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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 쉽게 읽는 칸트 ㅣ 쉽게 읽는 철학 1
랄프 루드비히 지음, 박중목 옮김 / 이학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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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카를(나): 내가 어떤 생물의 세포사멸과정에 있어서 그 주역할을 하는 과정을 차단한다면 그 생물은 영생할 수 있는가? 사멸의 과정이 일정한 방법으로 작동한다면 그리고 그 사멸이 오직 그 방법에 의해서만 일어난다면 분명 나는 사멸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귀납법적인 정보들은 분명 이 [영생의 방법]이 필연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영생은 가능한가? 우리의 인식과 판단, 도덕적 기준의 설정에 조예가 깊으신 고수 두분의 의견을 들어보자.
흄: 수많은 정보의 총합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로크의 주장대로 우리의 일체의 사물의 작동원리가 경험에 의해 도출되며, 우리의 지식이나 신념이란 지각이 남기는 인상과 이로부터 추론된 상상의 산물들이므로, 그 정확성을 획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예로 든 사멸의 과정이라고 일컫는 것 자체도 인과론적인 틀을 추정하고 연결시킬 뿐, 결국 필연적이라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의 확률적 개연성안에서는 결국 명확하고 엄밀한 보편적 지식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앞의 절차는 오류를 거듭하여 인간의 혼동으로 몰아넣고 자포자기하게 할 것이다.
칸트: 우선 나는 엄밀한 지식의 불가능성에 대한 흄의 견해에 반대한다. 오성은 선험적으로 존재의 감각적 인지의 기초로서 시간과 공간을 상정하듯이, 사물의 판단의 근간으로서 인과관계,필연성, 실재성 등을 판단하는 범주를 이미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식의 엄밀성에 있어 반복적으로 경험되어지는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타당하게 어떤 사실간의 인과관계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비록 지각에 의해 경험되어지지만 우리의 오성은 이것이 원인과 결과로 묶여져 있음을 인지하고 반성하며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이미 갖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앞의 문제에 관하여 이러한 [사멸과정]이 논리적으로 입증되어진다 하더라도 나는 이것이 [영생]을 얻게 되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나는 비록 해당과정에 의한 사멸은 연기 되거나 취소되어진다하더라도 그 생명체의 영구적 사멸방지는 발생하지 않고 다른 방향의 사멸이 불가피하게 발생할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선험적으로 육체의 생명이 한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육체적 생명체가 불멸하고 지속된다는 관념은 다수의 감각으로부터 얻은 정보로는 적합해 보일지 모르나 불멸은 영혼에 귀결된다. 영혼불멸과 무제약자 그리고 자유의 이념들은 이런 가능성을 인정할 수 없게 만든다.
우리가 비록 그 선험적 이념들의 존재를 입증할 수는 없으나 그 존재를 가정함으로써만 우리의 인식이 가능함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감각적 직관은 발견된 사멸의 과정이 죽음의 각단계가 아닌 죽음의 현상으로 보도록 한다. 당신은 뛰고 있는 심장을 생명이라 부르는가? 죽은 사람의 심장도 뛴다. 피가 통하는 것을 생명이라 하는가? 기능을 멈춘 뇌에도 피는 흐른다. 이것들은 생명의 현상이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판단할 기준을 우리안에 가지고 있고, 이것은 당신의 주장에 우호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카를: 당신은 영혼불멸과 무제한자, 자유의 파괴를 두려워하는것 아닌가? 적합한 논리의 과정에 따른 육체 불멸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당신의 선험적 이념들을 재설정하여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만약 당신 앞에 불멸의 물적 생명체를 제시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칸트: 당신은 21세기 사람다운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의 사고는 사실 내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불렀던 자연과학에 대한 거꾸로 생각하기, 즉 대상으로부터 인식되고 개념화되는 과정을 뒤집음으로서 시도한 인간의 인간됨, 즉 인간의 독자적 판단의 자주적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런 당신에게 철학은 마치 그 변화에 맞추어야 하는 사회기반의 논리이거나 기껏해야 발생한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시어머니 정도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내가 주장한 것은 내 속을 파들어가 발견한 것이지 결코 18세기말의 세계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 주장이 여전히 인간인 당신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