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경제기적 - 프란츠 알트의
프란츠 알트 지음, 박진희 옮김 / 양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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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08년 대한민국 대통령의 연설에서 '녹색성장'이라는 개념을 매우 큰 비중으로 다루었다는 것을 보았다.

건설과 성장만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고, 대운하의 꿈을 포기 하지 못한 토건 개발 정부에서 나온 내용이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실제로 홈페이지에 가서 살펴보니 원자력을 녹색 성장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등 '녹색'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색 콘크리트 정부에서 녹색을 언급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생태학적 관점이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당연한 생각의 틀이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만약 프란츠 알트의 "생태적 경제기적"이 출간된 시점에서 이런 비전의 구현이 시작되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작금의 전세계적 경제 불황을 살짝 비껴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란츠 알트는 독일의 방송 기획자 겸 진행자이며 동시에 철학박사이기도 하다.

'녹색성장'이라는 조어와 마찬가지로 '생태적 경제기적'이라는 책제목은 생태학과 경제학을 모두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녹색성장에서 실상은 '성장'이 중요한 것과 달리 이 책은 '경제' 보다는 '생태'라는 단어에 강조점이 찍혀있는 셈이다.

 

보존과 개발이라는, 그리고 환경과 성장이라는 일견 상반된 듯 보이는 단어들이 만나 하나의 조어가 된 것 자체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기적일 수 있다. 그러나 폴 호켄이 '비지니스 생태학'에서 역설했고, '인터페이스'라는 기업이 실현한 것과 같이 이 두가지 개념은 양극단에 있는 개념은 아니다.

 

저자는 노동의 의미, 태양에너지 기반의 경제 기적, 교통체계의 전환, 생태농업으로의 전환, 생태학에 기반한 완전고용을 통해 행복으로 이르는 길 등을 책에 담고 있다. 명확하고 열정적으로....

 

........

 

우리가 삶을 지탱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주는 노동은 이제 낡은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에서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럼에도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체제가 항구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라며, 또 그럴 만한 힘이 있다. 새로운 가치로의 전환에 엄청난 걸림돌이 되고, 그 댓가는 지구적인 것이며 누구도 예외는 없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벌써 10년은 전에 나오는 이러한 새로운 생태적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기득권자들에게 그 권리를 인정해 주는 방식만이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엑손 모빌 같은 회사를 태양열 에너지 회사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엄청난 자금이 있고, 기술도 확보할 여력이 있다. 대신 세제 등을 통해 자연스레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정유업을 하는데는 환경세금을 가중시키고, 태양열 에너지에는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기득권자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쥐도 길을 봐가면서 몰아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걸림돌을 놓아둔 채 디딤돌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것일 지도 모른다. 같은 돌인만큼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물론 가치와 장기적 비전, 생태학을 모르는 시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만만치는 않겠지만 말이다.

  

- 우리 사회는 유연성 없는 장시간의 노동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업에 의한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있다.

 (29페이지)

 : 우리 나라 고용주들이 말하는 고용유연성이라는 것은 경제 상황에 따라 쉽게 자르고 다시 고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노동의 유연성은 노동하는 사람들이 쉽게 일을 얻고, 적절한 시간의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 현실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항상 성장이다. 정말 이해 안되는 단어는 '제로 성장'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표현이다.

   우리의 생존의 기초를 파괴하는 것보다 더 비사회적인 것은 없다. 지금까지 성장만 추구했던 경제에서도 성숙과정이 시작되어야 한다.

    (33~34페이지)

  : 기본적으로 정치인들에게 성장이 필요한 것은 완전 고용을 위한 것이다.

    저자가 표현하듯 이제 완전고용을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데, 그 전략은 '자연','생태학'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

 

- 경제의 생태화가 이루어질 경우에는 사방에 일자리가 생긴다. 폐쇄될 원자력발전소에서 일자리 하나가 사라지면 풍력발전 산업에서

   다섯개의 일자리가 생겨난다. 독일의 풍력산업은 7년 동안 매년 100퍼센트 씩 성장했다. 이야기의 핵심은 성장에 저주를 퍼붓자는 것이

   아니라 국민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고 성숙해지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는 중기적으로 원자력이나 화력발전보다

   싸질 것이다. 사후 처리 비용을 경제학적 계산에 집어넣게 된다면 말이다. (39페이지)

 : 비지니스 생태학에 설명되어 있는 영국의 경제학자 피구의 논리다.

 

- 환경보호는 일자리 킬러가 아니라 일자리 증식기이다. (40페이지)

 + 태양에너지로의 전환으로 독일에서만 110만개의 일자리가 생성됨

 + 물절약법을 제정해서 물보호 기술과 물절약 기술의 발달을 촉진하면 25만개의 일자리 생성

 + 생태적 세제 개혁으로 10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창출 (덴마크와 스웨덴은 이미 이렇게 진행중)

 

- 태양은 우리에게 매일 지구 전체 인류가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1만 5000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보내준다. (42페이지)

 : 상온 핵융합을 통해 에너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는 청사진을 그리지만 사실 태양은 아주 오래 전부터 풍성한 에너지를 주고 있었다.

   게다가 태양은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다! (알트의 또다른 저서 이름)

 

- 전세계에는 진정한 의미의 핵폐기물 궁극적인 처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에 일어날 대형 원자력 사고는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태양 에너지로의 전환 없이는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종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 (58페이지)

 

- 스위스의 사회윤리학자 한스 루는 시장이 그 자체로서는 도덕적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네가지 문제점을 이야기 한다.

 + 시장은 참여자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균등하지 않은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 생태적인 고려를 하지 않는다.

 + 단기적으로만 생각한다.

 + 가치를 모른다. (62~63페이지)

 

- 태양이 1만 5000배라면 바람은 35배, 바이오매스는 10배, 수력은 1/2배 (74페이지)

  우리가 낡은 에너지원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있을수록 그 후속 비용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다. (79페이지)

 : 물론 바이오매스는 논쟁이 진행 중이고, 수력은 수몰지 등을 생각하면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긴 하다.

 

- 기술에 대한 맹신에 젖어 있는 원자력 찬성자들이 에너지 경제를 커다란 규모로 변환한다고 하는 필수 불가결하고 시의적절한 과업에

   대해서만은 겁에 질린 기술비관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주 기이한 모순이다. (94페이지)

   원자력 발전소는 테러리스트의 잠재적인 목표이나 태양광 풍력 발전기는 테러의 목표도 될 수 없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태양과 바람을

   둘러싼 전쟁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95페이지)

 

- 자동차를 중심으로 하나는 교통체계는 개편되어야 한다. (109페이지)

 + 자동차를 기반으로 한 개인 교통수단 억제

 + 대중교통의 확충

 + 자전거 도로의 확충

 + 보행자 도로의 확충

 : 에너지의 비효율성과 결부되어 있을 뿐더러 여러 삶의 질과 연결되어 있는 자동차 중심의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자동차는 공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적인 고철 덩어리이다.

 

- 자동차는 전체시간의 2.8퍼센트만 운행되고 나머지 97.2퍼센트는 차고에서 녹슬고 있을 뿐이다. 이용 기간 동안에는 12억리터의 공기를

  오염시키고, 30여 그루의 나무를 병들게 하고, 세그루의 나무를 죽인다. 2만 유로를 들여 중세 마차마큼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은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114페이지)

 : GM 망할까?

 

- 유기 농부들은 화학 대신 지식과 노동을 투입한다. (142페이지)

  실제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만한 유일한 목표는 100퍼센트 유기농이어야 한다. (147페이지)

 : 지금 읽고 있는 쓰노 유킨도의 책 '소농-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를 보면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현재의 경제학이 지닌 결정적인 오류는 생태학을 경제의 하부 단위로 보고있다는 것이다. (157페이지)

 : 칼 폴라니의 지적 전통에서 나온 말인듯....

 

- 농업이 범한 최대의 실수는 농산물도 산업 생산품과 동일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말에 설득당해 버린 것이다. (158페이지)

 : 위에서 말한 시장 만능주의의 폐해다.

 

- 우리가 우려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영향을 미치고자하는 미래상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 모든 정신은 물질화된다.

   (166페이지)

- 성장 우선 경제에서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것은 유일하게 실업자의 수이다. (16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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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김앤장 - 신자유주의를 성공 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10
임종인.장화식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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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헐값 매각에 대해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8&aid=0002065058)

 

투기성 사모펀드 론스타는 자산규모 62조 6,033억 원의 외환은행을 단돈 1조 3,833억원에 샀다. (13페이지)

 

이렇게 헐값 매각을 해서 누가 이익을 보았고, 누가 손해를 보았을까?

금융기관이 아니라 투기자본인 론스타는 어떻게 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말도 안되는 거래에 관련된 사람들은 어떻게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을까?

이런 부당한 국부유출이 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법률사무소 김앤장"이라는 책에 나와 있다.

 

<< 법률사무소 김앤장, 임종인/장화식 지음 , 후마니타스. 12,000원 >>

 

이 책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권력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대한 책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법없이 세상을 살기 때문에 김앤장이고 장앤김이고 별로 관심이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니까... 그러다가 '김앤장'이라는 이름이 세간의 주목을 끈 사건이 있었다.

김앤장의 한 변호사의 연봉이 600억이라는 기사가 신문에 난 것이다.

그저 부럽기만 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돈을 버는가? 하는 지 알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국회의원 임종인과 외환카드 노조위원장 장화식이다. (임종인은 변호사 출신이고, 장화식도 법대를 나온 사람이다.)

 

눈치 챘겠지만 외환은행의 론스타 헐값매각에는 김앤장이라는 법률사무소가 있었다.

외환은행의 가격이 박해질수록 김앤장에 떨어지는 돈의 크기는 커지는 구조일 것이다.

외환은행의 매각에만 관여했는가 하면.... SK와 소버린 사태, 한미은행 매각, 진로의 매각에도 그 뒤에는 김앤장이 있었다.

물론 김앤장은 이익을 추구하는 법률회사이고,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내용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다.

단순히 법률자문으로 될만한 거래를 합법적으로 성사시킨다기 보다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의뢰인을 만족시킨다.

김앤장과 같은 비싼 법률회사를 고용할 여력이 되지 않는 서민들은 죽을 맛이지만 말이다.

(김앤장은 큰 돈을 지불할 여력이 되는 기업과 같은 법인만을 상대하는 집단이지만 재벌 총수와 같은 구매력있는 개인은 예외다.)

 

한국사회의 철의 삼각동맹이 있다고 한다.

법률엘리트 - 투기자본 - 정부관료가 그들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만큼이나 공고한 이 동맹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김앤장은 경제부총리, 재정경제부 장관, 국세청장,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직원 등 변호사가 아닌 사람들도 고문으로 영입한다.

이들은 막대한 보수를 받지만 변호사가 아니기에 단지 법률사무소 직원이다.

이들의 역할은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정부관료 집단으로의 통로가 되어주는 것이다.

회전문 인사라는 표현대로 김앤장 고문 출신 들은 다시 장관이나 부총리와 같은 직책의 정부관료로 다시 돌아간다.

 

판사나 검사와 같은 법조계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대법관 출신은 물론이고, 김앤장에는 기수별로 판검사들이 구색 맞춰져 있다고 한다.

'전관 예우'라는 일종의 '관계'에 의한 행태는 그야 말로 '법'의 정신과 위배되는 법조계 최악의 관행이다.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법률사무소에는 절친한 사법연수원 동기들, 대학동창들이 가득하고,

자신도 퇴직 후 그곳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면, 팔이 안으로 굽지 않겠는가?

어떤 정치적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법의 정신은 자본주의 시대의 경제적 유혹에도 초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관료와 법률엘리트의 공고한 카르텔에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바로 론스타, 소버린, 칼라일과 같은 외국의 투기자본이다.

- 액면가 1조 4천 6백억의 진로소주의 채권을 불과 2,750억에 샀던 골드만 삭스는 3조 4,288억에 하이트맥주에 재매각.

- 주식회사 SK의 주식을 매집하고 경영권 분쟁을 통해 2년 4개월만에 환차익까지 1조원을 벌어간 소버린.

이 막대한 이익에 법률자문을 해준 곳이 김앤장이다.

(FTA의 독소조항인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서 투자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분들이다.)

 

물론 부당한 이익에 대한 의심을 하면, 소송으로 답례한다고 한다.

최고의 법률가 집단이 소송을 한다는데 어떤 담대한 사람인들 간이 쫄아들지 않겠는가?

 

김앤장의 변호사 중 90퍼센트가 특정 S대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국립대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공부한 후, 사시/행시 붙어 공무원으로 취직하여 정부 관료가 되어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이후 승승장구해서 최고위 관료가 된 후, 그 곳에서 얻은 지식과 인맥으로 로펌에 들어간다.

외국자본에 편승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경력을 덧붙여 장관이나 총리 등으로 돌아간다.

정권이 바뀌거나 임기가 다 하면, 다시 로펌으로 복귀.... 자본에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며 자신의 사적인 이익만을 옹호해 나간다.

 

국적없는 자본의 시대에 자신의 재능과 지식으로 사적인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고,

공공의 선이 무슨 얼어죽을 미덕이겠는가만.... 입맛이 쓴 것은 못 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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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2-20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이래저래 소송같은 것들 뒤로 들리는 얘기 듣다보면 더 힘있는 쪽에서 김앤장 선임했다는 얘기가 얼마나 많이 들리던지. 그러고나면, 아, 그 쪽이 이기겠네, 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는 것도 그렇고요...
 
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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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떤 작가의 모든 책을 찾아서 읽는다는 것은 책을 고를 때 꽤나 신뢰할 만한 정보다.

내가 녹색평론사의 책들은 저자가 누구인지 가리지 않고, 사서 읽는 것처럼 말이다.(후마니타스와 필맥 등의 출판사도 믿음이 간다.)

누군가가 자신은 심윤경의 책을 꼬박 다 읽었다고 진지하게 쓴 글을 보고,

어느 순간부터 형성된 "소설은 도서관에서 빌려본다"는 행동의 습관을 깨고 '달의 제단'을 구매했다.

 

작가는 머릿말에 가슴의 뜨거움조차 잊어버린 쿨한 세상의 냉기에 질려버렸다며,

이 소설 '달의 제단'을 읽고 혹시 독자들이 불편하다면, 자신이 추구한 절실한 뜨거움의 일부로 용서받고 싶다고 했다.

타고나기를 뜨거운 열정은 없고, 세상에 대해 점점 냉소적이 되어가는 것 같았던 내게 이 머릿말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이야기를 불쏘시개로 냉골이 되어가고 있는 내 마음에 군불이라도 지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나서 내내 불편했다.

신파조의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과 행동의 과잉이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의 스메르차코프를 연상시키는 상룡이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반복할 때도,

효계당이라는 전통의 상징이 예전 편지글, 할아버지와 함께 모두 불타 사라질 때도,

이 과하게 뜨거운 시선에 마음으로 공감할 수 없었다.

'뜨거운 것은 모두 싫다'는 의미가 아니다.

뜨거운 이야기에도 개연성과 공감을 위한 세련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와 같이 구조주의적인 시각으로 이 소설을 분석한다면 오히려 그 가치가 높아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뜨거운 소설을 뼈대만 있는 차가운 시선으로 분석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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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공황전야 (확장판) - 한국경제의 파국을 대비하라
서지우 지음 / 지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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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하반기에 슬금슬금 다가 온 미국발 금융위기는 대한민국에도 예외없이 영향을 미쳤다.
갑자기 높아진 환율과 기업들의 부도설, 은행의 부실 등은 10년 전 그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특정한 정권이나 특정한 인물의 잘못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진원지가 미국이었던데다 원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호황과 불황은 번갈아 다가오는 것이라고 배웠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일상적인 경기 사이클과는 체감하는 크기가 다르다.
여태까지가 조수간만의 일상적인 파도였다면, 닥쳐올 불황은 대형 쓰나미 급인 것 같다.
 
불안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정보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복잡다단한 작금의 이 위기를 누가 시원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이 위기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사회적 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들은 큰 소리를 못 내고....
익명을 가진 야인들만 인터넷 매체에 사실에 가까운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의 예언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여태까지는 정부의 터무니없는 낙관론보다 정확했던 것 같다.)
그 중 한명의 책이 우연하게 내 손에 들어왔고, 꼭 400페이지 책을 숨죽여 읽으면서 머릿속에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경제 지식들을 직소 퍼즐 맞추듯이 하나의 그림으로 짜맞추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물론 비전공자 입장에서 전문용어나 수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내용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볼만하다.)
 
공황전야는 서지우씨가 쓴 책이다.
SDE라는 필명으로 이미 인터넷에서 이 사람의 글을 접한 적이 있었다. 미네르바라는 사람만큼 유명하다는 인터넷 경제 논객.
그 글들을 한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말에, 책의 구성은 중복이 많거나 짜임새가 덜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책의 구성은 탄탄했다. 그 만큼 세계 경제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작가였다.
 
제목처럼 가장 어려운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세계 경제 속에서 한국이 맞이 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상황은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이다.
초등학교 다닐때 들은 이야기인데... 독일에서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고 한다.
형제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술을 좋아하는 게으름뱅이, 한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 착실한 사람이었다.
엄청난 인플레이션 즉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오자 술꾼이 모은 술병의 값이, 착실한 동생이 모은 월급보다 많아졌다고 한다.
자칫 잘못하면 대한민국에 그런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장에 돈이 말랐다고 한다. 자산은 가격이 떨어지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추어 돈을 풀어내고, 국가는 재정지출을 늘린다. 원화는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수요가 줄어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높다. 기축통화의 발권국이 아닌 우리나라에 이렇게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면, 원화의 가격은 폭락할 것이다. 미국의 달러나 유럽의 유로, 일본의 엔과 같은 기축통화나 준기축통화는 찍어내도 유동성 확보를 위한 여러 국가들이 외환보유고라는 명목으로 그 돈을 쌓아 둔다. 그렇지만 원은 그렇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해외 선진국들의 처방을 그대로 따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금리를 올려 일단 주택가격 하락 및 미분양 아파트가 누적되어 부실화 되어 있는 은행에 힘을 실어주는 것에서 다가올 지도 모를 공황을 준비하자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가 사용하고 있는 대증요법과 토건족에 대한 배려는 '잃어버린 10년' 당시의 일본의 처방과 똑같다는 것이다. 금리를 높이면 기업과 개인이 죽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무조건 금리를 내려 더 부실화될 은행이 추심하게 될 원금에 대한 압박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IMF 탈출기는 세계 금융위기의 모범사례로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IMF 당시, 엄청난 고금리 정책으로 부실화된 은행에 수신고를 높여 은행의 부실을 떨쳐 낸 것이 시작점이었다. 이후에 건설회사와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관련된 부실을 정리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건설업은 이미 포화 상황을 넘어섰기에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필요하고,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관련된 것은 금융 파생상품으로 유동화작업을 거쳐 장기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한국판 뉴딜정책이라고 포장될 것이 뻔한 대운하를 비롯한 토목공사를 통한 경기 활성화는 실제로 기대하기 힘들다. 이것은 일본의 사례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미국의 뉴딜정책은 1930년대의 일이고, 그 당시 미국의 상황과 맞았기 때문에 성공하였으며, 이후에 벌어진 2차 뉴딜정책은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무엇은 무조건 옳고, 무엇은 무조건 틀리다는 이분법적 생각을 버려야 한다. 환자의 체질과 환자를 둘러싼 환경이 다른데 무조건 옆집과 같은 처방을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기침을 한다고 기침을 멎는 약만 먹이는 대증요법도 중단해야 한다. 기침은 증후다. 기침을 일으키는 진짜 원인을 찾아 그것을 없애야 기침이 없어지는 것이다.
 
SDE라는 논객의 진단과 처방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옳지 않다면, 공황이니 뭐니 국민들을 현혹시킨다고 공권력을 발휘할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그의 주장에서 틀린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2008년 경제위기의 원인과 공황이 의심되는 증후, 그 것에 대한 진단과 처방 외에도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속성에 대한 논의가 인상깊었다. 미국의 금융가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 '전염성 탐욕', '라이어스 포커', '내일의 금맥' 등의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고,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서는 우석훈의 한국경제 대안시리즈 4부작과 장하준 교수의 불온서적들을 읽으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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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훔친 여름 김승옥 소설전집 3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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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1936년생

백낙청 1938년생

이청준 1939년생

박상륭 1940년생

김승옥 1941년생

김    현 1942년생

윤흥길 1942년생

황석영 1943년생

조정래 1943년생

 

대한민국에서 이 몇 년 간은 왜 이렇게 훌륭한 문학가들이 몰려서 태어났을까?

이들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 처럼 스테로이드를 활용하지는 않았겠지만....

 

김승옥의 <내가 훔친 여름>을 읽었다.

60년대 후반에 쓰인 소설이란 것을 믿을 수 없다.

마치 마네가 아무런 내용이 없는 그림을 그린 것과 같다.

그가 검은 판쵸를 입고 압셍트를 홀짝이는 술주정뱅이를 그린 데에는 이유가 없었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쓰여진 것 같은 소설.

그러나 그 문학적 성취는 놀랍다.

우리학교 후문에는 <무진기행>이라는 밥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나시고랭'이라는 먹을 것의 이름을 들었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두번째 소설 <60년대식>은 또 어떤가?

의미를 상실한 채 00년대 끄트머리를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공허한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30년 전에....

 

<00년대식>이라는 제목이 어울릴 정도다.

하긴 사람들이 느끼는 인생의 외로움이나 공허함이 시대에 따라 다른 것은 아닐 것이다.

무슨 나약한 소리인가 싶은 씩씩한 분들의 질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맞다.

세계는 어차피 정열을 가진 사람들의 소유이다. (418페이지)

근데 소유를 했으면 책임을 지던가.

자신없으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던가.

이 (정열적인) 자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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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2-20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정열....아직도 그 부분이 종종 떠올라요. 열정도 아니고 정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