이야기들과 분리되어 수필 자체의 재미나 깊은 감성을 건드리기보다는 반짝거리기만 하는 묘사들과 상품후기적 기술로 비칠 수도 있어서이다. 한 주제로 써내리는 글이 논리의 계단위에서 결국 길게 써 갈수록 머나먼 비약으로 치닿게 되는 것이 모더니즘적 글쓰기라면, 이러한 종류의 포괄적 개괄적 표면 감각적 글쓰기는 포스트모던 글쓰기라고 불러야할까? 작가의 주변을 떠도는 이런 글쓰기는 그래서 책의 내용 속에서도 글쓰는 행위에 대한 서술과 작가로서의 창작관을 많이 드러내게 된다.

컬럼리스트의 글들, 인터넷 뉴스, 상품 카탈로그, 기관지, 이제 나도 포스트모던 글에 익숙해져야 할까...아직은 나는 비수를 지르는 한줄기 글쓰기에 더 기쁨을 느끼고, 그래서 터져나오는 내면의 깊은 수맥에 더 목말라있어 이런 접시물 핥기에는 아직 적응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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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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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58년,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BBC에서 일하던 아체베의 첫 작품이며 동시에 2007년 부커상을 타게 한 대표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출신 종족인 나이지리아 이보족에게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일어난, 급격한 서양문물의 유입으로 인한 변화에 대한 연대기적 기록을 남기면서, 또한 당시 독립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신생 나이지리아를 위한 [독립국으로서의 자아]를 찾아내려는 시도하고 있다.

더 이상 유럽의 역사와 토양에서 자라난, 이식된 세계관이나 지배-피지배의 구도 속에서 강요받는, 지배자들의 이해(利害)와 얽혀있는 타자의 시선이 아닌, 자기 뿌리에 놓인 고대의 문화와 타 문명과의 충돌에서의 실패와 식민지배까지를 포함하는, 자기자신만의 시선을 찾으려는 노력인 것이다. 한편으론 반성도 하고 한편으론 그렇게 자조할 것은 아니라고 위로도 베푸는 이런 자기존중의 시선은 오직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내성이 없이는 주어질 수 없으며 새로운 자아로 출발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스타팅블럭임을 아체베는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내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아체베 인터뷰 중에서)]

주인공 오콩코는 그래서 신화적 인물도 작가의 피붙이도 아니다. 그는 이보족의 평범한 야심가이며 전시대적 장점과 변화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인물이다. 마치 루쉰의 아Q와 같은듯 다른 듯한 이 인물은 그래서 가장 잘 이보족의 소멸되어버린 부분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동시에 스스로 부끄러운 자기자신들 속의 모습이기도 하다.그것은 작가 안에 살아있는 자신에 대한 거북함이며, 동시에 새롭게 입안에 쳐 넣어진 현재에 대한 메스꺼움이다. 이런 인물의 실패를 통해 아체배가 기대한 독자들인 개화된 나이지리아인들은 더 이상 거부도 굴종도 아닌 자기자신의 모습을 지니고 떳떳이 세계의 개활지 속으로 걸어나아가야 함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또한 실패한 과거와 이식된 문화 속을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 무척 잘 이 과정을 적응한 케이스인 우리는 남이 가르쳐준 기술로 다시 되팔아먹기도 하고, 남의 스포츠로 일등도 하는 나라가 되었다. 또 한편으로 스스로 비웃어마지 않던 자신의 문화, 풍속, 역사-부끄러하던 김치, 비실용적이라던 한복, 숨기던 수제비, 부대찌게, 떡볶이를 외국인에게 권하는 지경이 되었다. 사실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다]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거기서 자라고 영양분을 받고 생각의 틀을 마련한 까닭이다. 또한 여태껏 너무 우리 것을 홀대하고 살도록 압력 받아 왔기 때문에 이제는 소중이 여길 때도 됐다. 우리는 나이지리아보다 여러 유리한 조건으로 이제 정체와 자신감에서 아체배가 그리던 모델과도 같은 나라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면서 우리의 모습은 도리어 우리를 지배하던, 우리를 비웃던 사람들을 닮아가고 있다. 중국사람에 대한 슬쩍 얕보고 싶어하는 마음, 동남아 사람에 대한 동정을 가장한 우월감, 러시아, 동유럽, 남미 국가의 하얀 사람들을 보며 얻어보려는 보상심리들. 우리는 가난할 때 더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이웃들에게 예전보다 차갑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운전에서 바쁘고 서로의 양해 아래 무례하다. 다른 사람들을 나를 위한 부속물로 여기도록 자녀를 기르고 있는 사회다. 교활한 것을 자랑거리로 여긴지 제법됐다. 성적(性的)인 추문을 상대에 대한 또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 여기지 않는다. 뒤쳐진 사람의 추락을 방치하는 사회구조를 고치지 못한채로 또 1년을 보냈다.

Things fall apart; the center cannot hold;
Mere anarchy is loosed upon the world,
The blood-dimmed tide is loosed, and everywhere
The ceremony of innocence is drowned;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
(The Second Coming, William Butler Yeats)

오콩코가 꿈꾸었던 부족 촌장의 꿈이 자신의 욕심으로 바로 눈 앞에서 산산히 부서진 것은 사실 그 자신의 만족, 자신 밖에 모르는, 다른 사람을 돌보지 않는 이 마음에서 찾았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우월감으로 타인을 무시하는 사람은 결국 영국인도 오콩코도 우리도, 예이츠의 시처럼 붙잡아주는 중심이 없어 부서져 흩어지는 일만 남은 소용돌이가 아닌가? 우무오피아 여인들이 죽으면서 부르는 노래인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좋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는 고통 가운데 살아가야 했던 가난했던 과거의 우리보다는, 이제 인간으로의 존재가 흩어져나가 쓰레기넝마조각으로만 인간성의 치부를 가린채 비인격적 관계와 자살과 성범죄 속을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부르는 노래인양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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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이룰 그 자손 예수 - 마태복음강해 1
박영선 지음 / 세움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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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목사님은 [구원, 그 이후], [하나님의 열심] 등의 책으로 한국 기독교에서 구원의 이해와 기독교인 삶의 포괄성을 보여준 분이다. 남포교회 설교의 내용을 책으로 정리한 [마태복음 강해] 은 요한복음 강해, 에베소서 강해와 함께 박영선 목사님 설교의 흐름과 중심내용을 보여준다.  

인간의 희망이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메시야에 있음에서 마태복음은 출발한다. 유대인들이 공유하던 이 생각. 하지만 유대인의 기대와는 달리 왜 예수는 죽임을 당하는 자리에 설 수 밖에 없는지를 마태는 그의 글의 서두에서 구약의 예언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인간자신은 어쩔 수 없는 죄악을 고쳐 그 백성을 만드시는 일이 하나님의 구원이다. 그리고 그 일은 인간으로서는 손하나 꼼짝할 수 없는 불가능한 숙제이다. 자신내면의 구제불능함을 그리고 구원자의 필요성을  모른다면 우리는 구원을 위해 불가능한 경주를 계속해야 하는지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이 죄악을 우리가 어떻게 해 보려하는 시대를 산다. 지금 불만스런 것들은 늘 해결방법이 있을 것이라 여긴다.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속속들이 가난하고 죽음을 향해 곧바로 달려들어가는지 알지 못하고, 하루를 일희일비하며 사는 작은 우상들이며 작은 왕들이다. 마태는 예수의 오심으로 어떻게 우리가 이미 자녀가 되었으며,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자기 폭군으로 멸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경에 나타난 그 뜻을 따르고, 그분께만 채움받고 사는 존재가 되었는지를 보인다. 자기 혼자 만인에 대한 투쟁을 치르는 애처러운 존재가 아닌 하나님을 부모로 모신 삶이다.  

아버지가 아닌 또 다른 복을 얻어내는 우상으로서의 신이 된다면, 십자가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깨닫게 하여 이웃을 사랑하게 하지 않고 천국가는 통행증이고 만다면 이것이야말로 마태가 지적하려하던 유대인들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임을 이 책은 명확히 드러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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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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챈들러의 첫장편이 발표된 1939년은 세계에 2차 대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해이다. 20년대말에 불어닥친 대공황으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던 미국은 루즈벨트의 경제정책에 힘입어 다시 재기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었다.  

이런 경제적 불확실성과 전쟁의 불안 속에서 대중은 싼 가격에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읽을거리인 펄프픽션을 즐겼었다. 이런 대중적 필요 위에 제대로 된 교육과 문학적 자질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쪼들리던 작가들이 만나는 곳이 이런 미국 대중문학의 출발이 된다. 20-30년대 금주령 시대의 갱조직, 경제적 필요에 의한 범죄들, 방만하고 관리되지 않으며 개개인의 사건사고에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 경찰. 여기에 고독한 사립탐정이라는 한 전형이 생겨난다.  

챈들러 역시 영국에서의 공무원 생활을 뒤로하고 LA에서 극빈자로 연명하는 작가였다. 생계형 작가인 그의 글은 하지만 펄프픽션이면서도 대중의 고급스런 글과 분위기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필립 말로는 범죄의 한 가운데서 25달러의 일들을 목숨걸고 해내면서도 의연한 인간됨을 갖는다. 이건 챈들러의 소망이기도 하고 이 시대에 살아남으면서도 가치있는 인간이기도 원했던 독자의 바램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대사, 촘촘한 플롯, 굵직한 메인 캐릭터, 전형이 될만한 소설로 자격이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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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는 곰브리치 세계사 2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이내금 옮김 / 자작나무(송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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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지향하는 종교의 실패, 이성이라는 종교의 실패, 기술이라는 종교의 전성시대로 곰브리치는 서양전근대, 근대사를 요약해 놓는다.  

권력을 지향하는 종교는 결국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성적 부산물로 전락했다. 이성을 절대적인 위치로 올려 놓았을때 이성은 우리를 속여 커다란 사기극에 살인자로 동참하게 만들었다. 기술을 의지하고 주어지는 것을 받아먹고 살아가는 우리는 사육되는 존재로 바뀌어가고 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말한 괴테의 일갈은 참... 인간존재의 한계를 보여주며 세계사를 통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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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1-0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를님, 잘 지내시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카를 2010-01-04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