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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억한다-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을유문화사, 2016. 1. 20.

 

2014년 출판된 책이 다시 독자와 만난다. 9년에 한번 인간의 세포 하나하나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꾼다. 그렇다면, 내 몸의 주인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물은 연결을 통해서 살아가는 공집합의 공생체 아닐까? 영혼과 육체의 이분법이 불가능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인식과 배려의 출발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의식하거나 극복하는 과정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베셀 반 데어 롤크는 30년 이상 외상 후 스트레스를 연구하였다. 트라우마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해결책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나와 주변을 이해하는데 도움 받을 수 있는 책이다.

 

 

 

 

 

 

 

 

 

 

 

 

 

메를로-퐁티의 지각현상학 읽기

류의근 지음,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2016. 1. 15.

 

앞서 주목한 몸은 기억한다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을 읽으며, 육체에 대하여 성찰했던 시기가 있었다. 부인과 진료를 앞두고 고민이 많던 시기이기도 했다. 내 나름의 해석은 몸의 맥락이었다. 내 몸은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하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성으로 느껴졌다. 의사와 접속하는 순간은 환자로, 수영코치 앞에서는 수강생의 몸으로, 남성 앞에서는 여성으로 끝없이 변환한다.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은 의식이 아니라 육체로 철학을 전복한다. 삶은 육화된다. 의식에 비해 열등하게 취급받던 육체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던 메를리 퐁티의 출발점으로 의미있을 것이다.

    

 

 

 

 

 

 

 

 

 

 

 

 

 

자아 연출의 사회학-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현암사, 2016. 1. 27.

 

감정사회학을 공부하던 시절, 어빙 고프만의 저서는 미시 사회를 이해하는 중심축이 되었다. 일상을 탐구하는 분위기가 드물었던 시절, 고프만의 사회학은 구조에 국한해서 공부했던 학부와 전혀 다른 사회학이라고 느꼈다. 망원경으로 세상을 진실을 보고자 했더 나에게 고프만은 세포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현미경과 같았다. 고프만은 일상을 하나의 무대로 설정하고, 타인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자아를 연출하는 것이 사회하고 이야기한다. 비판없이 내가 맡은 지위에 따른 패르소나, 역할, 역할에 따른 행동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값싼 음식의 실제 가격- 값싼 음식의 가격표에 가려진 자연, 사람, 문화의 값비싼 희생

마이클 캐롤런 지음, 배현 옮김, 열린책들. 2016. 1. 30.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싼값의 비정상성을 밝히고 있다. 불가능한 가격은 누군가의 가혹한 희생을 대가로 한다. 사회학 교수인 저자 마이클 캐롤런은 상생할 수 없는 자본주의 상품 생산 과정을 밝힘으로써,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는 식품 체계를 구성해야 함을 주장한다. 싼값에 대량생산된 음식 이면에는 개발도상국의 수백만 소농들의 착취를 바탕으로 한다. 아프리카의 빈곤층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효율성만을 강조함으로써 토지 오염과 환경 파괴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저자 식품이고, ‘먹거리 앞의 평등은 가능한지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옥상의 미학 노트- 파국에 맞서는 예술행동 탐사기

이광석 지음, 현실문화, 2016. 1. 11.

 

이 책은 벼랑 끝에 작업실을 짓다’, ‘눈먼 스펙터클의 도시에서’, ‘벌리고 잇고 가로지르다’, ‘변경의 목소리와 감수성의 미학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평론가 이광석과 청년 창작자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담고 있다. 인터뷰에 참가한 23팀의 예술행동가들은 절망의 시대, 좌절 대신 사회 현실을 재료로 문화 정치적 실험을 통해서 그들이 꿈꾸는 에술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예술은 사회와의 경계에서 예술그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어야 한다. 예술과 사회참여(또는 개입), 예술 행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창작 행위를 살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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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 2016-08-1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최근에 사회학입문서로 <나를위한 사회학>이란 책이 나왔던데요. 일본의 사회학 교수가 일상의 사회학에 대해서 쓴 책이였습니다.
이 책도 추천드리고 싶네요~^^

더불어숲 2016-08-13 11:01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꼭 구입해서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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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 푸코.라캉.르장드르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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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모든 행위에 대한 성찰

 

야전과 영원, 사사키 아타루 저, 안천 옮김, 2015. 11. 자음과모음.

 

집필하는 동안 직면하는 기댈 곳 없음(15)’

 

안다면, 쓸 필요가 없다는 저자 사사키 아타루의 태도가 리뷰를 쓰게 한다. 아타루의 저작은 - 학문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자체 - 학문하는 과정 그 자체다. 읽는 행위는 저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일 텐데, 쓴다는 것은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는 과정이다. “계획 없이 써나간 글이기 때문에, 이 책의 쓰기 전 계획은 쓰는 과정에서 무너진다. 쓴다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저자에게 타자라고 간주되는 글들은 독자와 접속하며 영원한 생성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푸코, 라캉, 르장드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사키 아타르가 푸코, 라캉, 르장드르를 통하여 바라보는 인간의 삶이다.

 

독자는 사사키 아타루가 수없이 많은 밤을 밝혔을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영원한 야전에 참전한다. 사사키 아타루는 친절하다. 라캉, 르장드르, 푸코에게 적절한 지면을 안배 후, 각각의 철학자의 사상과 생애를 브리핑한다. 그리고 나서 세 사람이 만나는 지점을 상정한다. 하지만 푸코, 라캉, 르장드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충분하다는 역자의 말은 다소 무리가 있다. 라캉의 철학은 내게서 계속 미끄러졌고, 푸코를 읽는데도 수년이 걸렸다. 정신분석은 프로이드에 머물러 있다. 라캉으로 넘어가는 것은 항상 미끄러진다. 에메모호함, 라캉식 언어를 이해하는 일은 늘 좌절이다. 텍스트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독서모임과 세미나를 돌고 돌아서야 푸코 언저리를 서성일 수 있었다. 르장드르에 대한 지식은 아예 없다. 당연히 읽는 내내 곤혹스러웠다.

 

각각의 철학자 사이에, 철학자 자신의 생애에는 계보학적 단절이 존재한다. 푸코는 정신분석학을 비판하면서 라캉과 대립한다. 라캉학파를 이탈한 르강드르는 푸코와 라캉의 공명을 가능하게 한다. 라캉의 거울, 팔루스, 주이상스(대타자의 향락) 개념을 르장드르는 법·종교·제도의 물음을 받아 안는다. 르장드르는 라카의 개념을 계보학적 질문으로 재정립(20)하면서 푸코와 공명한다. 그렇게 세 사람의 철학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저자는 만년의 푸코가 걸었던 이로에서 도출한 결론이 라캉, 르장드르와 함께 공명(21)한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제1부 자크 라캉

 

거울 단계의 말을 모르는 어린 아이(인판스)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매료되면서 자신을 인지한다. 자기 모습에 상상적으로 동일화되면서, 최초의 자아가 형성된다. 자아는 이미지고, 전적으로 대상이다. 거울은 말과 이미지가 상호 침투하는 장치다. 겨울은 말과 이미지의 불균질적인 침투 상태로 구성된 장치이고, 이 장치는 말과 이미지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을 생산한다. 즉 표상을 생산한다. 주체라는 표상을, 자아라는 표상을, 타자라는 표상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표상은 욕망을 표상하고, 광란한다(221). 이미지 주체는 말을 통해서 주체가 되고, 대문자 A 타자 역시 말하는 타자가 된다. 진리는 말씀의 형태도 존재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라캉 개념은 원초적으로 알 수 없는 개념이다. 거울, 팔루스, 대타자의 향락은 늘 잉여성을 지닌다. 이미지이면서, 언어이다. 그 언어는 늘 미끄러진다. 개념은 이해를 위해 끝없이 자기증식을 한다. 라캉은 향락과 쾌락을 구분한다. 라캉의 관심은 금지되어온 향락에 있다. 향락은 근본적으로 법, 금지,윤리, 즉 계율에 관계된 것으로, 발화하는 자에게 금지되어 있다(143). 하지만, 주체는 상상계에서도, 상징계에서도, 팔루스의 향락에서도 본래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것이 나다라는 단언은 공허(231)하다.

 

아타루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기독교를 극복하지 못한 것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여성의 향락, 대타자의 향락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가 행한 바는 증상이외라는 것 이외에는 없다. 신비주의와 정신분석학은 신체, 무의식, 언어화할 수 없는 것, 욕망의 법, 결여, 해석 등 많은 어휘를 공유한다(215). “사회를 창출하고 다시 짜내는여성의 향락, 대타자의 향락이 아니라면, 정신분석학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본다.

 

2부 피에르 르장드르

 

르장드르는 슬픔의 매매 시장 또는 무엇이든 해주겠다고 답해주는 독트린이라고 정신분석학을 비판한다. 정신분석은 프로이트와 라캉을 성스러운 이름으로 받들어, 새로운 봉건제의 주교관구((主敎管區)를 생산하는 데 딱 좋은 각종 제도의 캐리커처를 정촤기 위해서 이를 대중용 엠블럼으로 개발하는 작업으로 타락하고 말았다(265). “앵무새처럼 반복할 줄 밖에 모르는정신분석학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무이해를 심화시킬 뿐(266)이라고 보았다.

 

정신분석학에 사회를 끌어들인 르장드르는 사회적 거울엠블럼개념을 제시한다. 상징이고, 텍스트이고, 이미지이기도 하고, 향락을 제공하기도 하는 거울은 각각의 엠블럼이다. 그것은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사회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엠블럼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 이미지를 가능하게 한다. 사회인 거울은 개인을 넘어서서 정치적인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아버지는 신()이다. 말에 의해 아버지는 절대적이 된다. ‘절대적 아버지의 첫걸음은 말(파롤)과 언어(랑가주)의 제도적 차원을 승인하는 것(326)이고, 사회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를 세우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친자관계에서 불확실한 상태에 놓여 있다. 아버지로부터 의심받는 아이인 동시에, 내 아이인지에 대한 의심을 갖은 아버지다. 남자가 이런 불확실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아폴론적 시선으로 문화를 구성했다는 성의 페르소나의 논리가 떠오른다. 법학자인 르장드르는 언어인 법은 신을 닮은 아버지이다.

 

    

3부 푸코

 

권력과 푸코는 하나의 쌍을 이룬다. 르장드르와 달리 푸코는 미시 권력을 분석한다. 배분의 기술로, 활동의 통제로, 감시의 시선으로 권력은 효율적으로 개인을 통제한다. 규율은 의례나 감시가 아니다. 모든 것을 규격화하고, 타자의 시선에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통제하게 한다. 이 통제의 과정에서 정신분석은 정상과 비정상의 분류 기준이 된다. 마을에 함께 살았던 정신이상자들을 구분하고 분류하는 과학의 역할에 정신분석학이 있다.

 

푸코의 후기 저작은 어떻게 주체의 자기 통치가 가능한지에 집중한다. 푸코는 비역사적인 것을 역사화한다. 각자의 삶을 어떻게 미학적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나갈 것인지가 바로 자기 삶이 통치성이다. 성의 역사에서 성이 중요한 주제라면, 주체의 해석학은 주체와 주체의 행위 방식을 다룬다. 주체화는 나와 내가 맺는 방식이다. 주체화는 자기 인식 뿐 아니라, 자기배려의 실천으로 외연을 확장한다. 기독교(또는 금욕주의)가 자기를 버리고 신(또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라면, 그리스에서는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복수 개념으로 우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재료 삼아 실존의 미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아타루는 생존 미학이 저항과 사회 변혁을 도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후기 푸코는 마르크스주의 비판, 정신분석학 비판에 이어 자기에의 배려와 생존의 미학조차 경멸해야 할 오류로 취급(735) 하게 된다. 이란 혁명 당시 푸코는 존재 방식, 타인과의 관계, 사물·영혼·신과의 관계 등이 철저히 바뀌어야 하고, 자신들의 경험이 근원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현실의 혁명은 없을 것(709)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혁명의 찰나의 섬광은 사라지고, 사형 집행이 시작되면서, 시아파의 교의가 혁명적인 힘을 갖고 있다(709)고 언급한 푸코는 맹비난을 받는다.

 

오늘도 다른 날들과 똑같은 하루, 다른 날들과 완전히 똑같지 않은 하루(푸코)”

 

이 책의 매력은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도전하고 싶고, 더 길게 보고 싶고,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거장의 철학을 위해 무수한 밤을 밝혔을 저자에 대해서 감히도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기 위해서 여러 날을 보내고도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뿐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따로 없다.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영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지식의 숲(909)이다.

 

책을 덮을 때쯤 되면, 우리가 읽은 것이 아타루의 철학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라캉, 르장드르, 푸코의 이명과 공명을 아우르며, 아타루 자신의 관심 영역으로 무한 확대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철학은 영원할 수밖에 없다. 서평에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요약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동안 책을 구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간을 읽다보면 새로운 것은 없고, 그 책이 그 책인 느낌인지라, 사서 꽂아두고 다시 살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신간은 쏟아지는데, 서재에 두고 싶은 책은 적어졌다. 이 책은 꼼꼼히, 촘촘히 읽고 나서도, 혼란이 여전한 책이다. 당연히 여러 번, 촘촘히 읽어야 한다. 이 전쟁이 영원한 까닭이다. 철학 공부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끌어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과 고군분투하시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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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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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거울 앞에 비친 자화상

도덕적 불감증,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책읽는수요일, 2015. 12.

 

도덕적 불감증에 앞서 사족 하나를 달고 시작하련다. 나 스스로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숱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부를 하면서 무엇을 얻었는가?”

 

나는 지식을 쌓지도 않았고, 지적인 사람이 되지도 않았다. 대신 타고난 감수성에 후천적 감수성까지 개발되었다. 내 주변인들은 나의 감수성이 타고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나의 감수성의 상당량은 후천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감수성은 달리 말하면 공감 능력이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내 것으로 느끼는 능력이다. 이는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나의 태도가 다정이 병()”인 듯 받아들여져 타인의 냉소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나는 가급적 남은 세월도 이 능력을 개발하는데 사용할 것이다. 나는 상대의 이야기에 몰입하기 때문에 한 사람을 만나도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여럿을, 여러 번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드문 만남이 각별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은 통찰의 열쇠다. 평범하다 못해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한 악의 모습을 들춘다. 윤리적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우리 자신의 본질에 직면하게 한다. 바우만은 이론 중심의 강단 사회학과 차별화된 일상, 상상, 감정의 사회학자다. 일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권력의 포섭 속에서 어떻게 주체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그것은 결국 시선의 교란이다. 나의 시선에서 벗어나 바라보는 자의 시선이 되는 일이다. 바우만은 보는 자를 보고 생각하는 자를 생각하며 말하는 자를 말한다(14).

 

기술은 당신을 방관자로 머물게 두지 않는다.(14)”

    

원치 않아도 페북을, 블로그를, 밴드를, 카톡을 한다. 지인들이 수시로 올리거나 링크한 글들을 눈팅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짐작한다. 보여주고 싶은 선택된 모습으로 존재를 구성한다. 서로 염탐하고, 누설하고, 댓글을 단다. 이 모든 행위는 자발적이다. 보여주기에 선택된 모습으로 각자의 정체성을 확보한다. 광장에 확성기가 내걸린 고백사회(confessional society)’(54)은 현대사회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반면, 거리와 카페 같은 공공장소에서 시선을 나누거나,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매우 드물어졌다. 폰에 고정된 시선으로 타자의 시선과 마주칠 일이 적어졌고, 우연히 마주쳐도 동시에 무심히 흘려보낸다. 이어폰까지 꽂으면, 소리까지 완벽하게 차단한다. 자신의 성 안에 들어가 있는다. 이런 태도는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겠다는 갑옷처럼 보인다. 이제 낯선 사람과 마주치는 우연의 필연을 경험할 기회는 매우 희박해졌다.

 

인간은 사이의 존재다. 선과 악의 경계 또한 모호하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극적인 도덕 선택의 상황이기 보다도, 우리가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일상의 상황이다. 내가 소비하는 물건이 나를 표상하고, 내가 링크한 사진이 곧 나의 가치관이 된다. 시민은 사라지고, 소비자만 존재한다. 이러한 미시적인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일이 사회학이다. ‘우린 서로 다를 뿐이라고 말하면서, 가치 개입 자체를 거부한다면, 성찰과 통찰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도덕 불감증 상태다.

 

다섯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철학자 레오니다스 도스키스의 대담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은 ‘1. 우리의 모습을 닮은 평범한 악에 관하여, 2. 정치의 위기, 감수성의 언어를 찾아서, 3. 감수성의 상실, 공포와 무관심 사이에서, 4. 소비하는 대학, 새로운 무의미와 기준의 상실, 5. <서구의 몰락>을 다시 생각하며를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를 펼친다.

 

1. 우리의 모습을 닮은 평범한 악에 관하여

 

악은 늘 어디에나 존재한다. 단 시대마다 다른 형태와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체되는 것(61)이다. 현대 사회의 악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함에 있다. 이제 악마는 오래되고 우리에게 익숙한 괴테의 메피스토나 그것의 갱신된 형태인 이스트반 자보의 메피스토가 아니라 일종의 DIY, 즉 우리가 손수 만든 악마(51). “우리의 악마는 이케아, 페이스북의 모습을 한 DIY(52).” 거대한 사건에서 발생하는 악은 공통의 분노를 유발하지만, 악이 일상성은 우리의 감수성을 무감각하게 만든다. ’헬조선을 만든 것은 권력자이기 이전에, “도살장에 끌려 가는 소와 같은시민의 자발적 복종에서 기인한다.

 

2. 정치의 위기, 감수성의 언어를 찾아서

 

소셜 네트워크가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으나, 우리는 매체가 의도한 방향을 향해 흘러간다. 그 자체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대중매체에 의한 시뮬라시옹(모사)이 진품을 대신한다. 실제는 사라지고, 환영이 진실을 대신한다. 정치인은 이제 연예인, 스타의 자리를 탐한다. 탈정치화는 신자유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국가와 이데올로기를 자본과 세계화가 대신하며 민영화의 길을 걷는다. 바우만은 정당이 고전적 운영 방식을 탈피하고, 진정한 의미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정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비판적 집단 지성의 참여가 필연적일 것이다.

 

3. 감수성의 상실, 공포와 무관심 사이에서

 

위험 사회에 대한 공포, 노후에 대한 두려움은 현재의 삶을 살기 못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기본 지침이다. 바우만은 공포의 이유가 무지, 무기력, 굴욕감이라고 말한다. 불안에서 유발하는 공포는 자발적 복종을 불러 온다. 이 지점에서 바우만은 대중매체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타인과 자신에게 모멸적인 발언을 퍼붓는 것은 하나의 짝패를 이룬다. 이는 건강한 비판과 무관하다. 자신과 타인을 비하하며 느끼는 대중매체의 즐거움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해법이 될 것이다. 바우만은 대중매체를 이렇게 만든 것이 권위주의라고 생각한다.

 

4. 소비하는 대학, 새로운 무의미와 기준의 상실

 

대학의 위기가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헬싱키에서의 삶은 늘 일요일 오후 같은데 반해 리가(라트비아의 수도)에서의 삶은 언제나 월요일 아침이다.”라는 라트비아 출신 대학원생의 말에서 - 동유럽을 비롯해서 한국과 같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성장한 -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을 인지할 수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나의 동생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더니, 정말 심심하다고 한다. 겨우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 앞의 눈 치우기, 그리고 집안 꾸미기가 전부라고 한다. 그래서, ....고 하는데, 그 말에 저절로 공감했다. 저녁이 있는 삶은 그런 것이리라. 부서질 것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서 살아나기 위하여 쌓고 또 쌓아야 하는 스펙 이외에는 선택지가 별게 없다. 능력주의 신화가 계속되는 한,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 아니라, 산업인력 양성소의 역할을 벗어나기 어렵다.

 

5. <서구의 몰락>을 다시 생각하며

 

근대 국가 개념은 사라지고 있다. 바우만은 미셸 우엘벡의 어느 섬의 가능성,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21세기의 경고서로 본다. 이 책들은 근대 초기의 우정과 사랑, 달리 말하면 감수성이 사라졌을 때, 인류가 직면할 사회가 어떠할지에 대하여 경고한다. 우엘벡은 니체와 다른 방식으로 신의 죽음을 폭로한다. 신은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유대가 완전히 파괴됨과 동시에 죽는다(338). 돈스키스는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관계의 생로병사 주기를 벗어나는 연인 또는 친구라고 말한다. 우리의 존재함은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 존재하는 것(밀란 쿤테라)이다.

 

대담에 기초한 책이기 때문에 목차에 맞춰 촘촘하게 쓰인 글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전 방위로 사상을 펼쳐가는 두 사람의 대등한 담화는 고전문학에서 현대 일상생활까지 거침이 없다.

 

도덕적 불감증을 읽으면서, 연말, 나에게 또 다른 응답시리즈였던 <스타워즈 7>가 떠올랐다. 가면은 아주 중요한 장치다. 주인공 핀(존 보예가)이 저항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휴머니즘을 느끼게 되는 순간, 저항군의 피와 고통은 더 이상 대상으로 머물지 못한다. 그 순간 핀은 가면 안에 숨겨왔던 자신의 표정을 드러낸다. 또한 카일로(아담 드라이버) 역시 아버지 루크를 만나는 순간, 가면을 벗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가면을 하나의 메타포로 읽는다면, 우리는 표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도덕적 불감증 사회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참조한 문학들이다. 두 사람이 활용하고 있는 문학서를 알고 있다면, 더 없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들이 최고의 책이라고 지칭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는 오래 전 읽었으니, 우리들, 아서 퀘슬러의 한낮의 어둠와 같은 디스토피아 문학을 구해 읽어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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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아얀 히르시 알리 (지은이) | 추선영 (옮긴이) | 알마 | 2015-12-29

 

난민 중에서 여성의 비율은 적고, 난민의 정치적 권력 안에서도, 그녀들은 인권 사각지대에 있다. 생존의 위협 속에서 난민 여성은 성적 요구와 학대를 혼자서 견뎌 내고 있다. 그녀들에 대한 문제 의식의 공유를 위한 공론의 장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더욱 안타깝다.

 

이 책은 이단자, 아얀 히르시 알리의 개정판이라고 한다. 저자 아얀 히르시 알리의 인생역정을 담은 자서전이다. 소말리아 내전의 난민으로 유럽에 넘어가 정치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한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가 겪었고, 앞으로 무수히 많은 난민 여성이 겪어야 할 진실에 귀 기울이고 싶다.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 절대 빈곤층과 상위 1%, 두 국민의 이야기

김상연 외, 지음, 서울신문 특별기획팀, 한울(한울아카데미, 2015. 12.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를 들었을 때, 이 땅에 살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은 공감한다. ‘?“라고 질문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다. 상위 1%와 하위 1%를 하나로 묶어주는 기호는 국가‘, ’대한민국이다. 이것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다. 모든 여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지,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를 하나의 집단으로 범주화할 수 있는지, 모든 싱글을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4명의 기자의 밀착취재, 있는 현실을 그대로 기록한다. 통계에 가려져 있는 미시사적 삶을 보게 될 것이다. 결혼, 출산, , , , 여가까지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만나게 될 삶은 무엇일까?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

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5. 12.

 

나는 이제 응답을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때가 좋았다.”는 향수로 소비하기엔 우리 삶을 가로 막고 있는 생존의 위협이 너무 크다.

 

헐리웃 영화 세계에서 자란 나는 다음 세대인 조카들과 함께 아이맥스관에서 J. J. 에이브람스의 <스타워즈>를 봤다. <스타워즈>시리즈는 매번 미국인을 향해 응답한다. SF가 아니라, 자신들의 조상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을 정복했던 역사, 용광로(Melting Pot)를 샐러드 접시(salad bowls)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다문화 사회 미국이 외계 생명체들과 함께하는 미래사회와 별로 다르지 않다. 미국인이 <스타워즈>에 열광하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를 극복하고 아들의 시대가 열린다. 조지 루카스에서 시작된 역사는 이제 J. J. 에이브람스 시대로 이어졌다. <스타워즈>를 본 김에 <인터스텔라><마션>, <그레비티>를 다시 봤다. 시공간의 열쇠인 중력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시간과 공간이 뒤틀린다.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라는 부제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다.

 

 

 

 

 

 

 

 

 

 

 

 

 

 

 

 

문학적으로 생각하고 과학적으로 상상하라

최지범 지음, 살림, 2015. 12.

 

분절된 학문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없다. 국어 독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도표를 읽고, 외국어를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하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 예술을 더 잘 이해하는 것도 분명하다. 융합과 통섭은 특별한 원리가 아니다. 우리 삶이 그러하다. 우리의 공부는 물리를 깨치는 과정, 과정이다.

 

문학은 인간에게 지식을 주지는 않지만, 지적으로 만들어준다는 어느 인문학 강사의 말에 공감한다. 문학을 읽으면 상상력이 깊고 풍부해질 것이다. 문학적 감수성이 없다면, 과학은 정보로만 남을 것이다. 과학에서 중요한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힘은 문학과 별개가 아니다. 생물학부 석박사 통합과정에서 공부한다는 저자는 문학에서 과학 원리를 끌어 온다. 이호우의 바다, 알퐁스 도데의 , 김소월의 초혼10편의 문학 작품을 가지고 과학 이야기를 풀어간다.

 

 

 

 

 

 

 

 

 

 

 

 

 

 

 

 

젠더 허물기주디스 버틀러 지음, 조현준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12.

 

저자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로 알려진 여성학자다. 그녀는 자신을 퀴어, 여성, 유대인, 철학자라고 칭한다. 이 책은 저자가 1999년에서 2004년 사이에 쓴 글을 엮은 것으로 윤리적 폭력, 사회 소수자의 공동체, 정체성과 보편성 등에 대한 사유를 펼친다. 범주화된 자신을 거부하고, 여성 남성의 경계를 넘어 우리가 되어 가는 과정만큼 절실한 것도 없다.

 

2015년에도 한국은 천만 영화가 여러 편 쏟아졌다. 6천만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천만이 보는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별개로 치더라도, 이런 문화 풍토가 가능한 것은 분명 자본의 힘을 것이다. 이 속에서 어떻게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한 문화의 공존은 불가능하다. 페미니즘은 패러다임이다. 개별적이고 특수한 젠더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은 강력한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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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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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으로 바로 서기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문학동네, 2015. 9.

 

신간에 뜨자마자 오랫동안 기억했던 책이다. 내가 읽는 개인주의자 선언이 벌써 5쇄라니, 독자의 반응이 대단하다. 사람들도 나처럼 개인주의 선언이 하고 싶은 모양이다. 조직에서 버티기로 마모되면서 살아야 하는 현실의 갑갑함이 크다. ‘는 작아지고, 사회적 지위와 역할의 무게는 점점 커져간다.

 

세대보다는 시대의 범주로 문제를 접근하는 문유석 판사의 접근이 훨씬 설득력 있게 나가온다. 장하성 교수가 쓴 신간 왜 분노해야 하는가(헤이북스, 2015. 12.)는 이십대의 역할을 강조한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아젠다를 세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법은 쉽지만, 한 세대를 하나의 집단으로 이해하는 장하성 교수의 태도가 몹시 불편하다. 세대로 묶으면 너무 많은 개개인의 편차가 희석되어 버린다.

 

인생에는 숱한 역설이 존재한다. 그것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간이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든가, 세상이 비관적이기 때문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든가, 불행하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등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우리는 죽는 걸 알면서도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이므로. ‘그러니까’, ‘어차피가 아니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살아야 한다.

 

저자 문유석의 글, 많은 부분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찌꺼기처럼 붙어 있는 잉여의 불편함이란 그가 너무도 당당하고 위악스럽게, ‘개인의 행복 추구.’,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직업.’을 말하기 때문이다. (서평을 쓰는 나의 비도덕성을 비난한다면, 당연히 할 말은 없다.)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 사람은 위악을 떨 수 있지만, 자신이 악하다고 믿는 사람은 위선을 부릴 수밖에 없다. 문유석의 위악은 조금 조심스럽다. 반듯한 사람, 건강한 소시민, 그러나 딱 거기까지.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팔려는 것도 아니고, 더더욱 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리라고 하니, 비난해야 할 까닭도 없다.

 

지난 주 인터뷰에서, 앵커 손석희는 배우 황정민에게 마지막으로 어려운 질문을 하겠다고 했다. 관객 천만을 달성한 국제시장제보자들중 어느 쪽에 마음이 더 기우냐는 것이었는데, 대답은 아주 쉬웠다. 고민할 것도 없이, ‘국제시장의 아버지가 자신의 이상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질문에 쉬운 답이라니. 거기까지가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한계라는 걸 알겠더라. 거기에서 나는 찝찝한 잉여가 남는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279).”는 저자의 말에 이렇게 댓글을 달고 싶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살려하기에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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