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새 - 상 - 나무를 죽이는 화랑 Nobless Club 8
김근우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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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은 아마도 낯선 세계와의 만남일 것이다. 새로운 삶들과의 만남,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속에서 일상의 나를 잠시 잊고 무한한 신비로움 속에 나를 맡기는일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다.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다. 일상을 차분하게 다룬 작품들도 좋지만 전혀 새로운 미래 세계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속 시간여행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런 낯설음과의 만남을 얻기 위함인지도 모를일이다. 익숙함을 새로움으로 재탄생시킨, 낯섬과의 즐거운 만남이 그렇게 시작된다.

 

'피리새! 겨울 철새인데 이름 그대로 꼭 피리같은 소리로 울어. 그래서 피리새라고 하지'

얼마전부터 관심을 갖게 된 노블레스 클럽의 또 다른 작품을 만났다. <피리새>! 이 예쁜 제목을 가진 책이 인터넷에 연재될 당시에는 [오구신 이야기]라는 이름을 가졌었다고 한다. 조금은 딱딱한 오구신...보다 피리새라는 제목이 더 마음에 와닿는건 나 뿐일까? 특별한 운명을 갖고 태어난 소녀, 그리고 가문의 숙명을 위해, 사랑하는 한 소녀를 지키기 위한 소년, 그들의 이야기가 바리데기 설화를 품에 품고 새롭게 날갯짓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날아가는 새 한마리, 피리새! 하늘과 땅의 경계에 걸쳐있는 존재, 가람!

죽은자와 산자를 이어 줄수 있는 능력, 다리가 되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피리새와 나무를 죽여야하는 가문의 숙명을 가진 바오 가람의 운명을 건 모험이 낯선 시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고대국가 한울의 유산을 물려받은 나라 서야! 건국 일천주년을 3년 남긴 서야의 54대 알지 왕조의 왕과 왕비 미리부인 사이에는 6명의 공주가 있다. 어느날 갑자기 알아 눕게 된 왕에게 서역 사리온에서 온 사신은 공주 한명을 자기 나라로 보내 무당이 되도록하면 병이 낫고 나랏일도 잘 풀릴거라 말한다.

 

'달과 별이 먼저 태어나고, 태양이 가장 늦게 태어난다.'

한편 왕비 미리부인 마저 알아 눕게 되고 차녀인 별이장 공주가 반역을 시도하게 되지만 장녀인 달이장 공주에게 진압되어 실권이 달이장에게 넘어가게 된다. <피리새>는 미리부인의 동생인 경무총감 마다룬 검군의 지시로 다라벌을 찾은 마휼과 서다함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다라벌에서 화랑인 가람과 말못하는 소녀 피리새를 만나게 되고 귀신붙은 나무인 신목, 이무기와 나무귀신을 가람과 함께 힘을 합쳐 쓰러뜨린다. 알지왕조를 둘러싼 어둠의 그림자는 점점더 짙어지고 미리부인의 지시에 따라, 누구도 예상치 못한 7번째 공주가 나타나고 그 주인공이 피리새라는 놀라운 사실이 알려진다.

 

'내 막내딸 피리새는 서천서역국 사리온으로 가서 무당이 되어야하네. 가람, 그대가 내 딸을 지켜주게'

서역에서 사신으로 온 가리박사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피리새는 조금씩 깨닫게 되지만 받아들이기는 좀처럼 쉽지않다. 어린 시절부터 바오 가문에서 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피리새를 지키려는 화랑 바오 가람은 미리부인의 뜻에 따라 서역 사리온으로 7번째 공주 피리새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이끌기로 약속한다. 7번째 공주임을 누구도 믿어주려 하지 않는 피리새, 자신의 운명이 어떤것인지 찾아나선 피리새와 바오 가람의 운명을 건 모험은 그렇게 시작된다.

 



 

 

'새가 나는법을 알듯이, 물고기가 헤엄치는 법을 알듯이, 공주님은 운명을 알고 계십니다.'

피리새 일행은 서야의 주변국인 '울지'와 '두려'를 거쳐 서역 사리온으로 험난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울지왕 하륜의 요청으로 울지에 나타난 도깨비 문제를 해결하고, 두려의 주몽의 부탁으로 역귀를 물리치게 된다. 험난한 여정속에서 피리새는 자신이 타고난 운명의 실체를 깨닫게 되고, 갑작스럽게 그녀가 7번째 공주로 나타나야 했던 미스터리가 풀리게 된다. 그녀의 주변 인물들의 실체 또한 놀라운 반전을 선물한다.

 

이 책의 저자 김근우라는 이름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낯설었다. 과거 통신에 연재되었던 그의 작품 [바람의 마도사]가 [퇴마록] 과 함께 쌍벽을 이루던 작품이었고 한국 판타지 문학 1세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노블레스 클럽의 작가라는 점에 끌려 단숨에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수목신앙, 이무기와 도깨비, 처용과 황천강, 바리데기 등 민간 무속신앙과 설화를 바탕으로 해서인지 몰라도 다른 외국 판타지 작품을 만날때 느껴지던 생경함이 조금은 덜하다. 거기에 화랑과 화랑신검, 주몽과 천궁 같은 역사속 캐릭터들이 등장함으로써 오히려 친근감을 더해주는 듯하다.

 

'우리에게는 진실을 밝혀주고 가짜 나무를 물리치고 소통이 끊어진 하늘과 땅을 새롭게 연결해줄 진정한 나무가 필요합니다.'

[오구신 이야기]로 연재되었다는 <피리새>의 옛 제목은 제목 그대로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진정한 나무의 필요성을 언급했던 가리박사의 말이 왠지 가슴속에 남는다. 우리 시대에도 끊어진 소통을 이어줄 진정한 나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표를 받아들게 된다. 사람과 사람을, 남과 북을, 국민과 정부를, 진보와 보수를, 동과 서를 이어줄 진정한 나무는 어디에 있는지... 문득 떠오르는 한사람이 있다. 하지만 눈물이 난다. 진정한 나무를 알아보지 못한 우매했던 우리를 반성하게 된다. ㅠ.ㅠ

 

'운명은 때때로 가혹하지만 사람이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습니다.'

<피리새>에서는 유독 개인의 운명과 가문의 숙명을 강조한다. 운명을 받아들인 자만이 운명 너머의 것을 보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주제가 피리새와 가람의 모험속에서 계속적으로 강조된다.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새롭게 개척해나가는 것이 바로 운명인 것이리라. <피리새>는 한국형 판타지라는 특별함과 우리만이 가진 독특함에 깊이있는 가르침까지 담아낸 멋진 작품이다. 익숙함을 새로움으로 재탄생시킨, 낯설움과의 이 즐거운 판타지 여행을 마음속에 오래도록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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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의 총
제성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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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린 시절 이현세의 만화 [남벌]을 읽고 벅차오르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수많은 외침과 나라 잃은 설움, 잃어버린 고토!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기상과 화려했던 문화의 향기를 이어온 대한민국. 하지만21세기에도 우리는 아직 굳건하다. 치욕과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고자 했던 한 임금의 모습이 지나간 역사의 시간속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역사를 뒤바꿀 북벌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선조들의 치욕을 되갚겠다는 야심에 찬 효종의 모습을 만난다.

 

우리 역사속에서는 유난히 임금의 독살설이 많다. 조선의 임금들 중 많은 수가 독살설에 연루되어 있고, 북벌을 주장했던 효종 또한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 되면서 그런 루머에 휩싸이게 된다. <효종의 총>은 북벌론을 주장했던 효종과 그에 반대하던 세력들간의 암투가 치밀하게 그려진다. 이 책은 단 하루에 있었던 일을 다루고 있다. 조선의 역사상 가장 길었던 그 하루를... 우포청의 종사관인 윤민호에게 조선으로 귀화한 화란인(和蘭人)의 죽음이 알려지고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사체 하나가 혜정교 밑에서 발견된다. 훈련도감 소속이었던 이 화란인의 죽음으로 종사관 윤민호는 우포청에서의 마지막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내일이면 훈련도감 소속이 되기 때문에 그가 이 사건을 해결할 시한은 단 하루뿐이다. 하지만 화란인 남안수의 죽음을 시작으로 화란인들의 살인은 계속되는데... 남안수가 가지고 있던 서책이 사라진 사실을 알아낸 윤민호, 그 책은 바로 [비거록]이라는 책이다. [비거록]을 대출해간 사간원의 김조년은 귀향을, 동부승지 박안제는 어디론가 떠나고 화란인들은 계속해서 죽음을 맞게된다.

 

'그들은 나의 귀에 구멍을 뚫어 놓았지만, 나는 그들의 가슴에 구멍을 낼 것이야'

 

사건을 쫓던 윤민호는 두번째 희생자인 화란인 남호란이 죽기전 써놓은 I J Y 의 알파벳과도 비슷한 글자를 단서로 사건을 파헤친다. [비거록]과 의문의 죽음! 우의정 심지원, 일본인 이시다 마쓰오의 음모, 그리고 효종의 비밀스런 계획이 조심스럽게 실체를 드러낸다. 윤민호의 마음속 여인, 공정아와의 재회와 그녀와 관련된 또 다른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숨가쁘게 달려간다.



효종은 치욕스러웠던 청에 대한 굴욕을 잊지 않았다. 청에 볼모로 잡혀가서 많은 서양의 문물을 배웠고 그것은 그가 왕이 된 뒤 숭무(崇武)정책으로 청에 대항하고 북벌을 추진하게된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정말 북벌이 성사되고 대륙으로의 새로운 날갯짓이 펼쳐졌다면 어땠을까? 역사를 돌아보는 재미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에~? 라는 가정이 역사와 만날때 그 재미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 될 것 이다. 하지만 효종은 그의 꿈을 펼치기도 전에 죽음을 맞게 된다.

 

효종, 그의 죽음이 독살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강력하지 못했던 왕권, 왕권과 견 줄 정도로 거대했던 신권, 북벌 계획의 실패는 이런 정치적인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듯 보인다. 당시 청나라의 위세에 대항할 수 있었던 효종이 가진 카드, 그것은 바로 조총이었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가 꿈꾼 북벌을 실행시켜줄 수 있었던 조총을 둘러싼 살인사건과 암투가 숨막히는 전개속에 새로운 역사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단 하루속에 청나라, 왜, 화란, 그리고 조선의 미묘한 관계를 의문의 죽음과 베일에 쌓인 책 한권으로 엮어가는 예리하고 섬세한 스토리 구성이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에 여건들은 별로 달라진것이 없는 모양이다. 핵문제와 미사일로 냉각된 남북관계,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의 강대국들과의 이해관계, 보수와 진보로 나뉜 국내의 대립관계, 그리고 안타까운 죽음 등 여전히 역사의 시간은 여러가진 과제를 우리 앞에 던져놓고 있다. 대한민국의 5월은 무거운 침묵에 쌓여있다. 산적한 이런 문제들을 풀기위해 모두가 대립이 아닌 이해와 화합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효종의 북벌! 을 소재로 한 <효종의 총>은 짧지만 강한 임팩트와 쉴새 없이 쏟아지는 사건과 미제들로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다. 예기치 못했던 반전과 맞닥드리고, [비거록]이라는 한 권의 책속에 담아논 작가의 트릭에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 오랫만에 만났던 이 역사팩션소설이 힘겨움에 짓눌렸던 무거운 삶의 무게를 조금은 덜어준듯 싶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여러가지를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즐거운 재미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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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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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한번도 본적이 없이 아내와 살아가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아내는 남편에게 세상은 어떤곳이고 주변의 작고 세세한 것들 하나하나를 예쁘고 아름답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각막을 이식받게 된 남편은 시력을 되찾게 되고, 드디어 그렇게 보기를 원했던 세상의 빛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남편은 지금까지 아내가 묘사해주던 세상이 아닌, 비뚤어지고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세상의 모습과 만나게 되고 결국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린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던 세상과 조금은 다른 미래, 우리가 꿈꾸던 '통일'이라는 이상적이고 환상 가득한 장미빛 미래가 어쩌면 세상의 빛을 선물받은 남편의 이야기와 닮아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통일' 이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을 떨린다. 종종 주요 국제 경기에서 한반도기를 흔드는 장면만으로도 통일이라는 것이 성큼 우리 곁을 찾아온 것이 아닌가 꿈꾸게 하던 시간이 있었다. 지난 10여년간 따스한 햇빛으로 조금씩 철의 장막을 걷히게 하기도 했지만, 지금 그곳은 예전보다 더한 어두움으로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이전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서 말하던 북한 고위관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각종 지원을 통한 북한의 개혁개방은 자신들의 체제유지에 대한 상당한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리의 말은, 단순히 그들을 포용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이 아닌 개방을 이끌겠다는 이 햇볕정책이 그들에게 대단히 두려운 정책이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깊은 바닷속에서 작은 알을 깨고 자라난 거대한 물고기가 있었다.

 

과거 북한 사회에서 귀빈 대접을 받던 텔레비전 아나운서들은 남한에서는 야구장의 청소부로 일하다 자살하기도 하고, 북한 출신의 교사들은 이남 학생들의 반대보다 더한 이북 학생들의 반대로 퇴출당하고, 북한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경력은 통일 조국에서 단지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의 사생활>은 2016년,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흡수통일 한지 벌써 5년이란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누구나 원했지만 누구나 원하지 않은 미래가 되어버린 통일된 한반도의 모습이 그렇게 회색빛으로 선명하게 떠오른다.

 

북한에 있던 수십만의 군인들은 통일 조국에서 갈길이 없어진다. 북한의 여성들은 남한의 룸싸롱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 남한에 만연해있는 향락과 물질만능구조에 적응해나가지 못하는 이북의 사람들, 실업자가 된 군인이 갈길은 밤과 함께하는 폭력의 어두운 그림자속이다. 이북출신 폭력조직 대동강에서 벌어진 동료의 살인사건, 그 사건의 배후를 뒤쫓은 엘리트 군인 출신의 리강이 있다. 계속되는 사건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음모와 배신, 그리고 갈등... 암울하고 어둡기만한 통일한국의 모습을 작가는 독자들의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놓고 있다. 암흑속에서 자라나는 작은 알들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이전에 떠올렸던 한반도의 통일이란 말은 우리에게 그저 장미빛 미래로만 다가온듯하다. 통일로 인해 세계 무대에서 새롭게 KOREA 를 우뚝 세우는 새로운 계기가 될거라는 무한한 상상속을 헤매이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 독일의 통일을 보면서 우리 앞에 놓인 미래가 장미빛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과 그것들을 넘어서는 인간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들의 해결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것이다. 50년 넘게 이어져온 이질화된 문화와 정서, 심리적인 간격을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가? 이것이 바로 통일 한국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일 것이다.

 

통일 대한민국은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아플뿐이다. 아프다는 것은 아직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작은 알은 거대한 물고기가 되고 그 거대한 물고기는 다시 거대한 새가된다.

 

<국가의 사생활>은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상상하기 쉽지 않은 '흡수 통일' 이라는 소재를 채용하고, 다양한 문헌적 연구를 통해서 선명한 모습의 미래를 우리 앞에 내려놓고 있다. '가장 센 이야기를 가장 위험한 칼끝으로 점묘해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장미빛으로 덧칠해 놓은 화려한 미래가 아닌 조금은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이 작품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느낌표만이 아닌 미래에 대한 계속적인 물음표와 그 해답을 찾아나가야하는 과제를 떠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작가 이응준은 범죄로 가득한 이 소설을 만들면서 자신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과연 누가 악인인가?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이 떠오른다. 악은 존재하는가? 그것을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당신은 악인인가? 그는 악인인가? [악인]이 던져주었던 그 물음이 그대로 이 작품속에서 들려오는듯하다. <국가의 사생활> 통일이라는 설정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문제, 철학적인 질문 등 미래에 대한 고민들을 담아내고 있다. 긴장감 넘치고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 라인과 탄탄한 구성, 강력하고 선명한 메세지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간혹 돋보이는 웃음의 코드 또한....

 

얼마전 북한이 중국에 흡수되어야 한다는 일본 극우인사의 말이 세상을 또 시끄럽게 하기도 했다. 통일이라는 말에 아직도 가슴이 설레지만, 그 모습이 어떤 구체적인 형태를 띄게 될지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북한이 남한에 흡수 통일 된다는 설정 자체도 어쩌면 장미빛인지도 모를 일이다. 예기치 않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버린 한반도, 일본의 야욕에 불타버린 한반도, 중국의 북한 흡수 그리고 남한과의 대치상태... 어쩌면 수많은 시나리오중 <국가의 사생활>의 설정이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인지도...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하지만 그것을 구체화 시키는 작업은 피와 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강력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우리 미래에 선물해준 이 작품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왠지 내가 너무 쉽게 읽어버린건 아닐까? 하는,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스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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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고려왕조실록 -상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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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 마치 노래라도 흥얼거리듯 어린 아이들까지도 조선시대 왕들의 이름을 꿰고 있다. 그렇다면 바로 이전 왕조인 고려시대는 어떤가? 태조 왕건! 그래 이 이름은 확실히 기억할지도... 그리고.. 그리고는..? 그리고 고려는 없다! 우리의 현실이 바로 이렇다. 요즘 천추태후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고려시대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조금씩 이루어 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우리가 바라보는 역사의 시각속에 '고려는 없다!'
 

 

고려는 없다! 우리 역사에 대한 이런 인식이 시작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 근본적인 원인은 아마도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는 고려왕조실록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것 같다. 왕조의 역사를 기록해놓은 역사서의 부재로 그 시대를 이해하고 알아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 역사를 알게하려는, 알고자하는 노력이 부족함 또한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이제 어느 분야에서건 재미, 관심을 끌지못하면 그 누구도 쉽게 눈길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학창시절 배웠던 역사, 국사는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잊혀진다. 단지 암기를 위한 우리의 역사교육의 현실이다.

 

그런 이후 우리가 배워가는 역사의 대부분은 아마도 드라마와 책을 통해서일 것이다. 역사서를 굳이 찾아 읽는 사람은 별로 없을 줄 안다. 드라마와 팩션소설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서 그 시대에 관련된 서적을 찾기도 한다. 역사서의 소실, 역사의 단절이 우리에게는 그저 무관심으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일본의 경우 그들의 역사를 부풀리고 허위로라도 역사를 창조하기도 하지만 국민들이 재미와 관심을 갖도록 계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막부시대, 무사도, 사무라이, 닌자... 우리에게 문화를 배워가기에 바빴던 그 시대를 그들은 오히려 멋지게 포장하고 특별하고 화려했던 역사로 미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역사적 단절만이 상처처럼 자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이야기 고려왕조실록>은 지금까지 단절되어왔던 우리문화에 대한 맥을 잇는 귀중한 작품이다. 한국인물사연구원이 펴낸 이 작품은 고대사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다. 앞으로 고려를 넘어 화려했던 삼국시대와 가야, 부여, 숨겨진 고대왕국들, 그리고 고구려를 넘어서는 멋진 작품들이 이어지기를 바래본다. '재미있게 손에 잡히는 역사'를 지향하는 <이야기 고려왕조실록>은 딱딱한 역사속 시간의 나열이 아니라 고려시대 약500년에 이르는 시대를 흐르는 왕의 탄생과 즉위, 죽음에 이르는 역사적인 기록들을 재밌게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야기 고려왕조실록>은 우리에게 전해지는 고려시대의 역사기록인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기초에 두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임진왜란때 소실된 [고려왕조실록]을 조선시대 초기에 재편집하여 만든 역사서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쓰여진 작품이기에 그들의 시각에 맞게 쓰여진 면들이 있다고한다. 예를 들어 조선건국의 정당성을 위해 고려 전기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후기를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고, 조선의 대명관계에 의해서 원나라를 섬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두 역사서 모두 역사성을 엄격히 지켰고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주체성을 띄는 노력도 보인다. 이런 역사서로서의 가치를 가진 두 기록에 기초를 둔 <이야기 고려왕조실록>은 재미까지 더해 고려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주고있다.

 

<이야기 고려왕조실록>상권에서는 고려, 오백년왕조의 문을 연 태조 왕건을 시작으로 고려체제를 완성한 성종, 고려의 황금기를 연 문종, 부국강병을 꿈꾼 숙종, 그리고 16대 예종에 이르기까지 고려왕조를 싹틔우고 체계를 정립시켜 전성기를 구가한 고려 중기까지를 돌아보고 있다. 하권에서는 인종에서 무신정권의 희생양이 된 왕들, 그리고 개혁을 꿈꾸다 실패한 충목왕, 그리고 고려의 마지막 34대 공양왕까지 조명한다. 무신정변과 외세의 침략, 대몽항전 등.... 뜨겁고도 화려했던 고려의 마지막 이야기가 가슴 뛰는 열정을 선물한다.

 



 

책속에는 고려왕실 체계도, 역사연표, 고려시대 능의 위치, 고려시대 관직, 군사제도, 지명변천, 한국사와 주변국 정세 등 다양한 시대적 자료들이 가득하다. 특히 우리나라가 사용한 연호 일람이 눈에 들어온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391년부터 사용한 영락()을 시작으로 신라, 발해, 마진, 태봉, 고려초기, 조선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연호의 사용을 보면서 역사속에 숨겨진 안타까움을 느끼게된다. 고려시대 초기를 넘어 조선 말기까지 비어있는 연호가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자주 인용하는 말이 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마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이 이말이 우리 기억속에서 멀어져있던 역사의 시간을 기록한 역사서나 팩션소설을 읽을때면 어김없이 떠오른다. 과거가 없는 미래는 없다. 현재를 만드는 것도 과거의 정립위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잠시 잊고 있었던 고려라는 이름과 지워진 시간을 이 책을 통해서 재밌고 즐겁게 이어나갈 수 있을것 같다.

 

국사 과목이 언제부터 입시에서 선택과목으로 자리잡았는지 모르겠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고조선이 우리의 역사로 자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힘있는 나라들의 속국처럼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역사가 부끄럽지는 않다. 아직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우리는 아직도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대한민국일 것이다. 미래를 지배하기 위해 단절된 우리 역사를 잇는 일에 더이상 게을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야기 고려왕조실록>로 시작한 한국인물사연구원의 이 첫걸음으로 우리의 미래가 아마도 조금은 밝아지지 않았을까 기대해본다. 그리고 두번째 세번째 이어질 즐겁고 힘찬 역사잇기의 발걸음이 앞으로 변화될 우리의 미래와 더불어 더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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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산책하는 낭만제주
임우석 지음 / 링거스그룹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여행의 추억을 떠올릴때면 빼놓지 않고 떠오르는 장소들이 있다. 대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여행길에 올랐던 부산의 태종대와 군대가기전 친구들과 함께 한 춘천 기차여행, 한달동안 우리나라 해안선을 따라 일주했던 혼자만의 여행, 여친과 함께 했던 정동진 일출, 그리고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절 친구와 둘이 떠났던 제주도 여행... 물론 다양한 여행의 추억들이 있지만 '처음' 이라는, 혹은 '색다른' 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던 여행은 그만큼 특별한 추억으로 오랫동안 자리잡게 된다. 여행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여행은 지치고 반복적인 일상에 대한 작은 의미의 일탈과도 같다.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발걸음을 내딛다 보면, 나란 존재가 자리하던 일정한 틀을 넘어 새로운 사람들과 색다른 풍경, 사람사는 냄새속에서 새롭게 삶을 에너지를 충전하게 된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퇴근시간 무척이나 막혀있는 도로의 차들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다가, 문득 저들은 무슨 생각들을 갖고 있고 어떤 일들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내가 살아가는 법, 생각하는 것과 다를까? 같을까? 여행은 이런 저런 삶의 무게에 눌린 자신을 잠시 그 무게속에서 빼어내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외로움일 것이다. 여행도 그렇다. 홀로 하는 여행은 그만큼 자유롭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만끽할 수 있겠지만... 외로운 만큼은 쉽게 떨치기가 힘들다. 물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즐겁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가끔은 쉽게 그 외로움이란 녀석을 떨쳐버릴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 <낭만제주>가 좋은 점은 낯익으면서도 낯선 장소인 제주에 대한 여행이라는 즐거움을 넘어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행복이 더해져 더 큰 만족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녀와 함께 산책하듯...



누구에게나 여행의 방식이 있듯 <낭만제주>의 저자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여행한 제주를 소개한다. 사람이 찾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제주의 작은 마을을 소개하고, 섬을 추억하게 만드는 산과 바다, 오름과 섬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문화와 예술, 사람들이 많은 공간들을 함께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폭낭(팽나무)와 성곽이 있는 명월리, 잠녀(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눈물겨운 조천리, 1만 8천 신들이 있다는 제주에서 신들과의 만남이 있는 와흘리, 그리고 대학시절 가족과의 추억이 있는 보목리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숨겨진 아름다운 숨결과 이야기가 <낭만제주>에 담겨진다. 새별오름의 들불축제의 감동과 스쿠터로 달리는 세화와 성산까지의 바닷길, 우도와 마라도의 자장면... 이런 새로운 것들을 추억으로 만들어낸다.

 

동문시장에서 느끼는 사람사는 냄새, 이중섭 미술관과 김영갑갤러리가 주는 문화의 향기, 예기치 않았던 차밭을 만나 특별한 산책을 하고, 한라산 등반과 제주만이 주는 산이 아닌 곳에서 만나는 천지연, 정방폭포의 멋스러움, 중문관광단지가 주는 이국적인 느낌, 초콜릿박물관과 테디베어뮤지엄을 돌아보는 아름다운 제주 산책이 이 책속에서 이어진다.



몇년전 제주도에 들렀을때 한림공원에서 쉴새 없이 뽀뽀를 일삼던 두마리의 발찍한? 앵무새가 있었다. 그 녀석들을 카메라에 담아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여러번 셔터를 눌렀지만 워낙 좁게 둘러쳐진 울타리 덕분에 쉽게 그 모습을 잡을 수가 없었다. 여러번의 시도 끝에 담아낸 것이 바로 위의 사진이다. 여행은 이처럼 오래도록 아름다운 추억과 이야기로 간직된다. 누구나가 다 알고있는 이름난 명소도 좋지만 여행자들의 발길 닫지않는 한적한 공간이 주는 따스함과 사람냄새에 더 행복할때가 많다. 나와 그녀만의 장소를 만들고 함께 걷는일 만큼 더 큰 즐거움이 있을까? 아무도 모르게 쌓아올린 조그만 돌탑을 바라보며 다음을 기대하게하는 설레임도 행복 그 자체다.

 

"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차를 몰고 가야 할 곳은 외로운 휴게소인지도 모른다" 는 말이 있다. 여행길에 들른 휴게소에는 수많은 인파가 넘쳐흐른다. 각자 수많은 추억과 감동,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의 향기를 담아낸 그들의 눈빛은 떠나는이의 설레임과 돌아오는이의 행복감이 교차한다.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지만 그들의 설렘과 추억은 오래도록 그들의 삶을 탄력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여행의 시작은 설렘이지만 가슴에 남는 것은 사랑입니다.

 

설렘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마무리하는 제주여행. 낯익은 곳보다는 낯선곳이 많아 더 큰 즐거움이 있다. 이 책은 제주를 여행하는 새로운 시선도 선물한다. 제주 여행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과 숙소, 교통, 계절별 여행코스, 맛집 등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과 더불어 실용적인 제주 관광 가이드 북으로써도 즐거움을 준다. 특별함을 선물 받은듯 하다. 올 여름 계획하고 있는 제주 여행에서 이전에 느꼈던 것보다 훨씬 큰 즐거움, 낭만을 한가득 가지고 돌아올 수 있을것 같다. <낭만제주>는 여행에 대한 설렘을 다시금 싹트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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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가의 영혼을 만난 곳 김영갑갤러리(제주 가족여행 둘째날)
    from 꿈을 나누는 서재 2010-07-26 18:00 
    섭지코지에서 20여분을 달려 "두모악갤러리"에 도착했다. 많은 이들에게 "김영갑갤러리"로 알려진 곳이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이름 이라고 한다. 한적하고 고즈넉한 것이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을 하고 있다. 폐교된 삼달초등학교를 작가의 영감만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곳이다. 작가 김영갑 선생은 충남 부여태생으로 1985년 제주도에 들어와 정착했다. 제주 섬의 수평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곳에 머물며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제주도의 산과 들, 구름, 새,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