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 동문선 / 199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장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복과 나비는 단 한줄도 아니 단 한글자도 건성으로 볼 수 없는 책이다.

갑갑한 잠수복에 육신이 갇힌(locked-in) 그는 나비의 팔랑임과 같은 왼손 눈꺼풀의 깜빡임 만으로 이 책을 지어냈기 때문이다. (20만번 이상의 지루하면서도 동시에 유쾌한 깜빡임....)

재기 넘치는 이 잡지 편집자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15개월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웠다. 나는 책을 읽다가 간지러운 귀를 긁는 것도, 목이 말라 물을 따라 꿀꺽꿀꺽 마시는 것도 미안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극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이미 지난 경험에서 세밀하고 절절한 감각을 되살려내는 작가의 왼쪽 눈꺼풀에 경의를 표한다.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침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집이건 사무실이건 고요함을 견딜 수 없어 라디오나 TV 등의 매체를 통해 정보와 음악으로 빈공간을 채우는 사람들. 적막함을 견딜 수 없는 것은 대체로 자기 자신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다.
외부의 자극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안그래도 작은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한다. 본질적인 자신과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를 대인기피증이 아닌 대자기기피증이라고 해야 하나?

이 책의 작가는 주로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했지만,
제 것이라고도 하기 힘든 몸에 갇혀서 이전과는 완전하게 달라진 자신과 매순간 대면해야 했을 것이다.

행의 이면마다 배어있는 실존의 슬픔 또는 고통은 나만의 상상일까?

나중에 홍콩에 다시 한번 가게 될 기회를 얻는다면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페닌슐라 호텔의 Bar인 펠릭스에서 장 도미니크 보비라는 이름이 적힌 의자를 찾아봐야 겠다. 비틀즈의 노래로 고막을 가득채운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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