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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치샐러드 지음 / 학고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김치 샐러드 윤명진씨의 손가락은 나에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컴퓨터 모니터의 화살표이다. 어느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을 콕 찝어 자세히 설명해 주는 역할과 함께, 이 손가락은 온라인에 존재하는 손가락이다. 16세기 극장 연극이라는 당시로는 천박한 전달방법으로 다가간 셰익스피어의 인간이해, 20세기초 아무런 머리회전을 요구하지 않는 영화라는 친절한 설명방법이 가졌던 대중에 대한 영향력, 이제 21세기 초입에 인터넷 만화라는 돈도 노력도 필요없는 방법이 대다수에게 와닿게 전달되는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다. 짤방(짤림방지)의 최대방법은 이미지를 늘리고 텍스트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만치 않은 흡입력있는 친절하고 감칠 맛나는 대사들(짧은 문장에 깊이를 담기는 대사가 최고다). 이 손가락은 독자로 부담없이 그 앞에 다가와 아귀와 같이 앉아있게 하는 힘을 갖는다.
다른 손가락은 윤명진만의 주제, 방향제시다. 지난 30년간 우리의 대중문화는 무엇을 담았는가? 연탄난로를 때던 만화방에서는 억압과 강자 앞에 선 약자들의 승리가 있었다. 구영탄, 설까치와 외인구단, 며느리 밥풀꽃, 또 많은 우리의 만화 속 동지들은 나의 삶의 짖눌린 부분들을 인식하게 하고, 새로운 용기로 삶을 바라보게 했다. 그것은 우리들의 잔다르크이며 워싱턴이고 링컨이며 가르발디,아더이고 샤를마뉴이며 로빈훗이었다. 저항과 적에 대한 복수, 응징과 승리를 우리는 그들을 통해 누릴 수 있었다.그리고 찾아온 멀티플렉스의 시대. 자유를 누릴때까지 누려보고파 했던 자유로운 개인의 극대화의 단계. 각종 음지를 굴러다니던 욕설과 폭력,동성애와 마약 심지어 인종주의의 자유까지를 대형화면에 쏟아내는 시절이 왔다. 우리만의 계몽혁명의 자유이고 히피이며 반항의 계절이다.
과연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가?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 [손가락]이 있다. 윤명진의 주제는 사뭇 무거운 것이다. 이제 인터넷 만화는 무엇을 전달하기 시작하는가. 루소의 이성절대, 개인폭발의 세계에서 괴테의 시대로, 볼테르의 저항에서 까뮈의 회의로 가고 있는가? 삶의 무의미에 대한 회의와 절망,예술에 대한 목마름, 의미에 대한 갈구라는 주제들이 이런 쉬운 방법으로 대중에게 호소력있게 다가간다. 이제 OTL의 희화된 삶의 무의미성, 절망감과 기존사회와 대중의 무관심 속의 고독, 자살의 시도와 비겁한 새로운 삶의 시작, 찾아지지 않는 해답과 궁극적 대답을 줄수 없는 화자에 대한 실망은 즐거운 놀이처럼 다가와 진지한 자기성찰을 대중에게 묻는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이번 작업이 실패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좌절이 더욱 잘 표현된 것 같다."
"좌절의 순간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하라는 뜻밖의 교훈을 얻었다." (윤명진 인터뷰)
그는 대중에게 다가가는 어두운 표정을 화장뒤에 감춘 삐에로와 같은 손가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