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의 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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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의 미국은 하드보일드에 열광했다. 하드보일드 주인공의 인생관을 사랑한 것이다. 쿨앤시크. 돈 몇푼 아니어도 인간을 좌지우지하는 인물. 해밋의 샘 스페이드는 챈들러의 필립 말로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여자도 사랑의 감정도 툭툭 털어버리는 쿨가이. 3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의 험프리 보가트 캐릭터의 탄생이다.  

폭증하는 자본은 인간에게 자신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게 한다. 인생은 즐기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 모든 가치는 돈이 말한다는 인생관. 이 따위 인생은 혼자서도 살 수 있다. 폭증하던 자본은 공황으로 엎어지고, 자본의 몰락은 도리어 이 인식을 더욱 심화한다. 더 돈은 필요했고 돈가치와 함께 인생의 가치도 떨어졌다.결국 주머니 안에 돈이 떨어지는 날까지 끝까지 쿨하게 위험 한 가운데를 걸어가는 주인공이 사람들의 구미와 맞아떨어진다. 돈을 위해선 타인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남의 사랑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 쯤이야 쉽게 여기는 악인들은 사실 독자의 일상이다.이 악당들을 한 수 위에서 속이고 비웃는 영웅이 필요하다. 영웅은 슬픈 현실의 투영이다.

해밋이 정작 하고픈 이야기는 그의 인생을 닮은 가족을 버린 어느 남자의 이야기에 드러난다. 어차피 죽는 인생이라면 왜 내가 가족에 매여야 하는가? 그는 가족을 버렸고 어디선가 또 다시 똑같은 가족을 만들어산다. 벗어나려하지만 결국 제자리다. 상처만 주고...사건의 전개와 함께 많은 인물들이 쉬 죽어나간다. 그들은 얼마전까지 나와 얽혔던 사람들. 그들의 죽음으로 골치거리가 없어지기도하고 누명을 쓰기도 하지만 중요한건 그들의 삶이 내 인생에 그닥지 큰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체될 수 있는 부속품과 같이. 타인이 나에게 그렇다면 바꾸어 나도 타인에게그런 존재다. 다른 이를 위해 산다는게 무슨 의미인가? 나만을 위해 살면 되는게 인생이 된다. 추리와 말다툼. 폭력의 충격, 교묘한 속임수의 폭로. 그 재미들 뒤엔 우리네 인생에 대한 [나 혼자 잘나서 살아남아야하는 고독]이 있다. 그래서 하드보일드는 사르트르의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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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10-15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있던데 원작이 있었군요.
한번 봐야겠네요.
잘 지내시죠, 카를님.^^

카를 2011-10-15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입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도연명 전집 대산세계문학총서 38
도연명 지음, 이치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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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시절 또래들과 일주일을 숙식을 같이하며 지낸 수련회 같은 것이 있었다. 나누어준 [국가에 대한 충성]에 대한 글들도 잘 암기하던 똑똑한 상위그룹 학생들이었고, 말도 통할 것 같은 성숙한 아이들이라 다 같이 10여명이 모였을 때, 사는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무슨 그런 생뚱맞은 질문이냐는 반응들에 어영부영 질문을 거둬들였다.나이가 더 들고, 서로 더 많은 인생경험을 하고나면 이 질문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질까 했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다.

도연명은 인생이란 의미를 찾아야하는 것으로 여기고 산 사람이다. 중국 5세기무렵인 동진시대를 살며 그는 지위, 출세, 명예라는 것, 또 그에 따라오는 약간의 풍족함이 얼마나  삶을 망가뜨리는 것인지 알았다. 마흔의 나이에 팽택이라는 고을의 수령으로 있을 때, 군에서 내려온 감찰관인 독우가 오자, 마을 관리들이 독우를 정중히 맞으러 나가야한다고 하자 "내가 다섯말 쌀 때문에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까지 굽혀 맞을까" 하고 그만 두고 낙향하며 [귀거래사]를 짓는다.[정신을 육체의 종으로 삼아 살아왔다. 슬퍼할 것이 아니다. 지난일을 후회하는 것은 부질없으니 이제부터 제대로 살 길을 따르리.]

그에게 인생은 죽고나면 아무 의미없는 것이었다.이름을 얻기위해, 필요없는 부귀나 부러움을 얻기 위해 낭비할 순 없었다. 그는 삶에 충실하고 마음껏 누리고 깊이 젖어들며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에게 인생의 의미는 안빈낙도의 삶을 살다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것이었다. 사물과 하나되는 경지의 평안함과 자기손으로 경작하여 먹고사는 단순함이 그의 기쁨이고 삶의 목표였다.

참 지혜로운 삶을 산 사람이다. 돈이나 건강, 성공,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인생을 파는 것을 어리석다고 여겼다. 그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처럼 보였지만 그의 삶은 다른 이들의 삶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쳤다. 목표없이 살며 재능을 낭비하는 삶처럼 보였지만 그의 재능은 그의 빈곤한 삶 속에서 오히려 더욱 아름답게 꽃피었다. 현실에 무관심해 보였지만, 자연의 한 순간, 평범한 이웃과 친구들과의 만남의 한 순간도 충만히 느끼고 즐거워하고 표현해낼 수 있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로서 사는 것. 자기의 독특성과 한계를 알고 자기의 것만으로 꽃피어내는 것. 그것이 지혜였다.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은 가벼움, 실용주의, 요행이라고 말한다. 진지함은 웃음거리로만 등장하고, 의미가 있다는 말은 [화폐가치]와 동의어가 됐다. 부와 오락과 자식만이 성공한 인생이라면 결국 성공은 요행에 달린 셈이 된다. 돈 많은 부모에게 난 것. 운 좋게 투자한 것. 눈치를 타고난 것은 운수일 뿐이다. 도연명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살고 죽는다는 것의 진지함과 인간의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치와 그 인간이 꽃피기 위해 하루하루의 땀으로 경작해야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가난에도 견디고 농사일 이야길 이웃들과 주고받고, 자기의 시를 가다듬어 친구에게 보내던 아름다운 사람. 그를 술이나 풍류, 재능을 즐기는자로만 알고있던 나는 얼마나 천박한가.

나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산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무한한 무게와 영원한 의미와 궁극적 목적에 따라 산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 삶은 오늘도 즉물적이고, 주위의 평가에 쓸려다니며,  하루하루를 우왕좌왕하며 산다. 도연명은 나에게 순간순간을 충실히 흡수하며 살것을 가르친다. 고요함과 욕심을 버리는 것과 자신을 소중히 여김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도 사실 보이는 하찮은 순간순간이 모여서 다다른다. 생각할수록 참 놀라운 일이다. 보이는 순간을 흘려 보내며 보이지 않는 인간다움을 어찌 이루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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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의 하루
너새네이얼 웨스트 지음, 이종인 옮김 / 마음산책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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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930년대는  대중문화가 꽃피어나는 시기였다. 암울한 대공황의 그늘에서 대중에게 여흥거리를 제공하는 할리우드는 무척 활황이어서, 평균 주간 관객수가 인구의 절반 이상인 8천만명에 육박했고, 여가비용의 83%를 영화표 구입에 썼다. 그 자신도 영화산업에 몸담고 있었던 웨스트는 할리우드를 통해 인간의 꿈이 기만 당하고 결국 그 파국인 폭력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해간다.  

꿈의 모조품을 만드는 일이 영화 연예산업의 본질이다. 세트장 뿐 아니라, 그들이 사는 피니언 캐니언조차, 예술의 가치는 없고 실용적 가치, 위장술만 남은 꿈을 내다버리는 하치장. 사르가소 바다가 된다. 그들은 그들의 진정한 꿈을 이룰 수 없는 대신 모조품인 세트장 안에서 생각하고 살도록 길들여진다. 마치 오늘 우리의 여가와 같이.

이런 헐리우드를 상징하는 여주인공 페이 그리너, 즐거움으로의 초대가 아닌 힘든 갈등으로의 초대를 하는 인물, 그녀의 초대가 갈등이 되는 이유는 다수가 원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충족적 존재인 그녀는 결코 그 사랑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그 아름다움은 마음이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듯  그녀의 목적은 상대를 매혹하고 자기가 원하는것을 얻어내는 것이다.지저분한 검은 암탉처럼, 자기 얘기인듯 들은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할리우드는, 바다에 부유하는 코르크판자처럼 그 자신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정복을 사랑으로 착각하며 싸우는 수탉들의 죽음을 지켜볼  것이다

오드리 제닝스, 악덕을 기막히게 포장해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돈버는 재주꾼들. 그들에게 사랑은 자판기에서 나오는 물건일 뿐이다. 돈벌이이고 인간성과는 무관한 사업의 영역이다. 이 놀음에 속는 [사랑은 호주머니에 감추기에는 너무 큰 그런 물건]으로 여기는 자에게는 사랑이 인생일지도 모르지만. 할리우드의 정신은 꿈을 닮은 유사품을 팔아 돈을 만드는 3차산업에 충실하다.

중서부 출신의 호머 심프슨, 변화나 흥분이 없는 생활, 동정童貞만이 유일한 방어기제이고, 짜증나게하는 체념 친절 겸손을 가진 미국인의 표상적 인물. 할리우드에게 손쉬운 먹이감이고 밥줄이다. 그는 할리우드에 속아 진짜 꿈과 걱정과 해결해야 할 현실은 잊고 아무런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들은  [덫에 걸린 새, 몰개성적이고 희망없는 슬픔] 뿐이다. 그들이 군중의 틈에 들어갔을 때, 그 무감각은 분노로 이행한다. 

[불타는 로스앤젤레스], 죽기위해 캘리포니아로 오는 사람들에 의한 폭력, 미국적 광인들이 등장한다. 영화산업은 폭력일보 직전의 사악하고 메마른 권태를 가진 그들에게서 돈을 뽑고 더 처참한 도덕적 사회적 경제적 자아의 상태에 내팽개쳐진다. 무의미한 존재들. 그들은 사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해리처럼, 빨간 닭처럼. 탈진하고 피곤한 육체와 야성적이고 무질서한 정신. 컬트문화로 대표되는 어불성설의 메시아적 분노와 감정적 반응은, 무의미에 던져진 자들의 유일한 해답이다. 가련한 비이성과 폭력에의 의존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불타고 있지만 그 곳에서 그들은 탈출하려 하지 않는다.

사랑의 모조품인 반짝이는 것. 멋있고 예쁜 연예인들. 그들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무력한 대중을 연예산업은 필요로 한다. 대중은 스스로 자초한 기만 속에 속아 넘어간다. 나의 사랑은 눈꼽만큼도 필요치 않은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자가 사랑이 필요한듯이 나를 속여왔으니까 그들은 그걸 깨닫는 순간 결국 그 우상을 파괴시키고 싶다. 쾌락을 원하는 다수에게 쉽게 얻는 쾌락을 약속하고 어느샌가 사라져 버리는 그들. 사랑은 유익을 주는 것이지 유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비웃으며 [나에게서 유익을 얻어가세요]라고 말하던 그들과 그 산업에 속았다. 메뚜기들의 사랑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좌절한 자는 성을 불사를 것인가 소돔과 고모라에서 빠져 달아날 것인가?  

이 모든 일의 이유는 우리의 어리석음과 게으름이다. 꿈을 만드는 대신 꿈을 사려했고,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을 제대로 알아 보지 못했다. 우리 사랑의 대상은 결국 나 자신일 뿐이었다.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은 진정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남이었는데. 나의 꿈이 나를 배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만을, 내 자녀만을 위해서 살면 꿈은 이루어지는줄 알았다. 멍청하고 노력하지 않았다.

사실 이것이 단단하고 지속적인 까닭은 사회 전체가 원하는 기만이기 때문이다.[칸은 쾌락의 돔을 선언했다.] 사기 당하고 배신 당했다. 헛것을 위해 노예처럼 일하고 뼈빠지게 저축했던 것이다. 그들은 일상의 고통을 참고 견디면 쾌락이 온다고 믿고 일해왔다. 기적의 약속을 믿고 움직였으나 결국은 폭력으로 밀려갔을 뿐이다. 폭력의 이유는 권태고 무능력이었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를 비난치 말라. 그들은 지쳤다. 그들의 무의식은 좌절해있다. 시끄럽고 듣기 싫은 사이렌을 울려야한다. 이대로 있다간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이다. 이 성에서 빠져 나가라. 달콤한 노랫소리에 빠져들어 그 성에 들어가지 말라. 서로를 죽이는 것은 그 성에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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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전집 1 - 시
정지용 지음 / 민음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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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옥천을 다녀와서

정지용은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 청석교 바로 옆 촌가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부친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본격적인 작품활동은 일본 도지샤대학 재학시절에 시작되었다. 1929년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뒤 휘문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고 <시문학>지 동인, [카토릭 청년]편집인, [문장]지의 추천위원으로 문학계에 몸담아왔다. 해방후 휘문고보에서, 이화여자대학교 문과과장으로 옮겼고, 6. 25. 당시 월북 혹은 납북되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2001년 이산가족 상봉시 북한의 셋째아들도 그를 상봉대상자로 올려 그가 북한에도 산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혹은 그가 납치되어 북으로 옮겨지던중 1950년 9월 25일 폭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측한다. 

그의 이런 인생여정은 그의 시에 반영되어있다. 정지용의 시를 연대순으로 묶은 이 시집으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스물 다섯살의 카페 프란스, 그리워. 26세의 바다, 향수, 발열, 말, 태극선. 29세의 유리창. 31세의 바람, 봄, 고향[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의 서정적 시세계로부터, 32세의 갈릴레아 바다[주를 다만 깨움으로 그들의 신덕은 복되도다]의 신앙고백을 거쳐, 35세이후 유선애상(流線哀像), 파라솔, 폭포[산골에서 자란 물도 돌벼람박 낭떨어지에서 겁이 난다.]의 은유와 의인화, 이후 옥류동, 구성동의 자연묘사. 40세의 도굴, 예장, 호랑나븨에 나타나는 사건취재적 시에 이르는 그의 청년기로부터 장년기까지의 변화를 잘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시는 가장 아름다운 한국 현대문학의 꽃봉우리로 여겨진다. 구절구절 우리말로만 표현될수 있는 아름다운 소리들과 그 정경들이 드러나고 이제 우리는 시라는 방법으로 우리의 깊은 서정과 귓가를 스치는 바람까지도 잡을 수 있게 된다. 그의 위대한 시는 우리네 아픈 일제 침략과 분단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참혹하게 찢겨져와서 더욱 가슴 시리다. 너무 오랜 시간 분단된 나라의 틈바구니에 끼어 그의 싯구들은 숨겨져 있었고 가르쳐지지 못하여 왔다. 이제 좋은 현대어 서술과 시어 해석을 통해 그의 시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더욱 친숙해질 일만 남아있다고 믿고 싶다. 그러면 그는 우리의 척박한 뿌리없는 정서와 우리 소리에 대한 사랑을 살찌우고 열매맺게 할 비옥한 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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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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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1762년 음력 6월 16일에 경기도 광주에서, 진주 목사를 지낸 부친 정재원(丁載遠)과 둘째 부인인 윤선도의 외손녀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 약종, 약용 3형제 중 셋째 집안 전체로는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9세 때 모친상을 당해 맏형수 경주 이씨와 서모 김씨의 손에서 자랐다. 매부 이승훈은 조선에서 최초로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인물이며,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삼촌으로, 성호 이익(李瀷, 1629~1690)의 종손으로 당시 이익의 학풍을 계승하는 중심 인물이었다. 1789년(정조 13) 대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여 10여년간 정조의 총애를 받아 요직을 지내던 그는,1800년 정조승하 후 정순왕후 김씨의 천주교 탄압령으로 시작된 신유박해시 노론의 정치적 공격으로 그의 친지, 친구, 형제들과 함께 유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정약용은 18년간(1801-1818) 경상도 장기, 전라도 강진 등지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그의 생애에 중요한 저술들을 남기게 된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그 기간중 그가 아들, 형제, 제자들에게 보낸 서간문을 묶은 것으로, 정약용의 삶에 대한 태도, 학문적 열의, 처세살이, 글쓰기의 기본 등에 대한 그의 개인적이고 독특한 관점들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유배후의 다시 18년의 여생에도 그의 이런 태도는 남아있어 정약용의 40세 이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두 아들에게는 효제를 중심으로 어머니와 친척들에게 도리를 다하고.  저술과 학문에 애쓰길 격려하며, 옳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음이 현명함을 가르친다. 집안의 교훈으로는 임금의 총애 아닌 존경 받으라. 경전에 대한 책을 우선하라. 시는 기상을 띠어야한다. 넘어져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니 시골로 가지마라. 엄숙하게 지내는 생활 습관이 있어야 사람들이 그 글을 눈여겨본다. 근면하고 검소하라. 옛 어른의 장점을 본받으라.  마음 넓음의 기본은 용서이며  일희일비 말고 재해에도 청운의 뜻 꺽지마라.  알지 못하게 하는 일은 하지를 말고, 듣지 못하게 하려는 말은 하지를 말라.생계를 꾸릴 때도 사대부답게 하라는 가르침을 준다. 형제에게는 그가 새롭게 깨닫거나 책을 통해 알게 된 소소한 이야기들과 역술과 도법에 대한 관심을 내비치며 제자들에게는 대체를 기르면 대인이 됨. 큰것 아끼면 큰 이익이 없고, 작은 것 헤프면 헛되이 낭비한다.근면하고 검소하라. 과거를 통해 벼슬에 나아가 백성을 다스림에 밝음,위엄,강직으로하며 봉록과 지위를 헌신처럼 여김. 30까지 과거 이루지 못하면 학문에 전념. 양식을 걱정치말고 가난을 근심마라. 문장이란 학식이 속에 쌓여 문채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문장은 나무에 피는 꽃과 같다.경전과 예로 나무를 기르라는 가르침을 준다.

 그의 이런 가르침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와닿는 글이 되는 까닭은 그가 겪은 유배의 시절이 도리어 인간의 인간다움에 더 많은 시간과 생각을 보낼 수 있게 한 덕분이며, 그런 상황에서도 의미라는 것이 외부와 흐름과 지위가 아닌 사람됨에 있음을 놓치지 않았던 점에 정약용의 훌륭한 업적들의 양과 질이 나오게 된 이유가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움직이는 너무 바쁘고 얄팍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 시간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동인이겠지만, 허접한 동기들이 더 많이 나를 이끌어 갈때도 많다. 정약용의 삶은 다시 한번 나의 삶의 태도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막아두었던 물만이 지표를 바꾸는 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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