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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와 약자
폴 투르니에 지음, 정동섭 옮김 / IVP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나는 그런 말은 듣는다.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인간...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 편하다. 외부의 어떠한 변화와 누구과의 관계에서도 상처받지 않고 세상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 나름대로 사는 방법을 점차 배워가고 있다고 해야할까? 투르니에의 분류에 따르면 나는 점점 강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힘껏 쇠몽둥이로 내리쳐도 끄덕도 안하는 슈퍼맨이 되어가고 있었다. 총을 수십 발 맞아도 끝까지 할 말 다하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었다. 주인공이라면 그런 법이다. 멋있는 사람이란 끝까지 잘 견뎌내는 사람이다. "나..아파.." 혹은 "도와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쪽팔리는 일인가.
약자에서 강자로 가는 것은 심리학적인 구원이라고 한다. 나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왔던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구원하기 위한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심리학적인 구원인 강자가 되는 것이 개인에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데 있다. 투르니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토록 강자가 되기를 바랬던 나와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내 안의 모습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강자로 보지만, 나는 내 안에 열등감과 외로움을 숨기고 있다. 끊임없이 나의 약점들이 나를 괴롭히고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 나름대로 변명거리를 찾는다. 그리고 이유를 찾아낸다. 내가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려고 애를 쓰지만 분명히 내 안에서는 신음소리를 삼키고 있을 때가 많았다.
슈퍼맨은 행복하지 않다. 슈퍼맨이 되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은 말랑말랑한 피부를 가지고 태어나고 살아간다. 칼에 베이면 피를 흘린다. 그리고 병들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결국에는 죽는다. 때로는 넘어지고 울고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야만 일어설 수 있을 때도 있다. 인간이 왜 그렇게 연약한 존재인지 모르겠다. 강철갑옷을 입고 있어봐야 인간이다. 더 치명적인 상처는 인간의 내면에서 생긴다.
강자가 되서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노력을 멈추어야 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상처받았을 때 눈물을 흘릴 수 있고 힘들면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투르니에의 말이 옳다. 이 세상에는 강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을 뿐, 강자는 없다. 누구에게나 상처와 아픔이 있고, 이유 모를 열등감과 외로움이 있다. 강자에게도 약자에게도 따뜻한 친구의 손이 필요하다.
인간은 인간이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