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지향 - 공부하지 않아도, 일하지 않아도 자신만만한 신인류 출현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순분 옮김 / 열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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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른한 무기력, 쿨한 낙오자 정서, 미래보다 현재에 충실하기, 집착하지 않기, 자기중심주의,

정치를 비롯한 기존 권위에 대한 (저항이 아닌) 무관심....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어리다가 젊어져 가는 세대의 모습이다.

일본 소설이나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이미지를 가진....

 

기존의 열정적이고 이성적이며, 낙천적인 인생선배들은 이런 특징을 지닌 난해한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이런 젊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성공인지도 모를 확률 낮은 전쟁터에서 아둥바둥 목을 매는 야심가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두세대를 모두 이해하는 (혹은 모두 이해할수 없을지도 모르는...) <낀 세대>에 태어난 나는 두 문화의 지층을 여러 곳에서 목격한다.

두 지층은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도저히 섞이기 힘들다. 아마도 이 젊은 세대가 사회의 전면에 나서게 될 몇년 후 즈음에는 '사회통합'의 주요 의제는 지역감정이나 계급보다는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88만원세대>에서도 언급한 소위 X세대라 불리웠던 <낀세대>들의 역할은 너무나 다른 이 두세대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다리 역할이 아닐까 하는 괜한 책임감도 느낀다. 

(이 블로그 대문 사진은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건물을 멋지게 이어주는 다리 사진인데 바로 그런 역할 말이다.)

 

일본에서는 그 양태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을 지라도, 더 먼저 이러한 사회현상을 겪었다. 스스로 하류사회를 선택하는 어떤 힘에 대한  분석들이 나왔고, 몇몇 책들은 공감을 얻어 초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는 풍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욕심없이 세속적인 경쟁에서 한걸음 물러나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엄격한 교육자인 우치다 타츠루씨가 지은 '하류지향'이라는 책은 내가 이들에 대해서 얼마나 낭만적인 렌즈를 끼고 피상적으로 바라봤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해 주었다. 공부하지 않아도, 일하지 않아도 자신만만한 신인류에 대한 그의 분석은 비록 엄밀한 편은 아니지만 굉장히 독창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그 대부분은 꼭 지켜야 할 과거의 가치에 대한 것이므로 이 작가의 시각은 분명 보수적이고 과거를 향해 있지만, 그 가치는 객관적으로 지금의 현상보다는 좋다고 느껴진다. 일본은 이렇게 확실히 지켜나갈 만한 과거의 가치가 있구나! 게다가 미국식 모델을 의심하고 끝났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는 점에서는 그들의 수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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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부로부터의 도피

 

- 일본의 교육현실은 처참한 상황으로 참관수업을 하는 와중에도 돌아다니거나 떠들거나 만화책을 본다고 한다.

- 실제로 학력저하는 과거에 비해 심각한 상황이나 전체적인 학력저하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생 포함)

- 모르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 하지 않으며, 세계를 인식하는 의미망 자체가 구멍이 나 있는 상태이다.

- 저자는 교육의 현장에서 학생들이 온 힘을 다해 배움을 거부하는 이유를 그들이 가진 존재의 인식에서 찾는다.

- 핵가족화에 의해 아이들이 '오레사마 - 자신을 높이는 존칭, 자기기준의 절대화를 일컬음'가 되어가고 있다.

- 아이들은 소비자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고 있으며, 모든 상황에서 시간성이 배제된 경제적 등가교환을 시도한다.

- "이걸 배우면 뭐가 좋아요?"라고 묻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것은 자신이 수업시간을 견뎌내면 어떤 댓가를 얻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 선생님들 역시 배우면 좋은학교,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를 얻을 수 있다는 등의 이유을 말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

- 배움은 단기간의 댓가성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긴 호흡을 가진 권리. 마치 "왜 사람을 죽이면 안되는가"를 묻는 것 같은 질문.

- 부모/양측 조부모등 여섯개의 주머니를 차고 태어나 어려서부터 소비자로서 대접받는 아이들은 취학전에 소비주체로서 자기를 확립.

- 소비자로서의 학생들에게 당장 용도와 유용성이 이해 안되는 '교육'과 같은 상품은 합리적이지 않은 서비스.

- 교육의 이익은 그 과정이 끝나고, 한참 후에나 알 수 있는 것.

- 과거의 아이들은 집안에서 댓가성이 즉각적이거나 물질적이지 않은 노동에 참여함으로써 시간의 지체를 견뎌낼 수 있었다.

- 교육 장면에서 경제적 소비자로서 내보일 수 있는 등가교환의 화폐는 불쾌함을 표현하는 것.

- 핵가족화되고 아버지의 노동을 볼 수 없는 가정에서도 퇴근후 서로 힘들고 불쾌함을 표현하는 것은 일반화된 현상.

- '자기 찾기'라는 이데올로기는 합리적이고 쿨한 측면이 있는 듯 하지만, 자기 자신을 닫고 개방성을 잃는 측면이 있음.

 

2. 리스크 사회의 약자들

- 학력은 더이상 취직의 보증수표가 아니고, 노력과 성과가 일치하지 앟는 사회가 되었지만 아예 포기하게 되면 가능성은 0%.

- 리스크 사회에서 리스크를 헷지하는 것은 개인만의 몫이 아님.

- 모든 리스크를 개인에게 떠맡기는 것은 잘못된 관점이며, 완결된 개인의 신화가 그런 것을 당연하게 만들고 있음.

- 리스크를 나누는 사회안전망과 시스템이 필요함.

 

3. 노동으로부터의 도피

- NEET 족의 심리는 유아기에 자기 형성을 완료했다는 것.

-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파랑새는 사실 존재하지 않으며, 이 파랑새 증후군은 자기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는 치명적 단점을 가짐

- 조직내에서의 노동 댓가(임금)은 언제나 기대에 못미치는 법. 그렇지 않으면 조직이 존재할 이유가 없음.

- 합리성을 바탕으로 계속적으로 투덜대며 이직하는 것은 계층하강으로 가는 길.

- 이러한 미국식 자아 모델은 한계가 있으며, 벗어나야할 무엇임.

 

대략 이런 이야기들이다. 매우 보수적이면서도 한편 이유와 깊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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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 동문선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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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복과 나비는 단 한줄도 아니 단 한글자도 건성으로 볼 수 없는 책이다.

갑갑한 잠수복에 육신이 갇힌(locked-in) 그는 나비의 팔랑임과 같은 왼손 눈꺼풀의 깜빡임 만으로 이 책을 지어냈기 때문이다. (20만번 이상의 지루하면서도 동시에 유쾌한 깜빡임....)

재기 넘치는 이 잡지 편집자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15개월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웠다. 나는 책을 읽다가 간지러운 귀를 긁는 것도, 목이 말라 물을 따라 꿀꺽꿀꺽 마시는 것도 미안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극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이미 지난 경험에서 세밀하고 절절한 감각을 되살려내는 작가의 왼쪽 눈꺼풀에 경의를 표한다.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침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집이건 사무실이건 고요함을 견딜 수 없어 라디오나 TV 등의 매체를 통해 정보와 음악으로 빈공간을 채우는 사람들. 적막함을 견딜 수 없는 것은 대체로 자기 자신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다.
외부의 자극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안그래도 작은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한다. 본질적인 자신과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를 대인기피증이 아닌 대자기기피증이라고 해야 하나?

이 책의 작가는 주로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했지만,
제 것이라고도 하기 힘든 몸에 갇혀서 이전과는 완전하게 달라진 자신과 매순간 대면해야 했을 것이다.

행의 이면마다 배어있는 실존의 슬픔 또는 고통은 나만의 상상일까?

나중에 홍콩에 다시 한번 가게 될 기회를 얻는다면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페닌슐라 호텔의 Bar인 펠릭스에서 장 도미니크 보비라는 이름이 적힌 의자를 찾아봐야 겠다. 비틀즈의 노래로 고막을 가득채운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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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의 경제학 - 정보 비만과 관심 결핍의 시대를 사는 새로운 관점
토머스 데이븐포트.존 벡 지음, 김병조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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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데이븐포트가 지은 <관심의 경제학>은 경제학 서적이라기 보다는 심리학 서적에 가깝다.

의도를 가지고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인간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벌써 책 제목에서 앞쪽의 '관심'에는 마음심(心)자가 들어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경제학이라는 단어가 쓰였을까?

그것은 이 책이 뭔가 인간의 경제적인 활동에 대해서 주로 다루기도 하고 있지만, 관심이라는 자원 자체가 한정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Pay Attention"이라는 동사의 쓰임새를 떠올리며, 관심은 뭔가를 지불해야 하는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가치가 있는 이유는 그것이 뭔가 희소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책의 원 제목은 The Attention Economy로 관심보다는 '주의'로 번역을 해야 맞을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책 내용에서의 Attention은 의도된 관심이라기 보다는 인지심리학에서 취급하는 '주의' 정도의 깊이를 갖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의 Attention은 시간이 갈수록 Intention으로 바뀌게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관심이라는 번역이 마음에 든다.)

 

이 이야기들은 상당히 현상학적인 접근법이다.

물리적 자극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사람들의 머릿속 혹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중요하다는 것.

몰입의 즐거움을 설파하는 칙센미하이가 관심을 측정하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뭔가의 몰입에 들어가는 심리적 자원들이 바로 관심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관심은 한정적인 속성이 있고, 사람들은 엄청난 정보의 시대에서 정작 관심의 결핍 혹은 관심의 획일화를 경험한다.

마케터들은 구매행위와 연결되는 이 관심을 잡아두고 관리하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붇고,

경영자들은 자신의 조직구성원들의 관심을 경영해서 그들의 역량을 한 곳에 집중하거나 적재적소에 배분해야 한다.

 

마케팅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한 경쟁이다.(171페이지) - Seth Godin이 Fast Company라는 잡지에서 한 말이다.

그가 지은 <보랏빛 소>라는 저작은 마케팅에서 관심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들을 '소비적인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탐탁치는 않지만, 그런 관점을 무시하거나 몰라서는 안되는 세상이다.

 

오늘날 뉴욕타임즈 일요판에 담긴 정보는 15세기에 쓰여진 모든 문서를 합한 것보다 많다(20페이지)고 한다.

이런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연히 특별한 정보에 한정된 관심을 효율적으로 쏟아야 할 것이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 정보를 처리하는데 멍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멍청한 짓이며,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중하지만 한정된, 한정되어서 소중한 자원인 관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경영(효과적인 자원배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 RSS 리더는 이런 관심의 효율적 이용에 유용한 기술적 툴이다.

※ 물론 이런 기술적 툴은 그야말로 수단이며, 우리는 우리가 가진 관심자체를 넓히고 세련되게 만드는 것에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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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어스 포커 - 월가 최고 두뇌들의 숨 막히는 머니게임
마이클 루이스 지음, 정명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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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혀 모르는 다른 세계를 훔쳐보는 일은 퍽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이런 간접경험이 주는 재미를 위해 책을 읽거나 영화, 드라마를 보는 것 아니겠는가?

뉴욕 월가의 펀드매니저나 증권 혹은 채권 트레이더 등 소위 금융전문가에 대한 환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대체 그곳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무슨 일을 하길래 전화기를 두세개씩 들고 있는가?

약간 풀어헤친 넥타이에 까칠한 수염을 가지고 철인처럼 밤을 새워가면서 일할 정도로 정말 바쁠까?

또 그들은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벌어 주길래 그렇게 많은 연봉을 받을까?

정크 본드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가? 모기지 채권시장은 또 뭐고, 그들은 어떤 논리로 미래를 예측하는가?  등등

 

New New thing과 Money Ball의 저자 마이클 루이스가 쓴 라이어스 포커에는 1980년대 월가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마이클 루이스라는 사람은 모르는 분야를 친절하고 재밌게 소개해 주는 재주있는 작가인줄만 알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80년대 모기지 채권 트레이딩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벌던 회사 살로먼의 직원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꽤 잘나가는...

(지금은 스미스 버니에 흡수되어 살로먼 스미스 버니가 되었다.)

 

이 책이 나왔을때, 뉴스위크에서는 "마이클 루이스의 생생한 묘사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트레이더의 눈썹을 타고 떨어지는 땀방울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라는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400여 페이지되는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오히려 월가 혹은 금융권의 일상에 대해서 함부로 아는 척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아는 척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흥미로워서, 미국 금융권을 다룬 600여 페이지의 또 다른 책 '전염성 탐욕'을 읽기 시작했다.)

 

결국 월가는 사람이 사는 곳이었고, 챕터마다 도장처럼 찍혀있는 Wall Street Greed라는 문구처럼 탐욕이 있는 그대로 인정되는 곳이었다.

무지한 사람을 속이고, 제도의 틈새를 파고들고, 정글처럼 내부 경쟁이 치열한 곳.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한 탐욕의 소유자이거나, 오히려 탐욕을 초월한 사람 이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결국 채권 세일즈맨이었던 저자는 Caveat emptor(사는 사람이 주의깊게 봐야지)라는 라틴어 경구가 지닌 비정함을 못견디고 뛰쳐나온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Contrarian 즉 역발상 전략가와 특정사안에 대한 발빠른 2차 3차 효과에 대한 것이었다. (295~298페이지)

많은 투자자들은 돈을 잃는 것을 두려워 하지만, 그것은 고독의 두려움만큼 강하지 않아서 투자자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회피하는 위험을 짊어질 확실한 논리와 그것에 대한 신념이 있다면 그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거대 기업의 실패를 그대로 보고 넘어가지 않던 시기의 위태한 기업의 채권을 헐값에 사는 것이 그 예이다.

 

큰 사건이 터졌을 때의 연쇄반응을 미리 예측하고 행동하는 것은 더욱 흥미롭다.

예를 들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뉴스가 나온지 수 분만에 원유(원자력 발전의 대체재)를 매수한다거나,

원유를 매수한 몇 분 뒤에 "감자를 사. 빨리 움직여." 하고 전화를 끊는 기민함 (방사능 작진이 감자를 포함한 유럽의 농작물의 대용물은 미국의 감자)은 돈을 벌고 못벌고를 떠나 극적인 재미가 있다.

 

도쿄에 강진이 일어났다면? 많은 일본 투자자들은 공황상태에서 엔화를 팔고 일본 주식시장을 빠져 나오려 하겠지만,

역발상 전략가들은 그 매물에 의해 싸진 주식과 일본 국채(지진으로 인한 일본 경제의 일시적 위축 →일본 정부의 금리인하로 재건활동 자극→금리 인하로 인한 채권 가격 상승) , 엔화(일본기업들의 엔화 본국 송환→투기 거래자들의 기대로 인한 엔화 매수→엔화매수로 인한 엔화 가격상승)를 매수하게 된다. (일본에 지진나기를 기도하거나 하지는 맙시다.)

 

전체적으로 80년대 이야기여서 조금 뒤떨어진 감이 있긴 하지만, 치열하다 못해 지독한 금융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과연 그들의 생활이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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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위기의 진실
잭 M. 홀랜더 지음, 박석순 옮김 / 에코리브르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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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잭 홀랜더 씨는 지구가 곧 멸망할 것 처럼 호들갑을 떨고, 공포와 불안을 조장하는 환경 비관론자들에게 일격을 가하는 책을 썼다.

바로 "환경위기의 진실"이라는 책이다. 사실 생존과 관련된 것은 언제나 큰 주목을 받고 설득력을 얻는 속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환경론자들의 말이 사실인지 의심을 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고, 환경 낙관론자의 주장은 어떤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만육천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조금 싸게 샀지만서도...)

 

그러나! 환경비관론자들에게 일격을 가하는 이 무기는 그다지 날이 서 있는 것 같지 않다. 환경위기로 지목된 부분들(예를 들면, 대기오염,인구, 식량, 수산자원, 온난화, 수질오염 등등)을 챕터로 나누어 조목 조목 비판하려고 하는데, 이 모든 원인을 '가난'으로 귀속시킨다.

각 챕터는 동일한 논리 구조로 진행된다. <비관론자들은 이런 견해를 내 놓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저지른 일이 아니며, 지금 부유한 선진국에서는 점차 개선되는 경향성이 있고, 문제는 가난한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이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환경의식이나 기술을 보면 모두 잘될거다.> 라는.... 이 순진한 낙관론은 단 한 챕터의 예외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분은 화학과 원자력을 공부하신 과학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세계적인 혹은 한 국가 내의 부의 편중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풀기가 화학이나 물리학의 오랜 난제들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 어렵다는 것을 모르고 계신 것 같다. 또 이분은 미국에 사시는 백인 남성이라서 그런지 여타 국가들의 가난을 단순한 원조의 대상이나 아직 발전하지 못한 미개한 국가들이라는 제국주의적 시각을 자신도 모르게 갖고 계신 것 같다. 모든 환경위기의 만능열쇠인 미국과 선진국의 '富'가 어떤 식으로 쌓이는 지를 의식하지 못하시는 것 같다. 미국이 가진 부유함의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년대를 사신 노엄 촘스키나 하워드 진의 저작도 좀 읽어보심이 옳지 않을까 싶다.

 

혹시 저자는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환경에 대한 낙관론을 통해 이익을 얻는 집단에 의식적으로 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교토의정서를 비준시키지 않는 과학적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미국이 이 조약에 참여하게 되면 앞으로 몇십년 동안 2조 3000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147페이지)고 스스로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몇몇 주장들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모든 환경 오염과 파괴에 인간의 활동이 결정적인 변인인가 하는 물음같은 것 말이다. 물론 비관론과 낙관론의 양측에서 제시하는 근거 자체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이 내용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괜한 공포나 죄책감 같은 것이 정당한 것인가 아닌가를 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 낙관론자들의 좀더 설득력있는 책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것이 폴 호켄의 '비지니스 생태학'처럼 대안의 모델을 다루고 있다면 더욱 고맙겠고 말이다. 

 

이 책의 역자 이름이 왠지 눈에 익어서 찾아보니, 우리 민족의 부흥과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위대한 한반도 대운하의 첫삽을 뜰 수 있도록 열심인 박석순 교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교수님이 100분 토론에 나와서 누구인지 모를 이익을 위해 호통치시던 모습을 잭홀랜더 교수님과 무의식적으로 오버랩 시킨 것은 아닌가 반성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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