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기숙사의 공공욕실 겸 화장실에서 바퀴벌레를 보고 기겁을 한 뒤로 그 곳에 갈 때면 천장이나 구석 등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화인(華人)들에게는 '장랑'이라고 불리우는 이 생물은 대만에서도 혐오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다. 대만의 바퀴벌레는 한국의 바퀴벌레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마치 일반적인 술이나 향수와 그 미니어처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통통한 몸과 포동포동하게 살찐 다리, 그럼에도 놀랍기 그지없는 재빠름을 자랑할 때는 정말  끔찍함을 금할 길이 없다.

사실 어렸을 때는 바퀴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제일 이해하지 못할 몇몇 여자들의 버릇 중에 하나가 바로 바퀴를 보면 기겁을 하거나 도망을 가거나 하는 행위였다.(남자들 중에도 바퀴를 두려워하는 분들이 계시나?!...ㅡㅡ^....) 그 때는 정말 별다른 생각없이 보이는대로 바퀴를 살해하곤 했다. 바퀴는 생명력이 워낙에 질기기 때문에, 확실히 죽이려면 화장실 변기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교육을 받은 결과, 나는 집안에서 발견되는 그들을 대부분은 익사시켰다. 때때로 스트레스가 쌓여 있을 때 발견되는 그들은 나의 잔인함(?!ㅡㅡㅋ...)에 의해 압사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부터 바퀴를 피하기 시작한 이유는 사회화(?!)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가끔씩은 무언가에 끔찍한 상상을 하는 내 버릇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뽈뽈 거리며 나를 피해 달아나는 그 넘(?!^^;)을 휴지로 눌렀을 때 문득 손가락의 감각을 타고 그 갈색의 매끄러운 몸이 느껴진 순간, 그 넘의 몸이 나의 손에 의해 압박을 받으며 짓눌려 죽어가는 상상... 동시에 그 넘의 내부 물질들이 모두 파괴의 과정을 겪는 장면이 상상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바퀴를 죽이기 보다는 혐오감을 느끼며 피하기 시작한 것이다.(이거 혹시 정신병은 아니겠지?!...ㅡㅡ;;...)

그러다 오늘 문득 저번 학기에 '국제관계와 현세(現勢)'라는 과목을 수강했을 때 그 과목을 가르치시던 여 교수님께서 갑자기 출현한 바퀴벌레를 비난하시면서 무심히 내쫓으시던 기억이 났다. 여성들의 잠재적인 내구력 즉, 아줌마 파워에는 국경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던 순간이었다.

아직은 님비(NIMBY)적인 태도와 혐오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나 역시 그 놀라운 파워를 발휘할 때 쯤이면 바퀴벌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바퀴사랑을 실천해야 할 이유도 없지만 바퀴벌레를 인류의 적으로 정의하고 타도를 외쳐야 할 이유 또한 없지 않은가? 게다가 바퀴벌레의 입장에서는 인간적으로 아니, 벌레적으로 자기보다 몇 천 배는 큰 몸집을 지닌 내가 얼마나 무섭겠는가? 또한 사람의 미래는 알 수 없는 법, 내가 그 넘들과 사랑에 빠져 바퀴벌레 연구가의 길을 걷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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