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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연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유년 시절에 읽었던 [어린왕자]는 환상과 모험이라는 꿈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조금은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난 [어린왕자]는 잊혀져가는 동심과 사랑, 우정이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시간은 같은 모습을 한, 변한지 않는 것들에 대해 전혀 새로운, 특별한 느낌은 전해주기도 한다. '회전목마'라는 이름도 그렇다. 어린 시절, 아빠 엄마와의 즐거운 추억을 지나 청춘의 사랑이 흐르는 시간속에서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한 이름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제 그 이름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또 다른 느낌으로 우리 곁에 머무른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회전목마>는 제목이 참 예쁘다. 그 이름을 살며시 부르는 순간 오래전 추억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속 '회전목마' 라는 이름은 단순히 유년과 사랑의 추억을 담고 있지만은 않다. 생존을 위한 쳇바퀴, 봉 끝에 매달려 목표도 없이 아무런 도전도 없이 끝없이 돌기만 하는 삶의 모습들이 그 이름속에 있다. 그런 삶의 회전목마를 탄, 그의 이름은 케이치 였다. 아내와 딸 카에데, 아들 텟페이 이렇게 4가족으로 구성된 평범한 가정의 가장, 케이치 그의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이 시작된다.
<회전목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사기업에서 힘겹게 일하던 케이치가 조금은 편안한 직장, 칼퇴근에 변화가 없는, 아니 변화를 두려워하는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되고 그러던 어느날 아테네 마을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발령을 받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누계적자 47억엔을 떠안고 시의 보조금으로 유지되는 이 아테네 마을가 존속하는 이유는 정치인들의 계산된 잇속에 의해서이다. '아테네 마을 리뉴얼 추진실 준비실'에 배치된 케이치,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고 소심하기 그지없는 팀장 탄바와 야나이, 사와무라, 그리고 유키에 이렇게 4명이 추진실을 이끌어간다.
'[록키]를 본 것은 고등 학교 때, 이웃 동네의 영화관이었다...설령 승산이 없다 해도 싸우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 배웠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뭘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는 계속 이길 것을 알고 있는 승부만을 해왔다는 기분이 든다. 최근에는 공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시리즈 후반의 록키 같다.' - P. 58 -
공무원들의 특성이 책속에 고스란히 보여진다. 칼퇴근, 변화를 가장 두려워하는 특성, 지시받은 것 이외에는 애써 하려고 하지 않으려는 습성... 허수아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들의 모습속에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추어 본다. 케이치의 고군분투는 이런 상황하에서 시작된다. 자신들의 권력 연장을 위해서 존재하는 아테네 마을의 유지에만 촛점을 맞춘 정치인들, 아테네 마을을 변화 발전 시키기보다 그들의 뜻에 어긋남없이 다름아닌 허수아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공무원들의 모습. 케이치 역시 그런 공무원이라는 이름속에 쳇바퀴 돌듯 살아 온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런 틈바구니속에서 케이치는 아들 텟페이의 작문 숙제와 맞물려 자신의 모습과 직업관, 위치에 대한 고민과 갈등속에서 도전이라는 명제속으로 과감히 뛰어들게 된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postfile/1/2009/12/30/14/easlle2_2398505870.jpg)
우리 아버지의 일은,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 시청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 P. 63 -
우리 아버지의 일은 높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라고 시킨 일에 예, 라고 대답하고 그것을 제대로 해내는 것입니다. - P. 90 -
우리 아버지의 일은 굉장히 바빠서,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나갑니다. 나랑 한 약속도 안지킵니다. - P. 219 -
우리 아버지의 일은 아케네 마을에서 이상한 모자를 쓰고 손님에게 '이쪽으로 오십시오.' 하고 안내하는 것입니다. 같이 일하는 것은 새우, 애벌레, 삶은 달걀, 토끼귀를 단 누나... - P. 387 -
언젠가 텟페이나 카에데에게 '이게 아버지가 하는 일이야.' 라고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을까? - P. 416 -
텟페이의 작문숙제인,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아이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이 그렇게 조금씩 변해간다. 케이치 자신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간단 명료하게 정의 내리지 못하는 상황속에서, 아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떳떳하고 당당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회전목마>는 재미와 유쾌함이 가득하다.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의 대화와 행동들속에서 그들을 꼬집고 우리 사회를 여지없이 비꼰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도전과 목표가 없는 삶에 던지는, 회전목마와 같은 삶의 단편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도전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배우게 된다.
'괜찮아, 괜찮아. 어딜 가든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당신은 할 수 있어. 당신은 강해. 챔피언을 쓰러 뜨려. 자, 파이팅 포즈를 취해봐.' - P. 26 - 아내 미치코의 이 말이 너무 감동 스럽다. 역시 무겁고 아플때 힘이 되는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뿐일 것이다. 아들 텟페이에게 보여지는 아빠라는 이름이 소중한 것처럼,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살아갈 충분한 이유와 도전하는 삶의 이유를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회전목마>라는 추억의 제목속에서 어른이라는 이름에서 느끼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마주한다. 추억과 사랑을 넘어, 도전과 열정이라는, 삶의 새로운 목표라는 특별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다소 평범한 소재와 이야기이지만 특유의 재미와 유쾌함으로 감동을 전해준 작가의 특별한 솜씨?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우리 주변을 잠시 돌아보고 나 자신을 바로 세우고 가정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운 따스하고 즐거운 작품과 마주한다. 이번 주말엔 가족과 함께 놀이동산에 가보고 싶다. 조금더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은 어느 순간, 쉴새 없이 돌고 있는 회전목마 앞에서 우리는 또 어떤 느낌을 갖게 될 지... 그리고 어떤 목표와 도전을 떠올릴지 궁금해진다. 회전목마는 그렇게 오늘도 돌고 있다. Merry-Go-R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