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정약용은 1762년 음력 6월 16일에 경기도 광주에서, 진주 목사를 지낸 부친 정재원(丁載遠)과 둘째 부인인 윤선도의 외손녀 해남 윤씨와 사이에 약전, 약종, 약용 3형제 중 셋째 집안 전체로는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9세 때 모친상을 당해 맏형수 경주 이씨와 서모 김씨의 손에서 자랐다. 매부 이승훈은 조선에서 최초로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인물이며, 이가환은 이승훈의 외삼촌으로, 성호 이익(李瀷, 1629~1690)의 종손으로 당시 이익의 학풍을 계승하는 중심 인물이었다. 1789년(정조 13) 대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여 10여년간 정조의 총애를 받아 요직을 지내던 그는,1800년 정조승하 후 정순왕후 김씨의 천주교 탄압령으로 시작된 신유박해시 노론의 정치적 공격으로 그의 친지, 친구, 형제들과 함께 유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정약용은 18년간(1801-1818) 경상도 장기, 전라도 강진 등지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그의 생애에 중요한 저술들을 남기게 된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그 기간중 그가 아들, 형제, 제자들에게 보낸 서간문을 묶은 것으로, 정약용의 삶에 대한 태도, 학문적 열의, 처세살이, 글쓰기의 기본 등에 대한 그의 개인적이고 독특한 관점들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유배후의 다시 18년의 여생에도 그의 이런 태도는 남아있어 정약용의 40세 이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두 아들에게는 효제를 중심으로 어머니와 친척들에게 도리를 다하고.  저술과 학문에 애쓰길 격려하며, 옳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음이 현명함을 가르친다. 집안의 교훈으로는 임금의 총애 아닌 존경 받으라. 경전에 대한 책을 우선하라. 시는 기상을 띠어야한다. 넘어져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니 시골로 가지마라. 엄숙하게 지내는 생활 습관이 있어야 사람들이 그 글을 눈여겨본다. 근면하고 검소하라. 옛 어른의 장점을 본받으라.  마음 넓음의 기본은 용서이며  일희일비 말고 재해에도 청운의 뜻 꺽지마라.  알지 못하게 하는 일은 하지를 말고, 듣지 못하게 하려는 말은 하지를 말라.생계를 꾸릴 때도 사대부답게 하라는 가르침을 준다. 형제에게는 그가 새롭게 깨닫거나 책을 통해 알게 된 소소한 이야기들과 역술과 도법에 대한 관심을 내비치며 제자들에게는 대체를 기르면 대인이 됨. 큰것 아끼면 큰 이익이 없고, 작은 것 헤프면 헛되이 낭비한다.근면하고 검소하라. 과거를 통해 벼슬에 나아가 백성을 다스림에 밝음,위엄,강직으로하며 봉록과 지위를 헌신처럼 여김. 30까지 과거 이루지 못하면 학문에 전념. 양식을 걱정치말고 가난을 근심마라. 문장이란 학식이 속에 쌓여 문채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문장은 나무에 피는 꽃과 같다.경전과 예로 나무를 기르라는 가르침을 준다.

 그의 이런 가르침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와닿는 글이 되는 까닭은 그가 겪은 유배의 시절이 도리어 인간의 인간다움에 더 많은 시간과 생각을 보낼 수 있게 한 덕분이며, 그런 상황에서도 의미라는 것이 외부와 흐름과 지위가 아닌 사람됨에 있음을 놓치지 않았던 점에 정약용의 훌륭한 업적들의 양과 질이 나오게 된 이유가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움직이는 너무 바쁘고 얄팍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 시간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동인이겠지만, 허접한 동기들이 더 많이 나를 이끌어 갈때도 많다. 정약용의 삶은 다시 한번 나의 삶의 태도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막아두었던 물만이 지표를 바꾸는 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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