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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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한번도 본적이 없이 아내와 살아가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아내는 남편에게 세상은 어떤곳이고 주변의 작고 세세한 것들 하나하나를 예쁘고 아름답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각막을 이식받게 된 남편은 시력을 되찾게 되고, 드디어 그렇게 보기를 원했던 세상의 빛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남편은 지금까지 아내가 묘사해주던 세상이 아닌, 비뚤어지고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세상의 모습과 만나게 되고 결국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린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던 세상과 조금은 다른 미래, 우리가 꿈꾸던 '통일'이라는 이상적이고 환상 가득한 장미빛 미래가 어쩌면 세상의 빛을 선물받은 남편의 이야기와 닮아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통일' 이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을 떨린다. 종종 주요 국제 경기에서 한반도기를 흔드는 장면만으로도 통일이라는 것이 성큼 우리 곁을 찾아온 것이 아닌가 꿈꾸게 하던 시간이 있었다. 지난 10여년간 따스한 햇빛으로 조금씩 철의 장막을 걷히게 하기도 했지만, 지금 그곳은 예전보다 더한 어두움으로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이전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서 말하던 북한 고위관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각종 지원을 통한 북한의 개혁개방은 자신들의 체제유지에 대한 상당한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리의 말은, 단순히 그들을 포용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이 아닌 개방을 이끌겠다는 이 햇볕정책이 그들에게 대단히 두려운 정책이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깊은 바닷속에서 작은 알을 깨고 자라난 거대한 물고기가 있었다.

 

과거 북한 사회에서 귀빈 대접을 받던 텔레비전 아나운서들은 남한에서는 야구장의 청소부로 일하다 자살하기도 하고, 북한 출신의 교사들은 이남 학생들의 반대보다 더한 이북 학생들의 반대로 퇴출당하고, 북한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경력은 통일 조국에서 단지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의 사생활>은 2016년,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흡수통일 한지 벌써 5년이란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누구나 원했지만 누구나 원하지 않은 미래가 되어버린 통일된 한반도의 모습이 그렇게 회색빛으로 선명하게 떠오른다.

 

북한에 있던 수십만의 군인들은 통일 조국에서 갈길이 없어진다. 북한의 여성들은 남한의 룸싸롱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 남한에 만연해있는 향락과 물질만능구조에 적응해나가지 못하는 이북의 사람들, 실업자가 된 군인이 갈길은 밤과 함께하는 폭력의 어두운 그림자속이다. 이북출신 폭력조직 대동강에서 벌어진 동료의 살인사건, 그 사건의 배후를 뒤쫓은 엘리트 군인 출신의 리강이 있다. 계속되는 사건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음모와 배신, 그리고 갈등... 암울하고 어둡기만한 통일한국의 모습을 작가는 독자들의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놓고 있다. 암흑속에서 자라나는 작은 알들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이전에 떠올렸던 한반도의 통일이란 말은 우리에게 그저 장미빛 미래로만 다가온듯하다. 통일로 인해 세계 무대에서 새롭게 KOREA 를 우뚝 세우는 새로운 계기가 될거라는 무한한 상상속을 헤매이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 독일의 통일을 보면서 우리 앞에 놓인 미래가 장미빛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과 그것들을 넘어서는 인간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들의 해결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것이다. 50년 넘게 이어져온 이질화된 문화와 정서, 심리적인 간격을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가? 이것이 바로 통일 한국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일 것이다.

 

통일 대한민국은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아플뿐이다. 아프다는 것은 아직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작은 알은 거대한 물고기가 되고 그 거대한 물고기는 다시 거대한 새가된다.

 

<국가의 사생활>은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상상하기 쉽지 않은 '흡수 통일' 이라는 소재를 채용하고, 다양한 문헌적 연구를 통해서 선명한 모습의 미래를 우리 앞에 내려놓고 있다. '가장 센 이야기를 가장 위험한 칼끝으로 점묘해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장미빛으로 덧칠해 놓은 화려한 미래가 아닌 조금은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이 작품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느낌표만이 아닌 미래에 대한 계속적인 물음표와 그 해답을 찾아나가야하는 과제를 떠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작가 이응준은 범죄로 가득한 이 소설을 만들면서 자신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과연 누가 악인인가?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이 떠오른다. 악은 존재하는가? 그것을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당신은 악인인가? 그는 악인인가? [악인]이 던져주었던 그 물음이 그대로 이 작품속에서 들려오는듯하다. <국가의 사생활> 통일이라는 설정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문제, 철학적인 질문 등 미래에 대한 고민들을 담아내고 있다. 긴장감 넘치고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 라인과 탄탄한 구성, 강력하고 선명한 메세지가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간혹 돋보이는 웃음의 코드 또한....

 

얼마전 북한이 중국에 흡수되어야 한다는 일본 극우인사의 말이 세상을 또 시끄럽게 하기도 했다. 통일이라는 말에 아직도 가슴이 설레지만, 그 모습이 어떤 구체적인 형태를 띄게 될지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북한이 남한에 흡수 통일 된다는 설정 자체도 어쩌면 장미빛인지도 모를 일이다. 예기치 않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버린 한반도, 일본의 야욕에 불타버린 한반도, 중국의 북한 흡수 그리고 남한과의 대치상태... 어쩌면 수많은 시나리오중 <국가의 사생활>의 설정이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인지도...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하지만 그것을 구체화 시키는 작업은 피와 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강력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우리 미래에 선물해준 이 작품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왠지 내가 너무 쉽게 읽어버린건 아닐까? 하는,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스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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