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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얼굴을 엿보다 - 우주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존재와 인생의 의미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최요한 옮김 / 복있는사람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며칠 전에 "Superman returns"를 봤다. 지금 보니 조금 촌스러운 의상에 어색한 머리스타일에 약간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어릴 때 봤던 수퍼맨이 돌아왔고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기억을 먹고 사는 것 같은데 수퍼맨 영화는 내게 좋은 식사였다. 재밌었고 감동적이었고 뜻을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대사도 내게는 그 의미를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여자는 아니지만 수퍼맨같은 남자친구가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긴, 나는 수퍼맨보다 더 능력이 많은 한 사람을 알고 있기는 하다. 글쎄 그런데 그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수퍼맨은 거대한 대륙을 들어서 우주로 던져버릴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이 사람은 기다란 두 개의 나무를 이어 만든 것도 들지 못해 들고 가다가 힘없이 쓰러지고 만다. 수퍼맨은 하늘을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은 주로 걸어 다닌다. 한 번은 물 위를 걸었던 적도 있지만 별로 그런 것을 즐기는 것 같지 않다. 수퍼맨은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지만 이 사람은 병들고 아픈 사람, 소외된 사람,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 짐작했겠지만 수퍼맨에 비해 너무나도 허약해 보이는 이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책은 수퍼맨에 비해 한없이 기운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왜 이 땅에 오셨는지 그가 무엇을 하셨는지 왜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교회와 교리가 필요한지를 설명한 책이다. 이런 책을 한 마디로 ‘기독교 변증서’라고 한다. 즉,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기독교의 필요성과 영향력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분석과 논리에 의해 기독교를 설명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변증서와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기독교를 아무리 잘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기독교는 결코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1+1=2와 같은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면 누구나가 기독교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기독교인이 되지 않으면 열등하거나 이해력이 모자란 사람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절대 그렇게 증명될 수 없다. 이 책은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열심히 설명을 하지만 마지막에 독자들은 이 설명들을 통해서 완전한 해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질문과 도전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시작도 약간 특이한데 '별을 바라봄'으로 인해 생기는 우리의 묘한 감정을 살펴보는 것으로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한 탐구의 첫발을 내딛는다.
완전한 정답을 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필요한 이유는 허약한 예수 그리스도, 냉정한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하나님이 전능한 하나님이라면 그리고 인간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면 왜 우리에게는 고통이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영문도 알 수 없이 이 땅에 태어났다. 창조자의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세상이 우리가 살다가 죽게 될 우리 삶의 전부인 곳인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런 것이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면 적어도 하나님은 피조물의 안위 따위는 별로 관심이 없는 기계적이고 냉정한 분이다." 이 책은 위의 질문들에 여러 가지 대답을 제안하면서 바로 앞에서 언급한 쉬운 대답으로 질문에 대한 고민이 그치지 않기를 유도하고 있다. 맥그래스는 쭉 설명해 나가면서 이 책의 중반부 쯤에 이런 여러 가지 질문에 하나님이 제시한 답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다. 나는 맥그래스의 이야기 방식도 마음에 들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한 설명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이 생각하고 기대한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말이다.
이 부분이 하나님의 딜레마였을 것 같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 이걸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도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생각하던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 수퍼맨이 우리의 구세주라면 사람들이 금방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리 봐도 그다지 매가리가 없어 보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쫓아다니면 어려움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큰 곤경에 빠질 것 같아 보였다. 마치 골고다로 가는 예수의 십자가를 얼떨결에 대신 구레네 시몬처럼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지구라고 하는 이 거대한 행성은 기적처럼 자전과 공전을 계속하고 있고 중력이라고 하는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힘은 우리가 지구에 꼭 붙어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붙잡아 주고 있다. 비록, 인간이 만든 구조물들에 의해 도시는 마치 인간이 창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밤하늘을 보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우리는 거대한 우주 속에 먼지같이 작은 땅덩어리인 지구에 살고 있다. 맥그래스는 우리에게 이런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만약 우리를 만든 창조자가 우리가 결코 만들 수도 도달할 수도 생각하기도 힘든 별을 드넓은 우주 공간 속에 매달아 두신 분이라면 그런 정도의 힘과 능력을 가진 존재라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그가 바로바로 해답을 주지 않는 것 같더라도 성급한 판단의 자리에서 물러나 한 번 쯤 고민해보는 것이 어떨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도시의 야경 속에 보이는 수많은 붉은 십자가처럼 흔해 빠진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기 때문에 전혀 수퍼맨이라고 의심받지 않았던 클라크처럼 우리의 선입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맥그래스는 단서를 제공했다. 그 다음 선택은 독자들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