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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무삭제 개정판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2월
평점 :
2009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드라마 '선덕여왕'. 그 속에서 단연 인상적이었던 캐릭터를 하나 꼽으라면 주저없이 '미실'을 꼽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제목은 선덕여왕이었지만 어쩌면 '미실'이란 여인을 위한 작품이 바로 그 드라마였다. 역사속에 잠들어 잊혀졌던 한 여인의 극적인 환생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작품. 그런 인기와 관심의 이유중 하나는 바로 고현정이란 배우가 창조해낸 미실 캐릭터의 매력과도 맞물려 있는것도 사실이다. 어찌되었건 한 드라마로 시작된, - 아니 물론 소설을 통해 먼저 세상에 이름을 알렸지만 - 미실에 대한 열풍은 아직까지도 식을줄 모른다.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김별아 작가의 '미실'이 2012년 새로운 얼굴과 내용을 가득 담아서 다시금 우리를 찾아왔다. 당시 심사평을 통해 '거침없는 소설 문법, 정려한 문체, 도발적 캐릭터', 그리고 '안정적이고 우아한 문체 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생한 주인공' 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미실'이 살짝 흐트러져있던 옷 매무새를 바로잡고 올곧은 모습으로 다시금 찾아왔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미스터리한 여인 미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개인적으로 미실이란 여인을 눈앞에 놓고 만나보는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출간된 '무삭재 개정판' <미실>은 초판 출간시에 덜어냈던 부분들, 150매 정도의 원고와 120개의 각주를 되살린 정본이라 말 할 수 있다고 한다. 새롭게 되살아난 부분은 미실의 혈통과 관련된 부분들, 그리고 진골 정통 계급들과의 경쟁 구도 측면이 초판보다 명확해졌다고 한다. 초판을 만나보지 못한 나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겠지만 어찌되었건 조금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미실'을 만난다는 기쁨은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 ^^
색공지신! 미태술과 방중술을 익혀 왕을 섬겨야하는 신분으로 태어난 미실. 화랑세기에 기록된 짧은 글귀들로 재탄생한 신비로운 여인 미실은 타고난 미색으로 수많은 왕과 영웅들을 손아귀에 넣고 쥐어 흔든 권력욕 가득한 여제의 풍모를 자랑한다. 색공지신이란 비천한 신분, 운명의 굴레를 뚫고 손아귀에 세상 모든 남자를 거머쥔 여인으로 변모해가는, 1500년의 시간을 거스르는 미실의 일대기는 읽는 이들에게 드라마와는 또 다른 긴장과 매력을 선물해준다.
되살아난 천오백년전 신라와 그 왕실의 모습들은 조금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색공지신이란 신분도 그렇고 왕과 화랑을 넘나들며 왕실의 권력을 탐해가는 미실의 모습도 현대의 해석으로는 조금 낯설다. 하지만 김별아 작가의 유연한 펜 끝은 어느새 독자들의 시선 하나하나를 사로잡고 놓아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고어적 표현이 많아 다소 무리라는 느낌이 들다가도 어느새 우아하고 섬세하게 내려놓는 문체에 독자들은 여지없이 매혹되고 만다.
색공지신이란 신분에 얽매여 좌절하며 단순히 그 신분을 대변하는 여인으로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해가는 미실의 모습에 요즘을 살아가는 여성들은 감동과 교훈을 얻게 된다. 물론 남성들도 마찬가지로 다분히 순종적이던 역사속 여성 캐릭터들이 보여주던 모습을 탈피해 진취적이고 개성 강한 매력을 가진 여성상의 등장은 성적 매력을 포함해, 다양한 매력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바로 현대 사회가 미실이란 여인에게 열광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김별아 작가의 역사소설은 꽤 흥미롭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창조한다. 익히 알고 있던 모습의 인물, 혹은 쉽게 잊혀졌던 시간속 주인공들을 새롭고 색다르게 재창조하는 능력이 그녀에게는 있어보인다. 그렇게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역사속 여성의 모습으로 말이다. 처음 그런 느낌을 전해준 것이 바로 '논개'라는 인물이었다. 오래전 혼자 떠난 여행길, 진주 촉석루에서 마주친 논개의 영정,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김별아의 작품 '논개'. 잊고 지내던 한 여인이 어느새 내 가슴속에 들어와 되살아났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열애', '논개', '채홍', 그리고 '미실'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펜끝에 역사속 그녀들이 새롭게 숨을 내쉰다. 사랑으로, 드라마틱한 역사적 쟁점들로, 혹은 여성스럽고 섬세한 이야기들로 작가는 독자들을 쉼없이 어루만진다. 전통적인 여성상을 벗어던진 '미실'의 등장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듯 앞으로도 익숙함에 익숙해진 수많은 독자들에게 그 익숙함을 과감히 던져버릴 새로운 캐릭터들을 선물해주길 김별아 작가에게 기대해본다. 지난 1월 소설 '채홍'의 배경이 되기도한 경복궁에서 독자들과의 만남을 갖기도 한 김별아 작가, 앞으로도 독자들과 소통하고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