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 이준구 교수의,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
이준구 지음 / 푸른숲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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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 바디스. 라틴어로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한국경제!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보기에는 제대로 가고 있지 않아 보여서 이런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제목은 출판사에서 지었을 확률이 높다.
저자인 이준구 교수의 생각을 요약해 놓은 것은 오히려 부제다.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
이념은 정책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 유일한 잣대는 합리성이다. (서문 중에서)
 

책에서도 빨간 색으로 씌인 저 문장들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이념과 역사가 종말을 고했다는 다니엘 벨이나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같은 학자들의 선언은 자본주의가 승리로 귀결된다는 선언이었다.
이념의 힘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약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합리성이 그 자리를 대체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러한 생각이야 말로 실용주의다. 중국의 등소평은 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의 우화를 내세워 자신의 실용주의를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한국에도 실용주의를 표방한 정부가 들어섰다. 그런데 이들의 실용주의는 대체 종잡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시장의 자율에 맡기겠다고 하고, 감세를 추진하고, 규제를 없애고,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모든 것에 경쟁원리를 도입하려 한다.
동시에,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벌이면서 재정지출을 하고, 환율시장에 공공연히 개입하며, 이슈가 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개입하려 든다. 

이 근본없이 얼룩덜룩한 고양이는 단 한마리의 쥐도 잡지 못한다.
아니, 처음부터 그들이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쥐는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다수 국민들의 행복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그랬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쥐를 잘 잡은 것일게다.) 

서울대 경제학과의 이준구 교수는 이런 '실용'정부에 대해 복장이 터진다. 그래서 주류경제학을 신봉하고 가르쳤으며, 서울대 교수에다가 종부세도 내는 기득권 층이지만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다. 이 주류중에 주류인 우파 경제학자가 합리성을 추구하고,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글을 쓴다고 좌파 경제학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살다살다 별이야기를 다 듣는군~! 싶으셨을게다. 

인상적이어서 줄쳐 놓은 부문을 같이 공유해 보자.  

(이준구 교수는 대운하, 종부세 무력화, 교육정책 등에 대해서 강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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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상품과 달리 주택은 소비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투자의 대상이 된다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 소비의 대상이 되는 상품은 가격이 높을수록 그 것을 소비하는 것과 관련된 기회비용이 당연히 높아지게 된다. 반면에 투자의 대상이 되는 상품은 현재의 가격 수준이 별 의미가 없고 앞으로의 가격동향이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이러한 성격때문에 주택가격이 일단 상승세를 보이면 수요가 더욱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종부세 정책에 대한 찬성과 관련된 내용, 67페이지)
 

- 종부세의 선의의 피해자들 즉 장기보유한 1가구 1주택 소유 은퇴자의 경우 : 종부세를 빚으로 쌓아 놓았다가 주택을 팔 때 원리금을 한꺼번에 상환하는 방법 / 양도세를 대폭깎아주는 방법 등, 79페이지

- 존 롤즈의 이론은 원초적 상황이라고 불리우는 가상적인 상태로부터 출발한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모두 무지의 장막에 가려있다. 사회에서 앞으로 자신의 위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른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부편부당하고 공정한 태도를 위해 가정된 상황. 137페이지

- 미국에서 일부 진보진영 인사를 비꼬아 부르는 별명으로 리무진 리버럴이라는 말이 있다. 부자들이 진보적 정책을 지지하는 것을 아니꼽게 부르는 말이다. 140페이지 (샴페인 좌파, 강남 좌파와 동의어인 듯하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 국세인 종부세는 누진적 과세가 가능한 반면, 지방세인 재산세는 누진적 과세가 불가능하다. 재산세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독자적으로 부과 징수하는 세금이다. 146페이지 (종부세를 재산세로 흡수하는 것이 가지는 음모론적 성격을 밝힘) 


- 정보 경제이론의 시각에서 보며 교육의 주요한 기능은 단지 개인의 능력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주는데 있다. (207페이지) : 내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의 선발에 대한 정보 경제이론 측면에서의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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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의 고민 : 너무나 상식적인 합리성에도 못미치는 우리 실용정부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다수 국민의 대답 :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를 잘잡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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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데이비드 뱃스톤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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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래 제목은 Not For Sale 이다. 요즈음 세상에 사고 팔지 말아야 할 것도 있는가? 물론 있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첫번째로 '시간?' 하고 떠오르지 않았을까? (내가 그랬다.) 아니다.

시간은 사고 팔수 없는 것이지 사고 팔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다. (시간을 사고 팔 수 있었다면 엄청난 값에 거래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의 답은 '사람'이다. '사람?' 어떤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사고 파는 사람이라면 노예?' 그렇다. 이 책은 노예이야기다. 

'노예는 링컨이 해방시키지 않았나? 용도 폐기된 단어 아닌가? 국민노예 정현욱 선수 말고도 있어?'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오늘 날(2007년에 발간) 이 세상에는 2700만명의 노예가 존재한다. (7페이지 - 케빈 베일스가 이끄는 단체 Free the Slaves 조사)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인신매매가 오늘날 세계에서 세번째로 돈벌이가 되는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281페이지)

(첫째와 둘째는 마약과 불법무기거래란다. 그런데 총이익 측면에서는 이 두개의 범죄를 능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모두 여섯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캄보디아와 태국, 남아시아, 우간다, 유럽, 페루, 미국 지역에서 벌어진 인신매매와 노예 상태에서 벌어지는 학대와 착취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한 에피소드에서도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단 1초라도 감정을 이입해 보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태연하고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노예해방에 힘쓰는 국제정의선교회의 소명은 마태복음 7장 12절에 나오는 황금률의 실천이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03페이지)

노예를 착취하는 자들의 수법은 매우 교활하다. 1차적인 형태의 물리적 학대에서부터 채무라는 올무를 씌워 평생(종종 대를 거쳐서)을 노예로 살게 만들거나, 종교적 체념, 가족에 대한 위협, 글을 읽을 수 없는 것을 이용한다. (1500만명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의 채무노예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교활함을 넘어서는 창의력과 열정을 가진 단체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노예들을 구해내기 위해 창의적이고 주도 면밀한 접근을 한다. 예를 들면, 현지의 공권력이 노예주들과 결탁되어 있는지를 조사하거나, 자칫 노예제도를 강화할 수도 있는 돈을 주고 노예를 되사서 해방시키는 일을 하지 않거나, 해방된 노예들에게 교육과 일자리를 주는 등의 접근이다.

(이 책의 에피소드는 노예로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노예를 해방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단체나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노예가 단체나 개인에 의해 자유롭게 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의 접근들에 다소 불편함을 느낀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야만의 공간에서 기독교정신을 가진 선진국의 영웅들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 영화 '미션'류의 시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에피소드는 예외)

노예제도는 사회의 안정성이 무너질 때 경제적 대안으로 등장해서 가난한 사람을 유혹하게 된다.(36페이지) 우리는 세계 곳곳의 경제적 불안이 자본의 논리만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에 의해 발생한 것임을 알고 있다. 어찌보면, 병의 원인을 제공한 후 병자들에게 약을 구해주는 꼴이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헌신과 노력을 폄하하거나, 욕심많은 노예주들의 착취행위에 개인적인 책임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소명의식을 가진 단체나 개인의 활동도 물론 필요하지만, 좀더 구조적인 차원에서의 접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실용과 효율의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현대의 노예제도/ 인권보호에 관심을 가지고 아래 사이트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www.notforsalecampaign.org 낫 포 세일 캠페인  

www.antislavery.org 국제 반노예 연대
www.freetheslaves.net 프리 더 슬레이브
www.fairfund.org 인신매매 반대 대학연합 ccat
www.childrenofthenight.org 밤의 아이들
www.cms-uk.org 성공회 교회 선교회
www.catwinternational.org 여성 인신매매 반대연합
www.castla.org 노예와 인신매매 폐지를 위한 연합
www.hagarproject.org 하갈 / 캄보디아의 기독교계 개발 원조 단체
www.nightlightinternational.com 야간등 디자인
www.polarisproject.org 폴라리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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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아이들 (반양장)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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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 저 이야기이지만, 대학에 입학해서 1학년 1학기 때 들은 강의에서 느낀 감동을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문학의 이해'라는 과목이었는데, 고등학생 티를 못벗은 내게는 일종의 지적 쇼크로 다가왔다.
그 당시 내게는 또래들에 대해 일종의 '지적 자만'과 같은 것이 있었는데....

티없이 자유롭고, 동시에 엄청난 지성을 소유하고 계셨던 교수님의 모습에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를 느낀 것이다.
낡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수줍은 웃음을 짓고 계신 백발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난 이 강의를 통해, '고수'를 직접 만났고 이후에는 내 생각이 남들의 생각보다 더 우월하고 옳다는 태도를 탈탈 털어 버렸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 학기 강의였다. 그 주인공은 국문과 김인환 선생님이시다.

교수님은 언젠가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소설로 쓸 수 있어야 진짜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소설이 다른 형태의 글쓰기보다 우월하다는 뜻은 물론 아니셨고, 자신이 알고 있는 개념들간의 관계(이론)에 대한 앎이 현실의 삶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개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보편의 이론(앎)이 특수한 상황(삶)에 적용되면서 그 존재가치가 검증되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히로세 다카시의 '체르노빌의 아이들'이라는 소설은 이러한 "문학적 검증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본래 소설가는 아니고, 저널리스트인 히로세 다카시 씨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건에 대한 정보를 세세하게 수집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정확한 정보들이 히로세씨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비극적 사고에 대한 진실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은폐되거나 완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로세씨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체르노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소설'로 쓰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복잡다단한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있게 만든 프로세스의 오류나 피해에 대한 설명 등은 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규명한다고 해도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없다는 것도 계산했을 것이다.

평화소설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 소설에서 소설가가 쓴 극적인 구조나 기교있는 문장력같은 것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뒤 벌어지는 참혹한 피해의 과정이 세세하고 담담하게 묘사되어 있다.
한 가족의 비극적 이야기는 마치 이웃의 피해(당장 내게도 닥칠 수 있는...)와 같이 다가온다.

원자력 발전은 결코 청정한 그린에너지가 아니다.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기반으로 사탕발림되어 있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 이야기도 믿어서는 안된다. Risk는 감수하기보다는 회피하는 것이 올바른 전략이자 태도이다. 특히 그 위험이 클수록 말이다.

이 서재의 이야기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공감을 얻을 수 없는가? 그렇다면,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한 가족의 특수한 이야기는 공감을 주고, 그 공감을 통해 보편적 태도를 형성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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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0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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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인데, 종일 자거나 먹지 않고 생각을 해봤지만, 이로움이 없어서 배우는 것만 못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말씀은 생각하기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고, 배우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이익이되는 지에 대한 강조일 것이다.

 

경제학자 홍기빈씨가 책세상이라는 출판사의 새로운 기획인 Vita Activa시리즈에서 '자본주의'라는 책을 냈다.

자본주의의 개념을 정리해 낸 150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인데, 나는 이 책을 읽고 위에 적은 공자님 말씀이 떠올랐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치열한 공부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고, 그의 오랜 고민의 정수를 하루 이틀 사이에 배우는 것이 다소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움직이는 시스템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확히 이해하려면, 먼저 그것의 개념을 정의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 생활에서 모호하게 쓰이는 자본 - 자본가 -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생산','화폐','권력'이라는 틀을 통해서 정의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거장들이 쓴 주요 저작을 섭렵하고, 분석의 틀에 위치를 잡는 것이 마치 바둑판 위에 돌을 올려놓는 고수의 손길과 같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와 리카도는 '생산으로서의 자본' 이라는 선 위에, 좀바르트와 베버는 '화폐로서의 자본'이라는 선 위에,

브로델과 베블런은 '권력으로서의 자본'이라는 선 위에 정리해 놓는 식이다.

물론, 거장들의 생각이 출현한 역사적인 맥락을 친절히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데,

이런 풍성한 내용이 모두 놓여진 바둑판의 모습은 아름다워 보일 정도이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식음을 전폐하고, 밤새워 생각을 해본들 이런 명확한 지식과 생각의 틀을 갖춘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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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 - 세상을 지배하는 브랜드 뒤편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나오미 클라인 지음, 이은진 옮김 / 살림Biz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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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10년을 맞아 재출간된 나오미 클라인의 No Logo. 다 읽은 후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 옆에 꽂아 두었다.

ㅋㅋ 이 무슨 악취미인가? 복거일의 책과 조정환의 책을 같은 박스에 배달 시키고, 김규항 책과 공병호 책을 나란히 두는 꼴이다.

No Logo의 후속작인 '쇼크독트린'에서도 나오미는 제프리 삭스를 맹렬히 비난한 바 있는데, 이 책에도 제프리 삭스 이야기가 조금 나온다.

왜 이 명석한 저널리스트는 경제계의 슈퍼스타를 비난하고 있는가? 600여 페이지에 담긴 내용은 그럴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나오미 클라인은 70년생의 여성 저널리스트이다. 10년 전이면 이 책을 만 서른 살에 쓴 셈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브랜드를 통한 경영활동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를 집요하게 파고 들고 있다.

현장 취재를 통한 충분한 근거자료를 제시하면서 훌륭한 저널리즘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600페이지가 넘게 하는 이야기를 간단한 논리로 설명해 보면 이렇다. (내가 이해한 것들을 나의 언어로 각색하여 적어 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갖 브랜드로 넘쳐난다. 상업공간이 아닌 학교에도 브랜드 로고를 붙인 자판기가 설치될 정도이다.

수많은 브랜드가 생긴 이유는 우리가 익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익명의 시대에는 누군가 엉터리 물건과 서비스로 나를 속일지 모른다. 예전 작은 골목 안에 공존하던 빵집 김씨 아저씨나 나물을 파는 이씨 아줌마, 두부집 박씨와 같은 상인이자 이웃들은 고객들을 속일래야 속일 수 없다. 장사 하루이틀 하고 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량생산 대량소비 익명의 시대가 되자 이런 소규모 가게들이 하나 둘 없어지기 시작했다. 익명의 생산/판매자에게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뢰할 만한 브랜드에 손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렇다. 브랜드가 주는 가치는? 신뢰다.

(브랜드가 발전하면서 그 브랜드가 갖는 특정한 이미지와 라이프스타일을 구매하는 소비의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제 기업들은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주력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제품 자체보다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서 엄청난 자원을 투자한다.

그런데 이 당연해 보이는 과정에서 맹점이 생긴다.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한정된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데...

브랜드를 알리고 발전시키는데 자원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제품 자체에 대해 들어갈 자원이 줄어 들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마침 정보통신과 운송이 발달하고, 세계화가 충분히 진행되어서 제조를 위한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슈퍼 브랜드를 가진 기업들은 자사 제품을 가장 싼 인건비를 가진 나라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크리스마스 선물로 장난감을 받은 아이가 Made in China가 찍힌 장난감을 보고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는 중국 사람이야?" 물었다는 유머가 생각난다.)

 

가장 큰 이윤을 위해서, 가장 싼 노동력을 찾아드는 자본의 논리가 그 잔인한 칼날을 드러내는 지점은 브랜드의 로고였던 것이다.

나오미 클라인은 그래서 책 제목을 No Logo라고 지었다. 이 책이 성공하자, 사람들이 No logo라는 상표권을 획득하라고 조언을 했단다.

물론 나오미 클라인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지만, 역시 차갑고 무서운 자본의 논리에 또 한번 놀라고 만다.

(일본에서는 무지루시=무인양품이 No Logo의 철학으로 성공했다. 물론 이 브랜드는 "브랜드가 없다"는 브랜드를 가졌다.)

 

이제, 나오미 클라인이 제프리 삭스를 비난하는 대목을 살펴보자. 나오미 클라인은 세계의 공장에서 어린 여자아이들이 허리를 펴지 못하고, 아디다스 축구공을 꿰매고, 나이키 운동화의 접착제에 중독되는 것을 취재했다. 초기의 제조업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고, 중화학 공업과 IT 산업까지 발전시킬 수 있었던 한국이나 대만과 같은 나라는 비교적 빨리 경제 발전의 사다리에 오른 것임도 깨달았다. (물론 몇몇 예외적 국가들이 있기도 하겠지만....) 고된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금전적 보상도, 교육을 받을 시간도 없는 그들에게 제프리 삭스가 주장하는 단계적 경제 발전론이 일종의 허구라는 것을 직시한 것이다.

(이후 자본의 논리가 자본의 자유가 세상을 뒤덮게 되는 과정을 그린 '쇼크 독트린'을 집필하면서, 그러한 신자유주의가 퍼져나가는데 제프리 삭스가 일조했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분노했을 것이다.)

 

난 나오미 클라인의 "No Logo"를 10년이나 지나서 읽었다. 왜 그랬을까? 나오미 클라인이라는 브랜드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책을 찾아 읽는 사람으로 규정되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른다.)

그녀의 책은 믿고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뢰는 그녀의 책이라는 상품 자체가 훌륭했기에 생기는 신뢰이다.

이럴 경우 브랜드는 훌륭한 구매 가이드 역할을 해 준다.

쏟아지는 정보와 한정된 인간의 인지적 용량을 고려할 때 브랜드가 갖는 아주 긍정적 측면이다.

 

우리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돈이 투자된 브랜드와 로고의 이면에 내재할 수 밖에 없는 무서운 논리에 공감한다면....

자나깨나 브랜드 조심~! 꺼진 브랜드도 다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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