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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12월
평점 :
오랫만에 PC 앞에 앉아, 한 권의 책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는다. 책을 펼쳐 본지도 어느새 몇 달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만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무척이나 바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즐겁고 행복하게 한 해를 마무리했고, 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중이다. 겨울답지 않은 비 소식은 오늘도 이어지고, 그러는 와중에 따스한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오랫만에 두툼한 책 한 권과 마주 앉아 있다.
"정말 전혀 다르게 생겼다니까....."
내가 엄마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무언가를 눈치챈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때 엄마 눈속에는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마치 불길한 생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P. 9 -
단란하고 평범했던 가정, 하지만 갑작스런 엄마의 자살, 그리고 그 슬픔을 가슴에 꼭 묻어두고 열지 말라는 아빠의 말에 닫혀있던 우지이에 마리코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다. 대학 교수인 아빠,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에 잠긴듯한 엄마의 모습에 혹시, 자신에게 어떤 출생의 비밀이 있지 않을까 의심을 품게 된 마리코는 엄마의 자살 이후 엄마가 죽기전 도쿄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비밀을 찾아 도쿄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반대로....
도쿄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던 고바야시 후타바는 밴드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번에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다. 하지만 엄마는 그녀의 TV 출연을 극구 반대하고, 그로 인해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이 일이 관련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TV 출연후 엄마가 갑작스레 뱅소니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후타바 역시 여러가지 의문을 품게 되고 자신의 아빠는 누구인지, 또 의심스런 뺑소니 사고에 대해서 조사해보게 된다.
<분신> 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힌트!를 무기 삼아 책에 담겨진 이야기들이 어떤 내용들을 담아냈을지 읽는 이들 각자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느정도 짐작들은 하고 있을것 같다. 출생의 비밀에서 시작된 추리 과정에서 실체에 다가 갈수록 조금씩 조금씩 조여오는 거대한 그림자의 힘! 그리고 예상과 조금은 다른 결말이 주는 신선한 반전의 매력! 오랫만에 만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짜릿하고 신선하게 열어준다.
마리코와 후타바! 이 두 사람에게 갑자기 찾아온 불행, 그 시작점은 출생의 비밀이라는 것이지만,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단순하고 불순한? 출생의 비밀이 아닌, 메디컬 스릴러라는 장르 답게 색다른 소재속에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분신>은 1992년 잡지에 연재되었던 '도플갱어 증후군'을 새롭게 재출간한 작품이라고하는데, 30년여년 전 작품의 소재로서는 조금은 파격적인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신선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나는 나 자신이 태어난 이유에 얽매일 것이다. '분신' 으로 태어났고, '분신'이어서 아빠에게 사랑받았고, '분신'이기에 엄마를 잃은 내가 '분신'이외의 무엇이 된다는 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결국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있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 P. 450 -
역시 탁월한 이야기꾼,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찬사를 부르게 만드는 작품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아직까지도 활발한 활동으로 사랑받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작품이다. 지난해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가가형사 시리즈의 완결이기도한 '기도의 막이 내릴때'가 그렇고, 이 작품 <분신>도 그렇지만 '동급생'과 '교통 경찰의 밤' 역시도 재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한 해였다. 물론 다른 해와 비교해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명성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케 하는, 깊이있는 존재의 이유를 되짚게 만드는 작품이 바로 <분신>이 아닌가 싶다. 600페이지에 가까운 두터운 무게에 비해서 책장을 넘기는 손놀림은 너무나 가볍기 그지없다. 치밀하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뻔한듯하지만 뻔하지 않는 반전이 주는 재미가 <분신>을, 히가시노 게이고를 사랑받는 작품과 작가로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단순히 종이에 국한되지 않고, 드라마나 영화로 발을 넓혀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이는 작가라는 타이틀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진 특별함이 아닐까 생각된다.
2020년이라는, 어쩌면 공상과학 영화속 시간처럼 느껴지는 이 공간에 지금 우리는 서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20세기의 끝자락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그러하다. 정치도, 경제도, 서로 치고 받는 세계속 모습들도 말이다. 하지만 문화는 그렇지 않다. 기생충이, BTS가, 그리고 우리 작가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시대, 그리고 그 문화가 우리를 더욱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줄것 같은 시, 공간이 바로 2020년이라는 생각을 문득 해보면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 모두 모두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