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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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로 간다. 

그럼, 시간은?
시간은 흘러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언제나 현재만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
지나간 시간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시간은 존재하는 모든 곳에 스며든다. 

기억 속에, 기록 속에, 건물에, 나이테에, 조가비의 껍질에, 눈가의 주름에, 이가 빠진 빈 공간에, 요람에, 무덤에, 산에, 들에....
 

작가 황정은의 소설 <백의 그림자>에는 무척 많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는 건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개발'이라는 흉기에 의해 산산히 흩어져 버린다.
 

그 속에는 은교와 무재의 아주 담담하고 평범한 사랑이 서려있고,
개발을 둘러 싼 소음에 씨발씨발하는 여씨 아저씨의 아날로그 앰프 고치는 기술도 있고,
오무사 할아버지의 수많은 작은 전구와 몇개를 사든 +1개를 주는 배려도 있고,
유곤 씨가 싫어하는 쥐며느리도 있고, 유곤 씨가 던져서 쥐며느리를 잡는 성경책도 있었다.
 

어느 날인가 쌓인 시간을 파괴하는 포크레인이 오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스며든 시간과 추억이 채 쌓일 사이도 없이 부셔 버리는 나라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래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자신만의 시계가 멈추는 그 날까지.
모두가 그렇게 살듯이 평범하게.

이 글을 쓰는데 언니네 이발관의 '산들산들'의 들려온다.
뭔가 이 책과 통하는 것이 있어 보인다.
----------------------------------------------------------------------------------------------------------------------------
산들산들.

                                     - 언니네 이발관 -

 

그렇게 사라져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순간도 희미해져 갔어

영원히 변하지 않는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게 어딘가 남아 있을거야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누군가의 별이 되기엔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도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피할 수 없어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멈출 수 없는 그런 나의 길

다가올 시간 속의 너는 나를 잊은 채로 살겠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게 조금은 남아있을 거야
새로운 세상으로 가면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맘처럼 쉽진 않겠지만 꼭 한번 떠나보고 싶어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많은 세월 살아왔지만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서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두렵지 않아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웃음지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네
그게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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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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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의 제목(?)인 <세모난 바퀴의 자전거>는 귀여운 어린이들이 타는 자그마한 <세발 자전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세모난 바퀴의 자전거"는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세발 자전거"와는 완전히 다른 무시무시한 자전거다. 바퀴는 본래 '원'이어야 한다. 그래야 지면과 닿는 면을 줄여서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바퀴가 삼각형이라면... 그 자전거는 한번 페달을 밟을 때마다 죽을 힘을 다해야 하고, 지나간 길은 바퀴의 뾰족함에 여기저기 파여서 엉망진창인 비효율적인 존재일 것이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바퀴가 원이 아니라면 그것은 이미 자전거(스스로 굴러가는 수레)가 아닌 셈이다.  

(왜 이런 단어를 조합했는지는 http://eastdew.blog.me/140000356843 ← 포스트에 나와있다.) 

<세모난 바퀴의 자전거>와 가장 가까운 책 제목을 꼽으라면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재일 한국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고 태어난 강상중 교수는 이 자그마한 책에서 참 커다랗고 답을 내기가 쉽지 않은 고민거리들을 다루고 있다. 성찰없는 솔직함이 미덕이고, 진지함은 그 자체로 지루함인 요즈음 시대에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목차를 통해서 그의 고민들을 살펴보자.

- 나는 누구인가?  -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청춘은 아름다운가? 

-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이 대단한 고민 거리들을 보고 혹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답없는 고민을 하는 것은 낭비"라고 말이다. 고민하는 시간에 자기 개발을 하여 스펙을 쌓아 올리고, 더 높은 위치에 올라,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것이라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 사람의 삶의 기초가 되는 철학과 가치관이 '부'와 '안락함', '권력'과 '지배' 등에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근본적인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기초가 되는 탄탄한 철학과 가치관을 갖추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질적 부유함'을 인생의 제 1가치로 여기고 추구하는 사람이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설령 그 사람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허망함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민'이라는 벽돌로 인생을 투자할 일인지에 대한 사상적 기초를 쌓지 않으면 결국 무엇이든 그 위에 쌓인 결과물은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있다. 이것이 바로 고민이 갖는 본질적인 '힘'이다. 

강상중 교수는 100여년 전에 살았던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고민'의 선배로 삼고 있다. 이들은 답이 없는,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들이다. 삶의 후배들은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들을 참고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이거나, 고민을 심화시킬 수 있다. 또는 고독한 고민의 과정에서 위로를 받고, 일종의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일방적인 가치로 숭상하는 "경제적 가치"는 사실 수단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인류가 가진 진정한 자산들은 끊임없이 골몰하고 고민한 흔적들이다. 돈으로 만든 것들은 길어야 100년 안에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치열한 고민의 결과들은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전승될만큼 소중하고 힘이 있는 법이다.

"진지하게 생각에 골몰한 끝에 뻔뻔해진다."
강상중 교수는 이런 말을 하며 작지만 힘있는 이 책을 마무리 짓고 있다. 진지한 고민을 거친 후에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뻔뻔할 정도로 자신감이 생긴다는 뜻일게다. 진지하고 깊은 고민은 그 고민의 주체를 '자유'로 이끄는 힘까지 지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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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의 충격 - 책은 어떻게 붕괴하고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한석주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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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대략 1000권 정도의 책이 있는 듯하다. 책을 모아놓은 서재는 비록 물리적으로는 크지 않지만, 1000가지의 세계관이 농축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의미의 크기로 보면 꽤나 큰 방이 아닐 수 없다. 산 지 10년이 훌쩍 넘은 책들은 이제 햇볓과 습기, 책벌레 등에 의해서 낡아간다. 아버지가 대학교 다니실 때 사셨던 책들의 책장은 이제 비스킷처럼 딱딱하게 굳어져서 손만대면 바스라지는 것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종이책의 물리적 상태가 낡아진다고 그 책이 가진 의미들도 함께 사라지느냐하면 그렇지는 않다. 영문과를 다니셨던 작은 고모가 원서로 산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원서는 낡고 초라해 졌지만, 그의 생각들은 여전히 읽히고, 공유되는 생명력을 지녔다. (사회평론사에서 나온 2000년대 번역본이 1퍼밀의 농도로 책장에 존재하긴 한다.) 

종이책의 매력은 대단하다. 알록달록한 책등이 저마다의 이름표를 달고 들쭉날쭉한 크기로 책장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움은 어느 우아한 벽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읽지 않은 책들의 책장에서 읽은 책의 책장으로 옮겨 놓을 때의 뿌듯함과 흐뭇함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리추얼의 즐거움이다. 서로 다른 작가들이 지은 책들이 때로는 서로를 지지하고, 때로는 서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서재를 가진 사람들만이 아는 재미다. 가방 속에서 누군가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해주고, 교통수단을 더 이상 이동 수단으로서가 아닌 의미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리는 것도 종이책이다. 이러한 종이책들은 짐승의 가죽이나 나무에 글을 적는 죽간 등의 형태를 거쳐 만들어진 이후에 몇천년간 인간에게 지적 만족을 주어 왔다. (중국 후한 시대의 환관이었던 채륜이 종이를 만든 것은 약 2000년 전?)

하지만.... 우리가 종이책에서 얻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구매하는 책은 궁극적으로 종이가 아니라 활자화된 저자의 생각이다. 종이는 양의 가죽이나 얇게 만든 대나무보다 훨씬 효율적인 미디어의 물리적 형태였을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과 기업들이 인터넷과 무선통신망 등이 일반화되면서 책이 Atom에서 Bit로 전환될 것을 예측했다. 이 세상의 정보는 모두 정리해 버리겠다던 구글은 십수년 전부터 도서관의 엄청난 책들을 코딩해왔고, 음악을 디지털화해서 유통시키는 플랫폼을 성공시킨 경험을 가진 애플도 아이패드라는 단말기를 선보이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의 빠른 전개는 인터넷으로 종이책을 팔던 아마존이 전자책 플랫폼인 킨들을 훌륭하게 성공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정작 어려운 것은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로 자신의 도전이 성공하는 것이 단지 아이디어의 발상이 아니며, 그 아이디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장벽을 넘어섰다는 것을 암시했다. 실제로 출판이라는 것은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존재한다. 저자, 편집자, 제본, 인쇄, 유통, 독자 등등. 이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전자책의 모습은 모두 달랐을 것이다. (전자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피에 비해 무겁고, 책주인들이 논리에 따라 정리해 놓은 책들을 마구 옮겼을 때 생기는 불평에 짜증이 났을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 뿐?)

킨들과 아이패드라는 가시적인 단말기와 출판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잘 조율해내고 있는 미국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향후의 책의 미래를 예측한 책이 사사키 도시나오의 '전자책의 충격'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전자책에 대해 호의적이다. 과거 생성, 유통되는 정보와 지식이 적었을 때, 출판사(혹은 다른 미디어 종사자)가 가졌던 "우리가 정보를 쥐고 나눠준다"라는 완고함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누구라도 자가 출판이 가능한 시대에서 아직까지 과거의 권력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 일본 출판계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출판 플랫폼을 비교적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한발 앞서 간 음악의 생성과 유통, 소비하는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미래의 책을 예측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미래에는 물리적인 형태의 책을 제작하는 인쇄나 제본 등의 회사들은 점차 힘을 잃게 되며, 매스 미디어가 주도하는 마케팅 방식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미래의 책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Micro Influencer)들이 소셜 미디어나 블로그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측 등이다.  

사실 이 책에는 크게 새롭거나 대단한 내용은 없다. 하지만, 전자책이나 미디어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의 단초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다. (전자책 등 출판계의 에코시스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해서 별도의 포스트를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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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0년 후
조지 프리드먼 지음, 손민중 옮김, 이수혁 감수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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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점점 더 빨리 변해가는데다 그 변화의 양상은 매우 복잡하기까지 하다. 과거의 변화가 비교적 선형적이었던 것에 비해, 미래의 변화는 1차방정식 형태의 회귀선으로 회귀하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이제 현명한 사람들은 쉽게 미래를 점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미래를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미래에 관심이 많다. 현재가 복잡하고 불안하여 미래가 더 불투명해질수록 그 관심은 더욱 커질 듯 하다. 

그런데...  

조지 프리드먼은 무려 100년을 예측한 책을 냈다. 게다가 이 책은 한 국가의 한 분야가 아니라 전세계의 미래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10년 전쯤 읽은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문명의 차이, 문화의 상이함이 지나가는 단층선에서 거대한 충돌이 일어난다고 예측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단순함이 가져오는 명확함에 열광했고, 다른 사람들은 차이가 분쟁을 낳는다는 단순한 논리를 공박했다.

9.11을 비롯한 국제 테러는 종교적 외피를 두르고 있었으며, 실제로 그 행동을 한 사람들은 종교적 신념에서 출발했다. 미국의 가치들이 세계로 퍼져나감에 따라 전통적인 생활방식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같은 것 말이다. 그들의 눈에는 미국적 사고와 생활문화는 강력한 위협 요소였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 문화적 차이는 흔히 일어나는 분쟁을 몇퍼센트나 설명할 수 있을까? '문명의 충돌'을 읽던 중에 책 옆 여백에 "돈은?" 이라고 써 놓은 흔적이 있다. 요즈음에는 사람이고 국가고 명분보다는 실리에 좌우된다. 국가들을 움직이는 것은 사실 '국익'이라는 포괄적인 상위개념이라고 봐야 한다.  

조지 프리드먼은 향후 100년의 국제관계를 (과감하게) 예측함에 있어서 철저하게 '국익'이라는 잣대를 사용한다. 문명과 문화라는 변수는 그 역동성이 국익이라는 변수보다 변화가 덜하다. 문화는 시간을 두고 아주 천천히 변하는 반면, 국익은 시시각각 바뀐다. 이런 점에서 프리드먼은 헌팅턴보다 더 복잡한 분석의 툴을 사용한 것이다. (물론 그 국익에는 문화적 차이라는 변수도 포함되어 있다.)

단, 모든 국가가 '국익'을 위해 움직이는 이면의 전제 조건은 '지정학적 위치'이다. 생물학은 운명이라고 했던 것과 같이, 프리드먼의 분석에 있어서 지정학적 중요성 역시 일종의 운명과 같은 역할을 한다.

서론이 길었다. 조지 프리드먼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미국의 금융위기는 미국의 패권을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프리드먼의 관점은 다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의 문명은 아직 젊은 문명이며, 여러가지 조건에 의해 미국의 패권은 향후 100년간 비교적 굳건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해양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과, 아직도 너무나 강력한 미국의 군사력이 그 조건이다.

반면, 현재 Big2라고 여겨지는 중국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며 2020년이 되기 전에 몰락한다는 예측이다.

중국은 수출에 의한 고성장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데, 과거 일본이 그랬던 것과 같이 중국 내부에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본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하여 내실을 다지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진단한다. 향후 성장의 크기가 줄어들면, 페달을 밟지 않는 자전거처럼 비틀거리며 쓰러질 것을 예측하고 있다. 해안지방과 내륙지방의 불평등이 가져오는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해안 상업도시들은 향후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일본과 연결되고, 이용당할 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전세계를 움직이려는 미국은 한 지역에서 패권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혼란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전략을 사용하는데, 중국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일본을 견제하는 정도의 역할만을 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도 그 잠재력을 인정하고는 있으나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의해 일본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다. 통일은 2020년 이전에 될 것이라고...) 

유럽은 어떠한가? 유럽의 떠오른 강대국으로는 터키와 폴란드를 들고 있다. 이슬람 세력의 구심점이 될만한 지정학적 위치와 인구, 경제력을 갖춘 나라는 아무래도 터키 밖에 없으며, 실제로 터키의 경제력은 강해지고 있다. 

폴란드는 강대국 터키의 견제세력으로 미국이 지원하는 국가이다.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독일 사이에서 고난을 당해왔는데, 비로서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분열을 통해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또다시 폴란드는 전쟁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진단도 덧붙여 진다.

상당한 개연성을 가지고 씌여지던 생생한 미래세계사는 2050년이 넘어가면서는 슬쩍 SF장르로 변신된다. 과거 해양을 지배하는 것이 강대국의 조건이었던 것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범위가 우주로 넓혀지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의 분석들은 힘이 있다. 저자의 자신감과 확신에 찬 말투 때문에 솔깃한 면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는 시각과 밑자료들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의 세세하고 솔깃한 분석을 보고 싶다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해도 좋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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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축가다 - 20인의 건축 거장, 삶과 건축을 말하다
한노 라우테르베르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현암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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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제목만 보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건축가라고 착각하면 안된다.ㅋ 읽은 책의 제목일 뿐이다.

(실제로 여행지에 가서 건축물을 둘러보고 쓴 글이 많아서 건축가 혹은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느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건축에 대해서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그 수준이 아주 초보적이다.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할 때는 순서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창작물과 창작자를 서로 연결시키는 수준에서 시작된다.

아기들이 그림카드와 글씨를 맞춰나가거나, 중학생들이 세계문학전집의 제목과 작가를 일치시킨다거나,

클래식 음악의 멜로디를 듣고 누구의 작품인지 맞추는 고등학교 음악 시험과 같다. 

'좁은 문'을 앙드레 지드가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로 대접받았던 중학교 1학년 때 멋적은 기억이 있다.

읽지도 않고 대접을 받은 것이 창피해서 집에가서 책을 읽었었다. 지금도 제롬과 알리샤 밖에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가진 건축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초보적인 수준이다. 이제 그 초보적인 수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나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이 건축물은 어떤 건축가가 지었다는 것을 아는 수준에서, 이 건축은 좋다거나 별로라거나 좋은데 내 취향은 아니라거나 하는....

창작자의 명성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호/오의 감정을 피력할 수 있고, 그 감정을 나름 설명할 수 있다면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건축가다'는 건축물과 건축가를 서로 연결시킬 수 있는 정도의 초심자들에게 괜찮은 책이다.
20명의 거장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주로 버스나 지하철에서 읽어서 dog-ear 해 놓은 부분만 소개해 볼까 한다.

- 나는 풍경 속의 사물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냇물과 언덕, 언덕과 들판이 대화하는 거죠. 우리의 건축도 마찬가지예요. 건물들이 서로 말을 해요. 내 건축물 속의 여러 사물이 차렷 자세로 서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귄터 베니쉬 46페이지.

- 건물을 전시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건물이 구경거리가 되느 시대는 끝났죠. 게리, 하디드, 칼라트라바의 시대는 지났어요. 테러나 그 밖의 끔찍한 TV화면을 보면 건축은 이제 더 이상 이미지에 모든 것을 걸 수 없어요. 마치 이길 수 없는 경기 같아요. : 피터 아이젠만 70페이지.

- 오늘날에는 우리가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마지막 이념, 즉 시장 개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돼요. 15년 전에는 건축가가 공공 기관과 머리를 맞대고 일하는 게 당연했어요. 건축가들은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죠. 국가가 건축에서 손을 떼자 점차 건축의 사회적 사명이 사라져 버렸어요. 중요한 프로젝트들은 민간 부문에서 나오고 있죠. 고객들은 건축을 광고의 한 형태, 이윤을 창출하는 원천으로 볼 뿐이지 그 외의 것은 신경쓰지 않아요. : 렘 콜하스, 169페이지

- 로테르담에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게 정돈되고 똑바르고 깨끗했어요. 끔찍할 정도로 지루했죠. 그때 나는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곳의 모든 것이 얼마나 임시적이고 미완성이었는지를 알았어요.얼마나 생기가 넘치는 혼란이었는지! : 렘콜하스 178~9페이지.

- 젊은 건축가들에게는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어요. 그래요, 건축가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해요. 하지만 그러한 명확함은 마음 속에서 찾아야 하지요. 사람들이 집착하는 컴퓨터에는 누군가가 입력해 둔것들만 들어있으니까요. : 파리이 오토 , 225페이지

- 그로피우스나 그 동료들의 작품은 모두 너무 엄격하고 종종 무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끄러워요. 실용적이지만 재미가 없죠. 그래도 그로피우스가 미스 반데어로에보다 더 자유로워요. 미스 반데어로에가 지은 일리노이 공과대학 건물보다 더 지루한 건축은 본적이 없어요. 그 건물들은 설계로만 이루어져 있고 형식에 얽매여 꽁꽁 얼어붙어 있죠. 난 정말로 그 지루한 격자 체계에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르코르뷔지에의 건물은 어느 누구의 건축물보다 편안하고 인본주의적이었어요. : 이오 밍 페이, 240-241페이지

- 건축에 대한 내 생각은 항상 아주 실제적이예요. 울림이 있고 여운을 남기는 자재를 좋아해요. 몇주전 안드레아스 슈타이어의 인터뷰를 읽었어요. 왜 슈베르트의 음악 연주를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에 슈베리트의 음악은 과시하지 않고 늘 친밀감이 느껴진다고 대답했어요. 아하,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죠. 물론 이따금 겉으로 드러내는 게 필요해요. 도시 개발에서는 과시가 필요한 요소죠. 하지만 나는 친밀감을 좋아해요. 친밀감은 솔직함을 의미해요. : 페터 춤토르, 26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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