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으로 사는 인생
폴 투르니에 지음, 정동섭 옮김 / IVP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에 아내가 얼마 전 구역 예배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우리 아이를 비롯해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소리지르고 장난치고 울고 아마 장난이 아니었나보다. 기도가 부족해서일까? 아니다. 왜냐면 그렇다면 인생이 너무 단순해지기 때문이다. 공부 못하고 병들고 사업실패하는 이유는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공식이 성립된다. 성경 중에 욥기를 보면 그 시대에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욥이라는 사람이 온갖 고생을 당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욥기는 잠언, 전도서와 함께 지혜서로 분류되는데 욥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명료한 지혜 중 하나는 '인생은 블랙박스'라는 사실이다. 고통과 고난의 원인이 죄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부자가 된 것이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해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기도를 열심히 해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교회 열심히 다니고 기도 많이 하면 공부도 잘하고 사업도 성공하고 부자도 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별로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들에게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셨을까? '1+1=2'라는 진리처럼 확실한 원인과 결과가 모든 일에 적용될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나는' 인생은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모험'이라는 투르니에의 주장을 곰곰히 생각해봤다.'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험을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 세상을 불확실하게 만드신 것일까? 투르니에에 의하면 모든 것이 모험이다. 결혼을 하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이사를 하는 것도 학교 생활도 직장 생활도 모두 모험이다. 투르니에는 인생이 모험이라는 하나의 가정하에 인생을 생각하고, 또한 세상 사는 방법을 제안했는데 꽤 그럴듯하고 괜찮아 보였다.


모험을 할 때 가지는 자세가 삶의 자세에 그대로 적용된다. 모험은 다소 맹목적이다. 모험은 목표가 있기는 하지만 모험의 가치는 그 과정에 있다. 그리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대할 수 있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지의 불확실성은 모험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필수 조건이다. 뻔한 모험을 모험이라 할 수 없다. 그런 모험은 지루하고 재미없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모험을 즐길 수 없는 불행한 사람이다. 문득 내 머릿속에 떠오른 한 장면이 있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여주인공이 "나는 이미 내 인생을 보았어요" - I saw  my whole  life as  if I'd  already lived  it... an  endless parade  of parties  and cotillions, yachts and polo matches... always the same narrow people, the same mindless chatter.- 라고 고백하며 불행해하는 모습이었다. 아니 왜 행복할 것 같은 미래를 예상하면서 불행해 할까? 투르니에는 모험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그 여주인공은 본능을 억압받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모험으로 사는 인생을 살고 있는가? 나는 불안정한 요소들을 제거하여 삶을 점차 안정되게 만들어 가고 있다. 도전이 될 만한 일이나 위험 요소들을 제거하고 있다. 그런데,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행복한데 재미가 없다...' 책을 읽으며 삶을 좀 더 뒤죽박죽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통제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을 즐길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겠다. 즐겁고 재밌게 살려면 모험을 즐기려는 인간의 본능에 좀 더 충실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가끔 아이랑 숨바꼭질을 한다. 숨어있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나타나면 아이가 굉장히 좋아한다. "아빠, 왜 거기에 숨었어요?"라고 묻지 않는다. 그냥 좋아한다. 아마도 하나님도 비슷한 것 같다. 인생을 불확실한 모험으로 만든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을 깜짝 놀래켜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갑자기 이유없이 뜬금없이 나타나서 깜짝 놀래켜 주고 웃고 즐거워하기 위해서 몰래 숨어 계신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충분히 그러실 만한 장난꾸러기다. 사람이 태어나서 꼭 발견해야 할 한 가지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세상을 모험을 사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생각대로 모두 이루어지는 세상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을 때, 혹은 사고나 병으로 병원에 누워 있는 순간에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인지하기 시작한다. 크리스천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다시 숨으신다. 하나님은 각자가 자신만의 모험을 하기 원하신다. 크리스천의 인생은 더 자신만만하게 모험하는 인생이다. 아빠를 봤기 때문이다.


이 리뷰도 모험이다. 이 리뷰가 이 주의 리뷰로 당선이 될 지도 모르고, 추천수가  100이 될 지도 모른다. 물론 아무런 관심도 못받고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쭉 뒤로 밀려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도 후자의 경우도 이미 그 사실을 안다면 리뷰를 쓰는 재미가 없다. 미래가 불확실해야 이 리뷰를 쓰는 그 자체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모험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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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5-1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르니에에 의하면 짧지만 지금까지의 제 인생은 예측불허의 모험이요, 파란만장하게 펼쳐진 희열이었군요^^; 어찌나 아슬아슬한 모험이었는지 어떻게 그 관문들을 통과했나 싶네요. 아직도 넘을 산과 건널 바다는 많겠죠? 투르니에 식으로 본다면 모험가득한 희열넘치는 삶? ^^;

아..그리고 구역예배의 그 전도사님, 아기엄마들에겐 상처가 되었겠네요. 아직 젊으신가봐요? 저도 예전엔 잠시 그런 이분적인 단순한 생각을 가진 적이 있어요.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라는 믿음때문에 생활 모든 부분까지 확장시켰죠. 그 전도사님 생각도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옳은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설박사님도 리뷰에서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은(믿음도) 어느 한 가지 잣대로 잴 수 없는,오묘하신 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두 분이 사랑하는 의겸이를 위해 기도 안 하시는 분들이 아니시니 너그러운 맘으로 이해해 주시겠지요? ^^
그럼......우리 의겸이를 투르니에가 본다면 통제와 예측이 불가능한 모험이 가득한 삶을 즐겁게 살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 되는건가요? ㅎㅎ

설박사 2005-05-19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근나가려고 컴퓨터 껐는데, 오지 말라네요..^^ 그 사이에 어떻게 이리도 긴 글을..
아니..리뷰보다 더 멋지게 댓글을 쓰시면 어떡합니까? ^^

설리 2005-05-20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박사님의 리뷰는 항상, 사람의 진실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책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생각할 계기를 만드는 독서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설박사 2005-05-20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은엄마님 감사합니다. ^^ 오랫동안 함께 계셨던 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시니 너무 고맙고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어제는 저도 해피로긴해서 나은이 모습도 보고 몰래 올리신 사진도 보았습니다.. 한 마디 남길려 하다가 가족끼리 이야기하는데 끼어드는 것 같아 참았지요.. ^^
오늘 집에 가면 아까 가르쳐주신 것들을 한 번 테스트해보자고 은총알님한테 이야기해보려고요...ㅋ 좋은 결과 있으면 꼭 알려드리지요.. ^^