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공황전야 (확장판) - 한국경제의 파국을 대비하라
서지우 지음 / 지안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2008년 하반기에 슬금슬금 다가 온 미국발 금융위기는 대한민국에도 예외없이 영향을 미쳤다.
갑자기 높아진 환율과 기업들의 부도설, 은행의 부실 등은 10년 전 그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특정한 정권이나 특정한 인물의 잘못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진원지가 미국이었던데다 원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호황과 불황은 번갈아 다가오는 것이라고 배웠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일상적인 경기 사이클과는 체감하는 크기가 다르다.
여태까지가 조수간만의 일상적인 파도였다면, 닥쳐올 불황은 대형 쓰나미 급인 것 같다.
 
불안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정보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복잡다단한 작금의 이 위기를 누가 시원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이 위기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사회적 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들은 큰 소리를 못 내고....
익명을 가진 야인들만 인터넷 매체에 사실에 가까운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의 예언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여태까지는 정부의 터무니없는 낙관론보다 정확했던 것 같다.)
그 중 한명의 책이 우연하게 내 손에 들어왔고, 꼭 400페이지 책을 숨죽여 읽으면서 머릿속에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경제 지식들을 직소 퍼즐 맞추듯이 하나의 그림으로 짜맞추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물론 비전공자 입장에서 전문용어나 수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내용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볼만하다.)
 
공황전야는 서지우씨가 쓴 책이다.
SDE라는 필명으로 이미 인터넷에서 이 사람의 글을 접한 적이 있었다. 미네르바라는 사람만큼 유명하다는 인터넷 경제 논객.
그 글들을 한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말에, 책의 구성은 중복이 많거나 짜임새가 덜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책의 구성은 탄탄했다. 그 만큼 세계 경제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작가였다.
 
제목처럼 가장 어려운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세계 경제 속에서 한국이 맞이 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상황은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이다.
초등학교 다닐때 들은 이야기인데... 독일에서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고 한다.
형제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술을 좋아하는 게으름뱅이, 한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 착실한 사람이었다.
엄청난 인플레이션 즉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오자 술꾼이 모은 술병의 값이, 착실한 동생이 모은 월급보다 많아졌다고 한다.
자칫 잘못하면 대한민국에 그런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장에 돈이 말랐다고 한다. 자산은 가격이 떨어지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추어 돈을 풀어내고, 국가는 재정지출을 늘린다. 원화는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수요가 줄어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높다. 기축통화의 발권국이 아닌 우리나라에 이렇게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면, 원화의 가격은 폭락할 것이다. 미국의 달러나 유럽의 유로, 일본의 엔과 같은 기축통화나 준기축통화는 찍어내도 유동성 확보를 위한 여러 국가들이 외환보유고라는 명목으로 그 돈을 쌓아 둔다. 그렇지만 원은 그렇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해외 선진국들의 처방을 그대로 따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금리를 올려 일단 주택가격 하락 및 미분양 아파트가 누적되어 부실화 되어 있는 은행에 힘을 실어주는 것에서 다가올 지도 모를 공황을 준비하자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가 사용하고 있는 대증요법과 토건족에 대한 배려는 '잃어버린 10년' 당시의 일본의 처방과 똑같다는 것이다. 금리를 높이면 기업과 개인이 죽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무조건 금리를 내려 더 부실화될 은행이 추심하게 될 원금에 대한 압박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IMF 탈출기는 세계 금융위기의 모범사례로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IMF 당시, 엄청난 고금리 정책으로 부실화된 은행에 수신고를 높여 은행의 부실을 떨쳐 낸 것이 시작점이었다. 이후에 건설회사와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관련된 부실을 정리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건설업은 이미 포화 상황을 넘어섰기에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필요하고,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관련된 것은 금융 파생상품으로 유동화작업을 거쳐 장기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한국판 뉴딜정책이라고 포장될 것이 뻔한 대운하를 비롯한 토목공사를 통한 경기 활성화는 실제로 기대하기 힘들다. 이것은 일본의 사례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미국의 뉴딜정책은 1930년대의 일이고, 그 당시 미국의 상황과 맞았기 때문에 성공하였으며, 이후에 벌어진 2차 뉴딜정책은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무엇은 무조건 옳고, 무엇은 무조건 틀리다는 이분법적 생각을 버려야 한다. 환자의 체질과 환자를 둘러싼 환경이 다른데 무조건 옆집과 같은 처방을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기침을 한다고 기침을 멎는 약만 먹이는 대증요법도 중단해야 한다. 기침은 증후다. 기침을 일으키는 진짜 원인을 찾아 그것을 없애야 기침이 없어지는 것이다.
 
SDE라는 논객의 진단과 처방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옳지 않다면, 공황이니 뭐니 국민들을 현혹시킨다고 공권력을 발휘할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그의 주장에서 틀린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2008년 경제위기의 원인과 공황이 의심되는 증후, 그 것에 대한 진단과 처방 외에도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속성에 대한 논의가 인상깊었다. 미국의 금융가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 '전염성 탐욕', '라이어스 포커', '내일의 금맥' 등의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고,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서는 우석훈의 한국경제 대안시리즈 4부작과 장하준 교수의 불온서적들을 읽으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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