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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감각에 대한 자연과학적, 문학적, 신비주의적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애커먼은 칼럼형식 글쓰기를 통해 우리 세대의 글읽기에 부합하는 묶음형식의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자칫 너무 전문적이기 쉬운 과학지식의 소개로부터도 벗어나 있고, 혹 너무 감상적이기 쉬운 감각의 서술에서도 거리를 유지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과학컬럼이 어떤 부분에서는 에세이가 또 다시 여행기가 그리고 서평들이 등장한다. 어쩌면 한 주제로 묶어낸 남의 블로그를 들여다 보는 느낌의 이런 글쓰기는 무척 신선하고 앞으로의 글쓰기의 한 모형을 보여준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 기존의 글 읽기에 편안한 독자에겐 약간 어색하고 껄끄러운 형식이 될 수도 있다. 언뜻 전문적인 것 같은 지식들도 독창적인 것은 아니고 기존의 정보를 별 순서나 논리관계 없이 나열한 듯 보이기도 하고, 에세이와 여행기 또한 앞 이야기들과 분리되어 수필 자체의 재미나 깊은 감성을 건드리기보다는 반짝거리기만 하는 묘사들과 상품후기적 기술로 비칠 수도 있어서이다. 한 주제로 써내리는 글이 논리의 계단위에서 결국 길게 써 갈수록 머나먼 비약으로 치닿게 되는 것이 모더니즘적 글쓰기라면, 이러한 종류의 포괄적 개괄적 표면 감각적 글쓰기는 포스트모던 글쓰기라고 불러야할까? 작가의 주변을 떠도는 이런 글쓰기는 그래서 책의 내용 속에서도 글쓰는 행위에 대한 서술과 작가로서의 창작관을 많이 드러내게 된다.
컬럼리스트의 글들, 인터넷 뉴스, 상품 카탈로그, 기관지, 이제 나도 포스트모던 글에 익숙해져야 할까...아직은 나는 비수를 지르는 한줄기 글쓰기에 더 기쁨을 느끼고, 그래서 터져나오는 내면의 깊은 수맥에 더 목말라있어 이런 접시물 핥기에는 아직 적응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